언택트 온라인 포스트 코로나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쭈글쭈글한 손은 주춤주춤

무엇을 움켜쥘 수 있을까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제야 한두 걸음 찾아가던 맛집도

목탁 소리 청아하게 꽃피던 절집도

기차 안에서 소녀인 양 품던 설렘도

손바닥만 한 마스크에 갇혀

공허한 울림조차 갖지 못했다


이번 명절엔 내려올 것 없다

마스크로 가벼운 듯 걸러낸 말을

전화기로 흘려보내던 당신

눈에 밟히는 자식들의 모습을

쓴 맛 나는 침과 함께

까슬까슬 삼키셨으리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거대한 강물처럼 벌려놓은 거리가

마스크로 가려버린 입과 함께

앗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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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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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로 가득한 세상에서 반물질을 떠올리는 건 아직도 어색한 상상이다. 빅뱅과 동시에 물질만큼이나 생성되었다는 정반대의 존재. 양전자, 반양성자, 반중성자 등의 개념이 내게 명확하게 자리잡지는 못했지만, 많은 요소를 종종 두 가지로 분류하게 된 건 반물질을 알게 된 이후부터였다.

184쪽의 책장을 덮고 나니 뜬금없이 반물질이 내게 주었던 막연한 이미지가 연상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도통 파악이 안 되는 책. 짜증조차 치밀지 않았다. 형편없다 꼭 집어서 말할 수도 없었다. 뭔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지만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보다 네 배 이상의 두께감으로 시각을 압도한 책을 완독하는 과정도 이만큼 험난하지는 않았다. 온통 허연 공간에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내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그대로 머물러있는지 감조차 오지 않아 난감해지는 느낌 말이다.

이 책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극적인 전개? 입체감 있는 캐릭터? 무의식적으로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기다렸나. ? 이제 마지막이야? 끝내 허탈해졌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잡고 있던 끈을 따라갔더니 커다란 바위에 매여있는 장면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세게 당긴 것도, 느슨하게 느꼈던 것도 모두 나였으며 혼자서 북치고 장구쳤다는 사실을 불현 듯 깨달은 순간처럼 힘이 빠졌다.

 

첫 페이지를 펼쳤던 날은 821. ~ 9월의 첫 리뷰를 너로 정했다! 만만해 보이는 두께에 가뿐한 산책길을 예상했다. 926일에 마지막 페이지를 읽게 될 줄도 모르고. 맨발로 지압 길을 걷는 정도의 과속방지턱을 더듬더듬 넘다가 사흘 만에 꿈틀거리는 두 손을 붙들었다. 집어 던지고 싶었다. , ~ 조용히 책을 덮었다. 책읽기에 한해서는 멀티가 안되는 터라 다른 책으로 갈아타지도 못하고 다시 이 책을 펼치지도 못했다3주 동안 시 한 편을 쓰고 숨 고르기를 했다. 4주째는 오랜 습성을 깨고 두 권의 책을 읽고 두 편의 리뷰를 작성했다.

2차 시기, 더는 읽기를 미룰 수 없던 920.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쳤다. 내용이 말끔히 클리어되었기 때문이다. 사흘을 읽다가 다시 덮는 순간 기시감을 느끼며 두 손을 맞잡았다. 여전히 안개 속을 기어갔다. 책장은 앞으로 넘어가는데 의식은 반대 방향으로 후퇴했다. 하루의 휴식기를 가졌다.

3차 시기, 두 주먹 부르르 떨며 도전했다. 3분의 1지점에 꽂혀있던 책갈피를 빼고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무슨 노무 내용이 이리도 말끔하게 리셋된단 말인가! 물 없이 내리 고구마 세 개를 먹는 마음을 느끼며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몇 번의 왕복 끝에 마지막에 도달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마라톤 거리를 완주한 인간이었던 거다, 나는.

 

귀족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들어간 학교에서 미미한 존재로서의 삶을 깨달아가는 주인공 야콥의 성장 소설이다. 이 책을 체계적으로 논하기는 일찌감치 망한 것 같으니 소설의 3요소를 중심으로 삶은 계란 껍질 정도의 깊이만 분석해보기로 한다. 이 리뷰를 읽고 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통찰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리뷰에 내용과 맥락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벤야멘타 하인학교이다. 저자 로베르트 발저의 자취를 살펴보면 조수, 비서 등으로 일한 것으로 보아 직업에 종사하면서 느꼈던 요소들이 이 소설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하인을 양성하는 다소 생소한 개념의 학교에서는 배우는 것이 없다.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야콥은 가르치는 교사들이 없다고 말한다. 학원의 설립자인 벤야멘타 씨와 그의 누이동생에 의해 오로지 인내와 복종만을 배우는 학교이다.

오늘날 교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산업혁명으로 많은 노동자가 필요해져서 생겨난 공장식 양성기관이 학교의 기원이라고 들었다. 일제히 칠판을 바라보며 집단 지식을 머릿속으로 집어넣는 데 익숙해진 학생들. 똑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듯이 사고조차 똑같이 하게 될 것 같은 상황이다. 여러 나라에서 교육 개혁이 일어나고 있어 교실의 풍경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지만, 아직 혁신적인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배움은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까.

벤야멘타 하인학교에서는 배움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다고 본다. 지식의 빅데이터를 학생들에게 입력하는 우리의 학교와의 차이점이다. 중간에 다른 교사들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상징적인 묘사로 보인다. 소년의 눈에 교사들은 죽음과 유사한 상태로 잠들어 있다. 떼거지로 있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사람이 없어, 사람이, 쯧쯧이라 한탄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대놓고 까고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마차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이렇다 할 역사적인 사건은 언급되지 않은다. 저자는 다른 요소에 더욱 집중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주인공은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주변의 친구들을 묘사한다.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복종하는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크라우스, 아무 생각 없이 물음표 없는 행복 안에 갇혀 살아가는 하인리히 등. 이들은 인내와 복종으로 살아가는 대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벤야멘타 씨는 거인과 폐위된 왕으로 비유되는 인물이다. 과거에는 메이저로 살아가다 어느 순간 추락하여 마이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배울 것이 많다고 생도들에게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매사 의욕 없는 패턴으로 일상을 보내는 언행 불일치 인간이다. 한때는 화려한 불꽃으로 타오르다 이제는 꺼져버린 성냥 한 개비가 연상된다.

벤야멘타 씨의 누이 리자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선 인물이다. 내실로 표현되는 가상의 세계를 차례로 보여주며 주인공을 안내한다. 이 때 리자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들은 상징적인 비유로 가득하다. 정신세계의 증강현실을 보여주는 듯한 이 장면은 몽환적인 공간을 바라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녀가 나중에 뜬금없이 죽는 건 맥락 없이 허탈하지만, 정신세계에 대한 성찰을 멈추고 소년이 세상으로 나아갈 계기가 되어주는 의미로 이해했다. 죽음이 주는 무게감보다는 키보드의 엔터키 정도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경계 정도로 묘사된다.

중간에 등장하는 형 요한은 저자의 아바타로 보여진다. 대중은 현대판 노예이며 개인은 집단 사고의 노예라 단언한 문장에서는 작가의 관점이 엿보인다. 젊었을 땐 누구나 영()이 되어야만 한다고 무로 돌아가신 공유 님을 연상케 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보인다. 주저리주저리 하는 말들이 대부분 숫자 0으로 수렴한다. 위반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며, 왜냐면 세상에는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어서. , 이런 식이다.

 

셋째, 소설에서 서사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초기 미동 시간의 지진파의 모습을 기록지로 관찰한 기분이랄까. 주인공이 길동이처럼 동서로 번쩍번쩍 활보하기는 하지만 매우 자잘하게 P파만 지직거릴 뿐이다.

처음에는 신비롭게 감추어진 내실 이야기로 뭔가 미스터리한 사건을 기대하게 한다. 일어날랑말랑 냄새만 피우다 푸쉬쉬 꺼져버린다. 주변 캐릭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으로 인내심을 키운 다음, 이제 사건을 보려 하면 마지막 페이지가 펄럭인다.

갑툭튀한 벤야멘타씨의 누이의 죽음 정도가 사건이라 할만한데 본격적인 S파로 출렁이려고 한 발짝 크게 내딪는 순간 엔딩 컷이다. 드라매니아를 농락하는 열린 결말 느낌이랄까.

삶에 있어 줄곧 카메라를 든 관찰자 마인드를 고수한 주인공이 무기력하던 벤야멘타씨와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것, 하고 많은 장소 중에 황야로 삶의 목적지를 정한 점은 전하는 메시지가 크다.

 

마이너의 영역을 말하는 내용이라서일까. 화려한 기쁨도 처절한 슬픔도 없는 밋밋함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메이저와 마이너가 뒤집히면 이런 기분이 들까. 온통 상징으로 도배된 내용 안에는 열정이라는 놈도 들락거리고 가난과 결핍의 통로가 등장하기도 한다. 산으로 동굴로 오르내리며 주절주절 말하고 다니신 차라투스트라님이 떠오른다. 하아~ 도무지 굴곡 없던 전개와 문체는 인내심의 시험 도구로 최상급의 레벨이다. 내 취향의 반물질같은 책이라서 삶의 의미고 뭐고 내내 돼지족발 삶은 물을 들이키던 기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높이 오르려는 치열한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터이다. 힘을 뺀다는 건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리라. 강력한 메시지를 어필하지 않는 듯 보이는 작가의 문장들에서 혼란을 느꼈던 건 힘을 뺀 낯선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생소함에서였을까. 뭔가 존재할 것 같은데 보지 못하는 답답함에서였을까. 어쩌면 이런 모습이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의 삶과 더욱 닮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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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9-28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야, 얼마나 꾸역꾸역 읽으셨는지 상세하게도 써주셨네요 ㅎㅎㅎ
진짜 이 책보다 몇배는 두꺼운 책도 이정도로 괴롭진 않았는데 말이죠..
저 역시도 내용 파악이 안되고 주제도 가늠이 안됩니다.
아마 대다수 독자들이 우리와 같을 거니까 낙심하지 말자구요 ^^

야콥의 형을 저자의 아바타로 생각하신 부분이 신선하네요.
비중이 크지 않아 그냥 넘긴 인물이었는데 말이죠.
또한 리자는 아직까지도 제게 미스테리한 인물로 남아있어요.
그녀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도 아리송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소년의 변화가 있었는지 감지를 못했거든요. 저 정말 대충 읽었나봐요 ㅋㅋㅋㅋ

드럽게 재미없어도 이렇게 감상평을 나누고 나면 억울함이 사라져서 좋아요.
앞으로도 얼마나 억울한 작품을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됩니다 ㅋㅋㅋ
근데 점점 저의 까칠함을 닮아가시는 듯한 기분이.... 기분탓이겠죠? ㅋㅋㅋㅋㅋㅋ

나비종 2020-09-28 17:37   좋아요 1 | URL
그렇겠죠? 저만 드럽게 재미없던 건 아니겠죠? 음, 별점 5점 주신 분들도 계실테니 취향 차이 정도로 정리해보죠.ㅋㅋ
주제 파악을 하려면 여러 번 읽어보면 될텐데 문제는 그 여러 번을 읽기가 싫어지는 책이란 거죠.^^;

저는 야콥의 형이 중얼거린 말들에 비중이 크다고 보았어요. 잠잠하다 결말에서 형에게 영원히 안녕을 고하잖아요. 뭔가 알에서 깨어난 것처럼.
마지막엔 온통 안녕이었죠. 형과도, 벤야멘타양과도, 크라우스와도. 이들과의 안녕이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어요.
벤야멘타양은 정신적인 성찰을, 크라우스는 완벽한 복종을. 형이 좀 애매한데 0으로 돌아가라고 외쳐댔으니까 이제 형의 말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걸어가보자, 황야로 가서 삶의 어쩌구를 찾아보자! 뭐 이런 거요.ㅎ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서 정확하게는 침묵을 고수하던 벤야멘타씨의 말문이 터진 거죠. 그래서 소년이 각성?한 거라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저 혼자만 ㅋㅋ

맞아요, 맞아요! 감상평으로 수다떠니까 좋아요!ㅎㅎ 리뷰보다 댓글이 더 기대되고 기다려진다는^^;
더 억울한 작품이 나올까요...? 이런 게 삶의 묘미인가요.ㅋㅋ 예측불허...를 불허하고 싶습니다만^^
물감님 덕분에 제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까칠함이 각성을 했습니다. 기분탓 아닌 것 같습니다만!ㅋㅋ 그동안은 작가님들이 상처받을까봐 드럽게 재미없는 건 4점을 줬었거든요.ㅎㅎ^^;
 

방 하나 부엌 하나 골목 끝에 느낌표

여섯 식구 허락된 자그마한 집이었지

흘러간 시간 거슬러 펼쳐지는 옛 풍경


치열한 하루하루 고단한 걸음걸음

시린 심장 녹여가며 자식들을 품던 당신

집이란 당신에게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당신을 담아내니 나의 글이 뜨끈해져

시큰한 코끝 위로 눈시울 뻑뻑하니 

아득한 공간 넘어와 물컹해진 나의 집


*2020. 9. 26. H시조백일장 본선, 참방(글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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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7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7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 병원 침대 어머니 간이 침대 

한 달여 매일 밤을 모로 누워 주무셨네 

여든 살 파수꾼 옆에 드릉드릉 숨소리 

 

오십 년 함께 하면 당신들 닮아질까 

쌔근쌔근 두 분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니 

숟가락 젓가락인 듯 한 벌로 다정하네 


*2020.8. H시조백일장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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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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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강하게 끌리는 날이 있다. 음 하나하나가 심장을 톡톡 건드리면 가던 걸음을 멈추듯 빠르게 흐르던 일상이 잠시 멈춘다. 공기의 진동이 귀가 아닌 심장으로 스며드는 순간 온몸이 울린다. 내게 음악이 아름다운 건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강인한 단조 풍의 글. 건조함 안에서 베이스 기타의 묵직한 온기가 전해졌다. 뭉클했다. 그의 전작 나의 친애하는 적과는 결이 달라진 느낌이다. 표면은 말랑해지고 내부는 단단해졌다. 이번 책은 음악처럼 다가왔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인 듯 엄청난 서사가 펼쳐지는 것도, 통통 튀는 유머로 바삭거리는 것도, 지적인 내용이 다량 방출된 것도 아닌 글에 심장이 반응했다. 심장이 평소와 다른 진폭으로 두근거렸다.

 

많은 글이 접근을 시도하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는 삶과 죽음이다. 자체의 무게감에 시작도 하기 전에 짓눌린다. 용기 내어 도전한다 해도 겉핥기로 끝나거나 어정쩡한 결론으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삶의 가장 경이로운 극단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임사체험이나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고 돌아온 경험도 드물다. 삶은 진행 중이므로 삶을 말하는 글에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잠시 멈춤 정도로나 마무리될까.

살고 싶다는 농담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주춤거리며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허세 부리지 않고 작가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삶을 연주하는 글에서 진심이 묻어나온다. 그 문장들이 전해주는 느낌이 나는 좋았다.

 

돌아보면 나의 10대는 가난에 주눅 들어 있었다. 20대에는 거기에 외로움이 더해졌다. 30대에는 의무와 관계의 뒤틀림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혼자 밤길을 걷는 마음을 칼날처럼 품은 채 많은 날을 보냈다. 40대에는 다소 나아졌지만, 저항력이 떨어지면 찾아오는 감기처럼 종종 울적함과 억울함과 허무함이 찾아왔다.

수시로 찾아오던 크고 작은 마음의 고통이 다 지나갔나 했는데 깊은 곳에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었나. 고통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한 문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고였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 명에게 천 가지의 천장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p45)’ 엄마 앞에서 넘어졌다 일어난 아이가 된 듯 위안받는 느낌에 한참을 기대어있었다.

 

만약에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 달라졌을까. 힘겨운 시간 속에서 허우적댈 때마다 수많은 만약에를 생각했다. ‘만약에의 도돌이표에 갇혀 한참 되새김질을 하던 순간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정말 바꿀 수 없는 건 이미 벌어진 일들(p194)’인데도.

내 삶을 대표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장면을 꼽아보라는 문장 앞에서는 잿빛 감정들이 담긴 장면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글을 쓰레기 봉지 삼아 그렇게나 많이 버렸는데 채 버리지 못한 순간들이 아직도 남아있었나.

불행은 우리 삶의 동기가 될 수 있는가.(p254)’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렇다!’라 답할 것이다. 삶의 어두운 순간들은 내 글의 동기로 작용했으니. 글을 쓰면서 조금씩 그 순간들로부터 거리감을 가질 수 있었다.

 

살아라.(p275)’ 마지막 문장이 한 줄기 햇살처럼 날아들었다. 추천사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작가의 문장으로만 채워진 책 역시 그의 문체만큼이나 깔끔했다. 허지웅의 문장에서는 여전히 이성적이며 지적인 매력이 묻어나왔다. 영화 속 삶을 접목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삶을 말하는 관점이 좋았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p256)’ 그가 쓰는 글의 장점 중 하나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아팠다고 구구절절 호소하지 않는다. 이런 점이 강한 신뢰감을 준다.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p274)’ 내 시간을 좀 더 잘 살아내고 싶어졌다.

 

요즘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캘리그래피를 배운다. 먹물을 이용해서 붓으로 글씨를 쓰고 조금씩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다. 서툰 가운데 재미있어 푹 빠져있다. 이 책의 제목 속 농담을 보니 자연스레 먹물의 묽고 진함이 연상되었다. ‘살고 싶다는말이 전해주는 파장이 화선지에 떨어진 한 방울의 먹물에서 그러데이션되는 농담과 닮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삶은 수시로 변하는 진동수로 흘러간다. 책에도 삶처럼 진동수가 있다는 상상을 한다. 두 진동수가 만나는 순간 절묘한 공명이 일어나면 읽는 이에게 의미 있는 책으로 자리 잡는 거라고. 코드가 맞는 책을 만난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지금 내 삶의 진동수와 일치하는 순간에 살고 싶다는 농담을 만난 걸까.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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