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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클림트의 <키스>를 보던 순간, 정적이 흐르듯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직도 그 충격이 생생하다. 어떤 사진이나 영상보다 에로틱하게 다가왔던 강렬함은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금빛이 뿜어내던 색채감이었는지, 서로를 감싸 안은 두 연인의 포즈였는지, 제목이 연상시키는 설렘이었는지, 이 모든 것이 뒤엉킨 복합적인 분위기였는지 정확히 모른다. 무엇이 나를 끌어당긴 건지, 그것이 부분이었는지 전체였는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분명한 건 그 그림에 매혹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강렬한 매력이 육박해올 때 평소의 취향은 발언권을 내세우지 못한다.(p114~115)’ 연보라, 하늘? 초록도 좋고. 간혹 좋아하는 색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노란색은 어떤 식으로든 언급된 적이 없다. <키스> 후로 노란색이 추가된다. 어쩌면 그때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노란색을 좋아하는 성향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그림을 계기로 봉인 해제된 건지도.
그때부터였다. 카드형 USB나 휴대용 손거울이나 머그컵에 이르기까지 소소한 소지품을 선택하게 된 기준이 뛰어난 성능에서 변경된 것은. 명화 하나면 족했다. 시골 느낌 나는 도시 근교에 직접 지었다는 멋들어진 집으로 집들이를 갔어도, 그저 부러웠던 건 전면이 통유리인 거실 너머로 펼쳐지던 초록의 흔들거림도, 큰 숨 한 번으로도 깨끗함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던 공기도 아니었다. 주방 한 벽에 자리 잡은 거대한 황금빛 타일 하나면 충분했다.
책장을 펼쳐보기도 전에 이미 절반 이상은 맘에 든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책 제목이 보이지 않던 거리에서는 말라비틀어진 동태 덩어리처럼 보이던 표지그림이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그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책에 대한 호감지수는 급속도로 치솟는다. ‘벌써 재밌다, 보검아’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p9)’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랑의 생애에 대한 정밀묘사다. 책에서 언급되는 현미경 아래 ‘사랑’이라는 프레파라트를 올려놓고 구석구석 관찰이라도 하듯, 그 속성을 연구한 학자가 쓴 논문처럼 사랑을 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심리묘사가 치밀하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인물의 의식이나 그 이면에 잠재된 심리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낸다는 점에서 심리학의 냄새가 짙다.
형배, 선희, 영석, 준호, 민영, 형배의 부모님이 하는 사랑은 어느 것도 같지 않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색상도 다르고 채도도 다르기에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도 없다. 이들의 사랑 중 몇 가지 요소를 엮어 순서쌍으로 결합시킨 후, 자신만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유키를 입력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기억 속의 사랑이 된다.
주로 등장하는 세 인물 이외에 주변인들의 사랑에도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스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새 한 마리에 해당하는 살점의 무게가 한 사람 전체와 동일하다며 존재의 중요성을 어필한 우화처럼, 그 어떤 사랑도 가볍지 않다. 누구나 겪었음직한 감정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마다 그 대상마다 다른 미묘한 차이는 특별하지 않은 사랑은 없음을 말해준다. ‘모든 사랑이 다 다르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규정되지 않으니까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걸 따로 정할 수도 없다.(p145~146)’라는 말처럼.
내 사랑의 패턴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에게 끌리고, 이별로 이어지는 과정도 비슷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끌어당기는 공통된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서는 비슷했다는 느낌이 들던 걸 보면.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을 거야 하면서 어느 순간 또 다른 상대에게서 매혹의 지점을 발견해내던 자신이 이해되지 않던 적도 있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관념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사랑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관념의 속성 때문이다.(p289~290)’이 문장이 그에 대한 답이 되는 걸까.
관계를 이어가면서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한 지적이 냉철하고 객관적이다.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굳이 현미경으로 볼 필요가 없고, 또 현미경으로 보지도 말아야 한다.(p231)’, ‘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p221)’, ‘눈은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도록 유도된 것을 본다.(p253)’,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낸다.(p228)’ 사람의 말이나 행동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심리에 대한 서술이 당황스러울 만큼 적나라하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상대에게 했던 행동과 당시 느꼈던 선명한 감정을, 말하자면 부드러운 말 뒤에 숨겨두었던 마음을 떠올려본다. 묘하게 설득되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점이 더욱 당황스럽다.
책을 읽다가 새로 옮긴 직장에서 심적으로 힘들어하던 직장 동료에게 마음에 꽂혔던 문장을 카카오 톡으로 보냈다.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딘다.(p54)’ 제 이야기 같다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읽다보면 사랑이 사람으로, 사람이 삶으로도 읽힌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사랑이란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므로 일반적인 관계에 적용해도 도움이 많이 될 만한 내용이다.
표지를 다시 본다. 하얀 바탕에 쓰인 제목 ‘사.랑.의.생.애’. 동그라미 4개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의 ‘애’자만 동그라미가 길쭉하다. 사랑을 뜻하는 ‘애’와 중의적으로 겹쳐진다. 훗. 별 걸 다 갖다 붙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추리소설에 버금갈만한 심리소설을 읽다보니 감각이 예민해졌다. ‘아’다르고 ‘어’다름을 알았다고나 할까. 무심코 나오는 말에 조사 하나에도 많은 심리가 담겨있음을 깨닫는다. 지금 눈으로 보이는 것이나, 굳이 귀로 들리는 것이나, 하필 이 순간에 코끝으로 흘러들어오는 향기도, 새삼 부드럽게 느껴지는 감촉도, 이렇게 맛있었나 싶은 음식 하나도 그냥 나를 지나치는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삶이 새삼 소중해진다.
‘사랑’이 목표였던 적이 있다. 멋진 사람을 보면 설레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던 것은 오로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사정권 안에 들어있는 따뜻한 이성이었다. 설렘으로 가슴 뛰던 마지막 순간이 언제더라. 기억이 희미해져갈 무렵, 내게 다시는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울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간지 남은 많았다. 드라마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들의 띠는 심폐소생술처럼 나의 심장을 부활시켰다. 만지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뭐 그런대로 삶은 다시 즐거워졌고 상상의 힘은 가끔 꿈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살아가다보니,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이성 말고도 많았다.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되었음을 확인하던 순간, 이상형을 앞에 둔 듯 콩닥콩닥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의 대상이 굳이 사람으로 한계 지어질 필요는 없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p285)’라 말한 저자의 메시지는 사랑 앞에서 주춤거리고 망설이며 관찰자 입장에서 상상하며 판단해버리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하다. 이생에서의 사랑이 일단락된 형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준호의 또 다른 사랑이 피어오를 것이 암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속박에 대한 준호의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 흠~ 나는 아무래도 결혼에 적합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작가가 설정한 형배의 사랑에서 희망을 찾는다. 카카오 톡에 저장된 이름 ‘사랑’, 가끔은 ‘사랑’이라 쓴 두 글자가 ‘웬수’로 읽히는 남자. 거실에서 발가락을 만지면서 그 손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저 인간에게, 또 누가 아는가. 형배가 선희를 다시 만난 그 순간에 느끼던 사랑처럼, 다시 두근거리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말의 영향은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나타나지 않을까.(p130~131)’라 말한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니까. 하여 내 폰의 주소록에 저장된 닉네임은 앞으로도 줄기차게 ‘내 사랑 ㅇㄱ’일 것이다. 사랑은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네버 엔딩 스토리’이니까. 나의 삶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