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향으로만 가던 삶이었다. 고지식하고 소심하고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아까 오다가 봤던 떡볶이 집, 학교 끝나고 가볼래? ? 그런 게 있었어? 등하굣길을 같이 오가던 친구가 본 것을 못 볼 정도로 걸을 때조차 앞만 보던 아이였다. 그런 삶을 걸어 중학교 과학 교사가 되었다.

직진만 하는 빛이었던 나는 수업은 그런대로 잘했다. 하지만 간혹 아이들과 면담을 하거나 생활지도를 할 때면 스스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껴야 했다. 모범생들에게는 더없이 바람직한 교사였으나 소위 날라리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교사였다.

몰려드는 학교 일에 육아와 가사를 더한 삶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30대 후반까지 회색빛 시간은 강한 탄성력으로 나를 찾아왔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넘쳐나던 일들은 무거운 자석이 된 몸에 철가루처럼 들러붙었다. 밤이 되면 몸은 쭉 가라앉았고 마음은 텅 비어 황량한 바람으로 그득했다.

 

샘은 되게 자유롭게 보여요.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반의 방과후 수업을 하고 난 후였다.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킥킥 대며 말을 건넨다. 뿌듯해진 나는 훗~ 썩소를 날리며 상큼한 바람이 되어 쉬는 시간 속으로 정신없이 빠진 복도를 휘리릭 날아갔다.

그랬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녀석들의 ** 샘은 달라져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웃는 자연인이었고, 가끔은 썰렁한 농담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어설픈 개그맨이었으며, 아픔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편안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담자였다. 더 이상 한 방향만 바라보지 않는,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는 교사가 된 나는, 큰 딸이 가장 존경하는 친구 같은 엄마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전과 달라진 삶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 시간을 조금씩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시 한 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먹먹한 일이지만, 2005, 근무하던 학교의 한 아이가 자살을 했다. 전날까지 그 반 수업을 했기에 한동안 나는 심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어찌할 바 모르는 마음 끝에 마음의 색맹이라는 시를 썼다. 내 옆 자리는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우연히 시를 본 선생님께서는 문장을 조금 수정해주셨다. 어순만 바뀌었을 뿐인데 느낌이 확 달라졌다. 소질이 있으신데요? 글을 써보세요. 제가요?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배경지식이 워낙 습자지처럼 얄팍해서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책을 좀 읽어보시는 건 어떠세요? 얼마 뒤 선생님은 교육에 관한 책을 소개해주셨고 가끔씩 다양한 장르의 책을 권해주셨다.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적어보고 독후감을 써보라고도 하셨다. 내 삶의 길에 책들이 한 권 두 권 레드카펫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12여년을 책과 함께 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 되어 꾸역꾸역 책을 읽었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멘트처럼 책과 함께 한 모든 날들이 좋았다.’라 외치지는 못하겠다. 700쪽이 넘는 기세춘의 장자를 읽을 때에는 토할 뻔했다. 책을 펼친 날보다 베고 잔 날이 더 많았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한 제자가 전화할 때마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 뭐하세요? , 책 읽어. 곧 주무시겠네요? 책 읽는 속도가 느렸던 나에게 독서는 차라리 스스로 선택한 고행이었다.

 

마을에 독서 모임을 같이 만들어볼래요? 2008, 마침 사는 동네가 같았던 선생님께서는 지역의 청소년문화의집을 거점으로 하여 청소년 독서모임을 제안하셨다. 제가요? 전공도 아닌데 어찌. 책 읽는 데 전공 구분이 있나요? 뭐든 3명만 되면 시작할 수 있어요. 선생님의 수업과 책을 좋아하는 제자 두 명을 포섭하여 4명으로 출발했다. 2009년에는 어린이 독서모임을, 2010년에는 성인 독서모임이 만들어졌다.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구성원들은 수시로 변동되었다. 매월 같은 책을 한두 권 읽고 토론을 했는데,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15명이 넘어설 때도 있었다. 꾸준히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하셨다. 모임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업그레이드되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내공을 키운 나는 어린이 독서모임의 진행자가 되었다.

 

2012, 인터넷 서점에 리뷰를 써보는 건 어때요? 독서모임 3종 세트에 매달 두 권 정도씩, 최소 5~6권의 책을 읽고 토론 자료를 제작하는 데 슬그머니 지쳐갔던 내게 선생님은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의 리뷰를 시작으로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서재에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책이 자꾸 자신을 만나게 한다.’던 작가의 말처럼 지금까지 100편의 리뷰를 올리며 100번 이상의 나를 만났다. 걸어오는 중간에 시에 매료되어 오늘까지 349편의 시를 올렸다.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품게 되었다.

 

빛은 매질을 경계로 굴절한다. 내 삶은 선생님을 만나고, 450여 권의 책을 매질로 만나면서 서서히 바뀌어가며 빛이 났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은 멀고, 그보다 더 먼 길은 발바닥까지 가는 길이라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어둡고 소외되고 낮은 곳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다가갔다. 둘째 아이와 촛불을 들며 구호를 외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의사 표현을 했다. 아직은 발바닥만 가끔 들썩일 정도로 많이 부족하지만, 머지않아 마음 가는 곳으로 용기 있게 뛰어갈 날이 올 것이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라고 한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나는 나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 2017. 5. D수기 공모전(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07-01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1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