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후의 선택 - 제1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70
김태호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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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바라본 세상의 대부분은 평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은 바다라기보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갯벌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치열한 생명력을 뿜어내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차라리 그런 모습에 가까웠다.

 

책에 실린 9편의 단편에서 갯벌을 연상한다. 멀리서 바라다보면 그저 질척거리는 공간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꿈틀거리는 생명들을 무수히 안고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수시로 파도가 덮치는 절박한 세상을 견뎌야 하는 존재들. 절반 이상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의 모습은 종종 아이들과 겹쳐진다. 어린이문학상을 심사한 작가 김지은의 말처럼 이 시대 어린이가 겪는 현실은 동물의 처지와 닮았다.(p168)’

 

독특한 시선을 가진 작가이다. <토끼전>, <손톱 먹은 쥐>와 같은 동화나 민담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묘사한다. 어른들이 이끄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폭력 앞에 내몰린다. ‘아이의 손가락 끝은 모두 빨갛게 멍울이 져 있었다.(제후의 선택, p46)’자신의 손톱을 뜯어 쥐에게 먹이며 가짜 나를 만들어낸 제후. 아이가 선택한 행동에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다. 선택지는 첨예하게 좁다. ‘넌 먹어야 살고, 엄마는 굶어야 살았던 거야. 아빠는 죽을 것처럼 일해야 살았던 거고. 각자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던 거지.(구멍 난 손, p133)’살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스스로 할퀴는 것밖에 없는 아이들이 먹먹하다.

 

작가의 시선은 아이들뿐 아니라 동물이나 꽃,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에게 닿는다. 의인화된 거북이, 고양이, , 개와 모기에게까지 그들의 처지를 항변할 기회를 부여한다. 그들 앞에서 지배자인양 행동하는 인간의 오만함은 자연의 역습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무모하다. ‘우리에겐 적이 없어요.(나리꽃은 지지 않는다, p141)’라 말하는 꽃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대장의 행동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본다. 자정 작용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강물,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북극곰의 눈물, 서서히 멈추어가는 거대한 심층수의 흐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두렵다.

 

2의 지구, 화성을 향한 프로젝트가 ‘NASA’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우주 공간 어딘가에 또 다른 생명체가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분명 두근거리는 설렘이다. 하지만 지적 호기심을 떠나 프로젝트를 향한 천문학적인 비용과 에너지 소모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나는 우주 개발을 반대한다. 지구온난화, 환경오염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엉망이 되어 가는데, 그런 분야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훌륭한 과학으로 지구를 구하지 못하고 왜 떠나려 합니까?(꽃지뢰, p157)’작가는 눈부신 과학적 성취가 지닌 맹점을 외계인인 아토인의 말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숙고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어린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탈출하고 자신을 지키기 시작했다.(심사평, p171)’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안쓰러움을 넘어 삶을 이끌어내는 의지가 있다. 자동차에 치인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동생 모기를 온기 있는 공간으로 옮겨 살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어린 형의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본다. 아이들이 건네는 작고 따뜻한 불씨가 있어 세상은, 아직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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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빵 냄새는 부드럽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내게 빵은 후각보다 온각을 자극하는 따스함이다. 간혹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오랜 기억 속 한 사람이 빵 위로 겹쳐지기에.

살아가다보면 지나고 나서야 무언가를 깨달을 때가 있다. 그렇게 알게 되는 마음은 흘러온 시간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하다. 이제야 알겠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그때 알았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10년 후에라도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에 얼마나 큰 고마움을 담아야 하는지 알았어야 했던 것을. 30여년의 시간을 건너와서야 겨우 깨달은 어리석은 제자는 빵을 바라볼 때마다 종종 당신을 생각한다.

 

빵만 보면 가끔 울컥한 제자의 이야기는 1983년에 시작된다.

영세민. 지금의 기초생활수급자 정도를 가리키던 용어였다. 교실 뒤에 말없이 걸려있는 게시판 같던 15세의 아이. 타고난 품성 탓이기도 했지만, 아이를 늘 주눅 들게 했던 건 날마다 이불처럼 덮고 자던 가난이었다.

가지 말라는 길은 절대로 안 가고, 누가 보지 않아도 맡은 구역을 청소했으며 수업태도가 매우 바른, 소위 모범생이었다. 80년대에는 정부반장을 선출하는 데 성적의 제한이 있었고 나는 학급의 부반장이 되었다.

우리 집 환경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기 초, 반장을 부르셨다. 다음 날부터 반장에게는 매일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부반장에게 날마다 빵과 우유를 사주는 일. 다니던 학교에는 매점이 있었는데 근 1년 동안 2교시가 끝나면 내 손에는 빵과 우유가 들려졌다.

 

처음에는 고마웠다. 친구 따라 매점을 들락거릴 경제적 여유가 없던 나는 도시락이 아닌 다른 것을 학교에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2교시 째에는 이번 시간만 지나면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자주 설레곤 했다.

하지만 고마움도 반복되면 슬금슬금 내성이 생기는 걸까. 선생님은 쪽지 시험 채점이나 자료 정리 같은 일을 자주 시키셨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하는 자잘한 일들이 빵에 상응하는 수고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매일 감동적으로 울리던 고마움은 한두 달이 지나면서 점차 쪼그라들었다. 나중에는 고마워하는 마음조차 희미해졌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3학년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는 시간이 흘렀고 선생님의 존재는 희미해져가던 마음처럼 서서히 잊혀졌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9년 뒤였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나는 중학교 과학교사가 되었고, 담임을 맡았다. 학급 아이들은 대부분 평범했지만,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자연스레 그들과 나이가 같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학교에 다닐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기에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직장을 잡고 돈을 벌게 되었어도 경제적으로 여유를 느낄 만큼 넉넉지는 않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일이라곤 고작 한 달에 한 번씩 그 달에 생일인 아이들에게 직접 고른 천 원짜리 작은 인형을 선물해준 것이었다. 인형을 건네주는 내 마음을 환한 미소로 받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불현듯 선생님이 떠올랐다. 선생님도 이런 마음으로 내게 빵을 주셨던 걸까.

 

다시 10여년이 지났다. 엄마가 된 나는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초임 때보다는 다소 여유가 생긴 편이었다. 한창 일할 시기라 담임을 맡는 것은 당연했고,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여전히 있기 마련이었다. 가끔 문제집을 챙겨주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더 해주지는 못했다. 아니, 더 해주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다시 선생님이 떠올랐다. 한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했다. 그건 돈이 많고 적음의 차원이 아니었다.

 

다시 10여 년이 지나 교단에 선 지 어느덧 25년이 넘어간다. 간혹 교무실로 자주 오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키면 상을 받은 듯이 뿌듯해하는 아이들이다. 심부름을 하고 참 잘했구나!” 칭찬받을 때 의기양양해 하며 웃는 아이를 보며 다시 선생님을 떠올렸다. 소심했던 나는 자신감이 없었는데, 선생님께서 시키신 일을 해내고 당신의 칭찬을 들으며 점점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다. 일부러 일을 시키신 거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문제집도 변변하게 없던 나의 영어 실력이 늘은 것도 매일 영어로 일기쓰기를 시키셨던 선생님 덕분이었던 것을.

갑자기 선생님이 보고 싶었다. 스승 찾기 코너에 검색도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후에 중학교 동창들로부터 서울 쪽으로 옮겨가셨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만 두셨다는 불확실한 소문을 흘러듣기도 했다.

 

선생님이 계시던 그 자리에서 서서, 당신을 마주보던 어린 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늦어버린 깨달음에 베풀어주신 사랑을 되돌려드리지는 못했지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마음은 또 다른 나에게 이 마음을 건네야함을 알려준다.

커다란 베풂이 무엇인지,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신, 한 아이의 빵에 온기를 심어주신 J 선생님! 잊지 못할 나의 선생님이시다. 손에 들린 빵 봉지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함이 유난히 향긋하다. 코끝이 찡해지는 퇴근길이다.

 

 

* 2017. 4. D수기공모전(잊지 못할 나의 선생님),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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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번째 봄을 맞는 아가에게

  

진아! 나무에서 내리던 연분홍빛 눈송이도 사르르 물러나고, 이제 진한 분홍으로 펼쳐진 봄이구나. 상해의 봄은 어떤 느낌일까?

팔목 치료차 귀국했던 작년 11, 6년 만에 한국의 가을을 보게 되었다며 들뜬 표정으로 말했던 너를 기억한다. 새삼 깨달았다. 열다섯 살 이후, 네 기억 속 한국의 계절은 뜨거움과 차가움뿐이었구나 하고.

꽃무늬 모자 쓰고 아장아장 걷던 너의 봄이 아직도 선하다. 함께 할 때에는 오래오래 계속 될 줄 알았는데, 같은 공간에서 온 계절을 보낼 시간은 이제 오지 않을 거더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면 지금처럼 다른 공간에서 봄을 맞이하겠지. 벚꽃 흩날리는 길을 좀 더 함께 걷고, 향기로운 대화도 많이 나눌 걸. 엄마의 봄에는 늘 한 사람이 비어있구나.

22번째 봄을 맞는 나의 아가! 너의 봄이 언제나 따뜻하기를, 향기로운 누군가 곁에 있어 삶과 사랑과 꿈에 대하여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엄마는 이제 너와의 소중한 여름을 꿈꾸려 한다. 아프지 말고, 늘 봄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2017. 4. 30.

 

엄마

 

 

* 2017. 5. D편지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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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은

부사동 산기슭이었다.

부스스 눈 비빈 이른 아침

활짝 창문을 열어젖히면

반원의 초록 너머 둥근 해는

기다란 손가락을 반겨 내밀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본 산은

평온하게 엎드려 있는

커다란 공룡이었다.

우리집을 품은 공룡의 가슴은

6년 내내 어린 나를

아기 공룡 둘리로 만들어주었다.

 

또 거기야?

6년 째 같은 산, 매일 보던 산

야외 음악당과 뿌리공원을

번갈아 오르내렸다.

김밥, 과자 가득 채운 가방 사이로

재잘대던 투덜거림

저 멀리 초록 공룡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을까.

 

빠르게 돌아가는 시계바늘

초침처럼 쫓아다니며

발자국을 찍어온 40여 년

내 기억 속 공룡의 풍경은

시간의 그림자에 한동안 가려졌다.

 

화석처럼 묻혀있던 기억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포켓몬처럼 깨어났다

이름을 듣고 한 입 베어문 순간

어린 공룡의 모습이

향긋하게 떠올랐다.

'보문산 메아리'라 했다.

 

그렇게 지겨워하던 시절,

초록으로 둘러싸인 일상이

영화 속 장면처럼 되살아나

털실처럼 뭉쳐지더니

내 심장을 굴러다녔다.

 

아직 거기 있을까?

바보같은 질문에 웃어버렸다.

알라딘의 지니도 아니고

송두리째 산이 옮겨졌을리야.

늘 한 자리에 있는 무언가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소중한 추억을 품게 한

커다란 공룡은

나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나의 잎을 무성하게 하고

어느덧 커다란 나무로

나를 자라게 했다.

 

그 옛날 보문산이 건네준

따스한 초록물이

내 세포 어딘가에

아직도 묻어있는 걸까.

다시 아기 공룡이 된 나는

커다란 공룡의 품으로

힘껏 뛰어든다.

 

 

* 2016. 12. 17. I백일장(시제: 대전의 자랑),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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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은 백일장 수상 이력이 있군요. 저는 한 번도 없어요. ^^

나비종 2017-06-05 20:53   좋아요 0 | URL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되어서 나간 건데, 제가 사는 지역에서 한 작은 규모의 대회였습니다.^^;
 

한 때 나는

대지의 초록 사이를

힘차게 굽이쳐 흐르는

푸른 혈액이었다

여린 살갗을 부비며

뛰어노는 물고기에게

옆구리 살살 간질이며

넘실거리는 물풀에게

반짝이며 출렁이는

삶의 놀이터였다

 

간혹 지나치는 시간이

나를 할퀴고 지나가도

내가 품은 작은 친구들이

토닥토닥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주변이 조금씩 허물어져도

 

그들 말대로

더 넓어지고 반듯해지고

지금보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리라 했다

자신의 터전을 무너뜨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으리라 믿었기에

정말 괜찮을 줄 알았다

토탁토닥 나를 위로해줄

내 작은 친구들도 있었기에

 

포크 같은 쇳덩어리가

내 살을 파고 들었을 때

처음으로 울었다

갈색의 굳은 살이 돋기도 전에

또 다른 쇳덩어리가

내 뼈를 깎았을 때

소중한 친구들은

같이 울며 사라져갔다

 

이제 나는

스스로 상처를 다독여야한다

목소리조차 잠겨버린 나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점점 가늘어지는 나는

묵묵히 흐르는 붉은 눈물이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꿈조차 말라버릴 것 같은 나는

이제 혼자다

 

 

* 2016. 10. 29. H글짓기대회,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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