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은
부사동 산기슭이었다.
부스스 눈 비빈 이른 아침
활짝 창문을 열어젖히면
반원의 초록 너머 둥근 해는
기다란 손가락을 반겨 내밀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본 산은
평온하게 엎드려 있는
커다란 공룡이었다.
우리집을 품은 공룡의 가슴은
6년 내내 어린 나를
아기 공룡 둘리로 만들어주었다.
또 거기야?
6년 째 같은 산, 매일 보던 산
야외 음악당과 뿌리공원을
번갈아 오르내렸다.
김밥, 과자 가득 채운 가방 사이로
재잘대던 투덜거림
저 멀리 초록 공룡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을까.
빠르게 돌아가는 시계바늘
초침처럼 쫓아다니며
발자국을 찍어온 40여 년
내 기억 속 공룡의 풍경은
시간의 그림자에 한동안 가려졌다.
화석처럼 묻혀있던 기억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포켓몬처럼 깨어났다
이름을 듣고 한 입 베어문 순간
어린 공룡의 모습이
향긋하게 떠올랐다.
'보문산 메아리'라 했다.
그렇게 지겨워하던 시절,
초록으로 둘러싸인 일상이
영화 속 장면처럼 되살아나
털실처럼 뭉쳐지더니
내 심장을 굴러다녔다.
아직 거기 있을까?
바보같은 질문에 웃어버렸다.
알라딘의 지니도 아니고
송두리째 산이 옮겨졌을리야.
늘 한 자리에 있는 무언가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소중한 추억을 품게 한
커다란 공룡은
나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나의 잎을 무성하게 하고
어느덧 커다란 나무로
나를 자라게 했다.
그 옛날 보문산이 건네준
따스한 초록물이
내 세포 어딘가에
아직도 묻어있는 걸까.
다시 아기 공룡이 된 나는
커다란 공룡의 품으로
힘껏 뛰어든다.
* 2016. 12. 17. I백일장(시제: 대전의 자랑),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