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나는
대지의 초록 사이를
힘차게 굽이쳐 흐르는
푸른 혈액이었다
여린 살갗을 부비며
뛰어노는 물고기에게
옆구리 살살 간질이며
넘실거리는 물풀에게
반짝이며 출렁이는
삶의 놀이터였다
간혹 지나치는 시간이
나를 할퀴고 지나가도
내가 품은 작은 친구들이
토닥토닥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주변이 조금씩 허물어져도
그들 말대로
더 넓어지고 반듯해지고
지금보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리라 했다
자신의 터전을 무너뜨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으리라 믿었기에
정말 괜찮을 줄 알았다
토탁토닥 나를 위로해줄
내 작은 친구들도 있었기에
포크 같은 쇳덩어리가
내 살을 파고 들었을 때
처음으로 울었다
갈색의 굳은 살이 돋기도 전에
또 다른 쇳덩어리가
내 뼈를 깎았을 때
소중한 친구들은
같이 울며 사라져갔다
이제 나는
스스로 상처를 다독여야한다
목소리조차 잠겨버린 나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점점 가늘어지는 나는
묵묵히 흐르는 붉은 눈물이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꿈조차 말라버릴 것 같은 나는
이제 혼자다
* 2016. 10. 29. H글짓기대회, 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