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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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이었던 것 같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반야심경>의 무려 260개의 글자를 외우도록 끌어당기던 막강한 힘은. 아이에게 사탕은 돌멩이계의 다이아몬드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나. 몇 살 때인지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워낙 달달 외웠던 탓에 아직도 익숙한 유행가 후렴구처럼 툭 치면 '고득아뇩다라~'가 바로 튀어나올 정도이다. 어머니께서 공양주로 일하시던 동네 절에서는 주말마다 어린이 법회를 열었다. 언니, 동생들과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고 밥을 먹고 스님의 말씀도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작정하고 불교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계신 거기, 절이 있었고 학교 가듯 친숙한 장소였던 까닭이다.

코를 막고 양파를 먹으면 달짝지근하고 사각거리는 그것이 양파인지 사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는 냄새와 함께 맛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코를 틀어쥔 손을 떼어내는 순간 매콤한 냄새가 훅 스치며 이런! !!” 임을 깨닫는다. 반가웠다. 이제 양파 맛이 나는 양파가 양파임을 알게 될 거라서. 단지 글자의 배열에 지나지 않던 글귀의 뜻을 알려줄 책이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단순한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의 이름을 불러 꽃으로 피어나기 직전의 두근거림이랄까.

 

후아! 그래서 대체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무슨 뜻이냐고요! 제목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광활했다. 불교의 4법인, 연기, 동양 문명의 테마, 3, 팔정도, 사성제, 계정혜, 슐로카, 3, 금강경, 선불교, 대승불교, 삼승, 비구, 아라한, 6바라밀, 오온, 육불, 이런 십..! 영화 <알라딘>에 나올 법한 양탄자를 타고 마음은 슝 날아갈 준비를 마쳤건만 푸르르 고장 나서 불시착한 채로 비포장도로를 꿀렁거리며 지나온 기분이다. 멀미, 멀미, 이건 멀미였다. 거침없이 밀려드는 불교 지식의 쓰나미를 감당하지 못한 나는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유혹을 언젠간 가겠지, 이 또한 지나갈 거야이제껏 없던 불심으로 뿌리쳤다. 여러 스님들과 싯달타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만 해도 제법 여유가 있었단 말이다. 145쪽에 와서야 반야가 지혜 혜(慧)의 음역임을 알았다. 숨이 찼다.

TV 속에서 클립 영상으로 보던 저자는 거침없는 인물의 표상이었다. 그의 책은 처음 접한다. 강연 투로 서술된 책속의 문장들은 거침이 없었지만 혼자만 거침없고 장황하다는 느낌이다. 종교와 철학과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보유하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 서술방식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기를 원하는데 저자는 한달음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서 설명하고 다시 불쑥 올라가는 방식이다. 다소 어수선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저자의 걸음을 따라가다 지쳐버린다.

 

기다리던 부분은 4<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가 시작되는 201쪽부터 등장하였다. 하아! 이 스무 장을 보기위해 200쪽의 걸음을 동동거리며 기어왔던가. 막상 해설은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그것도 배경지식이라고 꾸역꾸역 종이에 메모하면서 공부한 효과가 마지막 장에 와서 효과를 발휘했다. 이러려고 그렇게나 열심히 불교의 흐름과 용어를 펼쳐놓으셨던가. 머쓱해졌다.

<반야바라밀다심경>600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술의 핵심을 260개의 문자로 요약한 단행본이다. ‘심경은 핵심을 요약한 경전이란 뜻이다. 이 책에 나온 것은 삼장법사 현장이 저술한 것이다. ‘반야지혜를 의미하는 음역이며, ‘바라밀다극치, 완성을 의미한다. 합치면 지혜의 완성이다. 반야경은 대승불교의 출발이다. ‘대승큰 수레로 대중을 향해 열려있는 불교이다.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보살보리살타의 줄임말이다. 지혜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와 본질, 실체를 의미하는 살타가 합쳐진 말로 깨달음을 지향하는 사람, 그 본질이 깨달음인 사람이다. 이는 수행자에 국한된 소승불교가 대중에게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당신도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야심경>의 지향점은 무(無)이다.

 

책속에 언급된 일화와 이론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일상에 바로 적용하여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팁을 몇 가지 얻었다.

첫째, 경허 스님의 이야기를 통한 방하착(放下着)’이다. 정작 여인을 업고 개울을 건넌 스님은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이를 지켜본 사미승은 그 생각을 계속 내려놓지 못하며 생각으로 여인을 업고 가는 셈이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종일 실험 평가를 하느라 5분도 쉬어보지 못했다. 화학 실험이라 안전사고가 일어날까 예민했고 빈 시간이면 다음 반 실험을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피곤의 극치는 마지막 반에서 터졌다. 평소 수업 태도가 그지 같아서 들어가기 전에 몇 번 릴렉스를 한 다음 들어가는 반이다. 역시나 나머지 반들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던 일이 발생한다. 지금 생각하면 사고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단지 내말대로 실험하지 않은 것뿐인데. 순회하는 내 눈에 띤 장면은 지시약을 1방울 넣으라는 나의 주의사항을 깔끔하게 저버리고 뚝뚝 떨어지는 방울들과 보란 듯이 보라색과 진청색으로 그득 채워진 홈판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희미한 파스텔 톤으로 눈물 몇 방울 정도의 양이 들어있어야 할 그곳이, 보여서는 안 되는 색깔을 띤 단청 색 찰랑거리는 오줌단지가 되어버린 거다. 이거 누가 그랬어! 늘 그렇듯 결과는 있으나 원인 제공자는 밝혀지지 않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누가 그랬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조원 전체를 태도에서 감점을 한다고 버럭 하니 몇 마디씩 변명이 쏟아진다. 심증 가던 그 아이는 바로 옆의 조였다. 아이의 문장 하나가 마음에 꽂힌다. 아이들이 방해된다고 만져보지 못하게 해서 떨어뜨려보고 싶어서 한 방울 넣어본 거예요. 족히 10방울은 넘어 보이는 색깔을 현미경 수준으로 축소한 아이의 마음이 순간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 확인은 다 한 거야? . 얼른 뒷정리 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까의 버럭이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경허 스님의 내려놓음이 생각났다. 그 순간까지 버럭이를 놓지 못하고 업고 왔구나. 뭐 좋은 거라고 붙들고 있나, 얼른 내려놓아야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둘째, 연기(緣起)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싯달타 깨달음의 핵심이다. ‘어떠한 사물도 그것 자체로 단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의 변화가 오면 결과는 반드시 변하게 마련입니다.(p123)’ 사랑이나 사람이 변하는 것도 연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던 거다.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없는 것이었던 거다. 의식하지 못한 원인들이 계속 쌓이고 쌓인 것이 갑작스럽다고 느껴지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조금 더 세심하게 잘 바라봐야함을 깨달았다. 분명 최초의 한 방울이 있었을 거다. 그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셋째,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나는 좆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비하와는 전혀 다른 의미일 터이다. 나를 바라보며 겸손해지고 욕심을 버리라는 의미라 해석한다.

 

<반야심경> 해설을 음미해보니 나의 생활 패턴에 대한 학문적인 지지 기반이라도 얻은 듯 뿌듯하다. 어렴풋이 해답을 얻었다. 비행기를 타고 뿌연 구름 속을 지나며 여기로 가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며 맑아진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느낌이랄까.

260개의 문자 중 자주 등장하는 한자는 공(空)과 무(無)이다. 몇 번이나 나올까 헤아려본다. 공은 7, 무는 21번이다. 흥미로운 점은 초반에는 공이 계속 등장하다 무가 나타나면서 릴레이 바턴을 이어받은 듯 공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무소유와도 연결이 되는 없을 無. 글자의 의미와 느낌이 참 좋다.

어느 순간부터 갖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50대에 들어서면서 심장 언저리를 맴도는 생각이다. 물건을 볼 때면 이것도 결국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무소유를 지향하기로 했어. 나를 위한 물건을 사는 일이 줄었다. 지금 가진 옷, 구멍 날 때까지 입을 거야. 주변인들에게 웃으며 말하는 나. 옷을 사지 않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나마 소비하는 분야가 책인데 지금 책장에 꽂힌 책이라도 다 읽자 하니 현저하게 구입량이 줄었다. 허무함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섞여 점점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사물에도 기가 있어 색으로 표현된다면 어떨까. 손길이 닿은 횟수만큼 다른 색으로 진화하는 거다. 손이 많이 닿은 물건일수록 찬란하고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전혀 닿지 않는 것은 흑백으로 음영 처리되어 콕콕 집어내어 버릴 수 있도록. 무소유의 관점에서 집안을 바라보니 버릴 것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몇 년 간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을 찾으면 되는 거다. 서른 한 가지도 넘게 골라내는 재미가 붙는 중이다. 버리니까 공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기니까 숨통이 트인다. 물건 대신 공간을 얻는다. 새로운 공간이 신선한 공기로 채워져 덩달아 가벼워진다.

삶은 수학이 아니다. 3-3=0 이라는 수식의 수학적 결론은 0이지만 삶에서는 + 가 제로로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는 까닭이다. (無)로 돌아가는 과정이란 이런 걸까. 매순간 변화하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덜어내면서 0으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 말이다. 감당하기에 버거운 물건들을 소유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은 물건을 덜어낼 시기이다. 조금 더 과감하게 버릴 생각이다. 감정이 될 수도 있고 관계이거나 사물이 될 수도 있는 무언가를 향한 치열한 영점 조절을 해볼 작정이다.

 

 

p112, 8째줄 : 못했다는데 못했다는 데

p130, 밑에서 3째줄 : 영예 명예

p169, 2째줄 : 있어났는데 일어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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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령 2019-12-2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셨네요.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나비종 2019-12-28 09:50   좋아요 0 | URL
두께가 만만한 책이었는데 내용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읽는 데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요.^^; 하지만 몇 번의 역경을 넘기면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로 돌아가신 도깨비님처럼ㅎㅎ
 
더불어숲 - 신영복의 세계기행, 개정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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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나는 책이 있다. 천천히 읽다보면 향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흠뻑 젖는 책. 마지막 책장을 덮고 일상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코끝으로 깊숙이 스며들던 향기가 오래 맴 도는 책이다. 그의 책에서는 나무 향이 난다.

그의 책들은 매번 읽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때론 불편하고 가슴 아프지만 잊은 듯이 그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본다. 일상의 관성에 마음을 내맡긴 채 심장이 굳어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종종거리다 이 책을 만났다. 심장이 차츰 몰랑거린다. 분명 달달한 문장들은 아니다. 나를 들썩이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여행 관련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요즘 TV에서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부류라던가. ‘여행하기, 먹기, 여행가서 먹기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불과 몇 년 전보다 여행을 향한 관심들이 부쩍 높아졌다. 여행에 대한 책들도 많이 등장했다. 여행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여행지에서의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듬뿍 담겼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강의>, <처음처럼>으로부터 얻은 작가의 이미지에서 여행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의 책은 여행의 무엇을 소개해줄까.

책날개를 넘기니 세계지도가 펼쳐진다. 각 대륙에 분포한 54개의 장소들이 빨강, 초록, 파랑, 보라, 회색빛 LED전구를 심어놓은 듯 점점 박혀있다. 우와! 참 많은 곳을 기행 하셨구나. 위키 백과적인 지식만이 실려 있지는 않을 텐데. 맛 집이나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실 리도 만무하다. 이 많은 장소에서 그가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 점점 더 궁금해진다.

 

1부는 콜럼버스의 우엘바 항구에서 출발한다. 원주민과 신대륙 발견에 대한 역사의 서술은 강자의 논리를 숙고하게 만든다. 땅을 소유하고자하는 인간의 욕심은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집요하다. ‘대륙의 발견이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원래부터 그 땅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존재를 투명하게 만드는 잔인한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 바꾸기를 말하는 것부터 그의 세계여행은 시작된다.

그의 여행지를 따라가며 세계사에 등장하는 전쟁들을 새삼 들추어본다. 스페인 내전,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30년 전쟁, 베트남 전쟁, 2차 세계대전, 프랑스 혁명, 피의 강 전투 등 전쟁의 현장들이 다른 의미로 자리한다. 전쟁으로 스러져 흙이 된 사람들의 존재가, 무심코 잊혀져있던 과거의 그들이 저자의 발밑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유럽 여행을 그려볼 때면 알프스 산맥의 광활한 순백, 에펠탑의 화려한 조명, 그리스 로마 시대 유적지의 찬란함,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을 압도적인 미술품 등이 궁금했다. 그는 여행지의 풍경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했던, 앞으로 존재할 인간을 본다. 성채와 신전들 아래 묻힌 수많은 주검들을, 콜로세움에서 혈투하던 동물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만리장성의 거대함을 보고 감탄하기보다 건축물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속에 담긴 무수한 인간의 희생을 본다. ‘건물을 바라볼 때는 크기를 보기 전에 먼저 그것이 무엇을 위한 건물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의 건물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p148)’ 건물 이전에 그 건물을 세운 사람들과 그 안에 존재했을 사람들을 망각한 채 껍데기만 보려한 거다, 나는.

 

2부에서 저자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을 읽으며 스타의 꿈이 좌절된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이며 어떤 가능성을 열어 주는 꿈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214)’, ‘꿈보다 깸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p218)’ 꿈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해야하는지 곰곰 생각해본다.

마야, 아스텍, 잉카 문명의 고대인들이 인간을 희생으로 치른 의식들은 무엇을 위한희생이었을까. 인간의 구원이 오로지 인간의 희생으로서만 가능하다던 그들의 믿음은 맹목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행해지는 그보다 더한 세상의 모습들을 보면 과거의 그들이 마냥 미련했다 치부하기는 어렵다.

건물을 지탱하는 힘은 보이지 않게 묻혀있는 기초공사의 탄탄함에서 온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진정한 변화는 지상의 변화가 아니라 지하의 변화라야 합니다.(p253)’ 지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중이라 불리는 집단일 터이다. 먹이피라미드로 보면 생산자인 식물이 같은 맥락일까. 나무 한 그루는 힘이 없는 듯 보이지만 나무와 나무가 더불어 모인 숲은 막강한 존재가 된다. <더불어 숲>이라는 책의 제목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울창한 숲이 되려면 나무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숲을 연상하며 손과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작가의 글에 BGM처럼 흐르는 인간이라는 음악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예전에는 빠른 게 좋았다. 이제는 느린 게, 기계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대상들이 좋다. 그의 문장은 느림의 미학을 구체적인 비유로 보여준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p370)’ 느리고 향긋한 가을 길의 풍경을 상상한다. 천천히 호흡을 한다. 마음이 화해지면서 평온해진다.

 

차례 자체가 화두이면서 한 줄의 경구 같다. 차례만 따로 천천히 읽어보아도 마음이 정갈해진다. 1부와 2부는 어찌 보면 대조적이다. 1부가 서사시라면 2부는 서정시의 색채가 짙다. 1부는 땅, 전쟁, 역사, 과거를, 2부는 하늘, 관계, 문화,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여행지마다 이러한 요소를 중심으로 이야기와 생각이 펼쳐진다. 1부를 지나 2부까지 모두 건너니 오롯이 현재가 남는다.

꽉 차지 않은 여백이 좋다. 그의 글이 건네는 여백은 깊고 넓다. 엽서 그림들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 안으로 포옥 들어간 나는 문장 사이사이에 나의 생각을 채우며 그를 따라 걸었다.

여행은 돌아옴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p14)’ 막연하게 꿈꾸던 여행에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준 책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가슴에 신선한 공기를 품고 돌아와 어떻게 현재를 걸어가야 할지 이끌어주었다.

2020일의 시간과 함께 흘러들어왔을 방대한 지식을 그는 결코 앞세우지 않았다. 담담하게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며 스스로의 울림을 지닌 내용은 편지글 형식의 친근함과 함께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그게 공명이 되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걸까. 흔들리는 나무가 된 나. 이 글을 읽고 그의 책을 펼칠 당신 역시 흔들리는 나무가 된다면. 이렇게 흔들리는 나무들이 어느 순간 더불어 숲을 이루는 걸까.

그의 여행기는 달랐다. 그는 여행지와 사람을, 역사와 문화를, 개별적인 존재와 관계를 연결하여 나에게 목적어를 넘겨주었다. 현재에 있는 나는 무엇을 볼 것인가. 목적어를 안게 된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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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9-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지내시나요, 나비종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감성이 한층 더 깊어진 리뷰로 잠시 마음에 쉼을 얻고 갑니다.

저도 이제는 신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날로그가 더 그립고 클래식한게 저랑 맞더라고요. 젊은 나이지만 마음은 아재가 되었나봅니다ㅎㅎ

요즘에 도통 독서를 못했는데 그나마 나물모임덕에 끈을 놓지는 않았어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래서 나비종님과 빨리 책 수다를 떨고 싶어지네요^^

나비종 2019-09-28 01:24   좋아요 1 | URL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부드러운 휴식처럼 읽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런 글의 향기가 제 리뷰에 조금 묻어나왔나 봅니다.^^

아날로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이메일이란 게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0.1초만에 상대에게 전달되는 그 스피드함에 감탄을 한 기억이 납니다. 한데 요즘에는 어쩌다 천연기념물 보듯 드물게 눈에 띄는 빨간 우체통을 보게 되면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고픈 생각이 들곤 해요. 상대에게 전달될 순간을 상상하며, 다시 상대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시간까지의 기다림이 정말 행복하고 설렜거든요.ㅎㅎ

저역시 요즘 이래저래 좀 바빴는데 나물과의 소박한 약속 덕분에 무사히 읽어냈어요. 이 댓글 달고 얼른 물감님 방으로 놀러가야겠습니다!^^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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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책 읽고 있어.”

혼자?”

.”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서 읽지, 왜 혼자서 그러고 있어.”

집은 노동의 공간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아. 3 둘째가 밤 10시 반 넘어서 집에 오니까 겸사겸사 기다리는 거야.” 가뿐한 듯 말을 보탰다.

집에서 나는 밥통이다 세탁기였다 가전제품이 되는 기분이 들어. 정서적인 교류 없이 왔다갔다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이랄까. 그래서 집에서 나오는 거야. 여기서는 커피 값만 지불하면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니까.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공간이지. 억지로 마음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점점 가라앉다 방바닥이 되어버릴 것 같거든. 나는 지금 안간힘을 쓰는 중이야.’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는 말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다 모습을 감추었다.

얼른 읽고 집에 들어가.”

그래.”

마음 따뜻한 친구지만 내 마음을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버티는 중이었다. 맨발로 얼음 바닥을 걷는 마음은 종종 휘청휘청 시렸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야. 스스로 다독일 때면 감각이 마비된 듯했지만 탄성력을 지닌 채 되돌아오는 냉기를 안아야 했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글쓰기 대회에 참여하며 나의 존재를 활자로 확인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고요하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휘돌고 지나갔다. 글을 쓰며 마음에 박힌 가시를 하나 둘 빼내었다. 하지만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낮 동안 웃고 말하는 가면을 쓰던 나는 퇴근 후 말간 민낯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마주했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도 걸린 듯 가슴 깊숙이 고여 있던 물컹함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커피숍으로 가는 길은 따끔한 자유였다. 껄끄러움이 먼지처럼 눈가에 고여 물기가 어렸다.

 

5교시에 들어가 보니 여학생들 대부분이 자리에 없다. 하나 둘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 있었니?”

점심시간에 배드민턴 반 대항을 했는데 졌어요.” 남학생들이 답을 해준다.

훌쩍거리며 다시 울먹이는 몇몇 여학생들. 맨 마지막에 자리로 돌아온 A의 눈이 뻘겋다. 본인 생각에 억울한 상황이 있었던 거다. 수업을 진행하는 내 눈치를 보며 뒷자리 친구에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CPR의 핵심은 타이밍이다.(p304)’ 수업보다 더 중요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 많이 속상한가보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상했을까?”

제가 한 시합은 이겼는데요, 친구에게 체육복 바지를 빌려주고 저는 친구 치마를 입고했는데 그게 짧아서 움직이기가 불편했는데 선생님이 자꾸친구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는 A.

아이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p275)’ 가만히 옆에 서서 A의 말을 들어주었다. 본인의 옷까지 빌려주고 불편을 감수했는데도 그 노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진행 과정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나보다. 다시 생각해도 속상한지 A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진행하는 선생님 입장에서 말하고, 시합을 하다보면 질 때도 있는 거지 승부에 연연하지 마라 정도의 말을 하고 수업을 진행했을 터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이들의 섬세한 뜨거움이 필요하다.(p12)’ ‘공감 과녁의 마지막 동그라미는 존재가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이다.(p145)’ 이 문장이 떠오른 나는 A의 마음을 공감하는 말을 건넨다.

저런! **샘이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가 많이 속상하고 억울했겠구나.”

어깨를 감싸고 토닥이며 A가 친구들에게 디테일한 상황을 다시 설명하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아이의 울컥함을 다독이기만 했다.

!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잠시 후 A가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한다.

그래! 세수도 좀 하고. 어유! **가 많이 속상해서.”

결과적으로 아이의 마음이 낸 문제를 맞힌 셈이 되었다. 이전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들어간 느낌이었다.

 

6교시에는 한창 수업을 하는데 B가 벌떡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뒷문을 열고 나가려한다.

갑자기 어디 가니?”

그제야 물을 뜨러 간다며 500mL 빈 페트병을 흔든다.

아니, 허락을 받고 나가야지 갑자기 그렇게 나가려하면 어떻게 해? 이따 쉬는 시간에 가!”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살짝 황당해하며 조금 높아진 톤으로 이랬을 거다.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0)’ 순간 이 문장이 떠오른다.

잠깐 복도로 나와 볼래?” 부드럽게 말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쟤 또 시작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종류의 행동을 자주 하며 수업의 흐름을 깨뜨리는 아이였다.

물을 뜨러 가고 싶다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B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했다.

샘 말씀하시는 도중 끊길까봐 말씀이 다 끝난 다음에 허락을 받으려했어요.”

그랬구나. 샘이 잠깐 오해를 한 거네. 미안하다. 얼른 다녀오렴.”

B를 보내고 교실로 들어와서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온 나를 조금은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위기를 모면하려 둘러댄 말이었는지, 말한 대로의 마음이었는지 진실은 B만이 알 것이다. 이 작은 경험에서 나는 세 가지를 얻었다. B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내가 B에게 입혔을 지도 모를 상처를 주지 않게 된 것이다. 관성대로 B는 원래 저렇게 버릇없는 아이라 규정짓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거다. B의 말이 거짓이었더라도 목이 말랐을 아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니까 귀여운 거짓말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나의 감정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점이 내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이었다.

 

제목이 따뜻해서 집어 들었다. 영감자 이명수가 표현했듯 읽는 책이 아니라 행하는 책(p7)’이다. 번드르르하고 거만한 전문가의 냄새 없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전지침서라서 좋았다. 두 명의 학생에게 적용해본 결과, 생각보다 효과가 커서 놀랐다. 막연하게 가정했던 효과 이상이었다. 소박한 집 밥 같은 치유라는 적정심리학은 맞춤형 옷인 듯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이들을 상담하는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받은 느낌이다. 그동안 교사로서의 나는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에 심리적 CPR은 하지도 않고 시술부터 하려고 달려든 셈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감하는 행동을 제일 처음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요즘 왜 지치는지 알았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해 누가 재가 돼버리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p264)’ 나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던 거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듣고 위로해주고 답을 제시해주는 축에 속한다. 그들은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관심이 없다. 대화를 끝낸 상대방은 뭔가를 잔뜩 얻은 듯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떠난 후 혼자 남은 나는 종종 공허함을 느꼈다. 그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거다.

누구에게도 나의 무거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혼자서 견디다 결국 연락을 하게 되는 두 사람이 떠오른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가만히 분석해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A는 매번 대화의 끝에 “**은요?”라며 나의 마음이 어떤가 묻는 이다. B는 나의 존재가 얼마나 의미 있고 소중한 지 표현해주는 사람이다. 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는 B와 대화하다보면 내가 썩 괜찮은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듣고 싶어 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가 적절히 섞여 들어가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p68)’ ‘요즘 마음이 어떠냐는 질문은 바로 그곳, 그녀 존재의 핵심을 정확하게 겨냥한 말이다.(p103)’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였나. 요즘 넌 어때? 네 마음은 어때? 라는.

 

어젠 좀 울적했어. 글짓기 대회 결과가 나왔는데 떨어져서 좌절했어.”

뭐 그런 걸 가지고 좌절씩이나 하냐?” 안부전화를 건 그 친구는 웃으며 가볍게 넘겼다.

사실 내 마음은 내가 한 말보다 더 의기소침한 상태였는데.

글짓기대회에 도전하는 내 심리를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답이 보였다. ‘자기 존재가 집중 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p45)’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각보다 강해졌던가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적인 곳에 기대고 싶었나.

총량 불변의 법칙은 여러 모로 적용되는 규칙으로 보인다. 어느 한 쪽이 많아지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백혈병에 걸려 암세포인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면 정상 백혈구나 적혈구나 혈소판의 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빈혈 등이 생기는 거라 들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인정 욕구로 채우고 싶었던 마음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리고 황량한 적막함이 출렁거리는 마음을. 매일 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잠들곤 했던 시간들을. 먹고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멀쩡한 직업 있고 그럭저럭 사는데 이런 감정은 사치이지 않나. 사람들이 했을 법한 말을 스스로 내안으로 던져 넣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p162)’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p218)’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p274)’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잘 아는 내가 나의 마음을 거부하고 있었던 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세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은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해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연인의 환영과 계속 대화를 하면서 지낸다. 주변 친구들은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저 마음 아프게 지켜보기만 한다.

어제는 그녀가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고 친구들에게 손을 뻗는 장면이 등장했다. “나 힘들어!” 그녀의 투명한 연인에게 건네는 말인 줄 알고 친구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그녀가 말한다.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야. 나 힘들어!” 그제야 그녀에게 울컥하며 다가선 친구들과 그녀의 남동생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말한다. “고마워, 힘들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카카오 톡의 프로필 뮤직을 이하이의 <누구 없소>로 바꿨다. ‘누구 없소/ 나를 붙잡아줄 님은 없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데/ 어디 있소~’ 매력적인 목소리와 가사 내용이 와 닿아서. 표현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책속에서는 당신이 옳다란 문장이 몇 번이나 등장했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p48)’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아픈 배를 문지르는 엄마의 손길을 느낀 아이처럼 내 마음은 그녀의 문장들에 반응했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p9)’ 책속에서 저자가 슬며시 걸어 나와 나를 향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로구나. 순간적으로 목이 메었다.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진 책속의 그림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두 사람이 안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한붓그리기다. 소제목 옆에 간단한 테두리로 있는 그림은 차라리 장식에 가까웠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울컥했다.

안는다는 것은 참으로 뭉클한 스킨십이다. 저마다의 정체성으로 따로 뛰던 하나의 심장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안는 순간 심장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이의 가슴을 데워준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경계에서 심장은 두 개로 뛴다.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지 당신의 심장이 펄떡이는 건지. 공명하는 울림은 구분하기 어렵다. 구분할 필요도 없는 순간이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그림들과 정혜신의 문장들이 뜨끈한 차 한 잔이 되어 나의 숨결을 데워주었다.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본 내 눈엔 계속 눈물이 스몄지만 내내 따뜻한 다독거림을 느끼며 위안을 받았다. 두 개의 심장을 느껴본 시간이었다.

 

 

p109, 1째줄 : 숨길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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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7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카롱 에디션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소가 된 기분이었다. 차라투스트라님은 산에서 내려왔다 동굴로 왔다갔다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시는 동안 끊임없이 말하셨건만 내 귀에 캔디도 아니고 내 귀에 경 읽기였던가. 그대 앞에서 나는 왜 이토록 작아졌는지.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깨달았다. 메타포의 향연이구나. 망했구나. 광활한 뷔페식당에 무모하게 발을 들여놓았구나.

입구에서 갈등했다. 그냥 돌아갈까. 계속 들어가 볼까. 두께에 망설이고, 무려 니체에 망설이고, 무엇보다 초라한 나의 그릇에 망설였다. 간장 종지에 한 솥 끓여낸 곰국을 쏟아 붓는 격 아닌가. 선뜻 표지를 넘기기 어려웠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호흡 크게 하고 첫 장을 펼친 건 부끄럽게도 지적인 허영심 때문이었다. 제목을 들어본 사람은 많아도 정작 끝까지 완독한 사람은 드문 책. 차라투스트라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몇 걸음 더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첫 문장은 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더럽혀진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오염이 되지 않으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p18)’ 가슴이 한껏 넓어지는 듯했다. 문장이 은유하는 의미가 어렴풋이 다가왔다. 신영복 선생님의 바다가 떠올랐다. 강물이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된다는 내용 말이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일단 나에게 익숙한 요리를 골라먹는 것으로 만족하자. 마음을 울린 문장들을 메모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삶과 자신에 대한 고찰이 담긴 문장들이 와 닿았다. 핵심이 되는 한 단어를 말하라면 자기 자신의 주인을 의미하는 위버멘쉬를 꼽고 싶다. 삶의 여정을 동물에 비유한 문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개념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총총히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처럼, 정신은 자신의 사막으로 총총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쓸쓸하기 짝이 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이곳에서 정신은 사자가 되고,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p36)’ 사막의 주인을 위버멘쉬라 한다면 나의 삶은 어느 즈음 왔을까. 낙타와 사자의 중간정도일까.

 

적절한 비유들에 소름이 돋았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데서 나와 그 높이에 도달한다.(p212)’라는 문장은 지적인 사유의 깊이를 의미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상상했다. 산맥의 꼭대기에서는 조개 화석이 발견된다. 과거 바다 밑에서 생성된 두터운 퇴적층이 융기하여 만들어진 거대 산맥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단단한 바위를 뚫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p236)’라는 문장은 물질세계의 속성으로 정신세계를 설명한다. 가시적인 세계가 모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양초가 연소하면 물과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뀌는 화학 변화이다.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자는 언제나 파괴해야 한다.(p83)’라든지, ‘먼저 재가 되지 않고 어떻게 거듭나려고 하는가?(p90)’와 같은 문장들은 화학 변화를 연상케 한다. 원자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원자가 해체되었다 재배열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도 비슷한 맥락의 파괴가 일어나야 거듭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p159)’ 불을 붙이는 도화선처럼 극복을 위해 필요한 건 용기일 터이다. 결국 철학이란 보이는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닐까.

 

인문고전의 의미를 톺아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식들이 차려진 뷔페식당의 풍경을 상상했다.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저마다의 그릇에 담긴 서로 다른 음식들의 조합을. 당신과 나는 이토록 다르다. 한 사람마저도 상황에 따라 매번 덜어가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평소의 취향만으로 선택하면 결코 새로운 맛을 알기 어렵다. 원숭이 골처럼 도무지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도, 독서도 이와 같다. 인문고전이란 뷔페식당에서의 새하얀 접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들고 있지만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공통된 삶의 본질이 고유성을 거슬러 몇 백 년 이어지는 인문고전의 힘이 되어 나오는 것이리라.

 

종교적사회적철학적 배경 지식의 내공이 있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니힐리즘을 넘어 세계의 본성, 위버멘쉬나 초인, 진리의 본질에 대한 대략적인 냄새는 맡았지만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그리기에는 아직 무리이다. 다른 이들에게 명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일단 엄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최대한 찢어본 셈이다. 고통스럽지만 아직 유려한 연주까지는 하지 못하는 초보자처럼.

손가락을 한껏 벌려보았다는 시도 자체로 의의를 찾고 싶다. 어쨌든 이 식당의 출구를 빠져나왔으니. 과장된 어투나 상황에서 종종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던내용 중 입맛에 맞는 몇몇 문장들을 단편적으로 소화시켰다. 화려한 중화 요리 식당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만 먹고 온 셈이다.

매년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메뉴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주고 싶다.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년에는 탕수육을, 이후에는 반월침강까지 도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면서 결론으로 남는 한 문장은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다.(p209~210)’이다. 삶의 의미를 천천히 정리해본다. 안도감이 드는 것은 이미 지나온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다만 이에 대한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두렵지만 설레는 것은 다가올 삶은 온전히 내 의지의 몫이라는 점이다.

변한 건 아직 없다. 여전히 나의 삶은 혼란으로 가득하고 미래에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갈등의 고비들이 넘어야할 허들로 놓일 것이다. 그래도, 가보려 한다. 깨뜨려야 변화할 수 있으니. 나의 삶을 나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나만의 걸음을 떼어보려 한다.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을 따라와 보니 나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 2019. 8.-9. 2019년 I 독후감 대회,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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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색맹인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에서는 흑백 사진 속 풍경과 비슷할 거라 한다. 전색맹은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명암만을 감각한다. 이 세상 누군가는 잿빛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색맹 중 가장 흔하다는 적록색맹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가까이 있을 때 두 색은 모두 회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미술이나 운전 관련 직업 선택에 제한을 받을 뿐이야.” 수업을 하며 나는 말했다. 다만 불편한 거라며 이해한다는 듯 오만한 말을 뱉어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인간의 감정을 무려 48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48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희로애락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 이 책의 주인공 윤재가 지닌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아몬드를 닮은 뇌 속 편도체가 발달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전두엽 이상으로 생긴다는 사이코패스는 들어봤어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존재는 생소했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의사 요한>의 주인공 요한은 ‘CIPA’라는 병에 걸린 인물이다. ‘CIPA’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각증이다. 뜨거움도 차가움도 그 어떤 고통에도 그의 몸은 반응하지 못한다. 몸에 칼을 대고 수술을 하는 순간조차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주사바늘에도 벌벌 떠는 나는 그런 질병을 품고 사는 이의 마음을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통각을 느끼지 못해 몸을 피하지 않으니 위험하겠다, 그러니 불안하겠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즈음 이 책을 읽었다.

아프지 않으면 좋지 않나. 1차적으로 드는 생각이지만 무통각증 환자에게는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생명에 위협을 가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그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외부자극이 와도 감각하지 못해 피하지 않으니 위태로운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아픈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구나. 아파야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으니.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지. 별개라 생각해왔다. 공통적인 속성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드라마와 이 책을 통해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병이 든다는 것은 몸이 말을 하는 거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슬픔이나 괴로움과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마음이 말을 하는 것이리라. 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라고. 몸이 느끼는 감각, 마음이 느끼는 감정에는 통증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아프다, 아프다며 몸이 통증으로 말하고, 아프다, 아프다며 마음이 통증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통증이란 언어와 같은 의미인걸까.

 

삶이 힘들 때마다 믿지도 않는 신을 종종 원망했다.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어렵냐며 투덜댔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p81)’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문장이다. 이 책 속에는 다르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p65)’ 평범함이 그토록 도달하기 어려운 가치라면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준도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p9)’라는 문장을 음미해보면, 존재하는 많은 대상들이 마찬가지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윤재의 삶에 뛰어든 곤이는 흔히 말하는 평범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이다.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폭력을 행사하고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고 어른들에게 반항한다. 학급에 한두 명씩은 있는, 전형적으로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는 친구이다.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때렸던 곤이를 착한 친구라 여기는 윤재의 모습은 교사로서의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다. 지난 학기에 수업 진행을 방해하며 나를 화나게 했던 몇몇 아이가 떠오른다. 나는 편견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걸까. 단지 다를 뿐인데 틀린 거라 규정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을까. 모든 아이들을 저마다 다른 들꽃으로 여기며 예뻐했던 20대의 나도 있었는데. 부끄럽다. 언제부터 편견의 벽이 이토록 두꺼운 더께가 되었나.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녀들을 그저 바라만보는 윤재의 모습은 아수라장이 된 주변 사람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 장면에서 나는 주인공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더욱 시선이 갔다. 곤이에게 씌워진 누명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반응도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윤재의 덤덤한 내레이션은 소위 방관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p218)’ 촌철살인의 뾰족함을 품은 문장이다. 이 문장 앞에 오래 머무르며 종종 방관자의 영역으로 들어갔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윤재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크다 말할 수 있을까. 판단하기 어렵다.

이 책을 20대에 읽었다면 참 독특한 병도 있다며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50대에 읽은 이 책은 깊숙이 스며들어 나를 흔들었다. 주인공 윤재와 친구 곤이의 세상과 현실에서 내 앞에 마주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상처 입은 아이들의 언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이런 마음인 것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마음인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런 표정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야 그런 표정을 짓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비교적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사람마다 감각의 역치가 다르므로 고통을 느끼는 정도 역시 다를 것이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오만한 시각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첫 발령을 받고 이듬해인가 상담했던 아이가 생각난다. 엄마가 절 미워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대요. 큰딸이었다. 먹먹하게 울먹이던 아이에게 나는 어쭙잖은 조언을 했다. 무늬만 현란한 교과서적인 상담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20대의 나는 꽤 멋진 말을 해주었다 자만하며 우쭐했다. 얼마나 무모한 오만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지금이라면 조금 더 조심스러운 공감으로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었을 텐데.

적록색맹을 단지 불편하리라 생각했던 마음도 오만이었다. 1차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로 인해 달라질 세상의 풍경과의 싸움, 찬란한 256색상환을 바라보는 것을 평범하다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과의 싸움,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부여잡고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와의 싸움에 던져진 마음을 배재한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감히 상상할 수 없어 이해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제는 그가 틀린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라며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한 것과 동등한 시선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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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8-2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생각했던건 사람은 모두 다른데 정상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였어요. 직장에서도 업무의 로직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과, 직원간에 원활한 소통을 더 높게 보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못하지만 사실 둘다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정답의 기준으로 살아가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제 생각과 판단을 무조건 옳다고 여기려 하지 않게되었어요. 제모습도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을테니까요^^;

나비종 2019-08-21 18:56   좋아요 1 | URL
‘다르다‘란 말이 자주 나오는 만큼 저 역시 다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후감을 쓰고 개학이 되어 교실에 들어가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전형적인 곤이의 모습과 놀랍도록 싱크로율 100%인 아이들이 각 반에 있거든요. 그 아이들로부터 받아왔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달까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을 함부로 단정짓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행동인지 깨달아지더라구요. 제 자신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라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점을 상대의 매력으로 여기기로 했어요. 그런 면에서 저도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을 터이니 물감님처럼 매력적인 인간으로 등극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