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공간 일기 - 일상을 영감으로 바꾸는 인생 공간
조성익 지음 / 북스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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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다이어그램에서 나는 우주를 본다. 집합 간의 논리적 관계를 나타낸 2차원 그림을 우주의 미니어처인 양 가만히 바라본다. 가장 매력적인 건 여집합을 정의하는 그림이다. 전체 집합에 속하면서 집합 A에 속하지 않는 모든 원소의 집합. 전체 집합 U에서 우주를 의미하는 'universe'를 떠올리고 집합 A''인 양 놓아두니, A의 여집합은 자연스레 나를 둘러싼 공간이 된다.

여집합은 보집합으로도 불리운다. '()''남는다', '()''보완한다'는 뜻이다. 나는 후자의 의미가 더 마음에 든다. 나를 보완해 주는 대상이라니, 얼마나 든든한가! 온 우주가 나를 돕는 행운을 맞이하는 것처럼 온통 나를 둘러싼 공간의 존재 아닌가! 상상만 해도 오리털 이불로 폭 둘러싸인 기분이다.

, , 집합에서 우주라뇨,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닙니까! 집합 문제를 풀며 머리를 쥐어짜다 쥐가 날 지경인 고3 학생들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 ~ 너무 약올라하지 말도록. 머리를 쥐어짜지 않게 되면 삭신을 쥐어짜게 되니 그럭저럭 공평한 걸로 여깁시다!

처음부터 이토록 한가한 시선을 가진 건 아니다. 지긋지긋했던 함수의 그래프에서 유려한 곡선미를 발견하거나 사칙연산 기호에 인생을 접목하는 건 수학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치열한 점수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우연히 접하는 수학 기호는 삶의 속성을 안은 채 다가오기 시작한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에 공간의 존재감을 느낄 여유는 없다. 세상이라는 뚜껑으로 들어가는 사인펜처럼 세상과 나 사이의 간극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 시기, 공간이라 여길만한 곳은 학교를 제외하면 집이 유일했다.

어둡고 좁고 시리고 후텁지근한 공간을 메우던 가난은 공간을 비슷한 냄새로 채운다. 안방 문만 열면 바로 바깥인 삶에서의 집은 하루를 통과하고 돌아온 몸을 잠시 뉘는 장소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서로를 보듬는 가족들의 온기가 아니었다면 빠져나오지 못했을 공간, 공간을 인지하게 된 나이로부터 결혼 전까지의 기억이다.

어둠과 넓이와 추위와 더위로부터 벗어나니 36.5도의 온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공간에 놓인다. 20대까지는 몸이 시렸다면, 30대와 40대를 건너는 동안에는 마음이 시렸다. 의무가 대부분인 삶에서 '즐거운 나의 집'은 노래에서나 등장하는 유토피아였다. 여집합과 나 사이에 이도 저도 아닌 틈이 만들어진다. 불안정한 마찰음과 눅진한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가난에서 벗어나도 공간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간간이 저녁 시간에 커피숍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지만 어정쩡하면서 겉도는 상태였다. 책과 커피잔을 배경으로 종종 남겨놓은 셀카를 들여다보면 당시 나의 표정이 읽힌다. 다른 이들은 감지하지 못할 슬픔이 배어있는 눈동자가 조용히 나를 마주 본다. 안간힘을 쓰며 탈출한 공간조차 제대로 누린 것 같지는 않다.

 

건축가의 공간 일기는 인생 공간을 찾는 방법에 대한 레시피이다. 건축가 조성익은 '인생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며 책 한 권에 희망을 잔뜩 담아 건네준다. 공간을 조각하는 전문가가 공간의 맛을 직접 보고 그 느낌을 실감나게 묘사해 주니 보다 넓은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첫째, 좋은 공간에 나를 둘 것, 둘째, 일상 공간을 인생 공간으로 만들 것, 셋째, 내 공간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다. 외국에 있는 유명한 공간보다 숨은 맛집 같은 장소를 안내하고, 그가 대표로 있는 건축사 사무소가 위치한 서교동에서도 자신만의 인생 공간을 찾는다.

앞부분에는 '인생 공간, 동네에서'라는 제목의 지도가 있다. 집과 일터를 포함한 공간을 그린 동네 지도다. 느슨한 공간, 오감 공간, 땡땡이 공간, 스케일 공간, 사람 구경 공간, 아날로그 공간, 몰입의 공간, 소속감의 공간, 산책 공간, 스몰 토크의 공간 등이 펼쳐진다. 군데군데 정체성을 부여하여 삶의 순간마다 머물기 위한 맞춤형 지도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저자가 본문에서 소개하는 공간은 다양하다. 수도원, 교회, 성당, 묘지, 시장, 건축사 사무소, 야구장, 음악감상실, 엽서 도서관, 기차역, 사우나, 술집, 도서관, 정원, 자택, 오두막, 숙박 시설, 빵집, 민박집 등. 그가 안내하는 좋은 공간을 구경하다 보니 여행의 목적으로 삼아도 되겠다 싶다.

 

좋은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 좋다, 나쁘다는 개인적인 취향이 적용되는 영역이지만 보편적인 조건은 있는 듯하다. 책 속에서 특히 와 닿았던 공간의 정체성을 메모한다.

첫째, 느린 속도로 머무는 공간으로 치유의 역할을 하는 '슬로 스페이스'이다. 절제된 장식, 변화하는 햇빛, 빛의 증폭기로 구성된 공간.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공간으로 저자는 수도원과 동네 카페를 제시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다는 시간 개념 중 의미 있는 한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 시간을 즐기기를 권한다.

둘째, 일하다가 땡땡이를 칠 수 있는 공간이다. 언제든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면서 경외심을 주는 '스케일의 공간'으로 그는 교회와 성당을 소개한다.

셋째, 계절감을 주는 공간, 시장이다. 계절감을 묘사하는 멋진 문장들이 눈에 띈다. '계절감은 시장의 인테리어, 선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점을 찍어 마음에 저장하는 일, 계절의 초입에 있다는 제철 음식 데이' 같은 문장들이다.

넷째,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경험하는 공간이다. '눈은 분석하지만 몸은 기억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문손잡이가 건물이 건네는 악수'라는 문장을 접하니 건물의 손잡이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다섯째, 시각적 소음이 제거된 몰입의 공간이다. 건축가는 조명을 이용해 공간을 변신시킨다고 한다. 집보다는 조명이 있는 스터디 카페에서 글이 훨씬 잘 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걸까.

 

'좋은 공간에 나를 두고, 공간이 건네는 좋은 목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는 문장을 이미지로 상상한다. 근심 걱정이 사르르 녹는 듯 마음이 느슨해진다. 익숙하지 않은 고개가 아직은 어색하게 돌아가지만, 50대가 되어서야 나와 여집합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 듯하다.

의지대로 나의 몸을 둘 수 있는 자유를 마련하는 중이다. , 0.7mm 볼펜, 이면지, 노트북, 마우스, 이어폰, 텀블러 등 필요한 물건까지 풀옵션으로 갖춘다. 지금 여기,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스터디 카페에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여집합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을 만나 구석구석 공간을 바라보며 안정감이 오는 이유를 찾는다. 미래의 삶을 위해 진지하게 공부하는 젊은 모습들을 보면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 삶에 비추는 핀 조명인 양 노트북 위로 내리쬐는 조명 아래에서 나의 삶을 글로 옮긴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공기 청정기 사이로 얼핏 스치는 향을 맡으며, 매끈한 키보드의 감촉을 손끝으로 느낀다.

살짝 열린 오감으로 흘러 들어오는 잔잔한 자극들이 나의 삶을 기분 좋게 보듬는다. 좋아하는 넓이, 질감, 온도, 소리의 진동, 냄새 입자의 출렁임. 다른 자극으로 메워진 또 다른 공간을 찾아 나만의 동네 지도를 만들고 싶다. 촉감이 좋은 이불처럼 만들어진 여집합에 폭 둘러싸이고 싶다. 열심히 여기까지 온 나에게 공간의 물리량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삶의 이벤트를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p48, 11째 줄: 베르그먼 브리그먼

p56. 밑에서 4째줄: 덴진바시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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