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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네이처 - 삶이 불안할 때 나는 숲으로 갑니다
에마 로에베 지음, 이성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낸 나무들이 곳곳에 있다. 아파트 단지 전지 작업으로 잔가지가 제거된 나무들이다. 깔끔하다기보다 순식간에 댕강 머리채를 잘린 듯 음산하다. 괜스레 착찹해진다.
삭막한 풍경을 둘러보다 봄이 그리기 시작한 점묘화를 발견한다. 키 작은 산수유꽃 몇 점이 흔들린다. 가지 위로 내려앉은 노란 햇살 부스러기인 양 반짝인다. 가지 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딸랑딸랑 봄을 알린다. 굳어졌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꽃을 발견한 건 우연일까. 평상시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은 필연의 뿌리와 연결되는 게 아닐까. 사소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울 뿐 거슬러 올라가면 결정적인 계기는 분명 존재하리라. 세상을 향해 빼꼼 고개를 내민 새싹인 듯 자연이 나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내가 자연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리라. 그 계기에는 에마 로에베의 『리턴 투 네이처』가 있다. 겨울이나 여름, 혹은 가을에 만났더라면 삶의 풍경은 지금과는 또 달랐으리라. 봄에, 이 봄에 자연을 향해 나의 몸을 이끄는 책을 만난 건 우연일까.
『리턴 투 네이처』는 플러그가 뽑혀가는 자연에 다시 인간을 연결하여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따로 일정을 잡아 여행하지 않아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한다. 일상으로 자연을 끌어다 놓는다.
공원과 정원, 바다와 해안, 산과 고지대, 숲과 나무, 눈과 빙하, 사막과 건조지, 강과 개울 등 세상의 모든 곳을 충전 지대로 만들고자 시도한다. 작가의 시각에는 도시와 시가지조차 자연의 일부로 비추어진다.
그녀는 여덟 군데의 특징을 세세하게 살피며 각각의 환경마다 우리가 감각하는 요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많은 이들의 실험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들의 노력을 목도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작가 에마 로에베의 시도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은 자연으로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해당 장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시간별로 제안한다. 5~10분이 생긴다면, 1시간이 생긴다면, 더 많은 시간이 생긴다면, 그 장소가 가까이 없다면 어떤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나아가 더 생각해볼 것, 그 장소가 지속 가능하도록 사고방식을 전환할 것을 당부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책 표지이다. 초록 그림자를 품은 초록 물에서 신선한 산소가 송글송글 나오는 듯하다. 매끄러운 수면이 보드라운 융단 같다. 책날개를 들춰보며 이 장면이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지구 어딘가에는 이런 풍경의 초록 세상이 존재한다는 의미니까. 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정갈해진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일상의 87%를 실내에서 보내고 있다!' 띠지에 적힌 문구 앞에서 멈칫한다. 이동 시간을 빼면 집 아니면 직장 혹은 스터디 카페가 대체적인 나의 루틴이니 맞는 말이다. 요즘 내 삶의 무대에 자연이 있었던가. 휘리릭 하루를 되감기 한다. 초록은커녕 덜 익은 연두도 없다.
주변의 초록을 찾아라! 이 책을 읽는 동안 수행할 미션을 정해본다. '삶이 불안할 때 나는 숲으로 갑니다.' 부제 앞에서 서성인다. 숲에 가면 불안이 녹아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숲이 없는데 무슨 수로?
'가장 쉽고 깊은 치유를 만나는 자연으로의 여정'이라. 가장 쉽다니까 작가를 한 번 믿어볼까. 작은 기대를 품고 종이의 숲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자연을 접한다는 건 여행처럼 큰맘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 여겨왔다. 이는 당장 오늘은 어렵다는 의미이다. '쉽다'는 작가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
"샘! 시험 문제 쉽게 내셨나요?" "그럼! 너무 쉬워서 100점이 너무 많이 나오면 좋아서 어쩌지?" 시험이 끝난 후, 녀석들은 더 이상 교사의 ‘쉽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전문가의 쉬움은 이토록 다르니, 그런 '쉬움'일 수도 있으니까. 쉬우면서 깊은 치유가 과연 가능할까.
마음이 들썩이기 시작한 건 '5~10분이 생긴다면'이라는 문구를 보면서부터다. 어쩌면? 지금 당장 5분이나 10분을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하루 5분, 자연과의 만남이 선사하는 깊은 회복력' . 띠지에 적힌 문구를 다시 보며 나는 그 '5분' 도전을 해보기로 한다.
정기 인사이동으로 3월부터 바뀐 업무 환경,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나날을 보낸 지 두 주 남짓 되었을까. 졸린 눈을 비비며 꾸역꾸역 꿈에만 존재하는 듯한 자연을 한 챕터씩 겨우 넘어가던 날, 새싹처럼 꼬박꼬박 튀어나오는 '5분'의 도발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된다. 지난 수요일, 하던 일을 과감하게 접고 직장을 나선다.
교문을 나와 왼쪽 주택가의 골목길을 따라 주욱 내려가다 큰 길이 등장하면 횡단보도를 건너 잿빛 도롯가를 조금 걷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퇴근 경로이다. 그날은 무엇에 이끌린 듯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른 루틴을 택하고 싶었다.
몇 걸음 걸으니 횡단보도 너머로 지금껏 눈에 띄지 않던 언덕이 보인다. 어? 생각보다 코앞에 있는 지형지물에 당황한다. 8년 전, 분명 이 동네에 살았는데, 그때는 없었잖아.
아니, 아니, 없었을 리가 없다. 알라딘의 거인이 산을 송두리째 옮겨 놓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왜 이런 곳을 보지 못한 걸까.
나 같은 무릎 병자도 한 번 올라가 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만만한 흙길이다. 고동색의 나무 난간까지 있으니 인간이 다니는 길은 맞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미지의 공간이다. 보통 때라면 결코 가지 않을 곳에 첫 발을 딛는다. 산이라 하기에는 지극히 낮지만 저 위로 나무가 보이고, 흙이 있다는 것만으로 약간의 친숙함까지 느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연을 생각해서일까.
생각보다는 실천이지. 호기롭게 '산책'이라 부르며 미지의 장소에 오른다. 뭐, 막다른 길이 나오면 되돌아오면 되니까 조금만 가보자. 갈색의 낮은 울타리 옆, 살짝 경사진 흙길을 몇 걸음 올라가니 짚이 깔린 길이 이어진다. 다시 몇 개의 나무 계단을 밟으니 소담스런 공터가 펼쳐진다. 왼편으로는 제법 나무들도 있어 산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저 아래 도시와의 경계도 없지만 산으로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불과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먼지 가득한 도로가 잿빛 강물인 양 흐르고 있건만 무슨 마법이 펼쳐진 걸까. 단오 그네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다란 동아줄, 나무 벤치들, 야트막한 둔턱에 군데군데 자라난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하루를 열심히 달려온 태양이 마지막 존재감을 뿜어낸다.
천천히 걷는 어르신들, 주인과 산책하는 나른한 강아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주변의 풍경들이 슬로우 화면으로 펼쳐진다. 드문드문 산책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흔들리는 나무들도, 사락사락 나뭇잎을 부비는 바람도, 천천히 천천히 나를 스친다.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니 익숙한 지하철역이 보인다. 불과 5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 비가 올까. 습관적으로 휴대폰 날씨 앱을 하늘인 양 들여다보다 움찔한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않고 날씨를 검색하다니. 하늘을 본 게 언제였더라. 구름이 얼마나 많이 흘러 들어와 떠 있는지, 하늘이 무슨 빛으로 펼쳐져 있는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머리 위 세상을 알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아이러니라니.
미리 안다고 해서 안심이 되는 건 아니다. 의지가 없는 구름은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니까. 예보의 명령에 따르는 구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다. 자연은 그저 자연스럽게 자연의 길을 갈 뿐이다.
일주일 치 날씨를 1초 만에 예측하며 미래를 당겨오는 세상이다. 삶이 점점 촘촘해진다. 이러다 눌러 붙는 어깨 근육처럼 경직되는 건 아닐까. 언제부터 이 조그마한 휴대폰 안에 세상이 담기게 되었을까. 세상이 넓어진 건 맞나. 온라인 세상이 펼쳐지면서 세상이 두 배로 확장된 듯 보이지만 오히려 좁아지는 건 아닐까.
지하철 안에도 온통 휴대폰 속 세상이 들어와 있다. 휴대폰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시각과 청각만 열어둔 채로 네모난 컴퓨터와 휴대폰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프라인 세상을 향하는 감각이 점점 둔감해지는 줄 느끼지도 못한 채.
다음 날 퇴근길에도 흙길을 걷는다. 닫혀있던 다른 감각 기관들이 열린다. 향긋한 나무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한껏 들이마신다. 언제부터 새 소리가 들렸던 걸까.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며 달아난다. 산책로로 조성된 장소, 주민들을 위한 운동 공간, 존재하는지 몰랐던 공원이 이토록 가까이 있었다니.
몽글몽글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폭신한 감촉이 운동화를 뚫고 양말을 감싸고 있는 발바닥까지 전해진다. 두 발이 플러그라도 된 양 짚이 깔린 길을 밟으며 충전한다. 양말을 벗고 싶은 마음을 자제한다. 발에 묻을 흙을 무사히 제거할 대책을 마련하는 대로 기필코 시도해 보리라.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흐르지 않았다. 배경은 금세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지만, 고속 충전을 한 듯 피로가 풀린다. 한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한 경험이다. 실내화와 실외화의 구분이 굳이 필요할까 싶은 도어 투 도어의 출퇴근길. 딱딱한 바닥에서 바닥으로 이어지던 경로에 흙 내음이 슬그머니 끼어 들어온다.
다른 경로로 5분 산책을 한다. 분명 트인 공간인데 묘하다. 나무와 흙으로 둘러싸인 그곳에만 가면 비눗방울 속으로 들어간 듯 공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진다.
구획이 정해져 있지 않은 흙길은 많은 경로를 가능하게 만든다. 경우의 수가 많다는 건 나의 하루를 다른 빛깔로 채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뚝 선 나무들은 계절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변신할 터이다. 하루의 산책은 그러데이션처럼 매번 조금씩 다르리라. 나만의 산책길에 펼쳐질 미지의 풍경을 가늠하니 작은 설렘이 새처럼 날아든다.
에너지를 충전하며 하루를 마무리한 지 일주일째다. 이제야 서류나 모니터가 아닌 사람들이 보인다. 새로 바뀐 동료들과 아이들, 앞으로 마주하게 될 그들의 영혼이 나에게 펼쳐 보여줄 세계가 산책길 풍경만큼이나 기대된다. 5분의 쉼표가 부린 마법이다.
진동수가 일치하는 두 개의 진동이 만나면 큰 폭으로 진동한다. 삶의 시작과 자연의 시작이 만나 공명을 일으킨 걸까.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시작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더욱 울림이 크다.
그 계기가 되어준 이 책을 바로 이 시기에 만난 건 그래, 이건 차라리 필연이다. 첫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삶을 채워보라는, 삶이 주는 선물이다. 5분 쉼표를 품에 안으니 마음이 간질거린다. 심장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 영혼이 향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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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9, 5째 줄: 사막과 건조지에서 더 생각해볼 것 → 글씨체를 크게
p275, 밑에서 3째 줄: 강과 개울에서 더 생각해볼 것 → 글씨체를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