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림없는 소리! 친구의 떠남을 명분으로 세운 공부 멈춤 전략이렷다. 무릇 송별회라 하면 풍선 팡팡 색색 종이 부스러기들이 번쩍번쩍 흩날릴 것 같은 BGM이 희미하게라도 묻어있기 마련이건만. 녀석들의 분위기는 결코 송별회의 그것이 아니다.
“송별회 해줘야 해요.”
몇몇 녀석들이 다시 합창한다.
“K가 내일 경기도에 있는 시골로 멀리 가요.”
“내일 안 와?”
“학교 끝나고 가요.”
“그럼 내일 하면 되겠네.”
수많은 아이의 밀물과 썰물을 접했던 교사의 사전에 송별회 이브는 없다.
“자, 자~ 오늘은 별의 연주시차 할 차례 군.”
운동하는 K가 진학을 위해 타 시도로 가는 모양이다. 수업하다 힐끗 보니 아이의 표정이 시선 끝에 매달린다.
“오늘은 여기까지! 10분 정도 남았는데 송별회 해봐.”
순간 출렁! 공간이 들썩인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A가 벌떡 일어난다.
“배경 음악 틀어도 되나요?”
푸하! 들으나 마나 시끌벅적한 음악이리라.
“옆 반 방해 안 되게 조그맣게 틀어 봐.”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 어라? 이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는?
“이 노래를 아니?”
“그럼요!”
1991년에 발매된 015B의 <이젠 안녕>을 아는 2007년생이라니! ‘안녕이라는 말을 해 짧은 시간을 뒤로 한 채로~’ 폴 킴의 <안녕>, ‘오래전에 함께 듣던 노래가 발걸음을 다시 멈춰 서게 해~’ 스탠딩 에그의 <오래된 노래>가 연이어 애잔하다.
이런 분위기라면 옆 반 방해가 안 될 것 같다. 슬그머니 앞으로 가서 볼륨을 키운 건 바로 나다. 헉! 절묘한 타이밍에 싸이님 등장하신다.
“이거 이별 노래 맞냐?”
‘소중했던 내 사람아 이젠 안녕~’ 경쾌한 랩 뒤로 성시경이 <뜨거운 안녕>을 건넨다.
평소에는 누운 풀잎이던 녀석들이 주섬주섬 일어난다. 은하의 중심인 듯 K를 향해 사물함 앞쪽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꼬리 끝에 아쉬움을 매단 혜성들이 오늘의 주인공을 향한다. 반장이 색색의 별들이 꾹꾹 박힌 하얀 우주를 친구에게 건넨다.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의 종이는? 그랬구나, 그런 거였구나. 오늘따라 교과서에 광년과 파섹을 열심히 받아 적는 줄 착각해서 미안하다. 교과서는 롤링 페이퍼 받침대였구나.
이별 선물로 받은 듯 인절미 색 벙어리장갑을 낀 아이, 온풍기 빵빵한 교실 안에서 북극곰 털처럼 부슬부슬 한 장갑을 꼭 끼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숙인다. 흐르는 음표 사이로 훌쩍이는 소리가 쉼표처럼 찍힌다.
이별 앞에서 서성이는 영혼들은 몇 방울의 눈물로 금세 젖어버리는 얇은 휴지 같다.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아도 공간을 꽉 채운 채 파도처럼 일렁이며 오가는 마음이 보인다.
아이들은 자체로 자신만의 삶을 그린다. 그들의 우주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푸릇한 세상을 난, 너무 작게 보았구나. K의 주변을 빙 둘러싼 충혈된 눈동자들이 물기 아래로 반짝인다, 쉰두 개의 붉은 별처럼.
우주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던가. 별들이 모여드는 맑은 은하를 목격했던 십여 분이 초고속 사진을 재생하듯 흐른다. 별을 보내는 소박한 의식이 몽글몽글한 솜뭉치가 되어 심장 안을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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