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방
이강산 지음 / 실천문학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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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깊이가 두려웠던 걸까. 읽기 전에 앞세웠던 망설임이 쓰기 전에도 고스란히 옮겨졌다. ‘빈 문서 1’이 무거웠다. 1/1-1-1-1칸에서 나의 손가락을 기다리는 커서가 심장처럼 쿵쿵 뛰었다. 마음을 지그시 누르는 무게감은 돌덩이의 단단함이 아니라 태양의 그것에 가까웠다. 구석구석에 감추어두었던 마음의 조각들이 기체로 날아와 한꺼번에 심장을 향해 몰려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서 하얀 종이로 쏟아질 묵직함이 버거워 잠시 숨이 막혔다.

짙은 회색이라 생각했다. 시집 모항으로, 소설집 황금비늘, 흑백 사진으로 들여다본 작가의 세계는 온통 무채색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첫 걸음을 디뎠던 모항은 그런 이유로 내게 재미없는 책이었다. 두 번째로 접했던 황금비늘은 어느 정도 긴장된 마음으로 읽었다. 큰 호흡을 하며 나비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위로하는 주문을 걸곤 했다. 이건 별 거 아냐,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간은 있을 테지, 그래도 최악은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하고. 이 책이 애써 묶어두었던 봉인을 풀어버렸다. 깨진 거울 조각을 들여다보듯 곳곳에서 나를 보았다.

시린 공간과 시간이 오선지로 펼쳐졌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낮은음자리표에 맞춰 제각기 다른 선에 걸린 음표가 되어 삶을 찍어나갔다. 주인공에게도, 섬처럼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에게도 조금씩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날카로운 말에, 눈빛에, 몸짓에 베이던 쓰라림을 아직도 나의 심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가는 장면이 작가의 문장에 묻어 따끔거렸다. ‘영영 바다로 떠나지 못하고 호수에 갇혀 살게 된 빙어(p53)’의 상실감을, ‘어디로든 떠날 수 있도록 사방이 트였지만 아무 곳으로도 떠날 수 없는 섬(p58)’의 막막함을, ‘따뜻한 사람의 체온이 그리운(p73)’ 이가 감내하는 한기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말 외엔 일체 하지 않(p83)’는 건조한 서러움을, ‘사람의 말(p88)’을 갈구하는 쓸쓸함을, ‘사랑과 결혼과 행복이라는 피사체가 (중략) 이미 그들의 과거가 되어버린 풍경일 것이었다.(p95)’ 말하는 허무함을, ‘냉소와 침묵(p161)’이 내는 아린 맛을 알 것 같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어떤 문장에 공명하였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커다란 진폭으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움켜쥐며 다만 침묵하고 싶었다.

 

지난 주 토요일, <심야책방>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책으로 가져 간 책이었다. ‘편 김에 끝까지라는 부제로 저녁 8시에 첫 페이지를 펴기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야 집에 갈 수 있다. 주관하는 독립서점 주인장이 내건 규칙이다. 낯선 환경에 나를 데려다놓고 싶어서 참여 신청을 했다.

작가의 성향으로 짐작해보면 묵직한 내용이 담길 테지만, 휘리릭 넘겨보았을 때는 대화도 많고 가독성이 좋은 문장을 구사해왔던 지라 만만하게 보았나보다. 더군다나 소설이라 완독하는 데 이리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9명의 신청자 중 제일 마지막으로 귀가했다.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의자에서 조금씩 자세만 바꾸면서 꼬박 읽었는데도. 새벽 310분에 귀가했으니까 7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중간 중간 멈추던 시간이 잦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읽으려니 그토록 오래 걸린 걸까.

<빙어>의 눈물을 떠올리자 여전히 나를 관통하고 있는 추위가 새삼 뜨거워졌다. 나는 <하모니카를 찾아서> 나답게 살고 있을까. 모니터에서 마주보고 있는 나다운 글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나비의 방>에서 자유롭게 떠나는 나비를 그려보았다. 영혼을 뒤덮고 있던 무거운 껍질을 몇 번이나 벗겨내어야 비로소 가뿐해지는 삶. 시간의 무게를 견딘 후에야 홀로 얻어지는 나비의 자유를 상상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왠의 <오늘>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새벽4시 잠들지 않아/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생각하곤 해/ 습관처럼 마음이 아려와/ 집으로 가는 길은 자꾸만 멀어지는데// 저만치 멀어지는 찾을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Take it easy/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늘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아무것도 한 게 없는 하루인데/ 나는 왜 이렇게 눈치만 보고 있는 건지/ 아쉬움은 나를 찾아 다가오네/ 창문 밖은 벌써 따뜻한데// Take it easy/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늘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한번만 다시 또 일어설 수 있나요 음음음/ 오늘도 슬픔에 잠겨 밤을 지우고 있나요// Take it easy/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늘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Take it easy/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이다. 상처가 상처를 위로하는 이 책과 어쩐지 닮아있다.

 

얼어버릴 것 같은 냉기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이토록 뜨거울 수 있을까. 차가운 얼음을 입에 물면 뜨거운 고통이 느껴지듯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나의 마음은 그의 글이 품고 있는 담담한 차가움에 내내 반응하면서 아팠다. 그냥 뱉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차마 뱉을 수 없는 이끌림에 어정쩡하게 물고 있었다.

새벽까지 책을 읽고 돌아온 날, 옷을 갈아입으면서 사타구니 양쪽이 붉어진 것을 발견했다. 한 자리에 7시간 내내 앉아있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부어오른 부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달았다. 한 호흡으로 책을 읽고 나서야 그의 글이 나타내는 색깔이 보였다. 무채색이 아니었다. 극적인 사건이나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도 아니건만 그 안에는 위태위태하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삶이 투영되었다. 상처를 마주하는 글에서는 생명을 연상케 하는 핏빛의 붉음이 깊게 배어나왔다. 그 빛은 또 다른 상처를 마주했을 때 담담한 위로를 건네며 선명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p160, 밑에서 5째줄 : 진도 7.8 규모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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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 개정판,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젖힌 정신분석의 보고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8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환 옮김 / 돋을새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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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어. 참기가 어려운 날.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날. 생크림 맛이 날 것 같은 눈빛과 대사. 그런 너를 지켜보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TV 속으로 입수할 각이다. 참지 마! 참지 마! 제발 참지 마! 으헉! 오예! 나의 바람은 꿈처럼 이루어진다. 아마도 많은 여인들의 바람이었을 것 같은 수채화가 화면 속으로 예쁘게 펼쳐진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같은 드라마는 이스트가 되어 나의 욕망(^^;)을 부풀린다. 꿈속에서 다시보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비눗방울 같은 장면들이 버퍼링되며 불꽃놀이처럼 터져준다면 밤을 건너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달콤해질까. 로맨틱코미디 드라마가 꿈에 나타나기를 꿈꾼다. 그 꿈의 여주인공은 기필코 나여야만 한다. !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간질거리잖아. 오늘밤에 그런 꿈을 꾼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느낌일 텐데. 참 좋을 텐데,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만 있다면.

그래, 자꾸 생각하면 꿈에서도 나타난다고들 하잖아. 잠들기 직전까지 그새 업로드된 티저 영상을 두어 번 보지만 소용이 없다. 선명한 색깔의 책들이 여러 권 꽂힌 무늬가 그려진 벽장문 서너 개. 그 앞에 서서 물끄러미 문들만 바라보다 깨어났다. ! 찬란한 남자주인공을 보여 달랬지 누가 찬란한 책들을 보여 달랬냐 말이다. 이런 얄미운 세상 같으니! 간절히 바란다 해도 뜻대로 꾸어지지 않고, 생각지도 않은 장면이 두더지 게임인양 불쑥 나타난다. , 만만치 않은 세계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어젯밤 꿈은 어떤 의미일까. 혹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아닐까. 내 안에서 펼쳐지는데 내가 모르는 세상. 단 한 번도 같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놀랍도록 다채로운 세상. 꿈속의 나는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 되었다, 전지적 시점의 시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주도하다 탈피를 하듯 관찰자가 된다. 꿈은 오래전부터 내게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날아가다 깨어난다. 한껏 폐가 부풀어 오른 듯 크게 숨을 내쉰다. 새벽 세 시. 하루를 시작하기에 다소 이르다. 구글에 접속한다. 바다 꿈. 날아가는 꿈. 도사님들의 해석이 즐비하다. 디테일한 상황에 따라 흉몽이 길몽으로 바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꿈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하고 싶다는 갈증은 늘 있어왔지만, 꿈의 해석은 워낙 유명하면서도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책이라 선뜻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언젠가는 읽으리라 막연한 생각만 했다.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져 비교적 이해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펼치기는 어려웠다. 망설임의 손가락은 여러 번 표지만을 스쳤고, 지난주에 드디어 표지를 넘겼다. 편역한 책이라 원저와는 다를 테지만, 체계적인 구성 덕분에 기본 개념을 잡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꿈에 관한 학문적 성과들, 꿈의 해석과 정신 분석, 꿈의 목적, 꿈의 왜곡, 망각, 퇴행, 꿈의 재료와 출처, 꿈에서의 압축 작업, 전위 작업, 묘사, 상징, 부조리함, 정서 등에 대한 예시와 서술들을 따라가면서 무의식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나흘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전날 꾸었던 꿈들을 기록했다.

1. 여름에 즐겨 입는 꽃무늬 플레어스커트가 있다. 색동저고리의 문양처럼 화려한 그 치마를 어깨에 척 걸친 나는, 멋진 컬로 찰랑거리는 외국 소프라노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어릴 때 살던 집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둘째 아이가 한자로 된 책을 펼치고 있고, 나는 빨간 체크무늬 남방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채 아이 앞에 있다.

2. 식탁에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다. 목이 말라 물병을 여니 약간의 부유물이 떠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푸른 불빛이 보이고, 아까 그 화장지가 화르르 불타버린다.

3. 남동생이 서류 비슷한 종이들을 정리하고 있다.

4. 반도막 난 비행기가 연기를 내며 가까운 언덕으로 불시착을 한다. 열차처럼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 나는 나머지 반도막에 혼자 있다가 꽤 아득한 높이에서 지면을 향해 뛰어내린다. 장면이 바뀌어 주황색 치마를 입은 나. 거울 앞에서 언니가 골라준 꽃무늬 블라우스를 몸에 대보다 구입한다. 여동생은 치마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이토록 맥락 없는 드라마라니! 뜬금없이 나타나는 재료들이 우습지만 이런 요소들이 아주 뜬금없지 않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꿈의 목적은 소망 충족에 있다며 다양한 사례를 들어 꿈을 해석한다. 왜곡되어 나타나지만 무의식에 담겨있던 재료들이 다양한 작업을 거친 후 재현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딱 한 사람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손길이 그리울 때 그렇다. 책을 읽다 생각하니 그런 존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꿈의 목적은 소망을 충족하는 데 있다고 하니까. 외로움을 다독일 수 있는 따스함을 바란다면 꿈이 그것을 이루게 해준다는 것 아닌가. 비록 꿈일지라도, 꿈속에서나마. 내 안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세상을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묘하면서도 위안이 된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이론이 맞았으면 좋겠다. 겹겹의 포장지로 덮으려했던 본심이 의도치 않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마음의 민낯을 보며 당황스러울 때도 있을 테지만.

찬란한 남자주인공 대신 책들을 보았던 꿈이 아예 뜬금없지는 않았다. 드라마 속 배경이 되는 출판사에 방대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저런 서재를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으니. 잠시 소름이 돋는다. 스치면서 했던 생각이 고스란히 보여 지다니! 나의 무의식은 멋진 남자보다 멋진 책을 더 우위에 두고 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의식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것. 모순처럼 생각되지만 우리 몸에도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 무조건 반사 말이다. 책상 위에 올라앉아 무릎 밑을 실험용 망치로 치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리가 불쑥 올라온다든지, 뜨거운 물체를 만졌을 때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손동작 같은 것이다. 이 책을 따라가는 길에 다양한 꿈을 꾸면서 무조건 반사를 떠올렸다. 표현되는 형태는 신체반응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지만, 꿈의 세계란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조건 반사가 아닐까 하고. 외부 자극에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의식이 배재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으니.

무의식도 매력적이지만 전의식이라는 영역도 마음에 든다.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교량과 같은 역할을 한다나. ‘전의식은 꿈의 무의식적 흥분을 제압해 해 없는 방해물로 만들어버린다.(p257)’ 우리 몸에 해로운 암모니아를 독성이 적은 요소로 바꾸어주는 간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 아닌가. 정신세계에서도 보호 장치가 존재한다니 든든하다.

프로이트의 해석이 전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지만 맞다 틀리다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 꿈의 세계에 대한 해석은 누구도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몇 개의 조각난 화석을 보고 과거 생물의 모습을 유추하듯 우리는 다만 가능성이 높은 확률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리라.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내 안에 있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세계. 내가 원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바라는 것을 잠시나마 보여주는 세계.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p4)’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꾸는 꿈을 보다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나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 글을 마치는 대로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울 것이다. 암전.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의 두 세계를 경계 짓는 어둠을 가물가물 몇 분간 서성일 테고 어느 순간 쏘옥, 꿈의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 안에서 내 마음은 드라마로 구성될 것이다. 오늘 하루를 지나오면서 보았던 것, 들었던 말, 했던 일, 만났던 사람, 걸었던 길, 맡았던 냄새, 먹었던 음식들을 햇살과 함께 떠올린다. 궁금해진다. 자유로운 무의식은 이 재료들을 이용해서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일일드라마를 만들어낼까. 단 한 번만 방영되는 드라마를 감상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모험이다. 그나저나 나여야만 하는 여주인공은 언제쯤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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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공대생 만화
맹기완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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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육 량을 늘리시면 충돌 증후군은 사라질 거예요.” 70~80% 어깨가 나아졌다며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이가 들면 근육 량은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얇아지고 뻣뻣해진 근육들이 팔의 움직임에 따라 충돌하면서 염증과 통증을 유발한다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에 들렀다. 나를 보고 환히 웃는 아주머니. “웃는 인상이 너무 좋아요.” 지난 번 내게 말씀하셨던 분이다. 나도 모르게 사회용 미소를 지었나.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는데. 천 원 단위의 카레용 돼지고기에 만 원 단위의 장조림용 소고기를 추가하니 더욱 활짝 미소 짓는 그녀. 마음이 덩달아 부드러워진다. 이 책 덕분이다.

 

웃음의 근육이 얇아져 간신히 리뷰만 쓰며 몇 주를 흘려보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건조하고 재미없는 2월을 보내며 내내 우울했다. 휘리릭 넘겨볼 때까지만 해도 기대하지 않았다. 들어보지 못한 출판사,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책. 같은 사무실, 사물함을 정리하시던 분으로부터 받은 책이라 딱히 나의 구매 의사가 반영된 책도 아니었다.

과학사를 다룬 책이 이럴 줄이야! 이틀 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궁금해서 넘겨보고, 웃겨서 넘겨보고. 유쾌함이 관성이 되니 왔다갔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책에 손이 갔다. ‘마약 쿠키라 불린다는 홍콩의 제니 쿠키를 맛본 기분이랄까. 읽어야 할 분량이 줄어들수록 어찌나 아쉬운지. 정독하면서는 그림과 내용의 디테일에 감탄했지만, 읽기 전에 얼핏 보았을 때에는 그림도 글씨체도 헐렁해 보이는 조합이었건만. 이리도 환상적으로 내 취향을 저격할 줄은 몰랐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책이다. 웃음과 감동이 적절한 콜라보를 이루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과학자, 수학자, 컴퓨터 관련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 과학 지식들은 덤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조건은 반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멘트가 나오지? 중간 중간 큭큭 대며 웃었다. 오랜만이었다. 무언가를 보고 웃겨서 웃은 적은. 기발한 글과 깨알 같은 장면묘사에 나의 폐에는 신선한 바람이 한껏 스며들었다. ‘연재하는 내내 재미있는 과학만화를 그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야공만은 여러분에게 과학을 배우려고 보는 만화가 아니라, 엄마가 공부하라고 사주는 교육만화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보는 만화였으면 좋겠습니다.(p387)’ 저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저자가 후기에서 밝힌 연재의도가 완벽하게 달성된 책이다.

기록으로 전해진 과학사를 작가 나름대로 소화하여 표현했다. 노래 경연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의 독특한 음색에 반하여 열광하듯 맹기완의 만화가 그랬다. 맹기완스러운 문체와 그림체는 독보적이었다. 해피바이러스를 전해주듯 경쾌하면서도 등장인물을 존경하는 마음이 묻어나와 짠한 감동이 느껴졌다. 저자가 만일 화학이나 생물, 지구과학 전공자였다면 어떤 기발한 작품이 쏟아졌을까.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구조를 연구해서인지 전기, 수학, 컴퓨터 관련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아쉬웠다.

라이벌 대결을 펼치는 천재들, 뇌섹남들, 비운의 학자들, 이상한 과학자들, 난제를 해결한 천재들의 업적을 많이 알게 되었다. 과학자들의 삶을 바라보았다. 목표를 향한 열정과 무모함, 기발함과 인간적인 고뇌를 지켜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구성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진짜 끝이란 말이 한 페이지를 차지한 것을 보고, 원문을 그대로 살리고자 하는 편집자의 의도가 보였다. 각 만화의 말미에 그룹채팅의 형식으로 저자와 해당 인물과의 가상 대화를 삽입한 점이 좋았다. 신승철의눈물 닦고 스피노자가 떠올랐다. 과학자들이 타임 슬립 하여 현실로 나타난 듯 현장감이 느껴졌다. 본문에서 미처 구현하지 못한 학문적인 내용을 보충 설명하여 지식적인 이해를 돕는 센스가 돋보였다.

 

웃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오래된 아스팔트처럼 갈라지고 건조해진 마음에 자그마한 자극이 닿아도 금세 쓰라리던 시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웃었다. 지난 몇 주 동안의 웃음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웃었다. 즐거워서 웃다 보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졌다. 마음이 물리치료를 받은 듯 몰랑몰랑해졌다. 나도 저자처럼 읽는 이들에게 웃음과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p95, 오일러의 마지막 말풍선 : 사실을 일 수 있죠. → ~ 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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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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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두 라인을 더 지나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왼편에 도로로 향하는 통로가 나온다. 100M 남짓 될까 도로를 따라 걷다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춘다. 횡단보도를 건너 한 블록을 걸어가는 길에는 훠궈, 소고기, 돼지고기, 양 꼬치, 닭고기, 참치 등 식당이 열 지어 있다. 1층 통생갈비 오른편에 있는 유리문을 열고 계단을 오른다. 2, 나의 목적지인 커피숍이다.

집을 나와 7분쯤 걸리는 시간, 코스는 매번 별반 다르지 않다. 도로 따라 쭉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니 별다른 변수가 없다. 굳이 어제와 다른 경로를 찾는다면 신호가 빨리 켜지는 횡단보도를 이용했다는 점이랄까.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짧은 코스이지만 직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는 길이라서, 나만의 시간이 고일 공간으로 향하는 이 길이 참 좋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동네를 산책하면서 관찰하고 느낀 점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19개월 된 아들, 지질학자, 타이포그라퍼, 일러스트레이터, 곤충박사,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사회학자, 의사와 물리치료사, 시각장애인, 음향 엔지니어, 반려견과 함께 걷는다. 그 과정에서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관심을 가진 대상에 주목하고 이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함께 산책하고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가는 동반자들과의 모든 산책이 끝난 후 같은 길을 다시 걸어본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경험한다.

 

집으로 가기 위해 커피숍을 나섰다. 늘 걷던 길이 맞나. 조금씩 스며드는 생경한 감각에 당황스러웠다. 같은 경로를 오간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 전과 집으로 향하는 길은 느낌이 달랐다. 세상으로부터 내게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감각세포를 간질이는 자극들은 강아지풀이 손등을 두드리듯 까슬까슬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소리가 잠시 볼륨을 줄였다. 도로면과 자동차의 타이어가 만나는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주기적인 BGM처럼 도플러효과를 반복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식당의 두꺼운 유리문 열리는 소리, 환풍기 소리, 구겨진 종잇조각이 바람에 날려 바닥에 뒹구는 소리, 저마다 다른 신발을 신은 사람들의 발소리, 금속성의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홍보용 현수막이 펄럭이는 소리, 숯불 피우는 소리, 만두집 커다란 솥에서 증기 빠지는 소리들이 시시각각으로 고막을 두드렸다.

소리만이 아니었다. 고소한 고기 냄새, 진한 향수 냄새, 담배 냄새, 찐만두 냄새, 축축함을 머금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냄새가 콧속을 들락거렸다. 따뜻한 장소에 있다 나와서일까. 겨울바람이 부드럽고 살짝 시원한 감촉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혀끝을 잠시 내밀어보았다. 혓바닥이 시렸다.(, 이건 아냐.^^;)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아까까지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썩였다. 나로부터 나오는 소리였다. 가만가만 내쉬는 숨소리와 운동화의 발소리가 테두리처럼 나를 감쌌다.

잠자고 있던 세상이 조금씩 눈을 뜨면서 잠자고 있던 나의 감각을 두드렸다. 눈으로만 바라보던 세상이 소리로, 냄새로, 촉감으로 다가왔다. “‘본다는 단어의 말뜻은 하나가 아니라고요.(p268)”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세상 속으로 걸어가니 문장의 의미가 온몸으로 다가왔다.

 

압도적인 풍광을 보유한 장소 정도는 가주어야 새로운 감각이 일깨워질 거라 생각해왔다. 문화나 자연 환경이 전혀 다른 세계로의 여행은 물론 신선한 자극이 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물리적인 거리가 생각만큼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당신이 얼마나 먼 곳을 여행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통 멀리 여행할수록 결과는 나쁠 뿐이다.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차리는 지가 중요하다.(p151. 헨리 데이비드 소로)’, ‘내가 무엇을 경험하느냐는 내가 어디에 주목하려 하느냐에 달렸다.(p32, 윌리엄 제임스)’ 가벼운 동네 산책으로도 감각은 충분히 새로워질 수 있다는 거다.

동반자도 없이 혼자 갔다 혼자 돌아오는 길이 왜 이리 다르게 느껴졌을까. 원인은 책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 두 번의 다른 산책을 경험한 작가와 상상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나는 무언가 하나쯤은 바뀌었기를 소망했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나 자신일 터였다.(p332)’ 작가 스스로 한 말이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문장의 길을 따라 삶의 시간을 산책한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바라보는 세상은 점점 다채로워지고 깊어진다. 책을 펼치면서 화성에도 가보고, 존재하지 않는 달의 도시도 바라보고, 꿈속을 달리고, 뇌 속을 들여다보고, 혼자라면 가보지 못할 장면을 상상한다. 3D 입체 영상처럼 냄새가 훅 끼얹어지기도 한다. 세상을 향하는 귀와, 코와, 눈과, 피부와, 혀가 한결 민감해진다. 마음도 점점 민감해져 세상의 작은 아픔들이 가시가 되어 촘촘해진 감각모를 건드린다.

이 책의 작가는 실제 산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겪었지만, 나 역시 달라진 나를 경험했다. 직접 경험보다는 약하겠지만, 늘 걷던 길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하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후 나는 커피숍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며 몇 시간 전과는 다른 7분의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의 뽀송뽀송한 느낌처럼 기분 좋은 경험일 것이다. 심장이 살짝 두근거린다.

 

p279, 밑에서 6째줄 : 외이의 구불구불한 동굴을 지나 가느다란 뼈에 가 닿고, 고막을 진동시키고, 작은 유모세포들을 춤추게 했다. → ②, 로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귓구멍으로 들어온 소리는 고막을 진동시키고, 이 진동이 귓속뼈에서 증폭되어 달팽이관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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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나를 이렇게 마구 대한 인간, 바로 너!” 하늘에서 땅까지 심장이 진자 운동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라마 속 까칠한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던 여자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런 마음 처음이야!” 지나고 보면 별반 다를 것 없건만 현재라는 시간에 담기면 이제껏 없던 마음이 활어회인 양 팔딱거린다. “이런 물건은 온 세상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어. 왜냐고?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무언가는 유형이건 무형의 것이건 간에 매혹적인 대상이다. 유일하다는 말이 강한 끌림으로 다가오듯이.

드넓은 우주, 그마저 팽창하는 공간을 내려다본다면 달은 아마 먼지보다 작은 존재일거다. 고작 별 하나에 얽매인 8개의 행성 중 하나에 속박되어 돌고 있는 평범하고 자그마한 돌덩이. 달이 많은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천체인 것은 지구를 돌고 있는 유일한 위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움직이며 하늘에 떠있는 대상에 발자국을 남겼다는 점은 매번 떠올릴 때마다 몽환적인 신비감을 준다. 인류가 지구 아닌 천체에 유일하게 발을 내디뎠다는 것. 그 옛날 많은 이들이 상상했겠지만 설마 실현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사건이다.

 

이 책은 달에 건설된 도시 아르테미스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범죄 관련 소설이다. 여주인공은 얼떨결에 도시 장악을 위한 거대한 음모에 얽히고 천재적인 머리로 이를 해결한다. 주인공의 동선을 쫓아가다보면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화제작자의 입장이라면 환영할만한 작품이다. 사건의 주요 꼭짓점이 선명하여 두 시간 가량의 필름에 담길 내용을 발췌하기 쉬울 테니.

다만 영화와 구분될만한 소설적인 요소는 다소 약하다. 영화화된 소설들을 보면 영화가 더 낫다든지, 소설이 더 낫다든지, 둘 다 좋다든지 등의 평들이 있다. 대략 이런 영화 작품이 나오리라는 상상은 되지만, 문학 작품이 뿜어내는 독특한 매력이 적다. 발상이라든지 이야기의 전개라든지 반전 요소들은 감히 평하기 어려울 정도로 곳곳에 배치되어있지만, 다 읽고 나서 2% 부족한 엉성함을 느꼈다. 웃으라고 한 말 인데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할지 어정쩡했다. 성적인 농담을 빼고 담백한 범죄 스릴러에 집중했으면 더 나았겠다 싶다. 동성애 관련 내용도 전개 방식이 억지스러워 전체적인 흐름에서 겉도는 느낌이다.

책의 표지에는 달에 사는 수학 천재의 기발한 범죄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가 붙인 건지 편집 과정에서 탄생했는지는 몰라도 내용을 적절하게 반영한 문구는 아니다. 나는 주인공에게서 수학 천재의 면모를 찾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숫자가 등장하지만, 주거공간의 층수나 화폐의 액수, 시간 계산을 수학으로 보기에는 민망하다. 산수 정도라면 적당할까. 이야기 속에는 산소나 다른 물질들과의 화학 반응, 중력의 크기 차이에서 오는 지구과학적 요소가 등장하지만 그것이 주인공의 공은 아니다. 차라리 감자 재배를 위해 밭의 면적과 필요한 물과 산소의 양을 치밀하게 계산했던 <마션>의 와트니야말로 수학 천재에 가깝다.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문제해결능력의 천재정도면 수긍이 가겠다.

 

도시 아르테미스를 구성하는 버블 명칭의 유래가 궁금했다. 달 탐사에 대한 아폴로 계획을 찾아보았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인류가 첫 번째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사령관과 달착륙선 조종사 이름이다. 빈과 콘래드는 두 번째로 착륙한 아폴로 12호의 사령관과 달착륙선 조종사이고, 셰퍼드는 세 번째로 착륙한 아폴로 14호의 사령관이다. 버블들의 상대적인 위치도 실제 아폴로 11,12,14호의 착륙지와 같은 배치를 보인다. 작가의 세심함이 감탄스럽다.

인터넷 자료를 찾다보니 아르테미스의 로고는 아폴로 미션 로고의 응용 버전으로 추측된다. 실제 아폴로 계획에서는 알파벳 A를 중심으로 행성의 궤도 운동 모양을, 소설에서는 활과 화살 모양을 합체시켰다.

작가는 소설의 시작에 앞서 마이클 콜린스, 딕 고든, 잭 스위거트, 스튜어트 루사, 앨 워든, 켄 매팅리, 론 에번스 등 7명의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면서 어떠한 찬사를 보내도 부족한 이들이기 때문(p4)’이라는 설명을 더한다. 생소한 인물들이었다. 어떠한 찬사를 보내도 부족한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았다.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의 사령선 조종사였다. 여기까지 확인하고 나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령선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왜 이들이 찬사를 보낼만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폴로 계획에 대한 자료를 좀 더 찾아보면서 작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구에서 출발하는 아폴로 우주선에는 모두 세 명이 탑승했다. 사령관, 달착륙선 조종사, 사령선 조종사였다. 이들 중 실제로 달에 발을 디디고 탐사를 한 이들은 두 명이다. 달착륙선은 2인용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 명은 탐사가 완료될 때까지 사령선을 타고 달 궤도를 순회한다. 미지의 천체를 직접 밟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텐데. 바닷가에 놀러가서 바다에 발도 못 담가보는 격 아닌가. 더군다나 혼자서 낯선 공간을 돈다는 것은 외로움과 불안함을 견뎌야 하는 극한 미션이었을 것이다.

대중들은 아폴로 11호 암스트롱의 발자국을 안다. 두 번째는 기억해주지 않는다며 올드린까지 머릿속에 담는다. 언급조차 되지 않은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는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을까. 달에 갔다 왔으나 발을 땅에 디뎌본 것이 아니니 참 애매한 상황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작가가 다르게 보였다. 사령선 조종사들을 유일한 대상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 앤디 위어는 아마도 그들을 특별하게 보았을 거라는 생각에서이다. 작가의 관점이 존경스러우면서 마음에 든다. 나처럼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 표지 안쪽에 적힌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이 되어주지 않을까.

 

주관적으로 보면 <마션>이 더 낫다. 다음 장면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던 강한 흡인력이 꽤나 충격이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니. <아르테미스>는 일부 전개가 예상되는 데다 <마션>만큼 감탄할만한 장면이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 <마션>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다.

인류에게 유일한 달에서의 가상적인 사건을 구상한 점,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있을 법하겠다 싶다는 점, 과학적인 요소가 디테일하게 담겨있는 점, 자칫 소외되기 쉬운 이들에게 주목한 점으로 판단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른 소설과 비교한다면 뛰어난 점은 넘친다.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특별함이 있다.

다음 작품의 무대는 어디일까. 그가 계속 우주를 배경으로 글을 썼으면 한다. 소설을 읽은 누군가는 우주를 연상하고, 과학과 수학의 재미를 느끼고, 소외된 무언가에 집중하고, 이야기의 반전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똘똘 뭉쳐 굳어있던 상상력이 어느 순간 빅뱅으로 빵 터질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유일함이 지닌 강력한 파급력일 것이니.

 

 

p325, 6째줄 : 게네 제품 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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