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나를 이렇게 마구 대한 인간, 바로 너!” 하늘에서 땅까지 심장이 진자 운동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라마 속 까칠한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던 여자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런 마음 처음이야!” 지나고 보면 별반 다를 것 없건만 현재라는 시간에 담기면 이제껏 없던 마음이 활어회인 양 팔딱거린다. “이런 물건은 온 세상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어. 왜냐고?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무언가는 유형이건 무형의 것이건 간에 매혹적인 대상이다. 유일하다는 말이 강한 끌림으로 다가오듯이.

드넓은 우주, 그마저 팽창하는 공간을 내려다본다면 달은 아마 먼지보다 작은 존재일거다. 고작 별 하나에 얽매인 8개의 행성 중 하나에 속박되어 돌고 있는 평범하고 자그마한 돌덩이. 달이 많은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천체인 것은 지구를 돌고 있는 유일한 위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움직이며 하늘에 떠있는 대상에 발자국을 남겼다는 점은 매번 떠올릴 때마다 몽환적인 신비감을 준다. 인류가 지구 아닌 천체에 유일하게 발을 내디뎠다는 것. 그 옛날 많은 이들이 상상했겠지만 설마 실현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사건이다.

 

이 책은 달에 건설된 도시 아르테미스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범죄 관련 소설이다. 여주인공은 얼떨결에 도시 장악을 위한 거대한 음모에 얽히고 천재적인 머리로 이를 해결한다. 주인공의 동선을 쫓아가다보면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화제작자의 입장이라면 환영할만한 작품이다. 사건의 주요 꼭짓점이 선명하여 두 시간 가량의 필름에 담길 내용을 발췌하기 쉬울 테니.

다만 영화와 구분될만한 소설적인 요소는 다소 약하다. 영화화된 소설들을 보면 영화가 더 낫다든지, 소설이 더 낫다든지, 둘 다 좋다든지 등의 평들이 있다. 대략 이런 영화 작품이 나오리라는 상상은 되지만, 문학 작품이 뿜어내는 독특한 매력이 적다. 발상이라든지 이야기의 전개라든지 반전 요소들은 감히 평하기 어려울 정도로 곳곳에 배치되어있지만, 다 읽고 나서 2% 부족한 엉성함을 느꼈다. 웃으라고 한 말 인데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할지 어정쩡했다. 성적인 농담을 빼고 담백한 범죄 스릴러에 집중했으면 더 나았겠다 싶다. 동성애 관련 내용도 전개 방식이 억지스러워 전체적인 흐름에서 겉도는 느낌이다.

책의 표지에는 달에 사는 수학 천재의 기발한 범죄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가 붙인 건지 편집 과정에서 탄생했는지는 몰라도 내용을 적절하게 반영한 문구는 아니다. 나는 주인공에게서 수학 천재의 면모를 찾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숫자가 등장하지만, 주거공간의 층수나 화폐의 액수, 시간 계산을 수학으로 보기에는 민망하다. 산수 정도라면 적당할까. 이야기 속에는 산소나 다른 물질들과의 화학 반응, 중력의 크기 차이에서 오는 지구과학적 요소가 등장하지만 그것이 주인공의 공은 아니다. 차라리 감자 재배를 위해 밭의 면적과 필요한 물과 산소의 양을 치밀하게 계산했던 <마션>의 와트니야말로 수학 천재에 가깝다.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문제해결능력의 천재정도면 수긍이 가겠다.

 

도시 아르테미스를 구성하는 버블 명칭의 유래가 궁금했다. 달 탐사에 대한 아폴로 계획을 찾아보았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인류가 첫 번째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사령관과 달착륙선 조종사 이름이다. 빈과 콘래드는 두 번째로 착륙한 아폴로 12호의 사령관과 달착륙선 조종사이고, 셰퍼드는 세 번째로 착륙한 아폴로 14호의 사령관이다. 버블들의 상대적인 위치도 실제 아폴로 11,12,14호의 착륙지와 같은 배치를 보인다. 작가의 세심함이 감탄스럽다.

인터넷 자료를 찾다보니 아르테미스의 로고는 아폴로 미션 로고의 응용 버전으로 추측된다. 실제 아폴로 계획에서는 알파벳 A를 중심으로 행성의 궤도 운동 모양을, 소설에서는 활과 화살 모양을 합체시켰다.

작가는 소설의 시작에 앞서 마이클 콜린스, 딕 고든, 잭 스위거트, 스튜어트 루사, 앨 워든, 켄 매팅리, 론 에번스 등 7명의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면서 어떠한 찬사를 보내도 부족한 이들이기 때문(p4)’이라는 설명을 더한다. 생소한 인물들이었다. 어떠한 찬사를 보내도 부족한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았다.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의 사령선 조종사였다. 여기까지 확인하고 나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령선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왜 이들이 찬사를 보낼만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폴로 계획에 대한 자료를 좀 더 찾아보면서 작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구에서 출발하는 아폴로 우주선에는 모두 세 명이 탑승했다. 사령관, 달착륙선 조종사, 사령선 조종사였다. 이들 중 실제로 달에 발을 디디고 탐사를 한 이들은 두 명이다. 달착륙선은 2인용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 명은 탐사가 완료될 때까지 사령선을 타고 달 궤도를 순회한다. 미지의 천체를 직접 밟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텐데. 바닷가에 놀러가서 바다에 발도 못 담가보는 격 아닌가. 더군다나 혼자서 낯선 공간을 돈다는 것은 외로움과 불안함을 견뎌야 하는 극한 미션이었을 것이다.

대중들은 아폴로 11호 암스트롱의 발자국을 안다. 두 번째는 기억해주지 않는다며 올드린까지 머릿속에 담는다. 언급조차 되지 않은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는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을까. 달에 갔다 왔으나 발을 땅에 디뎌본 것이 아니니 참 애매한 상황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작가가 다르게 보였다. 사령선 조종사들을 유일한 대상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 앤디 위어는 아마도 그들을 특별하게 보았을 거라는 생각에서이다. 작가의 관점이 존경스러우면서 마음에 든다. 나처럼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 표지 안쪽에 적힌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이 되어주지 않을까.

 

주관적으로 보면 <마션>이 더 낫다. 다음 장면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던 강한 흡인력이 꽤나 충격이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니. <아르테미스>는 일부 전개가 예상되는 데다 <마션>만큼 감탄할만한 장면이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 <마션>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다.

인류에게 유일한 달에서의 가상적인 사건을 구상한 점,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있을 법하겠다 싶다는 점, 과학적인 요소가 디테일하게 담겨있는 점, 자칫 소외되기 쉬운 이들에게 주목한 점으로 판단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른 소설과 비교한다면 뛰어난 점은 넘친다.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특별함이 있다.

다음 작품의 무대는 어디일까. 그가 계속 우주를 배경으로 글을 썼으면 한다. 소설을 읽은 누군가는 우주를 연상하고, 과학과 수학의 재미를 느끼고, 소외된 무언가에 집중하고, 이야기의 반전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똘똘 뭉쳐 굳어있던 상상력이 어느 순간 빅뱅으로 빵 터질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유일함이 지닌 강력한 파급력일 것이니.

 

 

p325, 6째줄 : 게네 제품 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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