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 개정판,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젖힌 정신분석의 보고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8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환 옮김 / 돋을새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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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어. 참기가 어려운 날.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날. 생크림 맛이 날 것 같은 눈빛과 대사. 그런 너를 지켜보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TV 속으로 입수할 각이다. 참지 마! 참지 마! 제발 참지 마! 으헉! 오예! 나의 바람은 꿈처럼 이루어진다. 아마도 많은 여인들의 바람이었을 것 같은 수채화가 화면 속으로 예쁘게 펼쳐진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같은 드라마는 이스트가 되어 나의 욕망(^^;)을 부풀린다. 꿈속에서 다시보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비눗방울 같은 장면들이 버퍼링되며 불꽃놀이처럼 터져준다면 밤을 건너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달콤해질까. 로맨틱코미디 드라마가 꿈에 나타나기를 꿈꾼다. 그 꿈의 여주인공은 기필코 나여야만 한다. !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간질거리잖아. 오늘밤에 그런 꿈을 꾼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느낌일 텐데. 참 좋을 텐데,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만 있다면.

그래, 자꾸 생각하면 꿈에서도 나타난다고들 하잖아. 잠들기 직전까지 그새 업로드된 티저 영상을 두어 번 보지만 소용이 없다. 선명한 색깔의 책들이 여러 권 꽂힌 무늬가 그려진 벽장문 서너 개. 그 앞에 서서 물끄러미 문들만 바라보다 깨어났다. ! 찬란한 남자주인공을 보여 달랬지 누가 찬란한 책들을 보여 달랬냐 말이다. 이런 얄미운 세상 같으니! 간절히 바란다 해도 뜻대로 꾸어지지 않고, 생각지도 않은 장면이 두더지 게임인양 불쑥 나타난다. , 만만치 않은 세계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어젯밤 꿈은 어떤 의미일까. 혹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아닐까. 내 안에서 펼쳐지는데 내가 모르는 세상. 단 한 번도 같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놀랍도록 다채로운 세상. 꿈속의 나는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 되었다, 전지적 시점의 시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주도하다 탈피를 하듯 관찰자가 된다. 꿈은 오래전부터 내게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날아가다 깨어난다. 한껏 폐가 부풀어 오른 듯 크게 숨을 내쉰다. 새벽 세 시. 하루를 시작하기에 다소 이르다. 구글에 접속한다. 바다 꿈. 날아가는 꿈. 도사님들의 해석이 즐비하다. 디테일한 상황에 따라 흉몽이 길몽으로 바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꿈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하고 싶다는 갈증은 늘 있어왔지만, 꿈의 해석은 워낙 유명하면서도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책이라 선뜻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언젠가는 읽으리라 막연한 생각만 했다.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져 비교적 이해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펼치기는 어려웠다. 망설임의 손가락은 여러 번 표지만을 스쳤고, 지난주에 드디어 표지를 넘겼다. 편역한 책이라 원저와는 다를 테지만, 체계적인 구성 덕분에 기본 개념을 잡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꿈에 관한 학문적 성과들, 꿈의 해석과 정신 분석, 꿈의 목적, 꿈의 왜곡, 망각, 퇴행, 꿈의 재료와 출처, 꿈에서의 압축 작업, 전위 작업, 묘사, 상징, 부조리함, 정서 등에 대한 예시와 서술들을 따라가면서 무의식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나흘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전날 꾸었던 꿈들을 기록했다.

1. 여름에 즐겨 입는 꽃무늬 플레어스커트가 있다. 색동저고리의 문양처럼 화려한 그 치마를 어깨에 척 걸친 나는, 멋진 컬로 찰랑거리는 외국 소프라노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어릴 때 살던 집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둘째 아이가 한자로 된 책을 펼치고 있고, 나는 빨간 체크무늬 남방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채 아이 앞에 있다.

2. 식탁에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다. 목이 말라 물병을 여니 약간의 부유물이 떠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푸른 불빛이 보이고, 아까 그 화장지가 화르르 불타버린다.

3. 남동생이 서류 비슷한 종이들을 정리하고 있다.

4. 반도막 난 비행기가 연기를 내며 가까운 언덕으로 불시착을 한다. 열차처럼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 나는 나머지 반도막에 혼자 있다가 꽤 아득한 높이에서 지면을 향해 뛰어내린다. 장면이 바뀌어 주황색 치마를 입은 나. 거울 앞에서 언니가 골라준 꽃무늬 블라우스를 몸에 대보다 구입한다. 여동생은 치마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이토록 맥락 없는 드라마라니! 뜬금없이 나타나는 재료들이 우습지만 이런 요소들이 아주 뜬금없지 않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꿈의 목적은 소망 충족에 있다며 다양한 사례를 들어 꿈을 해석한다. 왜곡되어 나타나지만 무의식에 담겨있던 재료들이 다양한 작업을 거친 후 재현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딱 한 사람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손길이 그리울 때 그렇다. 책을 읽다 생각하니 그런 존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꿈의 목적은 소망을 충족하는 데 있다고 하니까. 외로움을 다독일 수 있는 따스함을 바란다면 꿈이 그것을 이루게 해준다는 것 아닌가. 비록 꿈일지라도, 꿈속에서나마. 내 안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세상을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묘하면서도 위안이 된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이론이 맞았으면 좋겠다. 겹겹의 포장지로 덮으려했던 본심이 의도치 않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마음의 민낯을 보며 당황스러울 때도 있을 테지만.

찬란한 남자주인공 대신 책들을 보았던 꿈이 아예 뜬금없지는 않았다. 드라마 속 배경이 되는 출판사에 방대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저런 서재를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으니. 잠시 소름이 돋는다. 스치면서 했던 생각이 고스란히 보여 지다니! 나의 무의식은 멋진 남자보다 멋진 책을 더 우위에 두고 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의식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것. 모순처럼 생각되지만 우리 몸에도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 무조건 반사 말이다. 책상 위에 올라앉아 무릎 밑을 실험용 망치로 치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리가 불쑥 올라온다든지, 뜨거운 물체를 만졌을 때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손동작 같은 것이다. 이 책을 따라가는 길에 다양한 꿈을 꾸면서 무조건 반사를 떠올렸다. 표현되는 형태는 신체반응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지만, 꿈의 세계란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조건 반사가 아닐까 하고. 외부 자극에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의식이 배재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으니.

무의식도 매력적이지만 전의식이라는 영역도 마음에 든다.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교량과 같은 역할을 한다나. ‘전의식은 꿈의 무의식적 흥분을 제압해 해 없는 방해물로 만들어버린다.(p257)’ 우리 몸에 해로운 암모니아를 독성이 적은 요소로 바꾸어주는 간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 아닌가. 정신세계에서도 보호 장치가 존재한다니 든든하다.

프로이트의 해석이 전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지만 맞다 틀리다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 꿈의 세계에 대한 해석은 누구도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몇 개의 조각난 화석을 보고 과거 생물의 모습을 유추하듯 우리는 다만 가능성이 높은 확률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리라.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내 안에 있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세계. 내가 원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바라는 것을 잠시나마 보여주는 세계.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p4)’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꾸는 꿈을 보다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나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 글을 마치는 대로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울 것이다. 암전.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의 두 세계를 경계 짓는 어둠을 가물가물 몇 분간 서성일 테고 어느 순간 쏘옥, 꿈의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 안에서 내 마음은 드라마로 구성될 것이다. 오늘 하루를 지나오면서 보았던 것, 들었던 말, 했던 일, 만났던 사람, 걸었던 길, 맡았던 냄새, 먹었던 음식들을 햇살과 함께 떠올린다. 궁금해진다. 자유로운 무의식은 이 재료들을 이용해서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일일드라마를 만들어낼까. 단 한 번만 방영되는 드라마를 감상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모험이다. 그나저나 나여야만 하는 여주인공은 언제쯤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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