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의 공대생 만화
맹기완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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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육 량을 늘리시면 충돌 증후군은 사라질 거예요.” 70~80% 어깨가 나아졌다며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이가 들면 근육 량은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얇아지고 뻣뻣해진 근육들이 팔의 움직임에 따라 충돌하면서 염증과 통증을 유발한다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에 들렀다. 나를 보고 환히 웃는 아주머니. “웃는 인상이 너무 좋아요.” 지난 번 내게 말씀하셨던 분이다. 나도 모르게 사회용 미소를 지었나.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는데. 천 원 단위의 카레용 돼지고기에 만 원 단위의 장조림용 소고기를 추가하니 더욱 활짝 미소 짓는 그녀. 마음이 덩달아 부드러워진다. 이 책 덕분이다.

 

웃음의 근육이 얇아져 간신히 리뷰만 쓰며 몇 주를 흘려보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건조하고 재미없는 2월을 보내며 내내 우울했다. 휘리릭 넘겨볼 때까지만 해도 기대하지 않았다. 들어보지 못한 출판사,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책. 같은 사무실, 사물함을 정리하시던 분으로부터 받은 책이라 딱히 나의 구매 의사가 반영된 책도 아니었다.

과학사를 다룬 책이 이럴 줄이야! 이틀 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궁금해서 넘겨보고, 웃겨서 넘겨보고. 유쾌함이 관성이 되니 왔다갔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책에 손이 갔다. ‘마약 쿠키라 불린다는 홍콩의 제니 쿠키를 맛본 기분이랄까. 읽어야 할 분량이 줄어들수록 어찌나 아쉬운지. 정독하면서는 그림과 내용의 디테일에 감탄했지만, 읽기 전에 얼핏 보았을 때에는 그림도 글씨체도 헐렁해 보이는 조합이었건만. 이리도 환상적으로 내 취향을 저격할 줄은 몰랐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책이다. 웃음과 감동이 적절한 콜라보를 이루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과학자, 수학자, 컴퓨터 관련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 과학 지식들은 덤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조건은 반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멘트가 나오지? 중간 중간 큭큭 대며 웃었다. 오랜만이었다. 무언가를 보고 웃겨서 웃은 적은. 기발한 글과 깨알 같은 장면묘사에 나의 폐에는 신선한 바람이 한껏 스며들었다. ‘연재하는 내내 재미있는 과학만화를 그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야공만은 여러분에게 과학을 배우려고 보는 만화가 아니라, 엄마가 공부하라고 사주는 교육만화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보는 만화였으면 좋겠습니다.(p387)’ 저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저자가 후기에서 밝힌 연재의도가 완벽하게 달성된 책이다.

기록으로 전해진 과학사를 작가 나름대로 소화하여 표현했다. 노래 경연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의 독특한 음색에 반하여 열광하듯 맹기완의 만화가 그랬다. 맹기완스러운 문체와 그림체는 독보적이었다. 해피바이러스를 전해주듯 경쾌하면서도 등장인물을 존경하는 마음이 묻어나와 짠한 감동이 느껴졌다. 저자가 만일 화학이나 생물, 지구과학 전공자였다면 어떤 기발한 작품이 쏟아졌을까.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구조를 연구해서인지 전기, 수학, 컴퓨터 관련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아쉬웠다.

라이벌 대결을 펼치는 천재들, 뇌섹남들, 비운의 학자들, 이상한 과학자들, 난제를 해결한 천재들의 업적을 많이 알게 되었다. 과학자들의 삶을 바라보았다. 목표를 향한 열정과 무모함, 기발함과 인간적인 고뇌를 지켜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구성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진짜 끝이란 말이 한 페이지를 차지한 것을 보고, 원문을 그대로 살리고자 하는 편집자의 의도가 보였다. 각 만화의 말미에 그룹채팅의 형식으로 저자와 해당 인물과의 가상 대화를 삽입한 점이 좋았다. 신승철의눈물 닦고 스피노자가 떠올랐다. 과학자들이 타임 슬립 하여 현실로 나타난 듯 현장감이 느껴졌다. 본문에서 미처 구현하지 못한 학문적인 내용을 보충 설명하여 지식적인 이해를 돕는 센스가 돋보였다.

 

웃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오래된 아스팔트처럼 갈라지고 건조해진 마음에 자그마한 자극이 닿아도 금세 쓰라리던 시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웃었다. 지난 몇 주 동안의 웃음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웃었다. 즐거워서 웃다 보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졌다. 마음이 물리치료를 받은 듯 몰랑몰랑해졌다. 나도 저자처럼 읽는 이들에게 웃음과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p95, 오일러의 마지막 말풍선 : 사실을 일 수 있죠. → ~ 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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