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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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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철봉의 녹처럼 잊고 있던 기억의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칼자국>에 나오는 어머니의 칼이었을까, <도도한 생활>에서 흐느끼던 피아노의 울림 때문이었을까. 소설 속 공간이, 길처럼 갈라져 나온 문장이, 불쑥 튀어나온 단어가 물처럼 스며든다. 한동안 굳어있던 기억의 알약들이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소설은 빛을 품는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 작가의 치열한 시간과 마음이 함께 버무려진 빛이다. 그 빛을 반사시키거나 통과시키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빛은 독자를 거쳐 다양한 명도와 채도를 지닌 또 다른 빛으로 탈바꿈한다. 별 감흥 없이 통과시킬 때 독자는 거울이 된다. 굴절시켜 마음에 담는 독자는 여러 형태의 렌즈이거나 프리즘이 되기도 한다. 한 편의 작품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되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의식을 일깨우고 탄성을 자아내는 상상력이 담긴 작품도 매력적이지만, 나를 움직이는 건 일상적인 이야기, 그 안에 담긴 사소함이다. 소설 속 인물을 접한 나는 소설 밖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세상에 하나뿐인 또 한 편의 소설이 내 옆에 놓인다. 다큐에 가까운 나만의 이야기이다.

 

8편의 작품에 담긴 각기 다른 방들을 보며 어린 나를 담았던 방을 생각한다. 벽에서 피어나던 곰팡이와, 구멍 뚫린 천장 밑으로 툭툭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내던 세숫대야와, 걸레 꽁꽁 얼던 방문 앞에 커튼처럼 드리워지던 쑥색 담요와, 반 지하의 공간에서 방향제인 듯 맴돌던 연탄가스 냄새를 떠올린다.

 

<침이 고인다>에서는 후배를 지겨워하는 심리가 집요하리만큼 치밀하게 묘사되어 내게 심어져있던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일깨운다. <성탄 특선>에서는 서툴기만 했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난다. 이유 없는 행동은 없고, 의외로 다른 이들에겐 사소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진지해서 서글픈 이유가 많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기도>,<네모난 자리들>TV에서 보았던 다큐를 생각나게 한다. 내겐 다소 생소한 내용이라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평소 바라보지 못한 삶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뭉클하고 감동적인 한 편의 영화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식당서빙과 설거지, 인형 눈 붙이기, 파출부, 밤 깎기, 절의 공양주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으셨던 당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TV 앞에서 꾸벅꾸벅 조시던 어머니 곁에는 늘 글리세린이 놓여있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어머니의 손에 부드럽게 스며들던 액체. <칼자국> 속 어머니의 칼은 글리세린 병을 떠올리게 한다. 매끄럽지만 살짝 칼에 베인 듯 쓰라리다. 모든 감당은 당연하지 않고 세상에 당연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궁핍 혹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p169)

 

<도도한 생활>의 피아노는 내게로 와서 하모니카로 변신한다. 어릴 때 유일하게 욕심이 났던 악기. 간절히 바라던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숨을 불어넣던 순간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생생한 느낌이다. 언제 사라졌나 기억조차 나지 않던 물건이 왜 그리도 갖고 싶던지. 가끔 생각한다. 하모니카가 담고 있었을 부모님의 마음과 궁핍에 부딪혔을 망설임의 시간들을.

 

<플라이데이터리코더>라는 제목은 푸르게 빛나는 플레이아데스성단을 연상케 한다. 일시적으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던 블랙박스에 등장한 우주의 윤리는 짠함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하다. <칼자국>의 주인공이 사과를 돌려 깎는 모습을 지구의 자전으로 비유하는 우주적인 묘사 역시 신선하다.

 

김애란의 소설은 밝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어둡지만도 않다.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세밀화처럼 그려진 현실에 우주적인 상상력이 조미료처럼 뿌려진 서술이 그저 담담하다. 통통 튀는 팝송처럼 화려하지도, 헤비메탈처럼 자극적이지도 않다. 조금씩 출렁이는 담담한 랩을 듣는 느낌이랄까. 그다지 유쾌하지 않아 굳이 찾아 읽지 않는 색깔이다. 하지만 순전히 취향의 차이일 것이다. 그녀의 글에는 읽다 도중에 덮어버릴 수 없게 하는 끌림이 있으니. 코끝 찡한 느낌이 마음을 덮는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깊은 곳에서 서서히 흘러드는 심해 해류인 듯 뭉클함이 묵직하다.

 

살아가면서 마음속에는 자그마한 블랙박스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 깊이 간직한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봉인이 풀린다. <포켓몬스터>의 포켓볼처럼 하나씩 뚜껑을 열고 나오는 과거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다.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기쁨도 있지만,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은 짙푸른 바다를 닮은 슬픔이기 마련이다. 가끔은 필요한 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시간을 보냈다. 울컥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위태위태하고 가슴 아팠던 시간을 지나왔다는 안도감과, 현재의 시간과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시간과 공간과 사람의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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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질러, 운동장 창비아동문고 279
진형민 지음, 이한솔 그림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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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왜 공인가. 교양 체육에서 끝날 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체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몸. 운동이면 운동, 춤이면 춤, 도무지 주인 말을 듣지 않는 몸치의 표본이다. 한데, 친목 피구라니! 체육은 직장에서도 피구, 배구, 족구, 때로는 듣도 보도 못한 공으로 둔갑해서 지긋지긋한 관절염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 정말 피!하고 싶다구!

 

공과 함께 한 기억 속의 나는 바보스럽기만 하다. 피구, 농구, 배구, 발야구, 테니스... 무슨 노무 구기 종목은 이리 많은지. 그 중 공 던지기는 공에 대한 흑역사의 정점을 찍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체력장 시험 종목. 구멍 뽕뽕 뚫린 시퍼런 공을 있는 힘껏 던지기만 하면 되었건만. 이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멀리 뻗어나가는 45°의 포물선이 왜 실전에서는 적용이 안 된단 말인가. 마음만은 투포환 선수인 나를 가까이서 목격한 친구는 살며시 다가와 말했다. **, 공을 왜 땅으로 내리꽂냐? 5m 간격으로 그려진 거리 라인의 두 번째 칸을 넘어보는 게 원이었던 나는 끝내 평균 5m, 최고 8m의 저질스런 기록으로 학창시절을 마무리한다.

 

! 놀고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빈곤의 악순환처럼 반복되던, 트라우마에 가까웠던 공에 대한 거부감이 살살 부는 바람에 걷히는 아침 안개처럼 사라져가는 듯 했다.

동화 속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왔다. 공을 두려워하기 훨씬 이전으로. 친구들을 따라 원피스를 입고 철봉에서 거꾸로오르기를 해도 전혀 민망하지 않던 그 때로. 나는 어느새 정글짐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힘껏 달렸던 시절,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주워 선을 긋고 사방치기를 하던, 비석치기를 하던 모습이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두루루 풀렸다.

원래 노는 데에는 큰 땅이 필요 없었다. 뭔가를 정식으로 하려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요것조것 따지는 것도 많아지지만, 노는 일은 그런 게 아니었다. (p143)

 

진형민 동화 속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탱탱볼을 연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함과 투명함이 공존하는. 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유리처럼 쉽게 깨어지지는 않는다. 차돌과 같은 단단함과 맹랑함이 있다. 천방지축 한 듯해도 짐짓 당당하고 슬기롭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빠져들 수밖에 없다. 더욱 매력적인 건 푸하 하는 웃음소리를 따라 찡한 감동이 배어든다는 점이다.

막야구부 아이들이 부러웠다. 수학 50점을 맞는 게 평생 소원인 아이들이, 자신이 속한 팀에 불리해도 아웃!을 외치는 김동해의 솔직함이, 어디서든 당찬 공희주가, 잠자리채와 실내화와 빗자루가. 운동장을 넘어서는 자유가 있는 그들은 노는 것이 뭔지 뭘 좀 아는 놈들이었다.

 

체육을 못했던 아이. 못했기에 안했고 안했기에 못했던. 어쩌면 나는 너무 복잡한 편견을 가지고 체육이란 걸 어렵게만 바라봤던 건 아니었을까.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놀면 되는 거였는데. 좀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운동장에서 마음껏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지나간 시간은 늘 아쉽다. 마음 한 켠 남아있는,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 미련. 운동장에서 놀아본 지가 언제였더라. 추억을 더듬듯 운동장 흙이라도 밟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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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놀이 못해요. 운동신경이 너무 없어요. 군대에 있을 때 축구를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했습니다. ^^

나비종 2016-07-14 23:16   좋아요 0 | URL
제게 있어 공은 놀이가 아니라 공포였죠^^; 그때마다 생각했답니다. 정말 공평하구나. 많은 능력을 타고난 대신 운동신경을 깔끔하게 앗아가다니 하고ㅋㅋ

완전액션 2019-09-08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쓰기만 해도 되실만큼 글을 재미나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후기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나비종 2019-09-08 06:1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바꾸셔도 될 것 같습니다. ˝완벽리액션˝이라고. .^^
좋아서 입이 실룩거립니다. 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쓰기만 해도 될 분은 저기 저 위 진형민 작가님이십니다. 몇 권 읽어보았는데 정말 감탄스럽게 맛깔나는 글을 쓰시거든요.^^
 
유혹의 학교
이서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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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을 좋아한다. 파랑의 냉철함과 빨강의 정열이 같이 겹쳐진 듯한 빛을. 빨강도 아닌 것이 파랑도 아닌 것이 마음에 따라 시시때때로 달라 보이는 애매함이 매력적이다.

포장으로 사용된 띠지부터 시선을 끌던 책이다. 게다가 제목마저 <..의 학교>라니. 껍질을 벗겨보니 회색빛으로 흐릿하게 묘사된 여성의 실루엣이 야릇하다. 유혹에 대한 매뉴얼과 실전이 담긴 책일까? 으흣~ 19금 영화를 보기 전의 짜릿한 느낌이 스멀스멀 마음을 간지럽힌다. 다큐적인 서적을 주로 다루는 출판사 이름과 책 제목이 잘 매치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게 했지만, 이런 장르도 가끔은 발간하나 싶었다. 아무 책이나 허술하게 내놓을 출판사는 아니리라는 믿음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리라며 철저하게 야하리라는 상상을 만들어냈다. 냉큼 책장을 넘겼다.

 

... 나름 순진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시절도 있었건만 언제부터 나는 유혹이란 말에 야시시한 의미만을 부여해왔던 걸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머쓱했다. 중간 중간에 등장했던섹스, 정사, 관능, 침대, 발기, 성기, 욕망이란 단어는 분명 자극적이었건만, 중학교 때 흠뻑 빠져 읽던 <하이틴 로맨스>보다 덜 야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런 말들조차 차분하게 느껴지는, 이 책 참 묘하다.

무엇이 이런 맛을 내는 걸까. 한참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사유의 깊이와 넓이와 객관성일 지도 모르겠다. 그녀 혹은 그녀 주변의 친구들이 마주쳤던 남자들과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사이드 메뉴와 같은 느낌을 준다. 방점은 삶과 소통과 관계에 선명하게 찍힌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는 좀 더 생동감 있는 삶을 만들고 싶은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혹에서 흔히 연상되는 이미지를 넘어선다. 저자의 시선은 인간과 그 사이의 관계와 삶에 닿아있다.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이어서 읽는 이를 유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유혹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여러 가지 형태의 자극.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에서 자극을 수용하는 것은 감각 기관이다. 나의 감각을 유혹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나의 눈, , , , 피부는 무엇에 유혹되는가.

 

첫째, 시각에 대하여.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후라이드와 매콤달콤 발그레한 양념. 나는 반반치킨에 유혹된다. 후라이드만의 구성은 너무 건조하고, 양념만의 세상은 과하게 뻘겋고 축축하다. 반반씩 조합된 발상, 누가 생각했는지 참 기발하다. 응용 편으로 짬짜면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반반치킨이 먼저 나왔던가, 짬짜면이 먼저 였던가?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인어는 신비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사람과 물고기의 모습이 반반인 캐릭터. 반반치킨 얘기하다 갑자기 인어로 도약하니 뜬금없기는 하지만 인어의 존재 역시 유혹적이다.

옷 중에서는 나시나 옆구리 쭉 찢어진 치파오가 유혹적이다. 홀딱 벗은 것은 차라리 야하지 않다는 말들을 한다. 입고 벗음의 경계가 애매한, 보일 듯 말 듯한 시각적 이미지는 나머지 부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퍽이나 유혹적이다.

위로 던져 올린 공이 정점에 있는 순간을 볼 때에도 유혹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올라감과 내려감의 사이에 있는 잠깐의 멈춤. 찰나이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둘째, 후각에 대하여.

베이비 파우더향이나 아이보리 비누를 좋아한다. 언젠가 왜 이런 향이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에라, 좋은 건 그냥 좋은 거지 이유가 있나, . 그 때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어렴풋이 이유를 알 듯 하다.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향이기에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유혹했던 건 아닐까 하고. 이미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향수가 나를 끌어당겼던 걸까.

 

셋째, 청각에 대하여.

음악과 울림 좋은 악기와 그런 목소리에 유혹된다. 리듬 있는 소리에 나는 매번 설레곤 한다. 몽환적인 소리를 내기에는 하프가 적당하지만, 내게 그보다 유혹적인 것은 낮게 깔리는 베이스 기타의 둥둥거림이다. 배경인 듯 배경 아닌 배경 같은 소리랄까. 드러나지 않으면서 귀 기울이는 이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악기. 가사도 좋지만 강허달림의 <기다림, 설레임>이 나를 끌어당기는 이유 중 하나다. 노래 속 베이스 기타의 소리가 정말 좋다. 시작 부분에서의 통통소리도. 악기의 매력은 연주되는 음과 음 사이의 울림에 있다. 울림 사이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틈은 사람의 감성을 유혹적으로 자극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말과 말 사이 느슨하게 걸쳐 있는 침묵이라고. '(p25)

노래를 듣다보면 가끔 악센트처럼 인식되는 소리가 있다. 반인반수의 승기가 빨강, 파랑 옷을 입고 오른쪽, 왼쪽으로 뛰어다니던 앨범 자켓. 드라마 구가의 서의 삽입곡, 이사벨의 <My Eden>을 유혹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배경처럼 깔리는 시계 소리와 사이사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이다.

MC몽의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과 같은 랩도 매력적이다. 랩은 대화와 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매력적인 음악이다. 가만히 말을 하는 듯 하면서도 들려주는 시 인듯 리듬이 있다.

단조풍의 노래 역시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선희의 <인연>처럼.

 

넷째, 맛에 대하여.

맛을 보고 음식을 먹는 편이 아닌데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식생활을 고수해왔지만, 먹는 순간 유혹되던 맛은 있다.

아포가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얹어낸 환상의 콜라보. 감동받은 마음에 발음조차 생소했던 이 말의 뜻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탈리아어라는 것을 알았고, ‘끼얹다, 빠지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그것 참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차가움과 뜨거움, 달콤함과 씁쓸함이 섞인 조화로움에 빠져 한동안은 커피숖에 갈 기회가 올 때마다 찾곤 했다.

 

다섯째, 촉감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초극세사도 좋지만, 너무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은 사람의 살결과 맞닿는 감촉을 좋아한다. 촉감을 타고 온기가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촉점과 온점이 동시에 자극되는 상황은 뜨거운 난로보다도 유혹적이다.

 

저자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유혹을 말하기도 한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제목과 같은 관계는 수많은 로맨스 드라마나 소설에 등장하는 유혹적인 관계이다. 우정으로 포장된 사랑. 그 접점에 흐르는 설렘이란!

'사랑은 자꾸만 소통하고 갱신하는 행위' (p281)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말이다. 그래, 머무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드라마에서 부르짖던 주인공의 말이 틀렸음을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계속 변하는 것이다. 그것을 무중력 상태인 듯 유지시켜주는 것은 계속적인 소통과 업데이트를 향한 노력이리라.

 

가장 유혹적인 순간은 언제일까. 과거, 현재, 미래 중 내게는 현재가 가장 유혹적이다. 이미 지나가버려 화석처럼 굳어진 시간은 매력이 없다. 다가오지 않아 알 수 없는 미래를 알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싶지도 않다. 현재가 가장 좋다. 스스로 느끼고 움직일 수 있는 순간, 변화의 출발점이 되는 순간이다. 영어의 의미를 알고 더욱 감탄했던, 말 그대로선물과도 같은 매력을 지닌다.

유혹은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이면서, 열려 있는 시선으로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도발하고 품어내는 일이었다.’(p18)

 

나를 유혹하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통점이 발견된다. 모든 것들이 경계에 존재한다는 것. 모든 경계는 유혹적이다.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며, 새로운 세상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혹은 이렇듯,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양 함께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듯 함께 가고,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양 함께 듣고 새기는 일이야.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듯이. 그야말로 생의 감각이 폭발하듯 살아 오르는 가장 관능적인 순간이 아닐까?'(p26)

 

'삶의 유혹에 응답하고 싶다. 나의 삶을 유혹하는 내가 되고 싶다.' (p345)

여기까지 이 리뷰를 읽어낸 당신은 이미 나의 글에 유혹된 것이다! 라 자신 있게 말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 , ....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글을 쓰고야 말테다! 가느다란 실이 되어 나의 시선을 당긴 유혹의 책은 내 자신에 대한, 내 삶에 대한 유혹으로 나를 데려다놓았다. 좀 더 가슴 뛰는 삶을 만들고 싶다는. 무엇을 할까. 생각만으로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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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작법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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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조사만 생략하고 뭉텅뭉텅 자르면 되는 줄 알았다. 시 쓰기를 도전해보려 했을 때, 나는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다. 빙산의 일각만 보고 달려들던 작은 돛단배 같았다고나 할까.

무작정 썼다. 나름 목표도 세웠다. 2일에 한 편은 써야겠어! 벅찬 설렘에 가슴 뛰던 날, 봄바람처럼 마음이 살랑거리던 날, 가늘게 세상을 가르던 비요일, 손끝으로 배어나오는 따스함이 막연하게 그리웠던 날, 코끝 찡하게 눈가 뜨거워지던 날은 그렇게 서툰 시로 담겨졌다.

그 인간은 달변이 아니라 다..이야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스갯소리로 스쳐간 말이 떠오르던 날, 복습하듯 나의 시를 돌아보았다. 다작의 n분의 1이라는 느낌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내 글에 내가 취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감정의 울림을 막상 종이에 옮겨보면 왜 그리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시에 대한 개념도 문장에 대한 이해도 기본적인 운율에 대한 상식도 없던 글. 곧 한계에 부딪혔다. 다작이 아니라 좋은 시를 쓰고 싶었다. 시를 쓸 수 없었다, 한동안.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 전문적으로 공부해볼까? 이과 계열 전공을 한 나로서는 망설여지는 생각이었다. 나이가 주는 무게감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저를 낳는다.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일상에 또 다른 뭔가를 더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사실 극복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어떤 틀에 갇히기 싫었다는 게 보다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정형화된 룰을 공부하게 되면 그것에 얽매이거나 휩쓸리거나 독창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 결국 전문적으로 공부한다는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났다는 건 나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480페이지 분량의 친절한 강연을 듣는 듯 했다. 좋은 시와 그렇지 않은 시를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 주었고, 시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세상에 나쁜 시는 없다. 시를 쓰는 마음 자체가 감정의 부산물인데, 나쁘다는 표현은 어쩐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만을 표현한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그저 지루한 글에 불과하다. 스스로의 감정에 취해 쓰인 1차적인 글은 그 얕은 깊이로 인해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는 이가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다.

시를 읽는 이들은 시와 자신의 감정을 엮어낼 수 있는 공감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그것은 삶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좋은 시에는 깊이가 있다.

시 쓰기는 감정으로부터 시작이 되지만 의외로 냉정한 작업이어야 한다. 해설서가 없는 원문만으로 공감을 끌어내야 하기에 만만치 않는 내공이 필요하다.

 

좋은 시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본다.

강아지풀을 이루는 섬세한 털을 한참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디카를 구입하고 저녁마다 접사를 찍는답시고 미친 듯이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던 기억. 비 그친 토요일 오후, 강아지풀의 털끝에 맺혀있던 빗방울 하나. 마지막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순간, 신선한 전율이 일었다. 좋은 시에도 섬세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멈춰있는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바람에도 미세한 떨림이 있다. 그 흔들림을 포착하는 감정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

작가가 예시로 들어준 좋은 시들을 감상하면서 나는 담백한 순두부를 떠올렸다. 현학적인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함. 화려한 꾸밈없이도 얼마든지 감성을 어루만지고 삶에 대한 또 다른 사유를 끌어낼 수 있다.

하얀 눈을 자박자박 걸어가듯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마음을 향해 소리 없이 내딛는 발걸음. 바람직하지 못한 시와 좋은 시를 비교하는 부분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조심스레 숨을 쉬었다. 호흡조차 정갈해야 할 것 같았다.

 

초보자들도 알 수 있도록 각 장마다 요소마다 예를 들어가며 시적 표현, 대상, 관점, 묘사, 구조, 시점, 진술, 화자, 비유, 행과 연, 의미 등을 설명한 책이었다. 가갸거겨 한글을 알려주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친절했다. ! 이래서 뭔가 찜찜했던 것이구나. 예전에 썼던 시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하게 장식한 문구를 넣었던 기억이 났을 때에는 금새 드러나는 거짓말을 한 아이처럼 뜨끔하기도 했다. 예시로 들어주는 시들에 모르는 한자가 섞여있어 당황하기도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슬쩍 넘어갔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적 용어를 더듬더듬 회상해보며, 10칸 공책에 한글 공부를 하는 기분으로 아 다르고 어 다름을 익혔다. 지저분한 방을 청소한 것처럼 개운했다.

 

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장르다. 끄트머리만 살짝 드러나는 글 아래로 묵직한 깊이를 지닌 사유가 담겨있다.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음악을 들려주기도, 때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는 언어 예술이다. 몇 글자의 배열만으로 제각기 울림의 지점이 다른 마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이제, 시작해볼까?

 

 

*눈에 띄었다.

꽃을 쫓는꿈을 쫓는 (p52 마지막 줄)

도시와 구릉구름 (p347 42)

(p347 밑에서 6째 줄)

물매미 울 듯돌 듯 (p384 3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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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2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시를 쓰면 내용이 시시해서 시 쓰기를 엄청 어려워합니다. ^^

나비종 2016-06-26 18:55   좋아요 0 | URL
내용이 시시할 리가 있나요?^^ cyrus님의 글은 방대한 양이라도 짧은 시를 읽은 듯 한 호흡으로 읽어내리게 하는 힘이 있는 걸요^^
정말 시 쓰기는 알수록 어려운 작업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6-06-2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상당히 좋게 읽었습니다. 이 책으로 스터디를 한 적 있어요. 제가 이 책으로 정했었어요.
밑줄을 긋고 읽었고 여러 번 읽은 곳도 많았어요. 시뿐만 아니라 산문을 쓰는 데에도 유용한 책입니다. 오랜만에 들러 반가운 책 봅니다.

나비종 2016-06-27 17:42   좋아요 0 | URL
정말 좋더라구요^^ 소개받아서 읽은 책인데, 오랜만에 공부다운 공부를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ㅎ
 
수상한 진흙 창비청소년문학 71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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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콜라보 하자며 주먹을 들이미는 CF가 생각났던 소설. 왕따와 학교 폭력의 문제로 전개되던 현실적인 이야기가 어느덧 환경, 에너지, 생명 공학, 과학자의 윤리 문제로 접근하여 멋진 콜라보를 이룬다. 미래의 어느 날인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사건 전개는 원제 <Fuzzy Mud>‘fuzzy’처럼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모호하다.‘난 만질 수 없지만이라 안타까움을 주며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안겨주던 배우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주인공들을 매개로 자유롭다. 긴박한 흐름에 침을 삼킬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빨라진다. 도무지 다음 장면이 예상 안 되었기에 그저 따라갈 수밖에.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구나 했다.

 

인간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따뜻함을 온도라는 숫자로 구체화했다. 분열법으로 불어나는 미생물이 점점 증가하는 숫자로 표시되니, 갑자기 훅 끼얹어지는 열기와 같은 두려움이 느껴진다. ‘2×1 = 2, 2×2 = 4’까지는 가볍게 넘어갔는데,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숫자들이 작은 벌레처럼 꼬물거렸다. ‘2, 4, 8, 16, 32’까지는 괜찮았는데. 숫자가 ‘64’로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작은 소름이 돋았다. 흙 속에 사는 미생물도 실제로 수억 마리라는데. 소설 속 미생물에르고님은 숫자를 통해 현실감을 건넨다. ‘1,073,741,824’. 단지 몇 번의 분열 만에 10억을 훌쩍 넘어가는 숫자라니. 괜히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팔뚝을 살펴본다.

 

타마야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이다.

그것은 두 삶을 오가는 것과 비슷했다. 반쪽짜리 삶 두 개. 그 둘을 합해도 온전한 삶 하나와 같지 않았다. 뭔가가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p100)

인간의 삶을 앞에 두고 숫자의 논리성은 자주 깨어진다. 결핍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 중 가장 용감하고 신중한 아이. 아이를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성선설이 옳은 걸까, 성악설이 옳은 걸까.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가끔 생각한다. 복잡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본성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성악설에 가깝다.

언젠가 들었던 심리학 실험 이야기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을 재소자와 간수,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가상의 감옥 체험을 하게 했더니, 간수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재소자 그룹의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잔인한 행동을 하더라는.

왕따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매듭을 풀기 어려운 실타래 같다. TV에서 관련 문제에 대한 다큐를 볼 때마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한다. 그냥, 재미있어서, 장난으로. 가해 학생들의 동기는 힘이 빠질 만큼 단순하다. 화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일까 회의가 느껴진다.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이 존재한다.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침묵하는 방관자.

걔들은 다 알고 있었어. (중략) 그런데 왜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왜 나를 지켜 주지 않았지? ’(p157)

작가는 피해자에게 묵묵한 메시지를 건넨다.

왜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지 않았지?’(p158)

결국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우러나는 용기인 걸까.

관용, 청결, 용기, 공감, 품위, 겸손, 정직, 인내, 신중, 절제. 소설 속 우드리지 사립학교에 등장하는 덕목. 이 중에서 소설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덕목은 용기라 생각한다. 타마야가 채드를 구하러 간 것도, 망설이던 마셜이 숲 속으로 들어간 것도, 나쁜 상황을 두고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도 결국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호주와 세네갈에는 미세 조류의 번식으로 딸기 우유처럼 변한 호수가 있다고 한다. 작은 생물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 청정에너지를 향한 관심이 미생물로 향하는 것은 이야기로만 그치는 상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인류의 희망이었던 미생물이 전염병이라는 재앙을 일으켰듯이, 대체에너지에 대한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

단지 작다고 해서 그들의 생명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죠. ’(p20)

어른이 되어서 무언가를 개발하든, 회사에 들어가서 새로운 기획을 하든, 가까운 미래에는 소설 속 과학자들처럼 대체에너지를 찾기 위한 직업을 갖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들에게 홉슨의 선택’(p217)을 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 선택 기준은 인간이고 생명이었으면 한다.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어야 하고,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 눈에 띄었다..

겉표지 그림이 본문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p13에는 채드의 겉모습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데, ‘짧게 자른 까만 머리눈은 파랗고 강철 같은 느낌이다.

표지에 그려진 3명의 아이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가운데 연두색 진흙을 손에 묻히고 있는 아이는 타마야, 오른쪽 안경을 쓴 아이가 마셜, 얼굴에 진흙이 묻은 파란 눈의 아이가 채드로 추정된다. 그런데, 까만색이어야 할 채드의 머리 색깔이 허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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