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질러, 운동장 ㅣ 창비아동문고 279
진형민 지음, 이한솔 그림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하필 왜 공인가. 교양 체육에서 끝날 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체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몸. 운동이면 운동, 춤이면 춤, 도무지 주인 말을 듣지 않는 몸치의 표본이다. 한데, 친목 피구라니! 체육은 직장에서도 피구, 배구, 족구, 때로는 듣도 보도 못한 공으로 둔갑해서 지긋지긋한 관절염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아! 정말 피!하고 싶다구!
공과 함께 한 기억 속의 나는 바보스럽기만 하다. 피구, 농구, 배구, 발야구, 테니스... 무슨 노무 구기 종목은 이리 많은지. 그 중 공 던지기는 공에 대한 흑역사의 정점을 찍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체력장 시험 종목. 구멍 뽕뽕 뚫린 시퍼런 공을 있는 힘껏 던지기만 하면 되었건만. 이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멀리 뻗어나가는 45°의 포물선이 왜 실전에서는 적용이 안 된단 말인가. 마음만은 투포환 선수인 나를 가까이서 목격한 친구는 살며시 다가와 말했다. **아, 공을 왜 땅으로 내리꽂냐? 5m 간격으로 그려진 거리 라인의 두 번째 칸을 넘어보는 게 원이었던 나는 끝내 평균 5m, 최고 8m의 저질스런 기록으로 학창시절을 마무리한다.
아! 놀고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빈곤의 악순환처럼 반복되던, 트라우마에 가까웠던 공에 대한 거부감이 살살 부는 바람에 걷히는 아침 안개처럼 사라져가는 듯 했다.
동화 속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왔다. 공을 두려워하기 훨씬 이전으로. 친구들을 따라 원피스를 입고 철봉에서 거꾸로오르기를 해도 전혀 민망하지 않던 그 때로. 나는 어느새 정글짐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힘껏 달렸던 시절,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주워 선을 긋고 사방치기를 하던, 비석치기를 하던 모습이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두루루 풀렸다.
원래 노는 데에는 큰 땅이 필요 없었다. 뭔가를 정식으로 하려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요것조것 따지는 것도 많아지지만, 노는 일은 그런 게 아니었다. (p143) |
진형민 동화 속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탱탱볼을 연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함과 투명함이 공존하는. 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유리처럼 쉽게 깨어지지는 않는다. 차돌과 같은 단단함과 맹랑함이 있다. 천방지축 한 듯해도 짐짓 당당하고 슬기롭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빠져들 수밖에 없다. 더욱 매력적인 건 푸하 하는 웃음소리를 따라 찡한 감동이 배어든다는 점이다.
막야구부 아이들이 부러웠다. 수학 50점을 맞는 게 평생 소원인 아이들이, 자신이 속한 팀에 불리해도 아웃!을 외치는 김동해의 솔직함이, 어디서든 당찬 공희주가, 잠자리채와 실내화와 빗자루가. 운동장을 넘어서는 자유가 있는 그들은 노는 것이 뭔지 뭘 좀 아는 놈들이었다.
체육을 못했던 아이. 못했기에 안했고 안했기에 못했던. 어쩌면 나는 너무 복잡한 편견을 가지고 체육이란 걸 어렵게만 바라봤던 건 아니었을까.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놀면 되는 거였는데. 좀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운동장에서 마음껏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지나간 시간은 늘 아쉽다. 마음 한 켠 남아있는,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 미련. 운동장에서 놀아본 지가 언제였더라. 추억을 더듬듯 운동장 흙이라도 밟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