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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학교
이서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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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을 좋아한다. 파랑의 냉철함과 빨강의 정열이 같이 겹쳐진 듯한 빛을. 빨강도 아닌 것이 파랑도 아닌 것이 마음에 따라 시시때때로 달라 보이는 애매함이 매력적이다.

포장으로 사용된 띠지부터 시선을 끌던 책이다. 게다가 제목마저 <..의 학교>라니. 껍질을 벗겨보니 회색빛으로 흐릿하게 묘사된 여성의 실루엣이 야릇하다. 유혹에 대한 매뉴얼과 실전이 담긴 책일까? 으흣~ 19금 영화를 보기 전의 짜릿한 느낌이 스멀스멀 마음을 간지럽힌다. 다큐적인 서적을 주로 다루는 출판사 이름과 책 제목이 잘 매치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게 했지만, 이런 장르도 가끔은 발간하나 싶었다. 아무 책이나 허술하게 내놓을 출판사는 아니리라는 믿음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리라며 철저하게 야하리라는 상상을 만들어냈다. 냉큼 책장을 넘겼다.

 

... 나름 순진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시절도 있었건만 언제부터 나는 유혹이란 말에 야시시한 의미만을 부여해왔던 걸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머쓱했다. 중간 중간에 등장했던섹스, 정사, 관능, 침대, 발기, 성기, 욕망이란 단어는 분명 자극적이었건만, 중학교 때 흠뻑 빠져 읽던 <하이틴 로맨스>보다 덜 야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런 말들조차 차분하게 느껴지는, 이 책 참 묘하다.

무엇이 이런 맛을 내는 걸까. 한참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사유의 깊이와 넓이와 객관성일 지도 모르겠다. 그녀 혹은 그녀 주변의 친구들이 마주쳤던 남자들과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사이드 메뉴와 같은 느낌을 준다. 방점은 삶과 소통과 관계에 선명하게 찍힌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는 좀 더 생동감 있는 삶을 만들고 싶은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혹에서 흔히 연상되는 이미지를 넘어선다. 저자의 시선은 인간과 그 사이의 관계와 삶에 닿아있다.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이어서 읽는 이를 유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유혹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여러 가지 형태의 자극.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에서 자극을 수용하는 것은 감각 기관이다. 나의 감각을 유혹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나의 눈, , , , 피부는 무엇에 유혹되는가.

 

첫째, 시각에 대하여.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후라이드와 매콤달콤 발그레한 양념. 나는 반반치킨에 유혹된다. 후라이드만의 구성은 너무 건조하고, 양념만의 세상은 과하게 뻘겋고 축축하다. 반반씩 조합된 발상, 누가 생각했는지 참 기발하다. 응용 편으로 짬짜면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반반치킨이 먼저 나왔던가, 짬짜면이 먼저 였던가?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인어는 신비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사람과 물고기의 모습이 반반인 캐릭터. 반반치킨 얘기하다 갑자기 인어로 도약하니 뜬금없기는 하지만 인어의 존재 역시 유혹적이다.

옷 중에서는 나시나 옆구리 쭉 찢어진 치파오가 유혹적이다. 홀딱 벗은 것은 차라리 야하지 않다는 말들을 한다. 입고 벗음의 경계가 애매한, 보일 듯 말 듯한 시각적 이미지는 나머지 부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퍽이나 유혹적이다.

위로 던져 올린 공이 정점에 있는 순간을 볼 때에도 유혹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올라감과 내려감의 사이에 있는 잠깐의 멈춤. 찰나이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둘째, 후각에 대하여.

베이비 파우더향이나 아이보리 비누를 좋아한다. 언젠가 왜 이런 향이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에라, 좋은 건 그냥 좋은 거지 이유가 있나, . 그 때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어렴풋이 이유를 알 듯 하다.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향이기에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유혹했던 건 아닐까 하고. 이미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향수가 나를 끌어당겼던 걸까.

 

셋째, 청각에 대하여.

음악과 울림 좋은 악기와 그런 목소리에 유혹된다. 리듬 있는 소리에 나는 매번 설레곤 한다. 몽환적인 소리를 내기에는 하프가 적당하지만, 내게 그보다 유혹적인 것은 낮게 깔리는 베이스 기타의 둥둥거림이다. 배경인 듯 배경 아닌 배경 같은 소리랄까. 드러나지 않으면서 귀 기울이는 이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악기. 가사도 좋지만 강허달림의 <기다림, 설레임>이 나를 끌어당기는 이유 중 하나다. 노래 속 베이스 기타의 소리가 정말 좋다. 시작 부분에서의 통통소리도. 악기의 매력은 연주되는 음과 음 사이의 울림에 있다. 울림 사이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틈은 사람의 감성을 유혹적으로 자극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말과 말 사이 느슨하게 걸쳐 있는 침묵이라고. '(p25)

노래를 듣다보면 가끔 악센트처럼 인식되는 소리가 있다. 반인반수의 승기가 빨강, 파랑 옷을 입고 오른쪽, 왼쪽으로 뛰어다니던 앨범 자켓. 드라마 구가의 서의 삽입곡, 이사벨의 <My Eden>을 유혹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배경처럼 깔리는 시계 소리와 사이사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이다.

MC몽의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과 같은 랩도 매력적이다. 랩은 대화와 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매력적인 음악이다. 가만히 말을 하는 듯 하면서도 들려주는 시 인듯 리듬이 있다.

단조풍의 노래 역시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선희의 <인연>처럼.

 

넷째, 맛에 대하여.

맛을 보고 음식을 먹는 편이 아닌데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식생활을 고수해왔지만, 먹는 순간 유혹되던 맛은 있다.

아포가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얹어낸 환상의 콜라보. 감동받은 마음에 발음조차 생소했던 이 말의 뜻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탈리아어라는 것을 알았고, ‘끼얹다, 빠지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그것 참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차가움과 뜨거움, 달콤함과 씁쓸함이 섞인 조화로움에 빠져 한동안은 커피숖에 갈 기회가 올 때마다 찾곤 했다.

 

다섯째, 촉감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초극세사도 좋지만, 너무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은 사람의 살결과 맞닿는 감촉을 좋아한다. 촉감을 타고 온기가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촉점과 온점이 동시에 자극되는 상황은 뜨거운 난로보다도 유혹적이다.

 

저자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유혹을 말하기도 한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제목과 같은 관계는 수많은 로맨스 드라마나 소설에 등장하는 유혹적인 관계이다. 우정으로 포장된 사랑. 그 접점에 흐르는 설렘이란!

'사랑은 자꾸만 소통하고 갱신하는 행위' (p281)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말이다. 그래, 머무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드라마에서 부르짖던 주인공의 말이 틀렸음을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계속 변하는 것이다. 그것을 무중력 상태인 듯 유지시켜주는 것은 계속적인 소통과 업데이트를 향한 노력이리라.

 

가장 유혹적인 순간은 언제일까. 과거, 현재, 미래 중 내게는 현재가 가장 유혹적이다. 이미 지나가버려 화석처럼 굳어진 시간은 매력이 없다. 다가오지 않아 알 수 없는 미래를 알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싶지도 않다. 현재가 가장 좋다. 스스로 느끼고 움직일 수 있는 순간, 변화의 출발점이 되는 순간이다. 영어의 의미를 알고 더욱 감탄했던, 말 그대로선물과도 같은 매력을 지닌다.

유혹은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이면서, 열려 있는 시선으로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도발하고 품어내는 일이었다.’(p18)

 

나를 유혹하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통점이 발견된다. 모든 것들이 경계에 존재한다는 것. 모든 경계는 유혹적이다.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며, 새로운 세상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혹은 이렇듯,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양 함께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듯 함께 가고,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양 함께 듣고 새기는 일이야.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듯이. 그야말로 생의 감각이 폭발하듯 살아 오르는 가장 관능적인 순간이 아닐까?'(p26)

 

'삶의 유혹에 응답하고 싶다. 나의 삶을 유혹하는 내가 되고 싶다.' (p345)

여기까지 이 리뷰를 읽어낸 당신은 이미 나의 글에 유혹된 것이다! 라 자신 있게 말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 , ....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글을 쓰고야 말테다! 가느다란 실이 되어 나의 시선을 당긴 유혹의 책은 내 자신에 대한, 내 삶에 대한 유혹으로 나를 데려다놓았다. 좀 더 가슴 뛰는 삶을 만들고 싶다는. 무엇을 할까. 생각만으로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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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작법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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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조사만 생략하고 뭉텅뭉텅 자르면 되는 줄 알았다. 시 쓰기를 도전해보려 했을 때, 나는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다. 빙산의 일각만 보고 달려들던 작은 돛단배 같았다고나 할까.

무작정 썼다. 나름 목표도 세웠다. 2일에 한 편은 써야겠어! 벅찬 설렘에 가슴 뛰던 날, 봄바람처럼 마음이 살랑거리던 날, 가늘게 세상을 가르던 비요일, 손끝으로 배어나오는 따스함이 막연하게 그리웠던 날, 코끝 찡하게 눈가 뜨거워지던 날은 그렇게 서툰 시로 담겨졌다.

그 인간은 달변이 아니라 다..이야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스갯소리로 스쳐간 말이 떠오르던 날, 복습하듯 나의 시를 돌아보았다. 다작의 n분의 1이라는 느낌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내 글에 내가 취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감정의 울림을 막상 종이에 옮겨보면 왜 그리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시에 대한 개념도 문장에 대한 이해도 기본적인 운율에 대한 상식도 없던 글. 곧 한계에 부딪혔다. 다작이 아니라 좋은 시를 쓰고 싶었다. 시를 쓸 수 없었다, 한동안.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 전문적으로 공부해볼까? 이과 계열 전공을 한 나로서는 망설여지는 생각이었다. 나이가 주는 무게감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저를 낳는다.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일상에 또 다른 뭔가를 더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사실 극복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어떤 틀에 갇히기 싫었다는 게 보다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정형화된 룰을 공부하게 되면 그것에 얽매이거나 휩쓸리거나 독창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 결국 전문적으로 공부한다는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났다는 건 나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480페이지 분량의 친절한 강연을 듣는 듯 했다. 좋은 시와 그렇지 않은 시를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 주었고, 시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세상에 나쁜 시는 없다. 시를 쓰는 마음 자체가 감정의 부산물인데, 나쁘다는 표현은 어쩐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만을 표현한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그저 지루한 글에 불과하다. 스스로의 감정에 취해 쓰인 1차적인 글은 그 얕은 깊이로 인해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는 이가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다.

시를 읽는 이들은 시와 자신의 감정을 엮어낼 수 있는 공감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그것은 삶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좋은 시에는 깊이가 있다.

시 쓰기는 감정으로부터 시작이 되지만 의외로 냉정한 작업이어야 한다. 해설서가 없는 원문만으로 공감을 끌어내야 하기에 만만치 않는 내공이 필요하다.

 

좋은 시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본다.

강아지풀을 이루는 섬세한 털을 한참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디카를 구입하고 저녁마다 접사를 찍는답시고 미친 듯이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던 기억. 비 그친 토요일 오후, 강아지풀의 털끝에 맺혀있던 빗방울 하나. 마지막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순간, 신선한 전율이 일었다. 좋은 시에도 섬세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멈춰있는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바람에도 미세한 떨림이 있다. 그 흔들림을 포착하는 감정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

작가가 예시로 들어준 좋은 시들을 감상하면서 나는 담백한 순두부를 떠올렸다. 현학적인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함. 화려한 꾸밈없이도 얼마든지 감성을 어루만지고 삶에 대한 또 다른 사유를 끌어낼 수 있다.

하얀 눈을 자박자박 걸어가듯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마음을 향해 소리 없이 내딛는 발걸음. 바람직하지 못한 시와 좋은 시를 비교하는 부분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조심스레 숨을 쉬었다. 호흡조차 정갈해야 할 것 같았다.

 

초보자들도 알 수 있도록 각 장마다 요소마다 예를 들어가며 시적 표현, 대상, 관점, 묘사, 구조, 시점, 진술, 화자, 비유, 행과 연, 의미 등을 설명한 책이었다. 가갸거겨 한글을 알려주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친절했다. ! 이래서 뭔가 찜찜했던 것이구나. 예전에 썼던 시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하게 장식한 문구를 넣었던 기억이 났을 때에는 금새 드러나는 거짓말을 한 아이처럼 뜨끔하기도 했다. 예시로 들어주는 시들에 모르는 한자가 섞여있어 당황하기도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슬쩍 넘어갔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적 용어를 더듬더듬 회상해보며, 10칸 공책에 한글 공부를 하는 기분으로 아 다르고 어 다름을 익혔다. 지저분한 방을 청소한 것처럼 개운했다.

 

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장르다. 끄트머리만 살짝 드러나는 글 아래로 묵직한 깊이를 지닌 사유가 담겨있다.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음악을 들려주기도, 때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는 언어 예술이다. 몇 글자의 배열만으로 제각기 울림의 지점이 다른 마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이제, 시작해볼까?

 

 

*눈에 띄었다.

꽃을 쫓는꿈을 쫓는 (p52 마지막 줄)

도시와 구릉구름 (p347 42)

(p347 밑에서 6째 줄)

물매미 울 듯돌 듯 (p384 3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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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2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시를 쓰면 내용이 시시해서 시 쓰기를 엄청 어려워합니다. ^^

나비종 2016-06-26 18:55   좋아요 0 | URL
내용이 시시할 리가 있나요?^^ cyrus님의 글은 방대한 양이라도 짧은 시를 읽은 듯 한 호흡으로 읽어내리게 하는 힘이 있는 걸요^^
정말 시 쓰기는 알수록 어려운 작업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6-06-2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상당히 좋게 읽었습니다. 이 책으로 스터디를 한 적 있어요. 제가 이 책으로 정했었어요.
밑줄을 긋고 읽었고 여러 번 읽은 곳도 많았어요. 시뿐만 아니라 산문을 쓰는 데에도 유용한 책입니다. 오랜만에 들러 반가운 책 봅니다.

나비종 2016-06-27 17:42   좋아요 0 | URL
정말 좋더라구요^^ 소개받아서 읽은 책인데, 오랜만에 공부다운 공부를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ㅎ
 
수상한 진흙 창비청소년문학 71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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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콜라보 하자며 주먹을 들이미는 CF가 생각났던 소설. 왕따와 학교 폭력의 문제로 전개되던 현실적인 이야기가 어느덧 환경, 에너지, 생명 공학, 과학자의 윤리 문제로 접근하여 멋진 콜라보를 이룬다. 미래의 어느 날인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사건 전개는 원제 <Fuzzy Mud>‘fuzzy’처럼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모호하다.‘난 만질 수 없지만이라 안타까움을 주며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안겨주던 배우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주인공들을 매개로 자유롭다. 긴박한 흐름에 침을 삼킬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빨라진다. 도무지 다음 장면이 예상 안 되었기에 그저 따라갈 수밖에.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구나 했다.

 

인간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따뜻함을 온도라는 숫자로 구체화했다. 분열법으로 불어나는 미생물이 점점 증가하는 숫자로 표시되니, 갑자기 훅 끼얹어지는 열기와 같은 두려움이 느껴진다. ‘2×1 = 2, 2×2 = 4’까지는 가볍게 넘어갔는데,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숫자들이 작은 벌레처럼 꼬물거렸다. ‘2, 4, 8, 16, 32’까지는 괜찮았는데. 숫자가 ‘64’로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작은 소름이 돋았다. 흙 속에 사는 미생물도 실제로 수억 마리라는데. 소설 속 미생물에르고님은 숫자를 통해 현실감을 건넨다. ‘1,073,741,824’. 단지 몇 번의 분열 만에 10억을 훌쩍 넘어가는 숫자라니. 괜히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팔뚝을 살펴본다.

 

타마야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이다.

그것은 두 삶을 오가는 것과 비슷했다. 반쪽짜리 삶 두 개. 그 둘을 합해도 온전한 삶 하나와 같지 않았다. 뭔가가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p100)

인간의 삶을 앞에 두고 숫자의 논리성은 자주 깨어진다. 결핍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 중 가장 용감하고 신중한 아이. 아이를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성선설이 옳은 걸까, 성악설이 옳은 걸까.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가끔 생각한다. 복잡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본성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성악설에 가깝다.

언젠가 들었던 심리학 실험 이야기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을 재소자와 간수,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가상의 감옥 체험을 하게 했더니, 간수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재소자 그룹의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잔인한 행동을 하더라는.

왕따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매듭을 풀기 어려운 실타래 같다. TV에서 관련 문제에 대한 다큐를 볼 때마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한다. 그냥, 재미있어서, 장난으로. 가해 학생들의 동기는 힘이 빠질 만큼 단순하다. 화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일까 회의가 느껴진다.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이 존재한다.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침묵하는 방관자.

걔들은 다 알고 있었어. (중략) 그런데 왜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왜 나를 지켜 주지 않았지? ’(p157)

작가는 피해자에게 묵묵한 메시지를 건넨다.

왜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지 않았지?’(p158)

결국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우러나는 용기인 걸까.

관용, 청결, 용기, 공감, 품위, 겸손, 정직, 인내, 신중, 절제. 소설 속 우드리지 사립학교에 등장하는 덕목. 이 중에서 소설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덕목은 용기라 생각한다. 타마야가 채드를 구하러 간 것도, 망설이던 마셜이 숲 속으로 들어간 것도, 나쁜 상황을 두고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도 결국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호주와 세네갈에는 미세 조류의 번식으로 딸기 우유처럼 변한 호수가 있다고 한다. 작은 생물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 청정에너지를 향한 관심이 미생물로 향하는 것은 이야기로만 그치는 상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인류의 희망이었던 미생물이 전염병이라는 재앙을 일으켰듯이, 대체에너지에 대한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

단지 작다고 해서 그들의 생명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죠. ’(p20)

어른이 되어서 무언가를 개발하든, 회사에 들어가서 새로운 기획을 하든, 가까운 미래에는 소설 속 과학자들처럼 대체에너지를 찾기 위한 직업을 갖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들에게 홉슨의 선택’(p217)을 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 선택 기준은 인간이고 생명이었으면 한다.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어야 하고,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 눈에 띄었다..

겉표지 그림이 본문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p13에는 채드의 겉모습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데, ‘짧게 자른 까만 머리눈은 파랗고 강철 같은 느낌이다.

표지에 그려진 3명의 아이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가운데 연두색 진흙을 손에 묻히고 있는 아이는 타마야, 오른쪽 안경을 쓴 아이가 마셜, 얼굴에 진흙이 묻은 파란 눈의 아이가 채드로 추정된다. 그런데, 까만색이어야 할 채드의 머리 색깔이 허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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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천사에게
김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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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한 산문. 부상당한 천사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독이는 문장들이 시처럼 이어졌다.

학창 시절, 나는 수필을 좋아했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내가 왜 이 사람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 다음부터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을 좋아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식상해질 무렵 다큐적인 글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편지조차 쓸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만한 것이 없다며 시에 빠진 적도 있다. 한동안 시를 직접 써보자며 무모하게 매달려 있다 너무 산문 같다는 자괴감에 잠시 포기했더랬다. 그러다 하이쿠에 관한 책을 접한 후, 정형시에 매력을 느꼈고, 평소 노래를 좋아하기에 작사에 도전해보고 싶어 되도 않는 시를 계속 쓰는 중이다. 문학 장르에 대한 내 호감도의 대략적인 변천사다.

산문에 매력을 느낄 줄은 몰랐다는 얘기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카덴차의 개인적인 끄적임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동안 접했던 작가의 작품 중 이 책이 가장 좋았다. <물의 연인들>에서 표출된 사회의식과 <발원>에서 드러나는 대상을 향한 묵직한 사랑이 잘 버무려진 느낌이다.

 

문학은, 문화예술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절망의 자리에 남아 있는 단 한 톨의 씨앗에서도 생명의 온기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다.’(p9)

‘ '자살 방지'가 초점이 아니라 '고통의 이해'가 초점이어야 진짜 캠페인이 되는 것 아닌가./ 고통의 이해. 문학의 몫. 말 그대로의 공명./ 진정한 내적 변화의 가능성은 공명하는 순간 없이 오기 힘들다.’(p126)

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를 생각해본다. 한 편 한 편의 짤막한 글에는 아프다고 외칠 수조차 없는 이들의 고통이 담겨있는데, 이들의 외침을 공감하고 대변하려는 작가의 따스한 노력이 감동적이다. 대부분 한 페이지로 서술되어있는데, 사회적인 사건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한 페이지로 이리도 적절하게 표현해낼까 감탄하고 제목의 적절성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산문을 시처럼 쓰는 사람이구나. 현대사적인 사건들이 함축적인 시처럼 그려진 글이다.

 

그녀의 문장은 부드러운 듯 직선적이다. 통쾌하고 깔끔하다.

그러므로 산문 쓰기를 시나 소설 등의 본격 장르보다 잡문취급하는 어떤 경향에 대해 나는 단호하다. 잡문은 없다.’(p9)

분급이라는 말. 근래 들어본 가장 끔찍한 단어이다.’(p16)

‘ '오죽하면'에 떠밀린 죽음은 타살이다.’(p17)

사람을 죽여서 얻는 전기라니’(p18)

당연한 일을 위해 너무 많은 수고가 필요한 사회’(p41)

아프면 먼저 울어야 한다.’(p169)

 

그녀의 문장은 또한 선동적이기도 하다. 읽는 이에게 무슨 행동이든 하라며, 그래야 하지 않겠냐며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언제나 말할 때는 지금이며, 행동할 때는 지금이다.’(p32)

온 힘을 다해 1보를 걷는 오늘의 행위가 오늘의 진심이다.’(p60)

약자의 무기는 연대다.’(p171)

백만 마디 말보다 한순간의 숨결, 따스한 포옹이 일상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살림'은 그런 공감과 따스함으로 힘을 얻어 움직인다.’(p199)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겠냐며 스스로의 생각에 변화를 주어야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p60)

저마다 하나씩의 우주인 우리도 서로에게 각각 알맞게 우러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 맛 우러나는 사람! ’(p256)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폴 발레리’(p9)

 

표지를 바라본다. 처음 보는 순간 새를 연상시켰던 천사의 눈물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겉표지를 걷어내고 연두색 바탕에 웅크리고 있는 천사를 바라본다. 파울 클레의‘It weeps’란 제목의 천사이다. 눈물을 흘리는 천사라. 가냘픈 전체를 보기 위해 표지를 걷어낸 손짓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작은 걸음이 필요하리라.

책꽂이에 책을 꽂다가 제목이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는 것을 발견한다. 잠시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이 책의 왼쪽에는 아마도 숨겨진 또 하나의 제목이 있었을 거라고. <부상당한 천사를 바라보는 당신에게>라는.

 

온 힘을 다한,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날갯짓. 책갈피 사이에 곱게 접혀있던 나비 날개가 책을 펼칠 때마다 활짝 펼쳐지는 듯했다. 그것은 336페이지를 건너온 나비 효과처럼 마음속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잡념 없이 100퍼센트 밥 먹고 잠잘 땐 100퍼센트 잠자기. 100퍼센트 슬퍼하고 100퍼센트 즐거워하기. 100퍼센트의 순간이 많은 인생이라면 자기가 만들어온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등불처럼 영혼을 인도하겠지. 봄날 나비의 100퍼센트 날갯짓처럼! ’(p275)

 

 

* 눈에 띄었다..

p91, 마지막 문장 : 마침표가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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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글이 대중에게 인정받는다면 자신의 글을 잡문이라고 하는 겸손한 자세를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

나비종 2016-05-30 17:38   좋아요 0 | URL
스스로 생각하는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족도 같은 거요.
또, 대중에게 인정받기 전까지 스스로를 토닥이며 글을 써나가는 인내심도요. 자꾸 초라해지는 가운데 자신감을 갖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가 만만치 않다는ㅎㅎ
 
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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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무릎을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새하얀 봄꽃을 한참동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주위는 온통 고요한데 숨죽이며 지켜봐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그마한 외침. 핸드폰 렌즈로 담아 봐도 좀처럼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 가까이 렌즈를 대고 본다면 이런 사유를 끌어낼 수 있을까. 멀리서 보았을 때 모래 알갱이가 흩어진 듯 보여도 작은 별의 경이로움을 숨겨놓은 별꽃, 마음은 나태주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비로소 짐작할 수 있는 대상인가 보다.

 

차는 사람의 마음에게 주는 음식이다. (p24)’

작가의 말처럼 마음은 차의 본질에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찻물이 우러나듯 그 향기를 드러내는 것 같으니. 두껍지 않았는데도 오랜 기간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간혹 운율이 느껴지는 단어에 개념을 구겨 넣는 듯 억지스러움이 보이기도 했지만, 시처럼 짧은 문장과 켜켜이 여백에 담긴 생각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p21)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p133)’

다른 책 안에 기술된 유리에 대한 생각에 매력을 느껴 구입한 책이었다. 지층을 연상시키는 표지처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마음을 정밀 묘사를 하듯 세밀하게 정의한다.

 

마음에서 무언가 사라지길 원해서 우리는 말을 하는 걸까. ’(p141)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마음에 무언가 간직하고 싶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을 홀로 마음에 둔 사람은 그를 오랜 시간 간직하고 싶어서 말을 할 수 없는 걸까. 작가가 한 말을 뒤집어 보고, 다른 경우도 생각해보았다.

 

오랜 시간을 읽다보니 의기소침한 순간도 찾아왔는데, 이 책에 나온 몇몇의 문장은 따스한 이불을 덮듯 많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슬픔은 모든 눈물의 속옷과도 같다. ’(p78)

위로란 언제나 자기한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형태대로 나오는 것이다. ’(p152)

우울. . 어떤 것을 맛보아도 이게 아니었나 여겨진다는 점에서, 마음이 식욕을 잃어버린 상태’(p309)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본 표현들이 오히려 마음을 토닥이는 데에는 더욱 적절했다.

 

입이 심심할 때에 먹을거리를 찾듯이, 마음이 심심할 때에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는다. 음악을 듣든 산책을 나가듯 친구를 만나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한다. ’(p95)

마음이 허전할 때는 주로 음악을 크게 듣거나 심심해라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심심하다는 말은 내 방식으로 의역하면 외롭다는 말이다. ‘마음이 심심하다는 작가의 표현을 마음이 외롭다는 표현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본다.

 

언제나 두 개의 당신을 견딘다. 당신이었던 당신과 당신인 당신을. ’(p34)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당신이었던 당신이란 말이 먹먹하고 슬프다.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p57)

나는 소중한 존재일까, 중요한 존재일까 생각해보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대입해본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고도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가로 치르지만’(p62)

어렸을 때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면서 저걸 스스로 다려 입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깨끗한 집안 뒤에는 그림자처럼 일하는 어머니의 손길이 숨어있듯이, 내가 누리는 편안함 역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자리 잡고 있겠지.

 

가끔 새벽에 깰 때가 있다. 새벽은 고요하게 빛나는 푸른 호수와 닮아있다. 그 시간에는 고운 빗자루로 방을 쓸어내듯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곤 한다. 이 책에서 나는 새벽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마음이 칠흑일 때, 차라리 마음의 눈을 감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길 차분하게 기다린다면, 그리곤 점자책을 읽듯 손끝으로 따라간다면, 이내 사물을 읽을 수 있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다. ’(p31)

수많은 새벽이 담긴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그마한 풀꽃 사진을 찍듯 조심스레 들여다보며 마음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듯 구석에 자리 잡아 뽀얗게 먼지가 일던 마음까지 정돈되는 듯 개운했다.

 

 

* 개념의 오류가 보인다.

혀가 앞부분으로는 짠맛을, 뒷부분으로는 쓴맛을, 옆 부분으로는 신맛을 감지하고 전체로는 단맛을 감지하듯이...’(p36)

과거에는 혀의 부위별로 각각 다른 맛을 느낀다고 알려져 과학교과서에도 그렇게 실려 있었으나, 최근 교과서에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 실제로 혀의 모든 미뢰에서 모든 맛을 감지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의 표현이 과거의 지식을 토대로 마음을 사유한 것임을 감안해도, 널리 알려졌던 지식에 비추어볼 때 오류가 있다. 과거 교과서에서는혀의 앞부분으로는 단맛을, 전체로는 짠맛을 느낀다고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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