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써도 다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제법 센 비가 왔다.

오랜만에 동동주를 마시며 놀았다.

안주는 부추전.  

새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이옥 얘기를 했다. 최근에 이옥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취미라고 하기엔 제법 작수량이나 수준이 평범하지는 않은 그이기에 이옥의 한시가 흥미로웠을 것이라고 나는 그에게 직접 묻기도 전에 지레 짐작했다.

정조 문체반정의 최대 희생자, 가엾은 사람, 이옥.

술 잔에 마음을 두는 동안 다른 곳에 둘 마음이 없어 모든 것을 잊는다던 그.

그의 여린 감성이 정조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나약함이었을 것이고 괘씸했을 것이다.

'그 초쇄 천박한 것은 .... 비통하고, 괴롭고, 근심스럽고, 답답한 소리인데 무엇을 괴로워 하여 이런 문장을 짓는 것인가?'

정조는 벌열가문의 자제들이 지어대는 이른바 소품문을 다 읽어가며 문체반정이라는 무딘 칼을 빼어들었는데 그 무딘 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크게 베였던 이가 바로 한미한 가문을 업보로 둔 이옥이었다.

반성문만으로도 안되고 기어코 '충군'이라는 양반으로서는 치욕이었던 벌을 내렸던 정조에게 이옥은 제대로 항변할 기회조차 없이 변방을 전전하며 불우한 생을 이어야 했다. 정조가 지어바치라는 정문을 계속 올려도 왕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계속 질타했다.

그 이옥의 전집이 나왔는데 보고는 싶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

나와 그는 이런 주변적인 얘기만 나눴을 뿐 정작 그의 글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얘기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갑자기 이옥의 그 여린 감성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흙과 나무와 꽃이 어우려져 흐드러진 곳에 비내려 자연의 비린내가 진한 곳에서 좋은 사람과 술잔 기울이며 옛 사람들을 추억하는 것은 여전한 일상에서 취할 수 있는 드문 호사다.

비록 서울 도심 한가운데 허름한 술집에서 마셨지만,  새 사람과 비가 오는 것에 만족했다.

어제는 즐거워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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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09-03-2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옥..어딘가에서 들어본 이름인데..정조의 자격지심에 나름 억울한 문사가 있었더랬다고..어릴때 한문공부 좀 제대로 해볼걸~본다고 알겠냐마는 관심은 있습니다^^; 요즘엔 연극도 하는 모양입니다~간만에 어설프지만 아는 이름 나오니 반갑습니다~

포스트잇 2009-03-22 12:38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이옥전집이 나온 모양이군요.지금 읽을 일은 없을 것 같구요. 정조와 심환지 사이에 오간 비밀서찰이 번역되어 나온다고 하는데 그건 관심이 가네요.'초쇄천박... 운운' 정조답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