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번째 작품은 [이상 소설 전집]이다.
301부터 305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다.
펭귄클래식코리아의 [레미제라블]을 갖고 있지만 여태 떠들어보지도 않고 있다가 일요일밤에 새삼스레 꺼내 읽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펭귄판과 나는 좀 안맞는 모양이다.
펭귄판 세계문학은 도대체가 완독이 안된다. 왜 그런거지? 한 권도 완독을 못했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작품이 디킨스의 [두도시 이야기]인데, 50여 페이지 읽다 뒀다.
[레미제라블] 5권을 시커멓게 책꽂이에 꽂아놓고도 아, 민음사판이 나왔다니 이 허연놈들도 그 옆에 꽂아두고 싶은 욕심으로 또 들끓는다.
[레미제라블]이라면 새로 나오는 족족 다 구입한다는 그 분은 지금도 여전한지 모르겠다. 요즘 한창 정신없겠군.
이렇게 [레미제라블]조차(?) 또 새로 나오는데 도대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왜 이리 귀한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고 느낀 점은 난 여전히 도스토예프스키가 더 흥미롭다는 것.
취향상인지 문학적 소양의 탓인지 몰라도 옛날부터 두 사람 중 강렬한 건 도스토예프스키 쪽이었다.
나이들어서도 여전히, 아직까진 그렇다.
톨스토이의 영화적 묘사가 때로 꽉 차오를 때가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그 못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가난한 사람들]에 나오는 '단추'에피소드 같은 건 그 장면이 가슴이 오그라들 정도로 숨막히게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씁쓸하고 계면쩍은 웃음을 짓게 한다.
오르한 파묵이 톨스토이를 시각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단어적 상상력'에 호소하는 작가로 구분한 것도 봤지만
"독자를 아찔하게 하는 모든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또는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읽고나서 우리 머리에 남는 사물이나 이미지, 장면은 별로 없습니다. 톨스토의 세계가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배치된 사물들로 들끓고 있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방은 텅 비어 있습니다. (소설과 소설가, 90 페이지)
이 부문만 따로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히 파묵의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톨스토이의 종교적 장광설은 사양하고 싶지만, [전쟁과 평화]가 나오면 내 기꺼이 읽어줄 수 있는데.
[전쟁과 평화]를 통해서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건지, 없는 것에 대한 탐함인 것인지 헷갈리지만 보고싶다니깐.
[레미제라블]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잡은 건 수년 째 그냥 갖고만 있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읽도록 촉발한 건 로쟈님의 얼마전 페이퍼. 고작 수십 페이지 읽었지만 딱 내 스타일.
11월이야말로 1년 중 가장 우울하고 힘들며, 그래서 가장 잔인한 달이다. 11월 들어서며부터 나의 겨울 암흑기는 시작된다.
[전쟁과 평화]가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먼저 나오지 않길(읽을 자신이 없다, 아, 이쪽엔 죄송.)
만약에, 절대로 그럴리 없지만, 그래서는 안되지만, 이번에도 과거 청산 못하고 낡고 위험한 그 인물이 12월 19일에 웃는다면,
난 저 민음사판 [레미제라블]을 싸들고 .... (집에서가 아니면 어디가서 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