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ricia Salas - Puerto Montt
파트리시아 살라스 (Patricia Salas) 노래 / 씨앤엘뮤직 (C&L)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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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만한 또 한 명의 여성 가수가 국내에 소개됐다. 칠레 출신의 파트리시아 살라스. 그녀는 열두 살에 처음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열네 살 때 작곡을 했으며, 열여섯 살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재능 많은 소녀에게 한 음반사가 음반을 제의했고, 처음 발표된 것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그녀는 RCA와 열 장의 싱글 앨범을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그녀가 두 명의 자매와 함께 결성한 밴드 프레깬시아 모드는 남미의 거의 모든 나라에 알려질 정도였다. 그리고 1986년 그녀는 독일로 이주했다. 그 뒤부터는 줄곧 독일에서 음반 작업을 하며 활동했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소련 등지에서 콘서트를 가지며 성공적으로 유럽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비록 몸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녀의 노래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누에바 칸시온이다. 고향 땅의 풍경들, 커피 농장 노동자의 삶, 라틴아메리카의 영웅 볼리바르 등을 담으며 삶의 열정을 노래하고 있다.

누에바 칸시온은 우리나라의 민중가요 운동과 비슷하다.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시대상황이 이 노래운동을 탄생시켰다. 아따우알파 유팡키, 비올레따 파라 등이 주도했고, 메르세데스 소사, 빅토르 하라 등이 널리 퍼트려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노래 속에는 안데스 인디오의 삶이 녹아 있다. 자신의 주체를 서양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인식하지 않고 인디오로 규정하며 그들의 노래를 계승,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에는 인디오의 악기인 께나, 차랑고, 시쿠 같은 것이 등장하고, 선율도 인디오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것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사에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적 현실을 과감히 담아 노래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파트리시아 살라스도 이 누에바 칸시온 운동에 참여했다. 잔잔한 포크 계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그녀는 억압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이 음반은 그녀가 선보인 대표작 ‘Amis Amigos’, ‘Gracias A La Vida’ 중에서 유명곡만을 뽑아놓은 것이다. 첫 곡 ‘몬 항’은 칠레 남부의 휴양지에서 이별하는 두 연인의 아픈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어디선가 꼭 들은 것만 같은 선율이 가슴을 울리는 곡으로 한 번 듣기만 해도 금세 매력에 빠질 만한 요소가 많은 노래다. ‘삶에 감사하며’는 아르헨티나의 거장 메르세데스 소사가 불러 유명한 곡이다. 이 노래 역시 가슴 깊게 전해지는 호소력 깊은 목소리와 선율이 인상적이다. ‘마리아는 떠나고’, ‘난 너의 친구야’, ‘사랑에 빠졌네’, ‘그대는’ 등에서는 살리아스의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잔잔한 기타음과 더불어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매혹적이며, 열정적이다. ‘모든 이들의 노래’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다소 둔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정열적인 노래가 그녀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이것은 플라멩코 풍의 ‘네가 보고자 원할 때’에서도 느껴진다. 활달하면서도 서정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담백한 풍의 복합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음악을 더욱 빛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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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s2 Music World Collection Vol.02 - Gypsy
Various Artists 노래 / 알레스2뮤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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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집시는 박해받는 소수자에 속한다. 역사에 집시의 모습이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이들은 가장 밑바닥 계층이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갖은 차별에 시달렸다. 우물에 독을 푼다더라, 가축에게 독을 먹인다더라, 아이를 유괴하고, 사람고기를 먹는다더라. 각종 흉흉한 소문의 근원지는 모두 집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고 유럽인들은 이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다. 노예로 부린 뒤 땅에서 쫓아내고,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집시는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신을 비롯해 그 누구도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거리에서 거리로 움직였을 뿐이다. 당연히 그들을 보호해주는 국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떠돌며 특유의 문화를 퍼뜨리며 유럽을 넘어 세계문화의 한 흐름을 형성해왔다. 음악은 그중 가장 큰 줄기다. 무시 못할 힘을 지닌 이들의 음악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로 세계 각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그토록 집시를 이방인 취급했으면서도 유독 그들의 음악과 자유로운 문화에 열광했다.

알레스2 뮤직에서 선보인 집시 음악 모음집(2CD)에는 집시에 대한 총체적인 문화가 모두 담겨 있다. 내지에는 집시의 역사와 문화가 세세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음반에는 세계를 대표하는 집시 음악인들이 거의 모두 망라되어 있다. 내지의 글귀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집시의 문화가 얼마나 흡인력이 강한지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집시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퍼져 있지만, 이 음반에서 다루는 것은 칼데라시족(발칸반도와 중부 유럽에 퍼져 있는 집시들)과 신티족(프랑스, 알사스, 독일 주변에 거주하는 집시들)의 음악만을 다루고 있다. 비교적 이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집시들의 음악이 서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음반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현재의 집시 음악을 이끌고 있는 화려한 연주진이 거의 모두 등장한다는 점이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지역의 집시 음악을 연주하는 로말레스, 러시아 집시 음악을 대표하는 밴드 로이코, 동구권 집시 음악의 대모 벨라 빌라, 집시 음악의 여왕 에스마, 독특한 집시 음악을 들려주는 그룹 안도 드롬, 집시 재즈로 유러피안 재즈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 집시 밴드 브라취, 마케도니아의 역동적인 향취를 표현하는 브라스 밴드 코차니 오케스트라 등은 그 스스로가 모두 집시 음악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연주하는 작품은 어느 하나도 놓치기 아까운(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벅찬) 명곡들이다. 로말레스의 ‘모든 집시여, 오 우리의 어머니여’에는 집시들의 국민가요라고 할 수 있는 ‘에델레지’가 특유의 즉흥 멜로디로 어우러져 있고, 로이코의 ‘집시의 시간’에는 레온지아 에르덴코의 애절한 음성으로 집시 음악의 서정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집시 음악인 중에서 대중적 명성을 크게 얻은 베라 빌라의 ‘아멘’과 ‘울고 싶어요’는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멜로디이고, 에스마의 ‘난 방황해 왔습니다’도 마찬가지로 집시 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명곡이다. 그밖에 다른 작품들에도 집시의 정통성과 문화, 그리고 치열한 음악성이 배어 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모든 지역을 잠식하며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하고 있는 지금, ‘집시 음악’과 같은 월드 뮤직을 통한 교류가 어떻게 보면 새로운 대안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알레스2 뮤직에서 시작한 ‘월드 뮤직 컬렉션’이 반갑기 그지없다. 꾸준히 많은 대중에게 선보여서 우리의 문화를 좀더 성숙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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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낮달 > 잭 런던이 그려 낸 독점자본주의의 미래
강철군화 - 한울사회문학시리즈 1
잭 런던 지음, 차미례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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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잭 런던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인 듯하다. 그가 쓴 여러 편의 알래스카를 무대로 한 동물소설 중의 하나였던 "황야의 부르짖음"을 통해서였는데, 이 작품은 주인공 개가 알래스카로 팔려가 썰매를 끌게 되면서, 거기서 약육강식의 세계와 비정한 인간의 혹사를 겪게 되고, 주인이 죽은 뒤 자기 내부의 야성의 부르짖음에 따라 결국은 북극의 이리떼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작가 따위를 의식하고 읽은 책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문학 작품이 개인의 생산물이라는 점을 잘 의식하지 못하니 말이다. 강철군화를 읽고나서야 그 시절에 읽었던 얘기가 그의 작품이라는 걸 소급해 이해한 것이다.

  

사회과학 전문의 도서출판 '한울'에서 강철군화의 초판이 나온 게 1989년 7월인데, 내가 갖고 있는 책은 90년에 12월에 간행된 5쇄다. 결국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91년도쯤인 셈이다. 책의 정가는 3,800원. 15년쯤 지난 책표지의 코팅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있는데, 아마 나 말고 이 책을 읽은 이는 대여섯 명은 좋이 될 듯하다. 내게 읽을 만한 책 추천을 부탁한 동료 교사들과 제자들, 그리고 해직 시절 같은 지역에서 알고 지냈던 금속 노동자도 이 책을 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사회 밑바닥의 비참한 삶은 온몸으로 견뎌내고 잘 팔리는 작가가 되어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삶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심화된 자기 모순과 번민 속에서 죽어간 작가, 잭 런던을 대영백과사전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이고 처절한 투쟁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작가', '돈을 벌기 위해서 쓴 낭만소설과 사회주의자로서 이념을 위해 쓴 사회주의 소설로 날카롭게 양분되는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 '미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며 스스로 계급투쟁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 말년에도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 작가로 영원히 추앙을 받은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1908년 발표된 강철군화는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로서의 통찰력과 문학적 뚝심의 백미(번역자 차미례)'로 평가되는데, 대체로 이데올로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빠지기 쉬운 '소설적 완성도의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이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부패로부터 해방된 27세기 통일된 사회주의 시대인 '인류형제애 시대(Brotherhood of Man)'의 세계국가 아디스의 문헌학자가 쓴 서문의 형식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20세기, '강철군화'라고 불리는 과두지배체제가 노동대중의 얼굴을 짓밟았던 시대의 혁명가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상류계급 출신 아내, 애비스 에버하드가 기록해 둔 원고가 사회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가 이루어진 이후 700여년 만에 웨이크 로빈 산장의 해묵은 참나무 심장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문헌학자의 보고를 서문으로 이 '애버하드 원고'는 독자들의 '피를 끓게 하면서' 그 드라마틱한 속살을 펼쳐낸다.

 

 애비스의 관점에서 기술되고 있는 소설 초반부에서 '말굽편자 대장장이 출신의 사회학자'인 주인공 어니스트는 그의 해박한 사회주의 이론과 철학으로 이 상류계급의 우아한 숙녀와 그녀의 아버지인 버클리 대학의 물리학자, 그리고 모어하우스 주교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버린다.   


어니스트는 주교를 향해, 남부의 면사공장에서 어린 아이들을 혹사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면서 "그 공장의 배당금은 그 애들의 피에서 지급된다."며 주교는 "그 배당금으로 배가 부른 미끈한 수혜자들을 향해 듣기 좋은 상투적인 설교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하고 애비스에게도 "당신이 입고 있는 그 드레스가 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애비스는 어니스트의 애정의 포로가 되고, 사랑을 실천하려 한 주교는 교회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다.


소설은 사회주의 혁명과정(시카고 코뮨)을 실감나게 그려내면서 그 과정에서 결국은 대규모의 살육으로 끝나는, 그들 이상의 패배를 고통스럽게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혁명이 실패하게 되면 지배계급은, 즉 강철군화는 '노동대중의 얼굴 위를 짓밟고 다닐 것'이라는 점을 현실을 통해 증명해 버린 것이다.




잭 런던이 이름한 '강철군화'는 자본주의 정치권력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이는 1922년 무솔리니의 파시즘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는 지배계급이 과도한 잉여이윤으로 노동자 계급의 일부를 매수하여 우리 안에 가두어 놓은 다음, 나머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주역의 구실을 하는 '노동귀족'의 출현도 예언하였다. 1937년 트로츠키는 강철군화 소련판이 출간되었을 때, "그 당시의 단 한 명의 맑시스트 혁명가도 자본과 노동귀족 사이의 불길한 야합의 가능성을 그처럼 완벽하게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고까지 단언했다. 한 작가의 역사적 통찰력이 한 시대를 넘어 미래까지를 꿰뚫어 본 것이다.


10년도 전의, 까마득한 옛 시절의 소설 한 편을 새삼스럽게 기억하는 것은 한갓진 회고는 아니다. 강철군화 이후 100년이 가까워오지만 어니스트의 지적처럼 "두 사람이 똑같은 것에서 자기들이 얻을 수 있는 전부를 얻으려고 들 때, 거기에는 이해의 대립이 존재한다. 그것이 노동과 자본 간의 이해의 대립"이라는 명제는 변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의 발호 아래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60%를 넘고, 부모 없이 외조부모에게 맡겨진 아홉 살짜리 아이가 혼자서 사냥개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그 주검이 이튿날에야 발견되는 이 야만의 사회, 2005년의 절망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는 책을 덮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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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암살 주식회사 중에서...

라파르그 [Lafargue, Paul, 1842.1.15~1911.11.25]

프랑스의 사회주의운동가.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쿠바 산티아고
주요저서 《역사에 있어서의 관념론과 유물론》(1895)

쿠바 산티아고 출생. P.J.프루동의 영향을 받아, 학생시절부터 사회주의운동을 하다가 대학에서 쫓겨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마르크스와 알게 되어 1869년 그의 둘째 딸과 결혼하였다. 파리코뮌시대에는 대단한 활약을 하였으나 실패한 후에는 에스파냐로 망명하였다.
1881년 대사령(大赦令)으로 파리에 돌아와 J.게드와 함께 프랑스노동당을 결성하여 1905년까지 당을 지도하였다. 1891년 하원의원이 되었으나, 1911년 염세관(厭世觀)에 빠져 드라베유에서 부부가 함께 자살하였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등 마르크스주의를 프랑스에 보급하는 데 큰 몫을 하였다. 주요저서로 《역사에 있어서의 관념론과 유물론》(1895) 《소유권, 그 기원과 발전》(1895) 등이 있다.

곤차로프 [Goncharov, Ivan Aleksandrovich, 1812.6.18~1891.9.27]

러시아의 소설가.
국적 러시아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볼가강 연안의 심비르스크(지금의 울랴노프스크)
주요저서 《평범한 이야기》(1847), 《오블로모프》(1859), 《단애》(1869)


볼가강(江) 연안의 심비르스크(지금의 울랴노프스크) 출생. 모스크바대학교 문학부 졸업. 1835년부터 30년 동안 재무성·내무성 등의 관료생활을 하였다. 1952년에는 푸차친 제독의 비서로 전함(戰艦) 팔라다호를 타고 세계를 주항(周航)하였으며, 특히 1854년 4∼5월에는 한국의 거문도와 동해안 여러 곳에 상륙하였다.
그 여행기를 귀국 후에 출판한 《전함 팔라다 Fregat Pallada》(1858)에 자세히 담았는데, 특히 이 책에는 한·러 사이의 첫교섭을 빠짐없이 서술하였으며, 작가 특유의 유머와 페이소스로 당시 쇄국 체제하의 한국의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 만년에는 창작을 그만두고,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을 논평한 《백만의 가책》(1872)과 자서전적 고백 《늦었지만》(1879) 등을 썼다.
《오블로모프 Oblomov》(1859)와 《단애(斷崖) Obryv》(1869)는 최초의 장편 《평범한 이야기 Obyknovennaya istoriya》(1847)와 더불어 3부작을 이룬다. 그의 철저한 사실주의는 러시아 작가 중에서도 특이한데, 대표작 《오블로모프》의 주인공에 대한 성격묘사는 그 전형(典型)이다. 우수한 소질을 타고났으나, 농노제도(農奴制度)하에서 아무 어려움 없는 생활을 하는 동안에, 모든 결단력과 행동력을 빼앗긴 교양 있는 '무용자(無用者)'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 때문에 무기력하고 게으른 성격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오블로모프 기질'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장편 《단애》에서도 라이스키라는 주인공을 통하여 이 시대의 '무용자'의 한 변형을 추구하였으며, 또 러시아 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그려내었다.

책표지 :  René Magritte. The Return of the Flame. 1943

제이콥 리스의 사진들

1910년대 미국... 잊었나보다. 이들은... 자기들도 이랬음을... 그리고 어디나 이런가 싶어 서글프다.

흑수단 [Black Hand]

1890~1920년 뉴욕·시카고·뉴올리언스·캔자스시티를 비롯한 미국 여러 도시의 이탈리아인 거주지역에서 강탈과 협박을 일삼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이민 갱단.
이들은 지역 상인과 여러 부유한 사람들에게 검은 손이나 비수 또는 다른 위협적인 상징을 그린 협박장을 보내어 죽음과 재산 파괴를 위협해 돈을 갈취해갔다.
이 갱단은 금주법이 제정되고, 풍부한 자금을 가진 주류밀매업자가 등장하면서 쇠퇴했다. 흑수단원 가운데 가장 악명 높았던 사람은 이그나치오 사이에타로 맨해튼의 '소(小)이탈리아' 주민들에게 루포(늑대)라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1920년 그는 화폐위조죄로 연방 당국에 체포되어 30년 징역형을 받았다. 흑수단의 가장 유명했던 적수는 뉴욕 경찰국의 조지프
페트로시노(1860~1909) 경감이었다. 그는 수백 명의 갱들을 체포·구금하거나 추방시켰는데, 1909년 시칠리아를 방문하다가 팔레르모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크로포트킨 [Kropotkin, Peter]

정식 이름은 Pyotr Alekseyevich Kropotkin.
1842. 12. 21(구력 12. 9) 모스크바~1921. 2. 8 모스크바 근처 드미트로프.
러시아의 혁명가, 지리학자, 무정부주의 운동의 일급 이론가.

지리학·동물학·사회학·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세속적인 출세의 길을 버리고 혁명가의 생애를 택했다.

초년기와 무정부주의로의 전향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크로포트킨 공의 아들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상류층의 자제들만 다니는 수습기사단(修習騎士團)에서 교육을 받았다. 1년 동안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부관으로 근무했다. 1862~67년 육군장교로 시베리아에 배속되어 군무 이외에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고 지리학적 탐사활동에 열중했다. 자신의 탐사결과에 기초하여 산맥구조선(山脈構造線) 이론을 전개했고, 이 이론은 동아시아의 지도작도법을 수정하게 했다. 또한 빙하시대에 아시아와 유럽에서의 빙하작용에 관한 연구들을 발표했다.
연구결과를 즉시 인정받은 크로포트킨에게는 과학자로서 대성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1871년 러시아 지리학회의 회장직을 거절한 후 귀족세습권을 포기하고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시베리아 복무중에 그는 이미 모든 정부는 그 형태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무정부주의 이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1872년에는 스위스의 쥐라 산맥에 있는 시계제조업자들을 방문했는데 이들의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한 자발적 결사체에 감탄하여 자신의 자유주의적 신념을 확고히 했다. 러시아로 돌아온 후 혁명단체에 가입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노동자·농민 들에게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1874년 경찰의 대량검거 때 투옥되었으나 2년 후 극적으로 탈출하여 서유럽으로 달아났으며, 서유럽의 급진파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후 몇 년 동안 스위스에서 지내다가 1881년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혁명가들에게 암살당한 후 러시아 정부의 요구로 스위스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폭동을 주동했다는 날조된 혐의로 체포되어 3년 동안 감금되었다. 1886년에 석방되어 30년 동안 영국에서 살다가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생하자 고국으로 돌아왔다.
장기간의 망명생활 동안 크로포트킨은 자신의 자유주의적 철학을 피력한 영향력 있는 저서들을 집필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어느 반항자의 이야기 Paroles d'un révolté〉(1885)·〈러시아와 프랑스의 감옥에서 In Russian and French Prisons〉(1887)·〈빵의 정복 The Conquest of Bread〉(1892)·〈들판·공장·작업장 Fields, Factories and Workshops〉(1899)·〈어느 혁명가의 회고록 Memoirs of a Revolutionist〉(1899)·〈상호부조 Mutual Aid〉(1902)·〈러시아 문학 Russian Literature〉(1905)·〈1789~93년의 프랑스 대혁명 The Great French Revolution 1789~1793〉(1909) 등이 있다. 그가 종종 밝혔듯이 그의 목표는 과학적 기반 위에 무정부주의를 정립하는 것이었다. 걸작으로 널리 인정받는 〈상호부조〉에서 그는 적자생존이라는 다윈의 개념에도 불구하고 종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라고 주장했다. 풍부한 실례를 들어 사교성이 동물세계의 모든 수준에서 지배적인 특징임을 증명하면서 인간 세계에서도 상호부조가 예외적이기보다는 일상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원시부족, 농촌 마을, 중세의 코뮌에서부터 강압적인 관료제 국가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상호지원을 계속 실천하고 있는 현대의 각종 협동체(노동조합·학회·적십자사 등)에 이르기까지 자발적 협동결사체의 진화과정을 추적했다. 그는 현대사의 추세는 사람들이 지배자·성직자·군인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그들의 창조적인 기능을 개발할 수 있는 지방분권적·비정치적·협동적 사회로의 복귀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유재산과 불평등한 소득 대신 물자와 용역의 무상분배가 이루어지는 '무정부적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크로포트킨은 무정부적 경제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임금의 원리를 필요의 원리로 대체했는데 그것은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판단하여 노동에 참여했건 안 했건 관계없이 필요한 물건을 공동의 창고에서 꺼내 쓰도록 하는 원칙이었다. 크로포트킨은 사람들이 공업과 농업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함께 하는 사회를 마음 속에 그렸다. 각 협력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은 20~40대에 안락한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하루 4~5시간을 일하며 분업 대신 여러 가지 일을 즐겁게 함으로써 중세의 도시생활에서처럼 인격의 균형이 잡힌 유기적인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보다 행복한 생활을 준비시키기 위해 청소년교육을 강조한 그는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골고루 개발시키는 '통합교육'을 실시하여 균형잡힌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철학). 또한 수학·과학의 기본원리와 인문학의 학습을 중요시하면서도 책만 가지고 가르치기보다는 적극적인 야외교육을 통한 실험관찰학습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방법은 현대의 교육이론가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자신이 직접 겪은 형무소 생활을 토대로 크로포트킨은 형벌제도의 철저한 수정을 주창하기도 했다(→ 형벌학). 그는 형무소는 범죄자를 교화시키기는커녕 잔혹한 벌을 가함으로써 범죄 습성을 굳혀주는 '범죄의 온상'이라고 말했다. 상호부조를 바탕으로 한 미래의 무정부사회에서 반사회적 행동은 법과 형무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이해와 공동체의 도덕적 압력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
크로포트킨은 과학자와 윤리학자의 자질에다 혁명조직가와 선전가의 자질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애로운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폭력의 사용을 용인했다. 또한 무정부주의의 투사로 활약하던 초년에는 인민의 반항본능을 일깨우기 위해 말과 글을 통한 선전활동을 보완할 목적으로 '행동을 통한 선전'인 폭동행위를 열렬히 지지했다. 영국과 러시아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창시했으며, 프랑스·벨기에·스위스의 무정부주의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중에 그가 연합국을 지지하자 많은 동지들이 그를 떠났다. 그의 결정은 독일의 전체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은 무정부주의의 반군사적인 전통을 위배한 처사였으며, 이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 그가 거의 반세기에 걸쳐 구축했던 운동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발발과 함께 사태는 호전되었다. 75세의 고령인 크로포트킨은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왔다. 1917년 6월 망명한 지 40년 만에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임시정부의 교육장관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1917년 그가 국가 없는 사회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코뮌과 소비에트(병사·노동자 위원회)들이 자발적으로 구성되자 자유주의적 미래에 대한 그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그의 감격은 비통한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혁명의 매장이다"라고 그는 친구에게 말했다. 크로포트킨은 혁명이 자유주의적 방법이 아닌 전체주의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볼셰비키가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년을 윤리학사의 집필에 몰두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1921년 모스크바 근처 드미트로프에서 죽었다. 수만 명의 추종자가 참가한 그의 장례식은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검은 깃발이 러시아의 수도를 누빈 마지막 기회가 되었다. 크로포트킨의 생애는 자신이 일관성 있게 주장한 높은 윤리기준 및 사상과 행동의 결합을 예증한 것이었다. 그에게서는 다른 많은 혁명가들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이기주의나 이중성 또는 권력에 대한 탐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동지들의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를 "단검과 폭탄에 불과하다"라고 매도한 사람들에게도 찬탄을 받았다. 프랑스의 작가 로맹 롤랑은 그만이 톨스토이가 주창했던 삶을 살았다고 말했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자기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진정 행복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크로포트킨이라고 말했다.

머핸 [Mahan, Alfred Thayer, 1840.9.27~1914.12.1]

미국의 해군제독·역사가.
국적 미국
활동분야 군사, 역사
출생지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
주요저서 《해상 권력사론(1660∼1783년까지의 역사에 미친 해군력의 영향)》(1890) 《1793∼1812년의 프랑스혁명 및 그 제국에 미친 해군력의 영향》(1892) 《넬슨전》(1897)

뉴욕주(州) 웨스트포인트 출생. 컬럼비아대학교 및 해군사관학교에서 수학하고, 해군대학에서는 해군사와 해군전략을 가르치다가 1886년에 학장에 취임하였다. 주저 《해상 권력사론(1660∼1783년까지의 역사에 미친 해군력의 영향)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1890) 《1793∼1812년의 프랑스혁명 및 그 제국에 미친 해군력의 영향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the French Revolution and Empire, 1793∼1812》(1892) 《넬슨전 The Life of Nelson》(1897) 등은 모두 해상권력의 역사적 임무와 지배적 영향력을 밝힌 것으로 해군병학뿐만 아니라, 근대 국제정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실천적으로는 대해군주의를 제창하고, 미국 해군의 끊임없는 강화를 주장, 제1차세계대전 후까지 미국의 팽창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H.G.웰스 [ Herbert George Wells ]

H.G.웰스은 1895년 <타임머신>이란 소설을 발표하여 '타임머신'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
영국작가 H.G.웰스는 교사를 거쳐 문필생활에 뜻을 두고, 일생동안 1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였다.
처음에는 자연과학적인 넓은 교양과 상상력을 결합, 과거와 미래를 여행한 시간 여행가의 보고 형식으로 된 <타임 머신 The Time Machine>(1895)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1897) 등과 같은 공상 과학소설을 썼고, 이어 원자폭탄을 예언한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s>(1898)을 썼다. 그러다가 차차 풍자와 유머가 넘쳐흐르는 인생소설 <연애와 루이셤씨 Love and Mr.Lewisham>(1899) <킵스 Kipps>(1905) 등을 썼다.
그가 쓴 고전 SF 소설 <타임머신>은 1960년대 조지 펄 감독의 오리지날 <타임머신>, 이후 2002년 사이먼 웰스 감독의 2002년판 <타임머신>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사이먼 웰스는 원작소설의 작가인 H.G.웰스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미스터 폴리

Ukiah Indian Basket

폴딩 포켓 카메라 (Folding Pocket Camera)

무무 [ muumuu ]

하와이민속의상 / 허리를 조이지 않고 색 드레스식으로 만든 옷으로 입기 편하고 시원하여 196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여성용 리조트웨어나 홈웨어로서 애용되고 있다.
상하(常夏)의 나라에 어울리게 웨이스트를 조이지 않고 색 드레스식으로 만든 개방적인 옷이다. 길이는 종아리를 덮는 것과 짧은 것 등이 있다. 화려한 원색의 무명 프린트천으로 만들며 남성의 알로하셔츠나 레이(lei)와 함께 하와이의 명물 중 하나이다. 입기 편하고 시원하여 196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여성용 리조트웨어나 홈웨어로서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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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그런데 다른 책에 밀려 한참 동안 책꽂이에만 꽂혀 있었다. 내심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하도 읽을 책이 없어서 손에 집어들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그리고 깨우쳐준 것도 많았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암살자들이 있다. 그들이 모인 조직이 바로 암살 주식회사. 이 조직을 세운 이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사업가이다. 그는 청년 시절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 그는 “자신이 사회를 위해 생각하고, 사회를 위해 결정하고 사회를 움직인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의뢰인들이 암살을 요청하면, 자체 내에서 조사를 한 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일을 허락한다.


그런데, 이 조직의 논리가 참 재미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완벽한 도덕주의자들이다. “세상은 도덕에 기초해 돌아가는 것이오. 도덕이 없다면 세상은 멸망할 것이오. 세상의 기본 요소가 바로 그 정의라는 것이니까요. 도덕을 없애는 것은 중력을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도덕이 없다면 바위조차 산산조각나 흩어져버릴 거요.” “도덕주의자들, 이들을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도덕주의자들은 모든 못 박힘과 순교를 기쁘게 받아들였소. 그것이 그들의 가르침에 힘을 실어줄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지요. 신념! 바로 그것이오!”

위의 인용구에서 보는 것처럼 이 암살 주식회사의 조직원들은 모두 행동가이자 사상가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 설사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그 정의의 원칙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가 완벽해지는 것이니까. 세상은 그 원칙들이 흐트러져서 망가졌으며, 부의 분배가 불균형해져서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니까. 이 소설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정의와 도덕의 기준에 맞기만 한다면 즉각 살인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 행동이 실패하게 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고, 의뢰인에게 돈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사회를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의 희망! 더 고귀한 인류! 진화의 최고봉! 공정한 통치자들과 최고의 사상가들! 모든 꿈과 열망한 실현! 악취 나던 것들이 빛을 향해 나아가리라! 신의 조화와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그러나 이 조직은 어느 날 큰 위기에 봉착한다. 사회주의자 윈터 홀이 그 조직에 접근한 것. 그는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암살이 사회의 혼란만 부추긴다고 판단한다. 사회의 실체는 바꾸지 못하면서 사람만을 살해하는 암살단. 이는 사회 전체로 보면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래서 그는 이 조직을 창설한 드라고밀로프를 살해해달라고 암살 주식회사에 찾아온다. 앞서 말했듯이, 암살 대상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홀은 이 조직을 창설한 드라고밀로프의 죄악을 밝히려 당사자인 드라고밀로프와 장시간 논쟁을 벌인다. 결국 홀의 논리, 즉 살인은 사회적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명제가 승리를 거두었고, 드라고밀로프는 조직원들에게 자신을 살해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드라고밀로프와 조직원들 사이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다. 그들은 철저히 원칙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범죄 소설과는 다른 양상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그들의 행동과 철학들을 바탕으로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지은이 잭 런던은 이 과정에서 소설을 그만두고 말았다. 도대체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잘 몰라서였다. 그때가 1910년이었다. 이것을 추리소설 작가 로버트 피시가 1960년대에 완성했다. 결론은 애초에 잭 런던이 설정해놓았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끝이 났다. 잭 런던이 구상한 것은 치밀한 논리 싸움을 끝으로 드라고밀로프가 죽는 것이고, 로버트 피시의 결론은 모든 조직원들이 다 죽고 나서(마지막 조직원들은 자연재해와 어처구니없는 사고사로 죽고 만다) 드라고밀로프가 자살하는 것이다.


그 결론의 차이는 확연하게 다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왜 잭 런던이 집필을 그만두었느냐이다. 이 소설의 전개는 앞서 말했듯이 철학적인 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아마도 잭 런던은 암살 주식회사의 정의 논리가 그리 치밀하지 못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철학자이며 암살자들이지만, 그들의 가치판단의 기준은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 반면, 조직과 그 구성원인 자신들의 행동은 옳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가치판단을 살인이라는 행동으로 실행한다. 이렇게 그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파시즘이나 전체주의 원리와 비슷하다. (물론 다르긴 하지만.) 그래서 잭 런던은 소설 집필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에 반해 로버트 피시는 이들 조직의 철학을 좀더 단순화한 뒤 추격전으로 소설을 전개한다. 로버트 피시의 전개는 스릴러 소설의 전형적인 구성을 띄고 있다. 이 부분도 재미는 있지만, 잭 런던이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 듯하다.


아무튼 이 소설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면서, 또 열광하면서 읽은 듯싶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인용하며 이만 총총.


“죽음을 하찮게 만드는 우정! 정의의 법칙! 올바른 것에 대한 숭배! 이런 게 바로 희망 아닌가요? 이것이야말로 미래가 우리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주지 않습니까? 미래가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육체에 대한 동물적인 갈망들, 이기심, 혈육에 대한 애정 같은 것들이 정의감이라는 더 높은 정신의 태양 아래서 새벽안개처럼 사라지지 않나요? 이성이, 분별 있는 이성이,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 세계는 언젠가, 육신과 진흙탕의 나락이 아니라, 분별 있는 이성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정당함. 도덕심과 정당함. 우리가 가진 건 그게 전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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