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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우연인지 요즘 만나는 소설들 대부분이 어린 화자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었다. 어린 그들이 책 속에서 겪는 일련의 일들은 나를 그와 같은 시절로 데려다놓기도 하고 때론 잊으려 애썼던 일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곡예를 해야했던 시절. 나는 요즘 그 시절들 속을 헤매고 있다.

그 때의 나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도 컸고 성숙했다. 그러나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둔한 몸이나 이름들로 놀림을 받으며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선생님 책상 위에 제출한 일기장을 몰래 읽은 아이들의 수군거림. 나를 괴롭히던 아이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빨간펜을 들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그 아이의 이름을 적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책 속 신이치와 같은 5학년이었을 때, 나는 매일 지각하는 친구를 그 애 집앞에서 기다렸다 함께 학교에 가야 했고, 아침자습의 과제를 대신 해주어야 할 때도 있었고, 시험답안이 적힌 쪽지를 선생님 몰래 그 아이에게 건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너무나 연약하고 볼품없어서 지우고 싶은 그 시절. 나는 늘 그 친구에게 기가 죽어 있었다. 늘 그 아이가 하자는 데로, 싫다는 말도 못하고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던 1년은, 내게 너무나 비참하고 후회스러운 기억일 뿐이었다. 뭐가 부족해서 그토록 겁을 집어먹었던 것일까. 신이치를 보며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많이 불편했다. 그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다른 사람을 만나는 엄마 때문에 마음조리는 모습도 안타까웠다. 언젠가의 나도 녀석과 비슷한 모습으로 일상을 대했었고, 같은 일은 아니지만 다른 일 때문에 마음조리면서도 누구에게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가슴앓이 했던 기억이 웅크린 모습으로 내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고요하게 시작된다. 한 가정의 식탁 위에서.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 쇼조와 엄마, 함께 있을 수 있는 신이치 가족의 전부다. 신이치의 아버지는 암투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집 안사정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할아버지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 그들. 전학온 신이치에겐 누구도 섣불리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고, 전학온 처지가 같은 하루야와 누구에게나 다정한 듯 보이는 나루미가 신이치에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의 전부였다. 신이치와 소라게를 지지는 장난을 치는 하루야, 아버지와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는 나루미는 여느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점점 그들이 가까워지고 서로의 속내를 나누가 되면서 드러나는 각자의 상처들은 어린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려 한다. 마음을 숨긴 채 상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오히려 더 그 상대에게 마음을 나눠주려 애쓰기도 하면서. 


 

이건 누구냐.

꿈에서도 본 적 없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한 소년이 바로 맞은편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볼을 추하게 끌어올리고, 입술 틈새로 이를 내보이며. 그 이 사이에 타액으로 만들어진 실을 늘어뜨린 채 검은자위 태두리가 몽땅 드러날 정도로 두 눈을 크게 뜨고서.

그 얼굴 이외의 모든 것이 시야에서 하얗게 지워져 사라지자, 신이치는 무슨 실이라도 툭 끊어진 것처럼 무감각에 빠졌다.

바로 그 다음에 신이치의 온몸을 덮쳐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공포였다. 턱이 바들바들 떨리고 목구멍 속에서 무의미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자 거울 속의 소년도 턱을 떨면서 치열 안쪽으로 뻥 뚫린 목구멍을 보여주었다.

혼란에 빠진 신이치는 얼굴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돌릴 수가 없었다. 거울 속의 소년과 눈을 마주친 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의 맥이 세차게 뛰고 폐가 오그라진 것처럼 호흡이 얕아지자, 순식간에 목구멍 아래에서 부풀어 오른 비명소리가 당장에라도 목구멍을 찢고 튀어나오려고 했다.

  - p. 372~373                    

 

스스로가 빈 소원에 대한 자책감으로 두려움에 휩싸이는 신이치의 모습. 나는 여전히 아이인데 누군가 어른이 되라고 뒤에서 등을 떠밀 때의 두려움과 같은. 언젠가 나 또한 겪어본 듯한 소년의 마주침에 오래 눈을 두었다. 작가가 이토록 상징적이며 섬세하게 불안정한 경계 위에 놓인 한 아이의 감정을 표현해낸 것이 인상깊었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처음 접해 본 나로썬 어떤 설명이 따라붙기까지 그가 이전까지 추리소설을 쓰던 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문장은 따뜻했고 유연했으며 5학년 화자인 아이들의 마음을 내밀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스스로를 빛낼 힘이 없어 자꾸만 꺼지려드는 작은 아이들, 그들을 책 속으로 끌어오면서 작가는 아마도 그 시절을 지나와 성인이 되어서는 현실에 떠밀려 그 시절의 꿈과 고민을 잊고 가난해져 가는 안타까움을 깨닫게 해주려 한 것 같다. 그 시절 너무나 어리기 때문에 어른들의 눈 밖으로 밀려나고, 너흰 어리기 때문에 몰라도 돼, 하며 등을 돌리던 그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잊고 이제 그 때와 같은 자리에 선 자녀에게 그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역자의 후기에는 미치오 슈스케가 나오키상을 수상한 후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소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설을 계속 써 나가겠다' 는 의사를 표명한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이 한 마디의 말에 한 권의 소설에서 얻는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 꼭 존재해야 할 이야기들, 외면당하지 않아야 할 연약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글을 쓰는 이로써 그것만큼 보람된 일도 없지 않을까 싶다.  

책을 보는 내내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듯 편안했다. 가슴이 고요해지고, 마음으로 들어차는 따뜻함이 있었다. 처음엔 반복되는 아이들의 소라게를 태우는 행위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땐 아마도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불안을 이겨내고 싶었을 것이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그 일에 진지함이 묻고 작은 돈을 바라던 소원에서 엄마의 새 남자친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빌게 되기까지 얼키고 설킨 아이들의 감정들에 공감하면서 나는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들이 누구에게도 선뜻 꺼내지 못하고 혼자서 겪어야만 혼란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렇게 또 한 번의 파문이 지나면 호수는 잔잔해지고, 그들은 조금 더 자라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세상으로 한 발짝씩 나아갈수록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삶과 대면하면서 소라게를 태워 그들만의 의식을 행하며 시간와 싸워나가야 했던 아이들. 그러면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 어느새 나는, 그 아이들을 통해 먼 미래에 찾아올 내 아들의 삶을 더듬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마음 한 켠에 두었다.


차가운 달을 끌어안은 두 손에서 솟아오르는 빛. 그 아래의 소라게. 이 책의 표지가 처음과는 달리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둠을 거두는 저 손, 그 안에서 자라나는 누군가의 꿈들. 달 너머에 있는 잃어버린 시간의 문을 바라본다. 보이지 않지만 달의 뒷면이 분명 존재하는 것처럼, 내가 통화해온 그 문이 여전히 닫히지 않고 열려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 이름을 제목으로한 책 속 어느 한 페이지를 빛내고 있나는 것을, 본다. 어둠 뒤에 떠오르는 저 찬란한 빛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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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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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다. 그러나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틀 째 밤, 나는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밤새 선잠을 자는 듯 머리가 아팠다. 꿈속의 나는 내가 써놓은 글들을 쓰고 지우며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맞았고, 폭력을 감당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단단히 몸살이 났고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창밖에는 바늘보다 가는 빗줄기들이 불길하게 쏟아져 내렸다. 마치 땅 위에 있는 말랑말랑한 것들을 모두 상처내기라도 할 것처럼, 잔뜩 날을 세우고 지상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창문에서 뭉개지는 날카로움들. 창문이 있어 내게로 달려들지 못하는 그 날카로움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더욱 세게 창을 두드리며 내가 왈칵 창문을 열어버리기를, 그래서 나의 온몸이 피로 젖기를 바라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사납던 빗물들이 창에 부딪혀 뭉개지고 볼품없이 창틀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내 기억속의 그들이 부디, 제발, 그렇게 편안하게 내 곁을 떠나길 바랐다. 비록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어야 했던,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그 비극적인 과거가 부디 7년의 밤 동안 그의 곁을 서성였던 만큼, 이제는 그만 떠나주었으면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체포되고 친척들의 집을 전전긍긍하다 헌이불짝처럼 내버려진 작은 아이의 삶. 그리고 그 시간들의 일부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승환 아저씨 곁에 자리를 잡기까지 너무나 불행했던, 평범한 사내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아저씨가 사라지고, 서원에게 하나씩 배달되기 시작하는 물건들. 그것은 아저씨가 ‘그 날’ 에 대해 쓴 글들, ‘그 날’에 대한 자료, ‘그 날’에 사라진 서원의 운동화였다. 그리고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는 7년 전 그 밤의 불길함이 서서히 서원의 곁에 뚜렷한 형체를 가진 검은 그림자로 드리워지면서,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7년의 밤』 은 세령댐 근방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 그 허구의 공간 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서로  부딪히고 상처입으면서 일어난 검은 멍자국 같은 이야기였다. 상처를 바라볼 때마다 일어나는 공포,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맹렬한 싸움 안에서 이야기는 피가 튀듯, 토해내어진다. 이토록 생생한 이야기를, 글자를 읽던 눈이 공포를 느끼며 감겨지고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는 이야기를 처음,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하며 꿈을 꾸던 그, 현수에게 꿈을 빼앗을 결정적인 어깨 부상 사고. 그러나 그는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가족과 꾸려 나갈 평범한 삶을 꿈꿨고, 마음데로 가꾸지 못한 스스로의 꿈이 한 쪽 어깨에 매달려 있었고, 그래서 너무나 나약했다. 그러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져야 할 짐을 내 던질 수 없었던 그에게 세령마을로의 초행길은 자꾸만 알 수 없는 일들로 이어지고, 그는, 알 수 없이 자꾸만 헛 패들을 집어든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벼랑까지, 그 패들은 그를어둡고 음습하여 공포스럽기까지 한  세령호의 얼굴 앞까지  그를 몰아간다. 

그리고, 삶의 수문이 열리던 그 순간!
 

그는 홈런을 쳤다, 고 이제와 생각해본다. 비록 자신의 삶을 지켜내진 못했지만, 아들의 삶은 끝까지 지켜낸 것에 대해.
마지막에 밝혀지지만, 현수는 동료 승환에게 세령호에서의 일을 소설로 써줄 것을 당부해 두었던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끝이 보이지 않는 오영제의 복수에서 지켜내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처음부터 너무나 처절하게 드러났던 오영제의 악마적 본성. 아내와 딸을 '교정'이란 이름으로 학대하고, 자신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 계산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인물. 자신을 자극하거나 무시한 사람은 끝까지 어떤 식으로든 치밀하게 되갚아주었던 그의 모습은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 내면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자신의 딸을 차로 친 뒤 세령호에 던져 죽음으로 몰고 간 현수에게로 모두 향하면서 비극은 금이 간 틈을 비집고 세어들기 시작했고, 이제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사람들을 휩쓸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7년 전, 그 사고와 함께 터진 삶의 수문은 7년의 밤을 지나 이제 스무살을 앞둔 서원에게 마저 생생하게 재현되기 시작했다.  현수의 사형집행과 동시에 아들 서원을 죽여 7년 전의 딸아이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하려는 그. 그러나  이제는 작은 아이가 아닌, 서원은  단단한 모습으로 오영제와 맞선다.

불타는 것처럼 빨갛고 열에 뜬 표정은 유령처럼 몽롱해 보였다. 서원이 집에 가는 길에 들렀다고 하자,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이 내렸느냐고 물어도 고개만 끄덕였다. 저녁 드셨느냐는 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원이 “저 여기서 컵라면 먹고 가도 돼요?”라고 묻자 말없이 컵라면 용기에 뜨거운 물을 채웠다. 서원에게 젓가락을 쥐여준 다음엔 의자에 앉아서, 시선 한 번 떼지 않고,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잘 먹었습니다” 하는 서원의 인사에 빙그레 웃었다. 집에 가겠다고 일어나자 서원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서원과 정문경비실을 나와 열 발짝쯤 걷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팀장이 유리창에 얼굴을 댄 채 서원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거리가 좀 있었지만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팀장의 눈에 어린 회한을, 불안한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위태로움을, 울음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고통을.

세령호에서 벌어진 사건을 코 앞에 둔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 불안을 온 몸으로 느끼는 현수는, 그러나 끝까지 아들에겐 좋은 아빠이고자 마음을 숨기고 다잡고 있었다. 사라진 손의 감각을 찾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해하고, 스스로 집어 든 헛패에 자신의 한 쪽 발을 잃은 그는 모든 고통이 자신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그 고통을 가족과 나누어 지려고 하지 않았다. 끝까지 혼자서 싸우고 짊어진 채 서원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되도록 서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것이 자신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인 것처럼. 그러나 고통 안에서 아들에게 컵라면을 내주고 한 참을 바라보는 부정에 눈물이 났다. 코끝이 찡하고 그의 돌이킬 수 없는 삶이 내내 내 가슴을 무겁게 했다. 어쩌다, 어떻게, 이곳으로, 그는 오게 된 것일까.

우리는 쉽게 나의 삶이라 말한다. 내 것이라고 당차게 말하고 아무도 함부로 간섭하지 않도록 방어한다. 그러나 삶은 내 마음데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뼈져리게 하게 된다. 삶은 끝임없이 양손에 각자 다른 패를 들고 나를 찾아오고 내가 선택한 패의 길로 나를 이끄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떤 날엔 그 마음데로 패를 던져두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홀린 양, 자신을 뒤덮은 물쌀에 휩쓸려 가면서 숨을 쉬지 못하고 상처입거나 자신 안의 악마적 본성을 꺼내 닥치는 데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내던지며 자포자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내일로 떠밀린다. 혹은 고통을 딛고 거침없이 내일을 향해 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내일을 맞이할 것인가. 그 물음이 자꾸만 가슴을 치게 했던 소설,  몇마디의 말로 다 하지 못할 느낌들. 나는 그 느낌들을 내 연약한 문장들로 하나하나 옮겨보고 싶었지만 끝내는 잘 되지 못했다. 이 소설의 리뷰를 쓰기 위해 한 달 간을 이 작품 곁에서 헤매었지만 결국 내 마음에 담긴 것은 하나도 이곳에 내어놓지 못했다. 이 글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심정이지만, 약속된 일 때문에 이 글을 열어두고 마는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영화를 보는 듯 문장 위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인물들의 모습과 그 사이에 떨리는 몸으로 웅크리고 앉은 인간의 본성이 나를 쉴 새 없이 소설의 벼랑으로 이끈다. 평범한 삶이 변질되고 벼랑으로 떨어지다 나무뿌리에 매달려 번 잠시의 시간 안으로 나를 몰아간다.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너는 과연 어떤 패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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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 없는 아이, 난감한 어른 - 준비된 부모를 위한 성교육 Q & A
김백애라.정정희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엮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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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더욱 특별하게 사랑해주고 픈 부모라면 꼭 읽어야 할 책!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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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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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작품집! 젊은 작가의 낯선 문장으로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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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한쪽 눈을 뜨다 문학동네 청소년 7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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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순간순간 움찔하고 가슴이 뻐근한 부분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녀석들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지나온 길목이었으므로, 눈물이 찔끔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상처가 아물면 무른 살이 단단해지듯, 어느 날 뜬금없이 녀석들을 덮치고 괴롭히려 들 미래에 대한 예방주사쯤으로 생각하자, 아이들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예방주사를 맞는 당사자는 몹시도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 사이에서 주사 바늘을 들고 있는 상대를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당하게 멋지게 맞는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하느님을 외치며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을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 찰흙처럼 부드럽고 연약한 아이들.
 

영섭, 태준, 정진, 태석.

그 아이들을 통해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나를, 만났다.
그 아이들을 통해 시간을 앞으로 돌려 미래 내 아들의 모습을, 만났다.

 

*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나는 황라사마귀가 되고 싶다.
나는 황라사마귀다.

뜬금없이 황라사마귀라니. 세상에 별별별 멋지고 재미있는 것들을 놔두고 풀밭에선 보이지도 않는 황라사마귀가 되고 싶다니. 그런데 녀석의 이야기가 사뭇 상세하고 진지해서 나 또한 금세 녀석이 있는 초원 어귀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운동장만큼 넓은 초록색 잎 위에서 춤을 추로 노래‘하는 황라사마귀. 곁으로 하나 둘 초원의 동물들이 모여들지만 아무도 녀석을 찾을 순 없다. ‘나뭇잎과 똑같은 빛깔을 한 황라사마귀니까’.
책을 읽다보면 금방 알게 된다. 영섭에게 황라사마귀란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를, 하이에나와 악어의 등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프리카맹꽁이로 변하거나 카멜레온으로 변하는 것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를 말이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 에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 교실의 모습이 약육강식의 세계인 ‘사바나’에 비유하여 그려지고 있다. 서로 다른 모습의 동물들이 모여 서로 으르렁거리고 살아남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교실 안 남자아이들에 투영되어 귀로만 익숙한 교내 현실을 독자로하여금 보다 실감나게, 그러나 너무 진지하지 않게 다가서도록 한다. 어수룩한 영섭을 놀려먹으며 매일 반을 시끄럽게 만드는 문제아 태준정진. 상위권 성적을 지키며 조용하게 제 자리를 지키다 어리바리하게 반장 자리를 꿰차고 만 태준. 그들 사이를 조율하느라 등골이 휘는 어수룩한 시인 담임선생님. 어쩐지 이름만 낯설 뿐 어딘지 낯설고 익숙한 캐릭터들이었다. 그래! 15년 전, 나의 교실에도 그들은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중학교 시절을 되짚으면 늘 어색하고 불편했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집 앞 초등학교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등교하기 시작했을 때. 몸집보다 큰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정류장에 삼삼오오 모여 이미 만원이 버스 안을 비집고 들어서던 때. 그 때의 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 사이에서 곡예 중이었다. 한 발짝 잘못 떼면 어린이로 전락해버리기 십상이었지만 입고 있는 교복은, 학년과 반과 번호는, 무겁기만 한 교과서들과 칠판 옆 게시판에 붙어 펄럭대는 내 성적은, 나를 청소년이라 우겼다. 내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이 흡사 타임머신처럼 금방이라도 고등학생으로, 성인으로 휘리릭 끌어다 나를 던져놓을 듯 불길했고 두렵기 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감정들을 간직하고 있기엔 너무나 연약했고 작았다. 찰흙덩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만지는 그대로 모양이 남아 흉터가 되거나 무늬가 되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합반은 아니었던 학교생활 속에서 누가 누구와 연애를 한다느니, 학년 킹카 누구는 벌써 여자와 잤다느니 하는 알 수 없는 말들이 떠도는 동안, 다이어트 약을 먹으며 살을 뺀다는 친구의 다리가 나날이 가늘어지는 동안, 내가 이유 없이 싫다고 대놓고 말한 뒷자리 아이의 강요에 못 이겨 시험시간이면 목숨을 걸고 건넨 쪽지가 쓰레기로 사라지는 동안, 나는 키도 자라지 않았고 얼굴이 예뻐지지도 않았다. 교복은 여전히 컸다. 그러면서도 내 뒤에 등수 아이의 성적이 나를 치고 올라왔을 땐 툭, 하고 못된 말을 뱉기도 했다. 가슴 안에서 누군가 계속 그 말을 해야 나중에 그 아이를 이길 수 있다고 외쳐댔다. 활짝 웃는 얼굴이 예뻤던 그 친구에게,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 말을 뱉었던 것인지. 그 뒤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두고두고 미안했던 생각이 들었다  남학생들은 저마다 아빠 옷을 입은 것처럼 얼굴과 교복이 잘 매치되지 않았지만 표정이 없고, 우울해 보이고, 욕이 툭툭 튀어나오는 입술이 달린 얼굴만은 비등비등했다. 남자반이 늘어선 복도를 지날 때면 맡아지던 이상야릇한 냄새들. 초등학교 때 분명 한 반을 지냈음에도 남녀 반으로 분명한 선을 그어놓은 그 때는 눈이 마주치면 괜히 어색해 고개를 획 돌려버리게 되었다. 무언가 이상한 징조가 느껴졌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다른 모양으로 변화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혹은 잘못된 일이라고 일러주지 않았다. 
 

노는 패거리의 만만한 상대였던 영섭을 보며 내 학창시절 속 ‘영섭’을 떠올렸다. 세 명의 ‘영섭’. 그녀들은 늘 자신보다 큰 안경을 쓰고 있었고 몸집이 컸고 누가 어떤 말을 건네든, 어떤 부탁을 하든 활짝 웃는 얼굴로 답하곤 했다. 노트 필기 글씨는 삐뚤빼뚤이었고 시험이면 꼴등을 도맡아 주었다. 짓궂은 아이들이 놀리는 말에도 진지하게 답하면서 제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선사했지만 되돌려 받는 건 또 다른, 새로운 부탁일 뿐이었다. 늘 혼자서 화장실을 가고 늘 혼자서 밥을 먹었다. 가끔 또 다른 ‘영섭’이 찾아와 우리 반 ‘영섭’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혹시나, 여전히, 외롭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를 떠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어린이란 꼬리표를 떼고 청소년이란 수식을 달 때, 그것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 듯 간단한 의식이 아니었다. 곧 내 연약한 표피를 뚫고 뿔이라도 돋아날 것 같은 심정. 그런데 그것이 나를 보호해주기 보단 나조차도 헤칠 듯 겁이 나는 순간의 닥침.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불안감. 어느 것 하나 주어진 힌트도 없이 스스로 부딪혀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막막함. 그 감정들의 혼재 속에서 아이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괴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것조차도 선택적인 것은 아니었다. 내 안에 또 다른 나가 있는 듯, '괴물'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며 그 주인의 불안을 잠재우고 내가 곁에 있는 아이보다 강하다는 착각을 입증해 주었다.

주먹을 내두르고, 주먹에 맞고, 발길질하고, 발에 차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낯설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졌다. 싸우는 사람은 내가 분명한데 나 같지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조종한 건가? 내 안에 괴물이 하나 들어 있나? 

- p.87 , 태준 셋-눈을 뜨다 부분  

태준은 다른 아이들에겐 성적도 좋고 조용한 아이로, 학급반장을 맡고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야동을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또한 떳떳하지 못하다. 야동을 끊지 못하는 자신을 변태처럼 여기면서, 치밀어 오르는 욕구들을 불결하게 느끼면서 자신의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컴퓨터로 다가서고 마는 아이. 내가 태준의 어머니 입장이라면 당황하고 놀라 할 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엔 녀석이 끊임없이 야동생각을 하는 모습이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태준이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면서 나는 잠시 먹먹한 마음이 되었다. 혼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그 아이를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위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녀석이 자신의 태도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른 아이들이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성적을 유지하려하고 어떨 땐 상대에게 거침없이 주먹을 날리는 모습에서 태준 스스로가 자신의 기준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태준도 연약한 영섭에게 폭력성을 느끼긴 마찮가지였다. 또한 중2 마지막 겨울방학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초등학생의 MP3를 빼앗아보면서 자신 안에도 있는 괴물을 발견하며 조금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길 줄 알게 된 영섭. 어느 날엔 정진과 태석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하는 녀석. 끝까지 그 아이가 당하는 꼴만을 보았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일어난 일들을 쉽게 넘겨두지 못했을 것이다. 과잉보호를 받고 있는 정진. 부모의 체벌을 견뎌야하는 태석. 녀석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면은, 집에서 무시당하는 자신을 또래 아이들에게까지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부모의 손길에, 타인과의 관계 속에 빚어진 스스로를 다듬고 만들어가는 일에 익숙하지 못해서 학교에서 문제아가 되고 연약한 아이를 괴롭히며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삶으로 빠져들게 되었으리란 생각. 아마도 그 아이들까지도 따뜻한 한마디의 말과 격려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언젠가 나의 아이와 내 사이에 다가오기도 할 일. 나는 어떤 말들로 나의 아이를 붙잡아주어야 할까. 사실 마지막에 태준의 어머니가 "난 우리 아들 믿어.", "듬직한데. 우리 착하고 성실한 아들." 이라고 말할 때는 나 또한 뿌듯하게 태준을 바라보았다. 아이를 믿어주는 것, 잘못과 실망된 마음을 미뤄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작은 아이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것만큼 멋진 부모가 되는 일이 있을까. 


끈적끈적한 막으로 감싸 있는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철퍼덕 복도 바닥에 떨어졌다. 갈고리처럼 밑으로 굽은 손톱 네 개가 툭 불거져 나와 막을 찢고 사이를 벌리더니 살진 두꺼비 같은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중략)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상한 짐승이 내 눈을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씨익 끌어 올렸다.

네가 그 놈이니?


-p.218, 태준 여섯-고슴도치 부분  


나는 중학교 시절  어떤 외피를 찾아 입고자 했을까. 키가 크고 눈망울이 동그랗던, 사복을 입으면 날씬하고 긴 다리를 감싼 청바지가 너무나 멋지게 보이던, 화이트 데이엔 인형이 담긴 거대한 사탕 바구니를 책상 위에 턱하고 올려놓은 채 자랑스러운 웃음을 날리던 그 친구들처럼 되고 싶었다!
키가 훌쩍 크고 눈매가 매섭게 살아난 아이들의 겉모습은 영락없는 어른이지만 그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다보면 느껴지는 그 나이 때의 천진난만함이 금세 드러나고, 앞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핀 먼 훗날의 시간까지 짚어보게 된다. 그 아이의 얼굴에 너무 일찍 아이라인이 그려지고 파우더가 칠해져도 변하지 않는 것, 바로 그 가능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아이의 얼굴만을 보고 그 가능성은 보아주지 못했는지. 그리고 어른들이 무심코 던지고 돌아서는 싸늘한 시선 앞에서 얼마나 불안함을 느끼며 자신을 가리기 위해, 더 삐딱해지기 위해 진한 화장을 해야 했는지. 거리를 걷다가 마주치는 아이들의 교복 매무새를 시선으로 따라가며 나는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저 아이들이 또래와 웃고 떠드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곁에 있는 어른들의 몫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은 살아가며 몇 번이나 더 스스로의 가면을 바꾸어 자신의 모습을 찾아 갈 것이다. 그것은 적잖이 괴기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어색한 것일 수도 있고, 볼품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아이가 스스로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사이에서 어른들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가 되돌아올 수 없는 일을 선택할 때뿐이라는 생각이다. 부모인 내가 아이의 삶을 일일이 챙겨줄 수 없듯이 아이는 스스로의 앞길을 선택해 나아가며 넘어지고 다치면서 길을 수정해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시행착오가 줄어들고, 자신을 바르게 지킬 줄 알게 되고, 스스로가 꿈꾸는 삶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며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곁에서 아이가 너무 오래 넘어져 있지 않게, 포기하지 않게 돌아보면 위로받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은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였고 내 아이의 이야기였고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태준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빌었던 모습, 영섭이 선생님이 쥐어 준 무기(각서)를 들고 정진에게 경고하던 모습, 자신의 안에서 깨어난 괴물과 마주한 사내아이의 모습, 그런 아이들을 요리조리 몰아가는 선생님의 달콤살벌한 말씀들. 아이들은 알까. 지금 그들이 놓인 시간이 흔들리는 수면처럼 불안할지라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림과 싸우며 자신을 지탱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작은 꽃망울처럼 앙증맞고 귀하다는 사실을. 연약한 자신을 너무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시간들안에서 치열하게 상처받고 멋진 흉터도 만들어가며,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도 하나 둘 마음속에 세기며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나가길, 가만히 바라본다. 거리에서 골목에서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지나가는 아이들의 곁을 내 작은 아들의 손을 쥔 채로 지나갈 때면 책 속에서 만난 네 녀석의 얼굴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봄꽃처럼 아른거린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더욱 남자다운 모습으로 변하게 될 태준과 영섭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미소가 번진다. 이런 걸 희망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그들이 뿜어내고 있는 먼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내 한 쪽 손에 쥐어진, 거대하고 신비한 내 아들의 시간도. 그 곁에 함께 걷고 있음이 마냥 감사하다. 때때의 시절이 주는 방황의 특권과 무수한 절망의 고리를 힘차게 뛰어 넘어 모두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오늘의 웃음을 눈물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봄날,

 

언젠가 내 아이가 방황 끝에 괴물로 변하더라도, 꼭 해주고야 말, 한 마디를 꾹꾹 가슴에 세긴다. 

정말 절대 까먹어서는 안될 한 마디.  

 너니까, 너라서 괜찮아,  
 

그리고 꼭, 믿지 않아도, 해주고 싶은 말.   


너희의 모습은 정말, 정말, 정~말 아름답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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