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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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녀의 글을 기대듯 읽는다. 누군가의 익숙하고 넓은 등에 온몸을 기대앉은 듯. 봄볕과 초록이 유영하는 공기 속에서 내가 지나 온 삶의 페이지 사이를 산책하듯. 그렇게 그녀의 책 속을 깊이 거닐었다. 지나 온 자리에 흐릿하게 남은 발자국들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끌어안으며 뭉클한 가슴을 숨겼다. 내 앞에 앉은 이의 환한 웃음 속에 그렁한 눈물을 마주한 듯,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얼굴이 되어 이 책을 덮었다.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펜을 들어 떠오른 문장들을 펜으로 옮겼다.

어두운 삶을 밝히는 등불 같은 이야기.

누구나의 가슴에 있지만 잊히고 마는 한 사람.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 이야기 듣기 교실

동화작가 오명랑은 칠 년 전 동화작가로 떡! 등단했지만 주변사람들의 기대치에 부흥하지 못하는, '해괴한 사치'나 부리는 백수 아닌 백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밖동네'라는 엄청 큰 출판사에서 나온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도 있는데 자신의 글을 읽은 독자를 찾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힘들' 고, 수입도 일정치 않아 어머니에게 빈대 붙은 처지. 그러나 그런 그녀는 이름처럼 명랑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철없게, 하하하, 웃으면서. 끝내는 그녀가 가족들의 등살에 못 이겨 백수 꼬리표를 떼기 위한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열기에 이르지만.  

잘 듣는 아이가, 말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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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 
 

 

이야기 듣기 교실이라니. 이야기 쓰기 교실이 아니라. 무언가 어설프게 느껴지지만 어쨌든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세 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한 오명랑 작가. 제 각기 다른 이유로 그녀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조금씩, 천천히 시작된다. '아직 독자들에게 들려주지 못하고 가슴에 꽁꽁 숨겨 둔 이야기. 부끄럽고 누추해서 숨기고' 싶었던 한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의 가슴 속에서 흘러나온다. 그렇게, 오명랑 작가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우리의 앞에도 자연스레 놓인다. 징검다리처럼, 껑충껑충 뛰며 그녀의 이야기를 건너가 본다.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에 조금씩 몰입되어가는 청자들. 저 끝엔 무엇이 있을까, 불쑥 가슴이 떨려왔다.
그녀의 이야기를 한쪽에서 같이 듣던 '어머니'의 안절부절못함도, 스스로 말하다가 흥분하고 주춤하고 먹먹해하던 오명랑 작가의 모습도 책을 덮은 지금엔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나만의 그림. 아니지, 아닐 거야 싶은 마음으로 넘겨가던 페이지를 붙잡고 잠시 멈추었던 손. 떠오른 옛 기억들.

현재와 그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얽히면서도 전혀 혼란 없이, 오히려 친근하게 읽혀진다. 건 작가의 매끄러운 문장뿐만 아니라 그녀가 마음을 열고 꺼낸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 또한 열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삭막한 현실 속에선 일어날 수 없다고만 느껴지는 꿈같은 이야기. '꿈같은 이야기'라고 쓰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슬퍼진다. 내가 어릴 적엔 한 동네 안에서 어른들이 건네던 따뜻한 손길을 가슴 뿌듯하게 받아들이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은 무조건 조심해야 하고, 절대, 절대로 그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게 되어버렸으니. 이런 현실 속에서 만난 이 책은 나를 더욱 애달프게 한다. 내 곁에 있는 아이가, 그 이유일지도. 내가 내 아이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삭막한 삶의 배경들 속에 나는 아이에게 건널목 씨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생각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오고갔다.

 

#. 건널목 씨! 하고 부르면

이름도 연고도 불분명한 사람.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건널목 씨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둘둘 말린 카펫을 배낭에서 풀잖아. 그 카펫을 들고 서서 도로를 살피더니, 차가 안 오니까 잽싸게 도로에 깐다. 세상에, 건널목이야! 검은색 천에 흰색 페인트로 칠을 한 카펫 건널목인 거야.

아리랑아파트 후문에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건널목이 되어준 건널목 씨. 쌍둥이 형제를 두 번이나 위험에서 구해준 인연으로 그는 아리랑아파트 105동 경비실에 기거하게 된다. 그는 부지런하게 아파트 주변을 정리했고 아이들의 등하굣길엔 어김없이 빨간색과 초록색 동그라미가 있는 안전모를 쓰고 아이들의 건널목이 되어주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건널목 씨는 밤이면 아파트 주변을 순찰했고, 그곳 사람들의 이웃이며, 아파트 주민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의 부부싸움을 피해 아파트 복도에 홀로 앉아있던 도희를 만난다. 차가운 밤바람에 익숙한 듯 또랑또랑하게 말을 건네던 아이. 낯선 아저씨였지만 경계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더욱 두려웠을 아이. 제 또래에겐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그가 끓여내 준 라면 한 그릇에 조금씩 조금씩 제 이야기를 꺼내놓는 아이의 모습은 천진난만 했고, 그 모습에 더욱 안쓰러웠다.

그러나 도희는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사람 건널목 씨를 만난 것 아닌가. 집으로 데려올 수 없어 친구도 만들 수 없던 도희는 건널목 씨를 통해 특별한 친구를 소개받는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돈을 벌러 떠나 소식조차 없는 처지의 태희, 태석 남매. 한 겨울에도 보일러를 켤 수 없는 지하 방에 사는 두 아이. 가족도 또래 친구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허허로운 거리로 나선 아이들에게 건널목 씨는 부모였고, 오늘에서 내일로 아이들이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다리였다. 비슷한 또래였던 도희와 태희, 태석은 서로에게 친구이며 남매처럼 서로에게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상처를 보듬고 마음을 열고 서로를 웃게 하면서 마음 기댈 든든한 곳이 되어주었다. 건널목 씨가 이어 준 희망이었다.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 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 건데 아리랑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더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가야 했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어른의 시선. 맹목적으로 퍼주는 부모의 사랑이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놀이터에 나가 있으면 아이들의 외로움이 드문드문 보인다. 부모의 직장생활에, 늦게 까지 비어있는 집에서 나와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면서 그 두려움을 잊는다는 걸. 어둠보다도 외로움이 더 두려운 것이라는 걸. 그 마음을 읽고 난 뒤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내 아이에겐 주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의 무게를 왠지 내가 그 아이들에게 떠민 느낌이 들었다.

도희가 이사를 가고 남매의 곁에 어머니가 돌아온 뒤, 건널목 씨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어쩌면 아이들을 가엾게 여긴 하늘이 그를 내려 보내 작은 아이들에게 내일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준 걸까. 아내와 자식을 잃어야 했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다른 아이들에게 선물한 사람.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 건널목 같은 어른이 되기 위하여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누구나 책처럼. 그들도 그것을 누군가가 기쁘게 읽어주기를 그렇게 공감해주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보낸다. 작고 여린 아이들이 품고 있기엔 너무나 벅찼던 일이었지만 '참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볼 때는, 그 때의 아픔보다 누군가가 어루만져 준 손길을 떠올렸다. 그 때가 그리워지는, 삶을 위로하는 선물 같은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오명랑 작가는 스스로의 안에 흉터라고 생각하며 숨겼던 그 시절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자신이 어쩌지 못했던 외로움과 두려움을 건널목 씨를 통해 지나왔음을 뚜렷이 깨닫게 된다. 건널목 씨 또한 그 때, 아마도 그런 아이들의 얼굴에 어느 한 때 두려움이 가시고 활짝 피어오르던 웃음꽃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픔을 잊어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작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며 파란불 같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어주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 그래서 아직도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누구나의 가슴에 있는, 그러나 시간의 때를 입고 잊히고 마는 건널목 씨에 대한 꿈이 사실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싶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오명랑 작가의 이야기 수업을 들은 세 아이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지금 이 글을 읽으려는 아이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까.
‘에이, 그런 어른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거짓말!’ 하고 말하게 되진 않을까. 작가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아, 나도 널목 씨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 있어요!” 하고 대답할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나는 아이들은 이 책을 슬프게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널목 씨와 같은 어른도 있다는 희망으로, 상처를 딛고 일어서면 오명랑 작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기쁘게 읽었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삶에서 꼭 필요한 딱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슬픔을 나눠주는 사람. 그러나 우리는 늘 그런 진실을 잊고 스스로에겐 아무것도 없다고, 포기하고 슬퍼한다. 아마도 오명랑 작가의 곁엔 그런 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다시 돌아와 준 어머니가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주었고 공유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명랑한 모습으로 동화를 쓰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통해 길어 올린 이야기들로, 그 사랑으로 더 많은 좋은 글들을 쓰게 되었으리라.  

마음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선 곁에서 체온을 나눠 줄 한 사람이 간절하다는 걸, 아이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동화를 읽은 후엔 곁을 지키는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지길 바란다. 
 TV프로그램에서 너무 쉽게 쏟고 담아버리는 사랑과 고마움을, 내 입 안에 담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건널목 씨의 이야기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누군가의 입술에서, 어느 천진난만한 아이의 가슴 속에서 건널목 씨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누구든지 그 사람을 본 적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하여 
따뜻한 가슴으로, 너그러운 손길로 살아야겠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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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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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의 감성이 또 한 번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아! 건널목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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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펼쳐보는 세계사연표 그림책>, <어제저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어제저녁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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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연들이 겹쳐져 만들어내는 행복,
그 따스함에 대한 이야기  『어제저녁』

  
네. 이것은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그림이 아닌 따뜻한 색감이 뒤덮힌 인형들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반 책과 같이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것이 아니라, 병풍처럼 쭉 이어진 구조의 책이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단조롭게 적혀진 작은 글밥들은 무심한 듯 건조하게 읽혔습니다. 어쩐지, 어색하기도 하고 우울한 첫인상이었죠.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 책으로 잘 알려진 실력있는 국내 일러스트레이터지요. '구름빵'은 TV 만화로도 제작되어 여러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작 작가님의 책은 이제야 처음 만나게 된 것 같아요. 그 분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하고 정감어린 시선을 아이에게도 꼭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기회로 만나게 된 것이지요.

동물들의 캐릭터를 잘 살려 만들어진 인형들이 우리의 일상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6시 정각,
얼룩말은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표지엔 어쩐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짧은 문장이 제목 곁에 담겨져 있습니다.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곤색의 코트를 걸친 얼룩말과 함이지요.
책을 펼치면 개부부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어쩐지 표정은, 그냥, 그런, 어느 날과도 다르지 않는 개부부의 모습.
207호의 양 아줌마는 눈이 내리는 거리를 홀로 걸어 집으로 오고 있습니다.
401호의 여우가 산양의 저녁 초대 젼화를 반갑게 받고 있어요.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은 일상 속에 그들은 몹시도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크리스마스 인데도 말이지요.

 
고요했던 아파트 안에는 이상한 사건도 벌어집니다. 

개부부는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리고 흥분해 짖었고,
그 소리에 이웃집 8마리 아기 토끼들이 놀라 날뛰었고,
양 아줌마도 소리에 놀라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반갑게 초대에 응산 여우는 산양이 주는 음식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지나갈 수 있을까요?

 2011년 겨울.
부족한 것도 많고, 지치는 일도 많지만, 따스한 이웃, 편안한 공간이 있는 '우리집'이 있다면 적당히, 매우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작가의 말
 
 
처음엔 막연하게 읽었던 이 동화책 위에 한순간 환한 등불이 달린 듯 무언가가 반짝, 하고 가슴에 켜 졌습니다.
개부부에게, 양아줌마에게, 여우에게 느껴지던 우울함은 바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그것은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집과 매일 저녁 먹는 따뜻한 밥 한끼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사를 건낼 이웃이 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꾸미며 추운 겨울 날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일인데 말입니다. 너무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채 살면서 행복하지 못하다 여기고 있었어요.
 
쓸쓸해보이는 이웃들에게 찾아온 작은 우연과 나눔들이 그들의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바꾸어줍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스탠드 아래서 평온함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번집니다.
그들은 아마 모르겠지요. 서로에게 서로가 선물한 작은 평온과 행복들을요.
 
27개월 지호에게 이 책을 보여줍니다. 제 눈에는 동물들이 모두 곰으로 보였던 모양이예요.
따뜻한 분위기에 얻힌 입체적인 동물들의 모습이 우리 일상의 단면을 담고 있어 더욱 친근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조금은, 실없이, 더 많이 웃으며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과 보낼 수 있는 따뜻한 저녁에 필요한 건,
서로를 위하고 생각해 줄 수 있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보내는 저녁이, 아이와 이 책을 읽던 밤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는지를 느끼게 되었어요.
지호는 아직 어린 아이지만, 이 책을 오래 곁에 둘 수 있게 해준 엄마로써도 행복합니다.이 책을 통해 따뜻한 저녁에 관한 레시피를 오래 두고두고 보면서, 그 아이가 맞이할 여러 개의 무수한 저녁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이 울적해지고 내가 작은 점처럼 위태로워보일 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무료하고 힘들게 느껴질 때, 이 책을 함께 보다보면 쓸쓸한 어른이 혼자 이 책을 천천히 넘겨 보다보면 알 수 있게 되실 겁니다.
 
곧, 따뜻한 저녁이 찾아 올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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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쏙 끼우며 배우는 ㄱㄴㄷ
애플비 편집부 엮음 / 애플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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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월 지호는 말이 틔인 뒤로는 알려주지 않아도 제법 사물과 이름을 연관시켜 말하곤 하는데요. 제가 알려줬었나, 싶을 정도로 의아스러운 것들까지 이름을 꿰고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아직 어린이집 생활을 하지 않는지라 엄마가 집에서 짚어주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내심 깊은 고민이 되는 요즘. 전에는 거들떠 보지 않턴 퍼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끼우고 난 뒤엔 스스로 뿌듯해하고 자신감도 갖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던 중 한글과 퍼즐이 접목된 재미있는 책을 발견나게 되었어요~ 

바로, 애플비에서 출간 된 『쏙쏙 끼우며 배우는 ㄱㄴㄷ』 입니다.


 

 
애플비 책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소리책이나 맞추기 책을 비롯해 유아동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들이 엿보인다는 것이예요. 얼마 전, 지호가 만났던 손바닥 책 『치카포카는 양치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가 양치질 하는 소리 버튼을 눌러보고, 스스로 따라하기도 하면서 아이가 칫솔을 사용해 양치하는 데 거부감이 없도록 도와주었구요.  『뿡뿡아, 뭐하니?는 이제 배변훈련을 시작하는 아이가 뿡뿡이를 모방하면서 변기를 이용해보기도 하고, 뿡뿡이가 물 내릴 때, 물 내리는 소리 버튼을 아이가 누르면서 정말 실감나는 놀이가 되더라구요.^-^ 암튼 이런 기대 속에서 이번 책 또한 지호가 퍼즐놀이 통해 한글과 친숙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했답니다. 그리고 역시, 지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흐믓했어요.^^

비닐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온 책. 아이에게 줄 책이 깔끔하지 않게 배달되면 좀 마음이 그렇죠. 그리고 책을 받고 난 뒤 깜짝, 놀랐습니다. 선물 상자 같은 책! 퍼즐 형태의 책임을 알고 있었지만 두께가 이만큼이나 될지는 몰랐거든요.^^

 


폭신폭신한 스폰지형 책이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12개월 미만의 아이가 놀잇감으로 혼자 가지고 놀아도 안전해서 걱정없을 듯 해요. 
지호가 보면 반가워 하면서 뭐야? 뭐야! 하고 물으며 좋아할 것 같아 기대가 되었어요. ^^

한 면, 한 면에 담긴 그림들이 알록달록하고 앙증맞기만 합니다.
'ㄱ' 퍼즐 자리의 옆에는 'ㄱ'과 관련된 단어들 '공', '고양이', '강아지' 등이 그림이 담겨 있어
모음 'ㄱ'을 어떻게 글자에 활용하는 지도 살펴보고 함께 익힐 수 있어요.
한글을 공부하는 책임에도 복잡하지 않고 처음 글자를 눈으로 익히는 아이가 놀이를 통해 성취감을 얻고 즐겁게 놀이하며 글자들을 익힐 수 있는 책인 듯 해요. 친근한 그림들을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정보를 배치하고,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까지 제공해 주고 있어서 아이가 한글을 익힐 때까지 내내 유용하게 활용할 것 같아요.



 

'ㄱ'와 'ㄴ'이 똑같다고 함께 붙여 보고 갸우뚱~ 합니다. 엄마는 그림으로 구분합니다. 'ㄱ'에는 공 그림이 'ㄴ'에는 나비 그림이 있거든요.
물론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요. 'ㄱ'과 'ㄴ'은 같다는 아이의 발견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책을 보는 내내 지호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기역, 니은, 디귿…… 의 모음 이름들도 곧잘 소리내어 따라하고,
퍼즐을 집중해서 맞추고 제가 칭찬하면 스스로 기뻐하는 모습이 보여 엄마로써 무척 보람되었어요.^^ 


 

퍼즐에도 관련된 모음의 그림들이 있고, 퍼즐을 빼낸 자리에도  관련 단어가 숨어 있어서 아이와 요 안에 숨겨진 건 뭘까? 이게 숨어 있었구나~ 하면서 모음 퍼즐을 빼내보며 놀았어요. 그림을 보고 (시각) 엄마가 읽어주는 단어를 듣고 (청각) 손으로 빈 자리에 알맞은 퍼즐을 맞추어 보고 (촉각)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활용하다 퍼즐을 잃어버리더라도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그림들로 인해 책이 많이 허전하진 않을 것 같아요~ 퍼즐을 다 빼낸 뒤엔 또 색다른 그림책이 되니까요.^-^



퍼즐들을 한꺼번에 꺼내 두어도 알록달록 참 예쁘죠? 퍼즐도 폭신폭신 스폰지 재질에 두께감도 있어 따로 활용하기도 좋아요.
자음들 위엔 관련된 사물 그림들이 예쁘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지호는 처음엔 하나 빼고 하나 끼우고, 그렇게 신중하게 보더니 요즘엔 모두 빼서 놓은 뒤 책을 넘기며 하나하나 찾아 넣어요.
점점 놀이의 난이도?가 높아만 가는 듯 합니다. 엄마인 저는 모르는 척 그림들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아요~ 아이는 즐겁게 대답해줍니다. 그러면 저는 '와~ 지호 이것도 아는구나!' 하고 칭찬하구요^_^ 

지호는 벌써 이 책 뒷 면에서 『쏙쏙 끼우며 배우는 ABC 『쏙쏙 끼우며 배우는 123를 보고는, 이것도 해보고 싶다며 달라고 난리예요. A B C~ A B C~ 하면서, 제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알파벳을...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조르고 있습니다. -.-;;
아들이 하고 싶다고 호기심에 차 있을 때, 어서어서 보여주고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지요.
스스로 무언갈 하겠다는 아이가 대견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 책에 담긴 그림들을 보면서 사물과 이름을 더 많이 연관하여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아직은 글자를 읽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소리내어 스스로 읽고, 쓰는 때까지 꾸준히 활용해 보려고 합니다. 돌지난 아이 놀이책, 촉감책으로 일찍, 준비해두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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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최승호.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1
최승호.방시혁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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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어렸을 적 듣던 동요를 아이와 함께 들으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의 격차와 낭만도 특별하지만,
 왠지 아이를 위한 특별하고 신나는 동요를 만나게 해 줄 순 없을까 생각하던 중,

"최승호 · 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을 만났어요!

 

 
  

대학다닐 때 『대설주의보』를 읽으면서 감탄했던,

그리고 최근 새 시집을 펴내신 최승호 시인님의 문장을 아이와 함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흥분되더군요.

거기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옥 같은 곡들을 작곡하신 방시혁 작곡가님이

동시에 리듬을 붙여 동요로 탄생시키셨다니 관심이 안갈래야 안갈수가 없었어요.

인터넷을 통해 아이와 벌써 조권의 원숭이를 무한 반복으로 들은 후여서

어서 다른 동시와 동요들을 우리 지호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답니다.^^

 
앙증맞은 그림과 노랑색 표지가 봄에 너무 잘 어울립니다.

깔끔하게 랩핑 된 책을 받는 순간 너무나 뿌듯했어요. 지호에게 선물이야~ 하고 건내보았습니다.

안에 들어있는 CD를 확인하고는 틀어달라고 난리였어요.



  

 
CD가 비닐팩 속에 완벽히 봉해져 있어서 떼어내고 보니 내지가 좀 찢어지고 그랬어요 ㅠ.ㅜ

책과 함께 보관하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습니다. 책 속에 함께 들어있는  CD 보관 봉투에 살짝, 담아봅니다.

캐릭터도 색상도 너무너무 앙증맞고 예쁜 책~
 

한 번 구경해 보실까요~ 
 

 

 
차례를 살펴보면, 아이들이 처음에 관심 갖기 시작 할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지호가 최근 자연관찰책을 보면서 보았던 동물들이 많아서,

이렇게 동시를 통해 또 한 번 동물들을 연상할 수 있는 게  아이에게 좀 더 그 동물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 같아요.

CD의 동요 차례도 책과 같아서 듣고 보고 함께 하기에 번거롭지 않아요.

동요를 틀어놓고 책을 함께 읽어봅니다.

 



지호가 "원숭이" 동요를 들으며 원숭이 캐릭터를 이미 영상으로 많이 봐온지라, 볼 때 마다 이거~ 이거~ 하고 아는 척을 합니다.

자신의 귀나 제 귀를 붙잡고 당기면서 장난을 치기도 해요.

요 동요와 '청소', '돼지' 동요는 외워서 아이에게 자주 불러주는데요,

'원숭이' 동요를 부를 때의 반응이 제일 격하답니다. 흔들고 따라부르고~ 즐거워 해요~





동시들은 짤막짤막 하면서 반복되는 음절들로 경쾌하고 편안하게 다가왔어요.

소리 내어 읽어보면 어쩐지 리듬을 타게 되는 문장들이었어요. 동물들의 특징이 기억하기 쉽게 쏙쏙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구요.  

'다리' '그네' '청소' 등의 동시에서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주변 것들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력을 만나는 일도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동시가 담고 있는 캐릭터들에 대한 그림 또한 아기자기하게 함께 실려 있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다른 동요들도 '원숭이' 처럼 영상이 있는 동요로 제작되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답니다.

사실, CD에 혹시, 있을까, 싶은 기대를 쪼꼼, 했었어요~

지호는 '거미' 라는 동요도 참 좋아했답니다. 첫 날 CD를 틀어줬을 때, 무한반복으로 들었었다는 ...^-^



그리고 이 책의 가장 반가운 점 또 하나!

동요를 피아노나 멜로디언을 통해 연주해볼 수 있어요~




수록된 전곡의 동요에 대한 악보가 책의 뒷면에 담겨 있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지호에게 피아노와 친하게 해주고 싶어  최근 멜로디언을 구매했는데,

제가 연주하면서 지호에게 노래를 들려주니 또 다른 놀이가 되더군요!

 
좀, 샾이나 플렛이 많아 연주가 좀 어렵긴 해서 아이들이 혼자 연주하기 위해선 많은 연습이 따라야 할 것 같아요~^^

 

 

 

지호는 아이팟을 통해 아빠가 정기회원으로 되어있는 음악포털사이트에서

책 속의 동요들을 듣기도 한답니다.

거기서 '원숭이' 영상을 스스로 찾아 보구요.^0^ 

 
동요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신이납니다.

동시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 아이가 다른 놀이를 할 때도 쭉~ 틀어놓아줍니다.

저도 어깨를 들썩들썩하면서 따라부르게 되는 동요들이 많더라구요~

지호는 아직 미숙하지만 끝 음절을 따라부르며 곧잘 리듬을 타고 흥얼거립니다~

이제는 책을 펼쳐 읽으면서도 아이에게 동요를 불러주게 되는 중!독!성!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보면서 뿌듯해지는 책을 만난 것 같아요.

 

매일 듣던 동요 밖에서

무언가 색다르고 특별한 동요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으시다면,

고민없이 선택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아이에게 즐겁게 동시를 읽어주고

아이에게 주변의 것들에 대한 시선을 돌려주고

아이에게 신나게 동요를 불러주고

아이에게 하나하나 멜로디언으로 추억을 연주해 줄 수 있다는 것,

이 책을 만나고 난 뒤 제가 얻은 것들 입니다.

앞으로도 오래 아이와 듣고 즐길 수 있는 동시와 동요가 될 것 같아요.

 

아직 쌀쌀한 외부 날씨를 밀어내며
   집에서 아이와 봄을 꿈꾸게 하는 책. 

"최승호 · 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아이와 함께 꼭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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