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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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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다. 그러나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틀 째 밤, 나는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밤새 선잠을 자는 듯 머리가 아팠다. 꿈속의 나는 내가 써놓은 글들을 쓰고 지우며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맞았고, 폭력을 감당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단단히 몸살이 났고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창밖에는 바늘보다 가는 빗줄기들이 불길하게 쏟아져 내렸다. 마치 땅 위에 있는 말랑말랑한 것들을 모두 상처내기라도 할 것처럼, 잔뜩 날을 세우고 지상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창문에서 뭉개지는 날카로움들. 창문이 있어 내게로 달려들지 못하는 그 날카로움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더욱 세게 창을 두드리며 내가 왈칵 창문을 열어버리기를, 그래서 나의 온몸이 피로 젖기를 바라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사납던 빗물들이 창에 부딪혀 뭉개지고 볼품없이 창틀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내 기억속의 그들이 부디, 제발, 그렇게 편안하게 내 곁을 떠나길 바랐다. 비록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어야 했던,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그 비극적인 과거가 부디 7년의 밤 동안 그의 곁을 서성였던 만큼, 이제는 그만 떠나주었으면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체포되고 친척들의 집을 전전긍긍하다 헌이불짝처럼 내버려진 작은 아이의 삶. 그리고 그 시간들의 일부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승환 아저씨 곁에 자리를 잡기까지 너무나 불행했던, 평범한 사내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아저씨가 사라지고, 서원에게 하나씩 배달되기 시작하는 물건들. 그것은 아저씨가 ‘그 날’ 에 대해 쓴 글들, ‘그 날’에 대한 자료, ‘그 날’에 사라진 서원의 운동화였다. 그리고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는 7년 전 그 밤의 불길함이 서서히 서원의 곁에 뚜렷한 형체를 가진 검은 그림자로 드리워지면서,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7년의 밤』 은 세령댐 근방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 그 허구의 공간 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서로  부딪히고 상처입으면서 일어난 검은 멍자국 같은 이야기였다. 상처를 바라볼 때마다 일어나는 공포,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맹렬한 싸움 안에서 이야기는 피가 튀듯, 토해내어진다. 이토록 생생한 이야기를, 글자를 읽던 눈이 공포를 느끼며 감겨지고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는 이야기를 처음,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하며 꿈을 꾸던 그, 현수에게 꿈을 빼앗을 결정적인 어깨 부상 사고. 그러나 그는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가족과 꾸려 나갈 평범한 삶을 꿈꿨고, 마음데로 가꾸지 못한 스스로의 꿈이 한 쪽 어깨에 매달려 있었고, 그래서 너무나 나약했다. 그러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져야 할 짐을 내 던질 수 없었던 그에게 세령마을로의 초행길은 자꾸만 알 수 없는 일들로 이어지고, 그는, 알 수 없이 자꾸만 헛 패들을 집어든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벼랑까지, 그 패들은 그를어둡고 음습하여 공포스럽기까지 한  세령호의 얼굴 앞까지  그를 몰아간다. 

그리고, 삶의 수문이 열리던 그 순간!
 

그는 홈런을 쳤다, 고 이제와 생각해본다. 비록 자신의 삶을 지켜내진 못했지만, 아들의 삶은 끝까지 지켜낸 것에 대해.
마지막에 밝혀지지만, 현수는 동료 승환에게 세령호에서의 일을 소설로 써줄 것을 당부해 두었던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끝이 보이지 않는 오영제의 복수에서 지켜내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처음부터 너무나 처절하게 드러났던 오영제의 악마적 본성. 아내와 딸을 '교정'이란 이름으로 학대하고, 자신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 계산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인물. 자신을 자극하거나 무시한 사람은 끝까지 어떤 식으로든 치밀하게 되갚아주었던 그의 모습은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 내면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자신의 딸을 차로 친 뒤 세령호에 던져 죽음으로 몰고 간 현수에게로 모두 향하면서 비극은 금이 간 틈을 비집고 세어들기 시작했고, 이제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사람들을 휩쓸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7년 전, 그 사고와 함께 터진 삶의 수문은 7년의 밤을 지나 이제 스무살을 앞둔 서원에게 마저 생생하게 재현되기 시작했다.  현수의 사형집행과 동시에 아들 서원을 죽여 7년 전의 딸아이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하려는 그. 그러나  이제는 작은 아이가 아닌, 서원은  단단한 모습으로 오영제와 맞선다.

불타는 것처럼 빨갛고 열에 뜬 표정은 유령처럼 몽롱해 보였다. 서원이 집에 가는 길에 들렀다고 하자,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이 내렸느냐고 물어도 고개만 끄덕였다. 저녁 드셨느냐는 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원이 “저 여기서 컵라면 먹고 가도 돼요?”라고 묻자 말없이 컵라면 용기에 뜨거운 물을 채웠다. 서원에게 젓가락을 쥐여준 다음엔 의자에 앉아서, 시선 한 번 떼지 않고,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잘 먹었습니다” 하는 서원의 인사에 빙그레 웃었다. 집에 가겠다고 일어나자 서원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서원과 정문경비실을 나와 열 발짝쯤 걷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팀장이 유리창에 얼굴을 댄 채 서원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거리가 좀 있었지만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팀장의 눈에 어린 회한을, 불안한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위태로움을, 울음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고통을.

세령호에서 벌어진 사건을 코 앞에 둔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 불안을 온 몸으로 느끼는 현수는, 그러나 끝까지 아들에겐 좋은 아빠이고자 마음을 숨기고 다잡고 있었다. 사라진 손의 감각을 찾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해하고, 스스로 집어 든 헛패에 자신의 한 쪽 발을 잃은 그는 모든 고통이 자신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그 고통을 가족과 나누어 지려고 하지 않았다. 끝까지 혼자서 싸우고 짊어진 채 서원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되도록 서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것이 자신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인 것처럼. 그러나 고통 안에서 아들에게 컵라면을 내주고 한 참을 바라보는 부정에 눈물이 났다. 코끝이 찡하고 그의 돌이킬 수 없는 삶이 내내 내 가슴을 무겁게 했다. 어쩌다, 어떻게, 이곳으로, 그는 오게 된 것일까.

우리는 쉽게 나의 삶이라 말한다. 내 것이라고 당차게 말하고 아무도 함부로 간섭하지 않도록 방어한다. 그러나 삶은 내 마음데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뼈져리게 하게 된다. 삶은 끝임없이 양손에 각자 다른 패를 들고 나를 찾아오고 내가 선택한 패의 길로 나를 이끄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떤 날엔 그 마음데로 패를 던져두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홀린 양, 자신을 뒤덮은 물쌀에 휩쓸려 가면서 숨을 쉬지 못하고 상처입거나 자신 안의 악마적 본성을 꺼내 닥치는 데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내던지며 자포자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내일로 떠밀린다. 혹은 고통을 딛고 거침없이 내일을 향해 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내일을 맞이할 것인가. 그 물음이 자꾸만 가슴을 치게 했던 소설,  몇마디의 말로 다 하지 못할 느낌들. 나는 그 느낌들을 내 연약한 문장들로 하나하나 옮겨보고 싶었지만 끝내는 잘 되지 못했다. 이 소설의 리뷰를 쓰기 위해 한 달 간을 이 작품 곁에서 헤매었지만 결국 내 마음에 담긴 것은 하나도 이곳에 내어놓지 못했다. 이 글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심정이지만, 약속된 일 때문에 이 글을 열어두고 마는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영화를 보는 듯 문장 위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인물들의 모습과 그 사이에 떨리는 몸으로 웅크리고 앉은 인간의 본성이 나를 쉴 새 없이 소설의 벼랑으로 이끈다. 평범한 삶이 변질되고 벼랑으로 떨어지다 나무뿌리에 매달려 번 잠시의 시간 안으로 나를 몰아간다.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너는 과연 어떤 패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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