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게 먹은 약 때문인지 속이 쓰려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다. 10시쯤 자려고 누웠는데 어느새 새벽 2시 반이 되어 있던, 그런 날들이 벌써 2주를 넘기고 있었다. 기운도 없고 속은 울렁거리고 술 취한 듯 멍한 머리. 누워있어야만 마음이 몸이 견딜 만해졌다. 너무나 힘들고 고단한데 나의 증상들은 그것을 의사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입원을 했어야 하나. 몸이란 뭘까. 잘 먹는다는 것은 뭘까. 내일은 그래도 조금 낫지 않을까, 내일은. 너무나 고단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잠깐씩, 그러다 좀 오래, 아버지를 놓았다.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빈 방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아버지가 여행을 떠난 듯했다. 언제 돌아오실지 알 수 없지만 무거웠던 질병과 고통을 내려놓고 훨훨 가벼운 걸음으로 좋은 곳에 가신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와 웃으며 여행 이야기를 해줄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빈자리가 길어질수록 그 마음은 죄책감이 되었다. 떠나는 아버지를 내가 붙잡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칼날처럼 가슴을 훑었다. 아버지를 꼬옥 안아드릴걸. 사랑한다고 말해 드릴 걸. 아버지에 대해 많이 물어볼걸. 그 말들을 받아 적을 걸. 이 생의 마지막을 고단하게 걸어가는 아버지의 곁에서 나는 당신의 고통만을 바라보며 괴로워할 뿐 당신이 남기고 싶은 것을 묻지 못했다.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그가 지나온 시간을 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알지 못했다.

 

 신경숙 작가의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소식을 들은 날은 아버지의 납골담에 다녀와 며칠이 지나서였다. 아버지에게 다녀온 나에게 그 제목은 알 수 없는 동질감과 궁금증을 일으켰다. 위로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과거를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나는 사전 서평단을 신청했다. 나는 영영 쓰지 못하지만 작가는 써 내려간 글 속의 아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얼마 뒤 흰 물성의, 내가 어찌하는 대로 모두 받아들여 자국을 남길 것 같은, 연약하면서도 묵직한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아픈 어머니가 치료를 위해 서울 큰 병원으로 떠나고 남겨진 아버지는 운다. 혼자 남겨진 서러움보단 떠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과 세월에 대한 원망, 체념에 가까운 울음일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눈에 밟혀 헌은 자신의 상처로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부모님댁에, 홀로 남아있는 아버지에게 가기로 한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적당한 덩치에 키가 큰 축에 속했고, 시골 사람 같지 않은 밝은 피부에 반듯한 콧대가 얼굴 전체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버지는 '얼굴이 야위어서 볼 쪽이 움푹 팬' 모습으로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밤이면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숨어버리는 불완전한 모습이 되었다. 자식에게 짐이 될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다시 맞닥뜨린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이제는 홀로 섰을 때 위태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아버지의 시절을 읽는다. 사라질까 하나 하나 적는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p.90

 

처음에 자꾸 어딘가로 숨거나 우는 아버지를 발견할 때마다 등에 땀이 솟곤 했으나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혼자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불안과 공포에 방치된 아이 같았다. -P.395

 

 

나는 아버지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쓰고 있는 이 글을 지우고 싶지 않다. 벌써 지우고 있어 불안하지만 지우고도 남아 있는 말이 있기를. -P.348

 

 

 책 속에서 나의 아버지를 만난 건 신기한 일이다. 그때 읽지 못한 아버지를 읽어내는 건 슬프고도 가슴 따뜻한 일이었다.

 내가 아주 작은 아이였을 때, 초등학생이었을까. 내 나이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동생과 약수터를 가는 길이었다. 뜬금없이 셋이서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동생은 내 앞에 아버지는 내 뒤의 저만치에서 뛰기로 하고 시합을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그 저만치를 단숨에 뛰어 우리를 앞질러 가셨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아빠의 환한 웃음을 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든든하고 멋있었는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을 그때 아버지의 모습을 이따금 꿈에서 보곤 한다. 연하장애가 생기고 폐렴이 생기며 야위어 갔던 마지막 모습이 아닌 젊은 날의 아버지를 바라보면 그 모습으로 좋은 곳을 여행하고 계시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놓였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장사로 바빠진 아버지와 멀어졌다. 아버지는 내 삶에 흔적도 남기지 않을 행인같이 여겨졌다. 보는 날보다 보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고 엄마도 동생도 함께 모이면 데면데면했다. 원망했고 미워했고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저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고단한 삶을 견디고 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제 와 그 시간을 언저리로만 짐작할 뿐 읽어드리지 못해 아쉽고 죄송하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키우며 내게 심어준 생각들로 자랐을 것이다. 그들이 물려준 문장들로 내가 이뤄져 있다. 나를 들여다보면 부모님이 보이기도 한다. 어린 날 마냥 크고 높게만 보였던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의 그들도 얼마나 어렸는지, 얼마나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로 부모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지 가늠해보게 된다.

 

 작가가 담아낸 한 가정. 그 안의 어머니, 아버지, 그 사이에 성장한 아들, 딸의 이야기는 먼 이웃의 이야기처럼 읽힐지도 모른다. 지루해서 잠시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불쑥 깊숙이 꽂혀 들어오는 낯익은 이야기가 당신을 사로잡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당신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이름 없이 애쓴 사람을 만날 것이다. 너무나 커서 함부로 바라보지 못했던, 그러나 이제는 작아져서, 나보다 가벼워져서 내가 가만가만 다독여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 당신이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한 사람, 

 그 이름을 더 늦기 전에 부를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홉 살 독서 수업 - 부모가 알아야 할 초등 저학년 독서의 모든 것
한미화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책이 재미있다는 긍정적 경험이다.” -p.70

 
   1학년인 작은 아이에게 엄마가 재밌는 책을 빌려오겠다고 하니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
   만.화.책
   엥?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목록의 오싹오싹 시리즈와 <알데포>, <스마일> 책을 몽땅 빌려왔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인다. 5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이 쇼파에 앉아 만화책 보는 풍경을 이토록 여유있게 바라봐준 때가 있었을까. 
  늘 저래도 되나 싶은 걱정, 노파심, 맨날 만화책만 읽나 싶은 아쉬움. 
  아들은 오싹오싹 만화를 보다 이건 어른들이 읽어야겠네요, 하고 의견을 낸다.
  왜?
  아이들 마음을 알 수 있으니까요.
  큰 아이와 만화책을 넘기다 숨겨진 비밀을 찾으면 서로 알려주던 시간.
  작은 아이도 엄마 책 너무 재밌다아~ 한다.
  벌써 몇 번을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

   7세, 초등 저학년 아이들과 동화책을 함께 읽는 수업을 하고 있다. 내가 책에서 느낀 긍정적 힘을 나누고 싶어 시작했지만 쉽지가 않다. 내 아이도 즐겁게 읽히지 못하는 책을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재밌게 볼까, 늘 허무한 느낌도 있었다. 
  지금 세대의 엄마들은 앞 세대를 통틀어 가장 학력이 높고 똑똑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전보다 더 불행하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없는 듯 하다.
  똑똑해진 엄마가 학습 매니저가 된 현실. 
  기다려주지 못하고 재촉하기만 한다. 
  가장 하고 싶은 건 핸드폰 게임을 실컷 하는 일. 핸드폰을 못하게 하는 엄마는 악마같고 일주일 동안 잘지냈는지 물어보면 잔소리로 힘들었다는 아이들 말에 속이 쓰리다.
  너무나 안타깝다.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에서 김은하는 글을 읽는 동시에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초등학교 6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중학생이 될 무렵에야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제대로 정착된다는 뜻이다. -p.56

  큰아이는 갓난아기일 때부터 책을 꾸준히 읽어줬다. 그러나 둘째를 낳고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혼자 읽도록 시켰다. 아이는 좀처럼 책을 들지 않았다. 늘 책 좀 읽어라, 씨름하던 나도 결국 포기상태가 되고 말았다. 글자를 알면 당연히 독서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잘 이해도 되지 않는 책을 좋은 책이라 권하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좀더 일찍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싶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아이가 사고 싶어하는 책은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또래 아이들의 취향이 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서점에서 아이가 책을 고르고 살 기회를 주어야 한다. -p.64

  아이들은 정말 책을 싫어할까? 책이 재미없을까?
  얼마 전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가져오도록 했다. 아이들은 책을 들고 오면서 엄청 신나있었다. 너 이거 좋아해? 이거 정말 재밌는거야. 나 좀 봐도 돼? 아니, 내 책이야! 자신의 책을 소중히 여기고 보고 싶어하는 친구를 보며 뿌듯해하는 표정이라니. 이 아이들은 이미 책을 좋아하고 있거나 책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치는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좀더 나은 책을 권하고 검사하듯 책 줄거리를 물으며 독후감을 쓰라 다그치니 아이들에겐 책도 고단한 학습의 일부일 뿐이다. 놀이터와 도서관, 물놀이터, 문화 공간 등등 지역마다 좋은 시설이 넘쳐나고 집에도 부모님이 맘 써 사놓은 전집이 빼곡하다. 그러나 정작 그 모든 것의 주인이어야 할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야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의욕은 점점 희미해진다.

  어린이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 아이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이었다. 경이롭게도 어린이책 속의 아이들을 진정으로 만나자 현실의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202

  지쳐있던 어느 날 내게 찾아 온 한 권의 동화책.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펼쳐 읽어주는 동화구연 선생님 목소리에 울컥하던 순간. 따뜻한 목소리와 알 수 없는 위로가 내게 닿아 나를 다독이는 느낌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다시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초3이었다. 다 컸다고 생각한 아이가 곁으로 와 좋아하는 모습에 나 또한 아이와 연결된 느낌에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원하는 때까지 책을 읽어줘야겠다는 마음. 함께 읽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결심. 그 마음을 다른 아이에게도 전하고 싶은 욕심으로 나는 동화책을 펼친다.  
   
  오로지 아이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확인된 것은 부모와 아이 사이의 유대감과 자연과 생명을 접하며 느낀 풍부한 감성과 경험뿐이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아이가 보고 있는 것, 관심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다. -p.153

  <아홉살 독서수업>을 통해 나는 좀 여유로워졌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할까, 엄마인 내가 좋은 책을 선별하고 읽도록 챙겨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도 내려놓고 아이와 어떻게 함께 걸을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학습만화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충분히 읽고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로 했다. 재촉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여유를 찾아주고 싶었다. 아이에게도 심심할 권리가 분명 있다.
  책은 혼자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아직 독서가 서툰 아이들에겐 길을 잡아 줄 인도자가 필요하다. 아이가 불안하지 않도록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엄마라면, 잔소리가 아닌 칭찬과 격려를 장착한 엄마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아이에겐 책을 읽는 시간보다 엄마와 함께 읽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독서와 관련된 책이지만 읽다보면 부모와 내 아이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나게 한다. 아이의 속도를 이해하고 마음을 읽어주며 기다려주는 일. 이 책은 그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함께 읽는 엄마가 되고자 하지만 방법을 몰라 망설일 때 혹은 아이보다 앞질러 나가고자 할 때, 이 책은 좋은 나침판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함께 하던 어느 날, 아이와 펼친 한 권의 동화책이 엄마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을 확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
김선영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7월 19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서 지낸지 두 달 만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큰 병원에 입퇴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집으로 가시지 못했다. 요로결석과 폐렴. 연하장애. 위 출혈. 아버지는 끝까지 집으로 가길 원했고 살길 원했다. 식사를 할 수 없고 가래를 뱉을 수 없고 풍선 바람 빠지듯 온 몸이 꺼져가면서도 당신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지금 이 시간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다. 그리움과 죄책감과 슬픔이 뒤덮인 고통스런 마음을 잘 보내고 당신 몫까지 열심히 살고 싶었다. 도무지 다물어지지 않는 꺽인 책의 페이지처럼 당신의 빈자리가 내게 벌어져 있다. 덮고 지나왔지만 고스란히 덮이지 않은 그 페이지를 더 자주 더듬고 들여다보게 된다. 
 유년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품고 성인이 되어 종양내과 의사가 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병원에서 떠나거나 병원에서 누군가를 배웅하게 될 것이니까. 누군가의 마지막은 질병일 가능성이 높고 통증을 견디기 위해 병원에 있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

 교통사고 이후 골절 수술. 재활. 다시 골절. 욕창수술로 이어진 5년여의 병원 생활. 그렇게 지나 온 13년. 엄마의 시간도 아버지 곁에서 흘렀다. 힘들었던 그 시간이 최후의 고통에 이르러서야 그렇게라도 함께 먹고 웃고 이야기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환자이건, 장애인이건, 어린이나 노인이건,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을 돌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비정하다고 비도덕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돌봄의 책임을 어느 누군가에게 의무인 양 전적으로 떠맡기는 것은 비도덕적이지 않은가.   -p.46

 하지만 그 누구도 엄마에게 잘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고맙다고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아픈 남편을 돌보는 삶 그 자체를 걱정했고, 남편 없이 살아갈 날들을 걱정해주었지만, 엄마의 삶을 긍정하고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엄마는 이에 죄책감과 회피라는 방어기제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p.90

 아버지를 간병하며 나날이 어두워지던 엄마가 떠날까봐 두려웠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아픈 아버지의 고집과 엄마의 울분이 부딪혀 좀처럼 희망을 만질 수 없던 집에서 나는 도망치듯 결혼을 했다. 떨어져 살면서 가끔씩 엄마에게 걸던 전화는 절망을 뒤집어 쓰는 일이었다. 내 안에 아이가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결국 우울증에 빠진 부모님을 신혼집 근처로 모셨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알게 되었다. 엄마가 많이 외롭고 고단했으리라는 것을. 아버지와의 투닥거림과 모진 말들이 결국 서로를 살게 한 위로였음을. 그 모든 것은 아내이기에 견뎌야 할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으며 아버지의 주치의로 만난 선생님들에 대한 원망도 내려놓는다. 아버지 앞에서 서슴없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짧은 설명 끝에 사이도 없이 팔을 잡고 주사를 찌르던 그들도 무수한 환자 속에서 질병과 시간과 자신의 삶과 사투하고 있는 이들임을 이해하기로 했다. 위독하시다, 언제 돌아가실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라 했던 것도 아버지와는 다른 어느 가능성 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 13년 동안 아버지의 짐이었던 소변줄, 워커, 콧줄과 온갖 주사바늘, 썩션, 기계장치 등에서 놓여나 이제 홀가분한 몸이 되셨으리라 믿으면서도 마지막에 가까워지는 시간인 줄 모르고 마주하던 그 때, 배가 고프다며 찾던 곶감과 메밀 부침개를 얼른 건강해져 집에 가서 먹자했던 일들이 불쑥 떠올라 마음 속에 불덩이를 이루곤 했다. 고통 속의 아버지가 이제 그만 아픔을 끝내고 떠나길 바라면서도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가늠하지 못했다. 나으시라는 기도는 하지 못하고 그런 기도를 한 나 때문에 아버지가 떠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으로 우울감이 찾아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으로 넘어지려할 때면 당신이 아팠다. 그 때마다 정신없이 응급실로 쫓아오고 당신의 휠체어를 밀며 온갖 검사와 진료과를 돌아다니다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됐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오간 병원복도와 검사실, 수술실 앞의 시간을 떠올리며 더욱 선명해지는 건 그토록 버겁고 남들보다 잘 살아보고 싶은 이 삶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죽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할 작은 이유 하나를 찾아내 다시 이어지는 것이며, 언제 마침표를 만날지 알 수 없는 시간 위에서 그저 오늘을 무사히 지나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의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아버지의 투병은 내 삶을 감사와 겸손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고통을 지고 끝까지 살고자 한 당신을 보며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을,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숙명을 보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에서 참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온 몸으로 나를 키우고 지탱해주었다.
 가까운 이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마지막을 향해 위태롭게 떠가는 당신을 배웅 하는 일을 나는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은 마음 먹은 것보다 훨씬 힘들고 괴롭고 버거운 일이었다. 나의 배웅은 당신이 떠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곧 돌아올 것 같아서. 무겁고 아팠던 몸을 내려놓고 먼 여행을 떠난 아버지가 훌쩍 돌아와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아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 하나 깨달은 건, 주변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혼자 버겁고 힘든 시간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지나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 내가 오히려 상대의 고통을 가볍게 만들까 두려워 삼킨 위로의 말을 그 때 건넸어야 했는데, 그 때 만났어야 했는데, 뒤늦은 생각들이 빚처럼 남았다.
 
죽음이 앗아갈 것을 떠올리며 두려워하자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끝까지 꽉 찬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써본다.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삶을 지켜내고 더 많은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나부터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p.225

 오늘이 힘들었던 당신에게 
 이 책은 당신이 보낸 하루가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내일을 다시 오늘로 맞는 기적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엔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는 것도.

 삶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은 남겨진 삶을 움직인다. 
 좀더 아름다운 쪽으로, 그렇게 믿고 싶다.
 아버지는 나의 시간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내게 주신 새로운 삶을 더욱 열심히 살기로 다짐한다. 주변 사람을 챙기고 나의 삶을 나의 몫으로 누리며 그렇게 오늘을 의미있게 살아보기로 한다.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준 것들을 ‘잊지 않’으며 아버지와 계속 함께 할 것이다. 

  아버지를 반갑게, 다시 만날 그 날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규리 아포리즘 2
이규리 지음 / 난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단한 하루가 지나간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지만 누구의 위로도 힘이 되지 않았다. 무엇도 규정할 수 없는 마음에 하루 하루가 생채기를 내며 지나갔다. 떠나려는 사람을 배웅하는 일은, 그것도 아픈 몸으로 영원히 떠나려는 당신을 놓는 일은 죄를 짓는 일인 것만 같아서. 이렇게 당신을 붙잡고 있는 일도 당신에게 죄를 짓는 일인 것 같아서. 나는 다만 당신을 붙잡고 죄인인 내가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모양새인가.
 
 괴로움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무 재촉하지 말 것. -p.14

 누구의 위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게
한 마디의 문장이
내가 물고 어쩌지 못하던 깊은 숨을
토해내게 했다.

 나의 괴로움은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부모의 투병도, 죽음도 혼자만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 결혼을 하고 또 다른 가족을 꾸렸지만 내 몫의 통증은 온전히 홀로 싸워 견뎌야하는 것이었다. 가족은 슬픔을 고백하는 곳이며 고민에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곳이다. 슬픔을 나눠가질 수는 없다. 각자의 몫으로 새롭게 태어날 뿐이다. 가족이 있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 울지 못하는 것 뿐이다. 나는 지난 날 내가 누군가의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을거라 믿었던 일들을 반성했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당신의 눈빛, 할말이 많은 눈빛. 마지막이라는 확률을 배제하지 않으므로 거기엔 간절함, 안타까움, 감사함, 서러움, 두려움 그리고 절박함이 혼재한다. 내가 본 모습 중 처음 유순하였다. -p.205

 눈 부시게 부서지는 봄 햇살에 눈물을 걸어 말리며 간다.
서럽고 두려운 삶의 한쪽에 지친 얼굴로 놓인 나의 아버지,
아버지에게 갈 때마다 이 책을 가져갔다. 누군가의 손을 잡듯,
 몇 장 읽지 못하고 덮어두던 페이지가 
시간을 따라 한 장 한 장 한 곳으로 쌓이는 사이 
내 안에서 부풀어오르는 삶의 페이지를 느꼈다.
흩날리는 어지러운 말들을 붙잡아 볼 용기가 생겼다.

 처음엔 무언가 거창한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쓰는 일이 나를 면죄하는 것 아닌가 싶은 좌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록하고 싶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삶의 페이지들을. 안쓰럽고 안타깝고 억울하고 분한 당신의 모습을, 시간을, 울면서 끌어 안겠다고. 기억하겠다고. 
그렇게 나의 한 쪽에 지금을 위한 폴터를 연다. 

괴로움 안에 있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대 쓸쓸해 말아요 -p.69

 시간을 지나가다 만나면 그 때 그때 또 다른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책.
 그리고 무언가를 적어보고 싶게 만들어 준 책.
 슬픔의 사이에도 삶의 설렘은 있구나 알게 해준 책.
 삶의 호흡이 가빠질 때 나를 멈춰 서게 할 책.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답장을 하고 싶었다. 
 내 어지러운 시간 속에 잠시 앉을 곳을 내준 위로와 희망에 대한 보답으로.

 살아서 건너오는 말보다 한 줄의 고요한 문장이 내겐 더 진실했다.
그 문장의 끝, 여백에 놓인 나의 글을 만나는 일은 설렜다.

 어느 날 이 책과 닮은 한 권의 책이 내 이름으로 남아 
오늘을 갚을 수 있다면,
 그런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가여운 상대를 가만히 안아주는 행위, 잠시 토닥이던 손이 상대의 등에 나비를 그린다. 나비, 팔랑 나비. 손이 없어지고 등도 없어지고 그사이 고통은 나비 날개의 무늬를 가지고 날아갔다. -p.26

거기서부터 다시
일어나 걷기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
김현수 지음 / 해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올 해 5학년이 된 큰 아이와 문제가 있었다. 5년 가까이 해오던 학습지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에도 힘들다 한 적이 한 두 번 아니고 그 때마다 선생님과 상담하며 아이를 다독여 이끌어왔다. 학습 수준도 학년에 비해 높은 편이라 아이 스스로 뿌듯함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학습에 집중을 못하고 연신 하품을 하며 불편한 행동을 보였다. 선생님은 아이가 산만해진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사과를 드렸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과제가 선행이 되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보기를 보고 그냥 풀면 된다 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왜 이렇게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냥 해야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수업 때마다 아이의 질문은 계속 되고 시간은 지체되다보니 선생님의 언성도 매번 높아졌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긴장감 속에 수업을 끝낸 어느 날,  답답해하는 아이가 안타까워 이해할 수 없다는 부분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 EBS에서 관련 동영상을 찾고  아이에게 보여줬다. 서로 이해한 부분을 설명하고 함께 문제를 풀었다. 아이는 막혔던 것이 내려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리곤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못했을 거라며. 

  고.맙.다. 

  그 말이 내게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로 들렸다. 
  왜 궁금해하면 안될까. 왜 글씨는 빨리 써야하는 걸까. 왜 수학 문제는 빨리 풀어야만 하는 걸까. 학교도 공부도 재미없고 안하고 싶고. 나는 뭘 잘할까요? 묻는 아들에게 그건 아들이 알지. 아들이 찾아야지. 노력하면 다 된다니까. 안하니까 안되는 거지. 말하는 못난 엄마. 그 일 후에 학습지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서도 아들이 많이 외로웠겠다, 쓸쓸했겠다, 싶은 마음에 며칠 밤을 뒤척였다.

  오늘 받아온 시험지엔 동그라미보다 비가 많다. 시간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그건 몰라서 못풀었다는 얘기고.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킨 채 수학이 어려웠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도 되요?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제 머리가 나빠서, 지식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다며 나는 왜 이럴까요? 하는 아이. 엄마와 풀 때는 이해가 갔으니 좀더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알 수 없이 솟는 화를 누르며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문제집을 풀어보자 한 부분에서 벌써부터 입이 나온다. 
  사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공부를 안 했으니까 오답이 이렇게 많은 거지 하며 아이를 비난했을 것 같다. 게임이며 유투브며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찾아 할 때는 의욕 넘치게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공부는 왜 그렇게하지 못하나, 답답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마음이 아주 없다 할 순 없지만 아이가 스스로 실망하지 않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혼자서 못하겠으면 엄마랑 함께 해보자 싶은 맘.
  세상 좋아진 시대와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다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마음고생’이 왠 말인가, 더 살아봐라 그보다 어려운 일 정말 많다, 말이 절로 나오는- 나도 5학년 아들에게 그런 말들을 너무나 쉽게 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아이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이 바로 사회와 어른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며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사춘기가 온 것인지 아들은 요즘들어 비난과 체념이 섞인 말들을 자주 한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법을 누가 알려줬을까.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너 그렇게 해서는 소용없어. 죽을 각오로 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미 충분히 버거운 아이에게 이 말은 얼마나 모욕적으로 절망으로 느껴졌을까.
  가만히 다독여 주는 어른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설명해주는 어른도 없고, 너희가 힘들게 뭐가 있냐며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 꾸짖고 충고하는 어른만 많은 세상.
  세상은 분명 좋아졌고 달라졌지만 어른들은, 부모는 달라진 세상에 과거의 잣대로 아이들의 시간을 재단한다. 우리가 고생해 이만큼 지원하고 있으니 너희는 더 많은 노력과 더 나은 결과를 내야한다고 강요한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학원을 돌려 성적을 만든다. 고등학교에 가서 1,2등급에 들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고, 그렇게 될 수 없을 바에야 ‘이번 생은 포기’를 외치고 마는 ‘이생망’의 아이들. 그 처절한 세계 속에 다른 대안은 없다. 오직 등수가 나일 뿐.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이 다가갈 수 있을까.
 대화도 이해도 없이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어른들의 포위 속에서 도망칠 수 없이 견뎌야만 했던 아이들. 그들이 살기 위해 선택한- 순응, 무기력, 자해, 중독, 은둔, 비행-의 방어기제를 우리는 복에 겨운 일탈이라 치부하고 비난하며 체벌하기에 급급했던 어른들. 
 부모는 아이를 포기하고 아이는 부모를 포기하면서. 소통과 이해, 응원이 사라진 자리엔 비난과 원망, 이별이 남았다. 서로의 필요가 끝나면 마침표가 되는 개인주의의 세상. 가족이라는 한 집에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생각 속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견디며 산다. 이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달려온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우리가 정말 바라보고 온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힘든 아이들에게 이번 생애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미 망했으며 부담은 잔뜩 갖고 살아가는데 이해받지도 못하는 억울한 삶입니다. -p.134

  90년대 국민학교를 졸업한 어릴 적 나는 부모가 어렵고 무서워서 늘 속앳 얘기를 숨겼다.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부담이 될까봐 말을 못꺼냈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원에 무료 입시 강좌만 들으러 가봤을 뿐 혼자 문제집을 풀고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내내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성적은 맘처럼 나오지 않았다. 학원을 다녔다면, 우리집이 부유해서 엄마아빠가 좀더 신경을 써줬다면 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었다. 모두가 그런 비슷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 아이만큼은 부족함 없이 잘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마음이 지나쳐 욕심이 되고 아이의 삶에 희망을 지우고 있다면, 내가 옳다는 마음을 멈추고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내내 붙들어온 마음 하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아이와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이 시작된 곳을 알았다. 겉으론 쎈 척 하면서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책은 끝났지만 마음에 남겨진 페이지들이 무겁다. 어른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한 시간을 과거로 보내고 이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인 것 같다. 그들이 견디는 무게 그대로 그들의 마음고생을 인정해주는 어른의 눈을 우리도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아이의 생각을 평가가 아닌 따뜻한 응원으로 지지해주는 것. 나는 내 삶을 아이는 아이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 다시 하고 싶을 때 서로의 돌아갈 곳이 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간절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병적 자기애와 전능주의, 그리고 자녀에 대한 집착, 이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큰 숙제입니다. 건강한 자기애와 현실주의, 그리고 성숙한 독립과 상호 의존을 통해 ‘희생하는’삶이 아니라 ‘헌신하고 실현하는 삶’으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현실에서의 따뜻한 돌봄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자신의 삶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현명한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감정적 꼬임과 묶임의 무거운 실타래가 풀려 나가는 것, 그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도 희망의 한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독립시킬 수 있으니까요. -p.2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