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는 마음 - 작은 출판사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글 111
봄동이 엮음 / 혜윰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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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시작한 공부의 한 주 수업이 모두 끝나는 목요일은 왠지 금요일을 떠올리게 한다. 목요일의 하굣길엔 여유로운 금요일을 보낼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알라딘을 켜고 주말을 함께 할 책을 나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어느 주엔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 중인 책나물 출판사의 봄동이 편집자님이 엮은 『발견하는 마음』(혜윰터)과 함께했다. 제목에 먼저 끌렸고, 작은 출판사의 책들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모여있다는 이야기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발견하는 마음을 지켜살려 하지만 사정에 막혀 그렇지 못한 날이 많았다. 정신을 어지럽히는 일과 견딜 수 없는 감정을 떨쳐내려 싸우다 하루가 끝나고 그런 날은 고단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나를 내팽개쳐 버리고.


 가붓한 책에 담긴 문장들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첫 문장처럼 거기에 있다. 처음 펼쳤을 때 좋아하는 책 『어떤 꿈은 사라지지 않고』의 문장을 만나 반가웠고, 아직 읽지 못했지만 마음에 담았던 정지우 작가님의 책 속 문장을 반복해서 만나 운명인가 싶었고, 이정하 작가님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의 산책에 대한 짧은 문장을 만난 뒤엔 지금 바로 무언가를 시작하고픈 설렘을 느꼈다. 김수경 작가님이 좋아하는 것들이 담긴 스크랩북 이야기를 미소 지으며 읽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김성은 작가님의 글을 통해 나 또한 '변두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용수 작가님의 문장을 본 날은 천천히 깊은 호흡으로 스스로에게 친절해지기로 했다…… 읽다 보면 내 안에 펼쳐지는 나의 문장들이 교차되어 페이지는 더디고 느리게 흘러갔다. 마음이 붙들린 곳에서 글을 따라 적고 내 안에 떠오르는 문장도 옮겨 적는다. 그렇게 이 책을 발견으로 가득 채워가고 싶다는 생각. 너무 예뻐 이곳에 쓸 수 있을까 싶은 첫 마음도. 한동안은 넘기고 만지며 머무르고 싶다.


 고개를 박고 글을 옮기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학교에서 백일장이 열리면 연습지에 얼기설기 써 내려간 글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에 반듯하게 펼친 원고지와 번갈아보며 옮겨 적던 일. 볼펜으로 쓰던 날은 틀리면 그 원고지 한 장을 찢어 첫 자부터 다시 쓰기도 하고, 찢은 원고지 칸을 오려 틀린 글씨를 덮어 쓰기도 했다. 다 옮겨 적은 뒤엔 표지도 만들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과제물을 보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은 기대감에 설레던 어린 마음이 몽글몽글 간지럽게 떠오른다.

 책을 펼쳐도 집중이 되지 않고 길을 헤맬 만큼 힘든 날이 있다. 어떤 것도 붙들 수 없는 순간 이 책을 펼치면 나의 등을 쓸어주는 글을 발견하고 위로 받을지 모른다. 그 문장을 꾹꾹 옮겨 적는 사이 지금으로 돌아올 내 안의 힘을 발견하게 될지도. 지난 며칠 간 신기하게도 그런 문장이 나에게 찾아와 주었다. 발견하는 마음을 가운데 두고 살고 싶다. 그 새로운 만남 앞에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웃으며 손을 내밀 수 있기를. 앞에 놓인 책의 빈 페이지마다 설렘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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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 우울증 걸린 런던 정신과 의사의 마음 소생 일지
벤지 워터하우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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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 생각지 못한 두께에 놀랐고 3일 만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있음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시간에 비해 여운은 길게 남아 여전히 책 속에 있는 듯 그때의 마음을 선명히 돌아볼 수 있다.

 지난 7, 8월은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자 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입원과 수술을 하게 된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병원을 오가는 사이 정신없이 뜨겁던 한여름이 지나고 우리는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도착한 9월 앞에서 알 수 없는 조급함과 우울감에 휘청이고 있을 때 이 책이 내게 말을 건넸다. '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몰입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화가 나고 씁쓸하고 부끄러워지다 가슴이 찡했다. 벤저민의 어머니가 반복하는 '목가적인 유년'이란 말에 울분이 솟았고, 생산되는 '비정상'에 대해 생각했다. 날씨처럼 찾아온 마음에게 이름을 붙이고 약물을 처방하고 분류하는 상황, 목적과 현실에 바뀌는 병명들이 괴로웠다. 환자의 말은 때론 예리하게 다가와 누가 환자이고 의사인지 가늠할 수 없게 했다. 그 사이에서 벤저민이 느꼈을 죄책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들. 체념하며 적응하는 일을 나도 경험한 적이 있다. 마음을 더할수록 위태로워졌고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에 무너졌던. 해결 방법은 없었다. 무뎌지거나 떠나야 했다. 돌봄은 몸으로 마음으로 소진이 많은 일이다. 돈이 아닌 의미를 보고 하는 일. 스스로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이 꼭 지켜질 수 있다면 좋겠다. 여전히 먼 이야기 같지만.


 시간이 흘러 벤저민의 상처가 드러나고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 가족을 품었을 땐 답답하고 화가 났다. 당시엔 잘 몰랐었는데 그건 나를 향한 마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을 마주하는 일. 지난여름 엄마 곁에서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 재생되던 나의 여름에서 그때의 나를 만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듯 인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쓰고 고생했다고. 나에게 손을 흔들어줄 수 있었다. 벤저민이 스스로에게 건넨 화해처럼.

 분명한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정답을 찾으려 애써왔다. 다시 또다시, 정답을 찾는 쳇바퀴 같은 삶. 하지만 곁에 남는 건 정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마음도 삶도 몇 개의 단어로 단정할 수 없다. 살아갈 날들이 착각된 명명에 끌려가지 않도록 잘 붙들고 살고 싶다. 누구의 삶에도 함부로 단정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면서.


 어느새 웃는 얼굴 뒤에 쓸쓸함과 슬픔을 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황폐한 마음을 숨긴 채 어른이 된 이가 결국 누군가의 상처를 알아보고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슬픔에서 태어나 한 사람에게서 한 사람으로 건네지는 온기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고개를 들었을 때 지하철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 저마다의 고단함을 견디고 치유하며 살아가고 있을 그들이 눈이 시리도록 선명해 마음이 벅찼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곳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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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재발견 -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사는 144인의 일상력
컨셉진(월간지) 편집부 지음 / 컨셉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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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고 있나요?


 그렇게 살고 싶고 살아도 된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해야 하는 일로 습관처럼 몸이 기운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으며 나를 보살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지난 5월의 부담감을 버티지 못하고 마음이 쓰러졌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그때 컨셉진의 질문을 만났고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멀어진 나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나'를 찾고 싶었다. (넘어진 채로 좀 있어도 되는데.) 나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나로 살고 싶지만 맘처럼 되지 않아 지쳐버린 내게 힘이 될 문장을 만나고 싶었다. 책을 받고 에디터의 편지를 읽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사는 144인이 전한 일상력을 통해 평범했던 일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사는 법을 발견하고,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DITOR'S LETTER> 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차례'를 본 일이 있는지. 차례만 읽어도 값을 다했다. 인생을 찬란하게 만드는 가족과의 시간, 모두에게 아름다운 일상 떠올리기, 계절의 질감을 간직한 제철 채소 먹기……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꽉 들어찬다. 웅크리고 있던 어깨에 힘이 풀리고 몸 안에 공기가 차오르는 느낌.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법을 연구하는 컨셉진이 선정한 144인의 일상에 아름다움이 물든 순간을 모아 읽고 간직할 수 있다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에서 직접 고른 하이라이트 장면을 읽으며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좋아하는 색으로 문장에 밑줄을 긋고 페이지의 여백에 머무르며 그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 나에게도 흘러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상이 반복이라면, 나는 그 반복을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순환하듯 여행하며 나를 즐겁게 할 것을 찾아 나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일상은 더없이 아름다워진다. -p.139


 이 페이지를 읽은 날 돌아오는 퇴근길을 낯설게 걸었다. 하늘을 오래 보고 나무의 흔들림을 보고 들리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나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빼놓지 않고 들렀던 놀이터도 보였다. 여행이라고 생각하자 걷던 길이 낯설어지고 오감이 깨어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때론 걷지 않던 길로 나를 옮기고 그곳에서 위로가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마음 또한 나에게 그러한 여행지인지 모른다. 일상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괴로움에 골몰하며 알아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선명해지며 다시 떠나 볼 용기도 생겼다.


 항상 내가 아닌 쪽으로 나를 데려가려 했다. 전전긍긍하면서. 실패할까 불안해하면서. 새 노트를 마음껏 시작하지 못하고, 틀려도 괜찮다, 실수해도 좀 별로여도 뭐 어때, 하며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나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다그쳤다. 불편한 상황 속에 나를 밀어 넣고 해내길 기대하며 스스로 상처 입었다. 일상이 무언가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으로 지배될 때 몸과 마음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을 못 들은 척 생활은 뭉뚱그려지고 슬픔이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상 없는 부담과 두려움이 내 안에서 뒤엉켜 나 또한 그 속도에 빨려 들어갈 때, 거기서 나를 꺼내줄 힘은 그 무엇도 누구도 아닌 일상력이었다. 나의 일상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은, 그 어수선함 속에 '내가 좋아하는 나'를 나와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특정한 물건이나 대상에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따라서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p.111


 책을 읽으며 이미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을 가름했다. 아무것도 아닌 듯했던 나의 일상을 알아보고 프레임을 씌워 소중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은, 아름다움은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며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발견하고 간직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옹졸해질 때마다 책을 펼쳤다. 펼쳐진 페이지에서 호흡을 되찾았다. 삶에서 재발견한 것들로 잃어버렸던 일상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덜어내며 간결해지고 간절해졌다. 그리고 '굳이'를 아끼지 않기로 했다. '굳이'하고 싶은 끌림에 어김없이 지기로 했다. '아름다움은 늘 우리 주변에 있고, 그것은 우리가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p.139) 으니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유지하며' 그것을 알아보고 끌어안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나러 오늘로 여행을 떠난다. 나의 마음이 틀리지 않다 이야기해 준 든든한 책이 있어 이 여정은 당분간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 덧, 굳이의 뜻을 찾아보다가 의외의 발견을 했다. 1. (부)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2. (부) 고집을 부려 구태여.

 하나의 단어에 상반된 듯한 두 개의 뜻. 대부분 두 번째 뜻으로 쓸데없이 하는 일을 가리키며 사용해왔는데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란 뜻이 있었다. 단단한 마음이란 고집을 부리는 일과 별다르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하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를 믿는 단단한 마음의 일부... 상황을 어떤 단어로 어떤 뜻으로 표현할지, 그것을 어떻게 볼지는 나의 생각과 선택이구나 싶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충분할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러한 단어들로 가득한 내가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일단 나에게 잘하자! 


이미 아름다운 나의 일상을  

굳이 손가락으로 짚어보는 연습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p.129  





*해당 도서는 서평을 위해 자기발견 매거진 컨셉진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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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이름 - 우리가 몰랐던 독서법 125
엄윤숙 지음 / 사유와기록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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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새해 첫 책


 새해에 닿아 첫 책이 도착했다. 하얀 표지에 『독서의 이름』이라는 간결하고도 단호한 제목이 정갈하게 박혀있다. 표준국어대사전뿐만 아니라 우리 고전에서 길어올린 독서의 이름들이 125가지 담겨있는 책. 독서라는 단어 외에 어떤 말로 글 읽기를 말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책 속에서 다양한 이름과 이야기를 만나며 내 곁의 독서를 다시 보게 된다. 내게 독서는 무엇인가, 하고.

 한겨울 한기 서린 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를 곁에 두고 읽는 책은 삶을 너그럽게 바라보게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준다. 한때 독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와 싸우는 일이기도 했고 내 밑바닥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중년의 언저리 이른 지금은 나와 비슷한 마음을 발견하고 응원하며 함께 걷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읽는 일이 나를 견디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읽고 돌아서면 사라질까 봐 문장을 붙들려 안간힘 쓰던 때가 있었다. 책을 읽어도 내 안에 뜨겁게 구르는 불안만이 가득했던 그때. 멈추지 않고 속도를 덜어내며 책을 읽고 메모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뜨거운 마음을 놓아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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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많이 못 읽었다고 걱정하는 대신 잘못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 매일매일 읽지 않았다고 근심하는 대신 틀리게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근심해야 한다. - 오독(誤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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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권씩 읽어치우는 독서, 생각 없이 그저 이것저것 마구 읽어버리는 남독은 안 읽느니만 못하다. - 남독(濫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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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의 경험이 말할 수 없이 달콤하고 근사하다는 것을 아이의 가슴에 심어주는 엄마와 아빠, 삼촌과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자. - 완독(完讀) 중에서


 매일 버릇처럼 펼치고 읽던 행위의 이름들을 만나며 살아있는 것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의 이름』을 읽은 이후 나의 독서가 풍부한 방법으로 새로워지리라는 느낌도 들었다. '물을 바라보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맹자의 말씀처럼, 바라볼 때 알고 품을 수 있다. 바라볼 때 규모와 깊이와 뜻을 짐작하여 실감하고 감명하고 감동할 수 있다.(p.6) '나에게 독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품을 때 독서는 내게 가치와 의미 있는 것이 되고, 하나의 존재가 되어 나를 품는다. 흘러가는 것을 붙잡아 마주보고 인식할 때 그것은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독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났다. 독서를 하며 일어나는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경험. 독서에서 경계해야 할 것들과 인지해야 할 것들. 혹은 몰랐던 독서법과 이미 하고 있었으나 이름 없던 일들까지. 필요한 마음과 덜어내야 할 마음을 분간해 보는 시간이었다. 배독*하며 읽는 순간들이 삶을 높이고 독서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옛사람의 삶에 얽힌 독서는 그 당시에 글을 읽던 이의 마음을 가늠하게 한다. 어떤 마음으로 읽었던 것일까. 어떤 간절함으로. 독서의 이름은 저마다의 삶에서 태어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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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하나를 읽을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겹쳐 보이고, 글 한 줄을 읽을 때마다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책 한 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겁게 달궈지고,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달려갈 곳의 목록이 늘어나는 것이 독서의 참뜻이다. - 신독(身讀) 중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책을 읽는 자에게 권하는 열독(閱讀), 진짜 독서에 다다르게 하는 암독(暗讀), 초행의 느림과 서투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초독(初讀), 독서의 참뜻을 담고 있는 신독(身讀) 등 독서의 이름을 따라가며 모두 품고 싶은 욕심이 들 만큼 문장도 이야기도 어느 하나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 아름다움을 반의반만이라도 나의 삶에 가져와 깊이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곁에 두고 아침마다 기도하듯 한 페이지를 열어 그날의 독서법으로 하루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서가 그런 것처럼 삶 또한 다르지 않기에. 독서의 이름으로, 그러한 태도로 읽어내는 하루는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겨줄까. 오늘 펼친 페이지는 '필독(畢讀)'-계산이 서야 결심이 서고, 시작을 해야 끝을 본다. 해야 할 일을 헤아려 계산하고 결심하고 행하며 마주한 하루 끝에 평온함으로 다음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배독(拜讀) 절을 올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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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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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명) 아주 사무치게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

사무치다 (동) 깊이 스며들어 멀리까지 미치다.


 미움은 자기검열의 대상이기에 끊임없이 숨기고 누르며 덮어놓는다. 꺼내고 싶지만 꺼낼 수 없는, 쌓이고 쌓여 가장 무겁고 묵은 내면의 짐이 된다. 어느새 스며들고 퍼져 형체도 없는 파괴력을 갖는다. 증오가 된다. 책을 읽으며 증오라는 감정이 나와 무관하지 않고 가깝게 느껴져 두려웠다. 증오의 사례들은 잔혹하며 증오가 증오의 대상을 제거하는 것으로 혹은 다른 대상이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일상에 널린 부정적 감정을 연료로 자라나 사악하고 계산적인 행동을 보이며 복잡한 공격성을 띤다. 우발적인 것이 아닌 은밀하고 치밀하게 표출되며 상대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근거 없는 비난을 행동의 정당성으로 삼는다.


증오는 간단하게 묘사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인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p.18


 책은 그동안 범죄 혹은 정신질환과 연결되어 있던 증오의 감정을 분석하며 구체화시킨다. 증오의 탄생과 뿌리, 진실과 특징, 그와 이웃한 공격적 정서들과 사랑과 증오의 부조화인 애증. 뿐만 아니라 증오와 혐오가 확산되며 소셜 미디어 혐오 댓글과 정치적 선동에 악용되는 현재까지. 어느새 사람 사이에 만연한 얼굴 없는 증오들은 관계의 단절과 개인을 고립을 가져와 삶의 무력감을 유발한다. 이로써 새로운 증오가 계속 탄생한다. 저자는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증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고자 한다. 실체를 알아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오를 비난과 한탄의 대상으로 삼기보단 서로를 파괴하는 증오를 멈추고 좋은 방향으로 함께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잔인하고 격정적이며 냉혹하다 할지라도 증오는 일상의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p.53


 증오는 '무력감'으로 오며 '의지, 갈망, 열심, 결심 같은 중요한 심리적 동기가 틀어막히면' 발생한다. '증오는 긍정적 반응의 결여로 인한 실망으로 촉발'된다.


부모의 미소나 가족의 격려처럼 애정이 담긴 관심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부드러운 힘이다. 인정과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은 이런 따뜻함에 인색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호 존중과 품격 있는 만남이 중요하다. 인간은 평생 누군가 자신을 소중히 여겨 주고 믿어 주기를 갈망한다. 간단히 말해서 핵심은 언제나 사랑이다. -p.54


 감정의 굶주림을 느낄 때 사람은 공격성을 드러낸다. 감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서 무력감에 사로잡혀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상대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증오라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p.56) 어쩌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사랑받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과 증오마저도.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들이 품은 칼날이 증오라는 생각에 슬펐다. 증오 범죄와 자기혐오, 디지털 분노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에서 맞닥뜨리는 건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끔찍한가를 확인하고 처벌에 혈안이 된 또 다른 증오다. 증오 범죄는 결코 타협될 수 없지만 그 이면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던 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숨어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증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우리는 증오를 인정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증오와 마주 서야 한다. 그것이 파괴력을 갖기 전에 침묵 밖으로 꺼내고 응대하며 공감해야 한다. 이는 마지막 두 챕터, 증오 극복 10단계, 증오로 얼룩져 가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법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소통을 통해서만 상대의 생각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럴 때야 비로소 상대는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전체 면모에서 파악되는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p.257


 '무시하고 외면하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는 증오를 끌어안고 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감정은 외면할수록 힘을 갖는다. 속 끓이며 삭이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고 떠나보내야 한다. '오직 공감 앞에서 증오는 목표와 의미를 잃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심리와 사회적 원인을 함께 고려하며 증오를 맞이하려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 개인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개인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서로에게 일방적인 공감을 강요하는 일이 되어선 안된다. 다양한 개인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하는 공동체로 소통하며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개인의 가치를 존중받고 인정받기 위해선 또 다른 개인이 함께 있어야 한다. 증오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이 그 우위에 서는 듯하지만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또 다른 증오가 될 뿐이다.


살아있는 시한폭탄이 될 것인가. 

사랑이 될 것인가.


 이 괴리가 큰 만큼 감정에겐 인간을 그러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판단하지 않는 관심과 공감. 서로에게 필요한 건 존중과 배려다. 혐오와 증오를 멈추는 것이 강력한 제재와 힘이 아닌 따뜻한 관심과 공감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마음으로 나의 감정을 적절히 꺼내 표현하고 흘려보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증오에 대한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주 작은 일상 속 감정의 씨앗으로 태어나 불꽃이 되어 사그라지는 한 사람을 알게 된 듯 느껴진다. 누구나의 마음 안에 크고 작게 존재하는 증오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게 되어 안심이 되는 한 편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일기도 한다. 그 모든 것 아래 사랑이 있음을 나는 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언제나 용서와 평화를 선택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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