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재발견 -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사는 144인의 일상력
컨셉진(월간지) 편집부 지음 / 컨셉진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고 있나요?


 그렇게 살고 싶고 살아도 된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해야 하는 일로 습관처럼 몸이 기운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으며 나를 보살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지난 5월의 부담감을 버티지 못하고 마음이 쓰러졌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그때 컨셉진의 질문을 만났고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멀어진 나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나'를 찾고 싶었다. (넘어진 채로 좀 있어도 되는데.) 나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나로 살고 싶지만 맘처럼 되지 않아 지쳐버린 내게 힘이 될 문장을 만나고 싶었다. 책을 받고 에디터의 편지를 읽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사는 144인이 전한 일상력을 통해 평범했던 일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사는 법을 발견하고,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DITOR'S LETTER> 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차례'를 본 일이 있는지. 차례만 읽어도 값을 다했다. 인생을 찬란하게 만드는 가족과의 시간, 모두에게 아름다운 일상 떠올리기, 계절의 질감을 간직한 제철 채소 먹기……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꽉 들어찬다. 웅크리고 있던 어깨에 힘이 풀리고 몸 안에 공기가 차오르는 느낌.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법을 연구하는 컨셉진이 선정한 144인의 일상에 아름다움이 물든 순간을 모아 읽고 간직할 수 있다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에서 직접 고른 하이라이트 장면을 읽으며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좋아하는 색으로 문장에 밑줄을 긋고 페이지의 여백에 머무르며 그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 나에게도 흘러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상이 반복이라면, 나는 그 반복을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순환하듯 여행하며 나를 즐겁게 할 것을 찾아 나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일상은 더없이 아름다워진다. -p.139


 이 페이지를 읽은 날 돌아오는 퇴근길을 낯설게 걸었다. 하늘을 오래 보고 나무의 흔들림을 보고 들리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나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빼놓지 않고 들렀던 놀이터도 보였다. 여행이라고 생각하자 걷던 길이 낯설어지고 오감이 깨어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때론 걷지 않던 길로 나를 옮기고 그곳에서 위로가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마음 또한 나에게 그러한 여행지인지 모른다. 일상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괴로움에 골몰하며 알아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선명해지며 다시 떠나 볼 용기도 생겼다.


 항상 내가 아닌 쪽으로 나를 데려가려 했다. 전전긍긍하면서. 실패할까 불안해하면서. 새 노트를 마음껏 시작하지 못하고, 틀려도 괜찮다, 실수해도 좀 별로여도 뭐 어때, 하며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나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다그쳤다. 불편한 상황 속에 나를 밀어 넣고 해내길 기대하며 스스로 상처 입었다. 일상이 무언가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으로 지배될 때 몸과 마음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을 못 들은 척 생활은 뭉뚱그려지고 슬픔이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상 없는 부담과 두려움이 내 안에서 뒤엉켜 나 또한 그 속도에 빨려 들어갈 때, 거기서 나를 꺼내줄 힘은 그 무엇도 누구도 아닌 일상력이었다. 나의 일상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은, 그 어수선함 속에 '내가 좋아하는 나'를 나와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특정한 물건이나 대상에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따라서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p.111


 책을 읽으며 이미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을 가름했다. 아무것도 아닌 듯했던 나의 일상을 알아보고 프레임을 씌워 소중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은, 아름다움은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며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발견하고 간직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옹졸해질 때마다 책을 펼쳤다. 펼쳐진 페이지에서 호흡을 되찾았다. 삶에서 재발견한 것들로 잃어버렸던 일상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덜어내며 간결해지고 간절해졌다. 그리고 '굳이'를 아끼지 않기로 했다. '굳이'하고 싶은 끌림에 어김없이 지기로 했다. '아름다움은 늘 우리 주변에 있고, 그것은 우리가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p.139) 으니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유지하며' 그것을 알아보고 끌어안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나러 오늘로 여행을 떠난다. 나의 마음이 틀리지 않다 이야기해 준 든든한 책이 있어 이 여정은 당분간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 덧, 굳이의 뜻을 찾아보다가 의외의 발견을 했다. 1. (부)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2. (부) 고집을 부려 구태여.

 하나의 단어에 상반된 듯한 두 개의 뜻. 대부분 두 번째 뜻으로 쓸데없이 하는 일을 가리키며 사용해왔는데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란 뜻이 있었다. 단단한 마음이란 고집을 부리는 일과 별다르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하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를 믿는 단단한 마음의 일부... 상황을 어떤 단어로 어떤 뜻으로 표현할지, 그것을 어떻게 볼지는 나의 생각과 선택이구나 싶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충분할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러한 단어들로 가득한 내가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일단 나에게 잘하자! 


이미 아름다운 나의 일상을  

굳이 손가락으로 짚어보는 연습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p.129  





*해당 도서는 서평을 위해 자기발견 매거진 컨셉진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의 이름 - 우리가 몰랐던 독서법 125
엄윤숙 지음 / 사유와기록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5 새해 첫 책


 새해에 닿아 첫 책이 도착했다. 하얀 표지에 『독서의 이름』이라는 간결하고도 단호한 제목이 정갈하게 박혀있다. 표준국어대사전뿐만 아니라 우리 고전에서 길어올린 독서의 이름들이 125가지 담겨있는 책. 독서라는 단어 외에 어떤 말로 글 읽기를 말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책 속에서 다양한 이름과 이야기를 만나며 내 곁의 독서를 다시 보게 된다. 내게 독서는 무엇인가, 하고.

 한겨울 한기 서린 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를 곁에 두고 읽는 책은 삶을 너그럽게 바라보게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준다. 한때 독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와 싸우는 일이기도 했고 내 밑바닥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중년의 언저리 이른 지금은 나와 비슷한 마음을 발견하고 응원하며 함께 걷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읽는 일이 나를 견디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읽고 돌아서면 사라질까 봐 문장을 붙들려 안간힘 쓰던 때가 있었다. 책을 읽어도 내 안에 뜨겁게 구르는 불안만이 가득했던 그때. 멈추지 않고 속도를 덜어내며 책을 읽고 메모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뜨거운 마음을 놓아줄 수 있었다.


-

남보다 많이 못 읽었다고 걱정하는 대신 잘못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 매일매일 읽지 않았다고 근심하는 대신 틀리게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근심해야 한다. - 오독(誤讀) 중에서

-

하루에도 몇 권씩 읽어치우는 독서, 생각 없이 그저 이것저것 마구 읽어버리는 남독은 안 읽느니만 못하다. - 남독(濫讀) 중에서

-

완독의 경험이 말할 수 없이 달콤하고 근사하다는 것을 아이의 가슴에 심어주는 엄마와 아빠, 삼촌과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자. - 완독(完讀) 중에서


 매일 버릇처럼 펼치고 읽던 행위의 이름들을 만나며 살아있는 것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의 이름』을 읽은 이후 나의 독서가 풍부한 방법으로 새로워지리라는 느낌도 들었다. '물을 바라보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맹자의 말씀처럼, 바라볼 때 알고 품을 수 있다. 바라볼 때 규모와 깊이와 뜻을 짐작하여 실감하고 감명하고 감동할 수 있다.(p.6) '나에게 독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품을 때 독서는 내게 가치와 의미 있는 것이 되고, 하나의 존재가 되어 나를 품는다. 흘러가는 것을 붙잡아 마주보고 인식할 때 그것은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독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났다. 독서를 하며 일어나는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경험. 독서에서 경계해야 할 것들과 인지해야 할 것들. 혹은 몰랐던 독서법과 이미 하고 있었으나 이름 없던 일들까지. 필요한 마음과 덜어내야 할 마음을 분간해 보는 시간이었다. 배독*하며 읽는 순간들이 삶을 높이고 독서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옛사람의 삶에 얽힌 독서는 그 당시에 글을 읽던 이의 마음을 가늠하게 한다. 어떤 마음으로 읽었던 것일까. 어떤 간절함으로. 독서의 이름은 저마다의 삶에서 태어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

글자 하나를 읽을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겹쳐 보이고, 글 한 줄을 읽을 때마다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책 한 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겁게 달궈지고,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달려갈 곳의 목록이 늘어나는 것이 독서의 참뜻이다. - 신독(身讀) 중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책을 읽는 자에게 권하는 열독(閱讀), 진짜 독서에 다다르게 하는 암독(暗讀), 초행의 느림과 서투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초독(初讀), 독서의 참뜻을 담고 있는 신독(身讀) 등 독서의 이름을 따라가며 모두 품고 싶은 욕심이 들 만큼 문장도 이야기도 어느 하나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 아름다움을 반의반만이라도 나의 삶에 가져와 깊이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곁에 두고 아침마다 기도하듯 한 페이지를 열어 그날의 독서법으로 하루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서가 그런 것처럼 삶 또한 다르지 않기에. 독서의 이름으로, 그러한 태도로 읽어내는 하루는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겨줄까. 오늘 펼친 페이지는 '필독(畢讀)'-계산이 서야 결심이 서고, 시작을 해야 끝을 본다. 해야 할 일을 헤아려 계산하고 결심하고 행하며 마주한 하루 끝에 평온함으로 다음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배독(拜讀) 절을 올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증오 (명) 아주 사무치게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

사무치다 (동) 깊이 스며들어 멀리까지 미치다.


 미움은 자기검열의 대상이기에 끊임없이 숨기고 누르며 덮어놓는다. 꺼내고 싶지만 꺼낼 수 없는, 쌓이고 쌓여 가장 무겁고 묵은 내면의 짐이 된다. 어느새 스며들고 퍼져 형체도 없는 파괴력을 갖는다. 증오가 된다. 책을 읽으며 증오라는 감정이 나와 무관하지 않고 가깝게 느껴져 두려웠다. 증오의 사례들은 잔혹하며 증오가 증오의 대상을 제거하는 것으로 혹은 다른 대상이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일상에 널린 부정적 감정을 연료로 자라나 사악하고 계산적인 행동을 보이며 복잡한 공격성을 띤다. 우발적인 것이 아닌 은밀하고 치밀하게 표출되며 상대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근거 없는 비난을 행동의 정당성으로 삼는다.


증오는 간단하게 묘사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인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p.18


 책은 그동안 범죄 혹은 정신질환과 연결되어 있던 증오의 감정을 분석하며 구체화시킨다. 증오의 탄생과 뿌리, 진실과 특징, 그와 이웃한 공격적 정서들과 사랑과 증오의 부조화인 애증. 뿐만 아니라 증오와 혐오가 확산되며 소셜 미디어 혐오 댓글과 정치적 선동에 악용되는 현재까지. 어느새 사람 사이에 만연한 얼굴 없는 증오들은 관계의 단절과 개인을 고립을 가져와 삶의 무력감을 유발한다. 이로써 새로운 증오가 계속 탄생한다. 저자는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증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고자 한다. 실체를 알아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오를 비난과 한탄의 대상으로 삼기보단 서로를 파괴하는 증오를 멈추고 좋은 방향으로 함께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잔인하고 격정적이며 냉혹하다 할지라도 증오는 일상의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p.53


 증오는 '무력감'으로 오며 '의지, 갈망, 열심, 결심 같은 중요한 심리적 동기가 틀어막히면' 발생한다. '증오는 긍정적 반응의 결여로 인한 실망으로 촉발'된다.


부모의 미소나 가족의 격려처럼 애정이 담긴 관심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부드러운 힘이다. 인정과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은 이런 따뜻함에 인색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호 존중과 품격 있는 만남이 중요하다. 인간은 평생 누군가 자신을 소중히 여겨 주고 믿어 주기를 갈망한다. 간단히 말해서 핵심은 언제나 사랑이다. -p.54


 감정의 굶주림을 느낄 때 사람은 공격성을 드러낸다. 감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서 무력감에 사로잡혀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상대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증오라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p.56) 어쩌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사랑받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과 증오마저도.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들이 품은 칼날이 증오라는 생각에 슬펐다. 증오 범죄와 자기혐오, 디지털 분노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에서 맞닥뜨리는 건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끔찍한가를 확인하고 처벌에 혈안이 된 또 다른 증오다. 증오 범죄는 결코 타협될 수 없지만 그 이면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던 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숨어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증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우리는 증오를 인정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증오와 마주 서야 한다. 그것이 파괴력을 갖기 전에 침묵 밖으로 꺼내고 응대하며 공감해야 한다. 이는 마지막 두 챕터, 증오 극복 10단계, 증오로 얼룩져 가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법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소통을 통해서만 상대의 생각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럴 때야 비로소 상대는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전체 면모에서 파악되는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p.257


 '무시하고 외면하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는 증오를 끌어안고 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감정은 외면할수록 힘을 갖는다. 속 끓이며 삭이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고 떠나보내야 한다. '오직 공감 앞에서 증오는 목표와 의미를 잃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심리와 사회적 원인을 함께 고려하며 증오를 맞이하려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 개인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개인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서로에게 일방적인 공감을 강요하는 일이 되어선 안된다. 다양한 개인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하는 공동체로 소통하며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개인의 가치를 존중받고 인정받기 위해선 또 다른 개인이 함께 있어야 한다. 증오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이 그 우위에 서는 듯하지만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또 다른 증오가 될 뿐이다.


살아있는 시한폭탄이 될 것인가. 

사랑이 될 것인가.


 이 괴리가 큰 만큼 감정에겐 인간을 그러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판단하지 않는 관심과 공감. 서로에게 필요한 건 존중과 배려다. 혐오와 증오를 멈추는 것이 강력한 제재와 힘이 아닌 따뜻한 관심과 공감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마음으로 나의 감정을 적절히 꺼내 표현하고 흘려보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증오에 대한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주 작은 일상 속 감정의 씨앗으로 태어나 불꽃이 되어 사그라지는 한 사람을 알게 된 듯 느껴진다. 누구나의 마음 안에 크고 작게 존재하는 증오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게 되어 안심이 되는 한 편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일기도 한다. 그 모든 것 아래 사랑이 있음을 나는 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언제나 용서와 평화를 선택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책, 사춘기 마음을 부탁해 - 청소년의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는 쓰담쓰담 그림책 상담실
남기숙 지음 / 상도북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 나를 붙들어 준 그림책을 기억한다. 집 앞 도서관에서 열린 동화구연 수업에서였다. 누군가 나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을 들은 경험이었다. 앞에 선 선생님이 동화책을 넘기며 읽어주시는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가슴이 몽글몽글 벅찼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눈을 맞추며 가만가만 책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그 순간, 위로와 감동을 느꼈다. 지금도 그때의 마음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 뒤로 나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마음이 달라졌던 것도. 그렇게 동화구연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도서관에서 동화구연 봉사를 하게 되었고, 도민 강사로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보육교사가 되었다. 내향적인 나의 미래에 있어 전혀 예측할 수 없던 길이었다. 따뜻한 어른과 그림책으로 연결되어 내가 달라지게 된 그날, 내 안에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그날을 지금도 떠올리며 아이들을 만나고 나를 돌아본다.


아무리 우울한 순간이라 해도 절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입니다. 《어두운 겨울밤에》는 작가 플로라 맥도넬 자신이 우울증을 겪었던 경험을 담은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우울증이라는 깊고 깊은 겨울밤을 지나 탄생한 이 그림책 자체가 바로 희망의 증거가 아닐까요? -p.106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은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림책을 통해 받은 위로와 용기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면서,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나를 더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충만하고 행복하지 않은 채로 아이들에게 그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됐다.

 내 아이를 위한 독서였는데 자꾸만 내가 떠올랐다. 마흔이 넘어 이제야 나를 만난다. 그 과정에서 겪는 고민들을 아이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 나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고민들은 나이를 먹어도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들은 나와 달리 성인이 되기 전에 답을 찾게 될까.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쓰럽고 뭉클하고 대견하다. 


 사춘기 자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의 도움을 받고 싶지만 육아서가 부담스럽고 어려운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다른 아이들의 고민을 통해 내 아이의 모습을 거리를 두고 보게 되는 것과 더불어 나의 유년을 떠올리게 되고, 책 속 질문에 답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이를 이해하고 돌보는 부모가 되기 위해선 내가 먼저 돌봄을 받아야 한다. 누군가가 채워주는 돌봄은 나이가 들수록 어렵고, 어릴 때 충분히 받고 자라는 일도 드물다. 그러니 내가 나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충분하게,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돌봄을 나에게 먼저 해내야 한다.


인생에서 두려운 것이 어디 시험뿐일까요. 사춘기가 지나고 나면 또 새로운 두려움이 여러분 앞에 나타날 거예요. 사자로부터 벗어난 파랑 아이가 이번에는 곰과 마주쳤듯이 말이지요. 어쩌면 인생은 계속해서 새로운 두려움을 만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춘기에 진정으로 중요한 과제는 단지 높은 시험 점수를 얻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대하는 자세를 익히는 것입니다. -p.80


 아이들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학업만큼 삶의 고민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힘이 든다.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학업으로, 시간이 없어서 불편한 마음을 피하고 미룬다. 아이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알고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불편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힘과 마음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란다. 마음이 아프기 전에 이러한 힘과 마음을 다져가는 과정이, 연습이,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어른과 함께. 비난과 질책이 아닌 긍정의 말과 응원으로 좋은 질문을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 아이들 곁에 좋은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런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그림책을 읽는다.


 사람을 바꾸는 말은 어렵고 멋진 말이 아니다. 익숙하지만 사려 깊고 따뜻한 한 마디의 말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림책에 쓰인 언어들이 그렇다. 짧지만 묵직하게 마음을 누르고 뻐근한 그 자리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엔 외면했던 감정들, 우리가 품어야 할 진짜 모습이 있다. 그림책은 읽고 즐기는 일을 넘어 각자의 이야기를 길어올리고 내보이게 한다. 아이와 부모,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심리적 거리를 좁혀 서로의 마음을 마주 보게 한다. 어렵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려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그 마음이 어려워 망설이게 된다면 이 책이, 돋보기쌤의 이야기가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오래 담고 싶은 문장 발견했다. '혼자만의 작은 모험' 그 표현을 보는 순간 그래 이거야, 하며 마음이 설렜다. 내가 지향하는 삶. 혼자만의 작은 모험 안에서 스스로의 선택과 실행으로 채워진 이야기를 갖는 것. 그 과정을 음미하고 숙려하는 것. 파랑 아이의 얼굴에 두려움 대신 차오르던 기대감(p.78)처럼 말이다. 오래전 나를 위해 샀던 『그림책으로 쓰담쓰담』 그리고 『그림책, 사춘기 마음을 부탁해』까지. 꼭 필요한 어른의 목소리로 질문과 응원이 담겨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그러나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목소리와 이야기 나누게 된다면 우리는 좀 더 좋은 어른 쪽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혼자만의 작은 모험을 마치고 아가타는 다시 캠핑장으로 향합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아가타는 아이들과 어울려 모닥불 앞에 앉습니다.

그 자리가 자신에게 딱 맞게 느껴집니다.

산의 환한 웃음을 마음에 품은 채 아가타는 잠자리에 듭니다.

그렇게 산속 캠핑장의 밤은 깊어 갑니다.

-p.96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4-19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저 불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불꽃은 더 찬란하고 빛나기 때문이다. -p.15


 강릉으로 여행을 왔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보고 싶은 책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피융 파바바바바방! 어둠이 덮인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한다. 허공으로 쏘아진 불꽃이 한순간 강렬한 빛과 소리로 부서진다. 사람들의 와, 하는 소리. 행인의 시선이 그곳에 모였다 흩어진다. 모자로 보이는 일행은 노부인을 바다 앞에 세워두고 멀찍이 뛰어와 사진을 찍는다. 어서 보여주고 싶은 뒷모습으로 모래 위를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모습이 아이 같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하나의 담요를 덮은 두 사람이 거기 있고. 또 고개를 들면 혼자 걷는 이가 있고. 다시 고개를 들면 아무도 없다. 순간 그 장면들이 불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책에서도 그런 불꽃을 보았다. 작가의 이야기, 작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가 그들에게 건넨 말과 그렇게 나에게로 온 문장들.


 그녀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누구보다 밝고 진지한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털썩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 무방비한 슬픔의 해제가 그녀의 무기였다. 오히려 그녀를 단단하게 만드는 유연함. 그녀의 춤을 닮았다.


 마음을 고쳐먹고 고객들을 대하자 일이 즐거워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고된 삶을 견뎌내게 할 의지다.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다. -P.37


 항상 시간은 모자라고 조급함과 조바심에 몸이 달았다. 늘 종종거리며 지내는데 남는 것은 없는 하루. 허무하고 무력했다. 자주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쫓느라 애썼다. 애써 가진 것들을 내팽개쳐 두고 나에게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매며 시간을 소진했다. 나는 이 삶에 무얼 기대하며 사는 걸까.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당신에겐 큰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 무시무시한 모호함들로 삶은 점점 어렵기만 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그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울다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장애인 시위에 대해 아들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고, 샌드위치도 꿈이 될 수 있다는 것과(「당신의 꿈은 샌드위치」) 선한 마음도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정지된 도시」)에 대해 생각했다. 서슴없이 감정을 드러내고 상처를 주다 부둥켜안는 모녀를 보면서는 늘 조심하기만 했던 엄마와 나의 관계도 생각나고. 나도 부모님이 오지 않은 졸업식에서 내가 그들에게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싶었던 적이 있다. 나는 두려웠다. 두려워서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의 서운함보다 부모가 된 마음으로 작가님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하고 그리웠을지. 내가 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딸에서 엄마로, 다시 내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문장 사이에 그녀가 뛰어넘은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들을 가늠하며 글로 뛰어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곧 잃어버릴 세상이어서 모든 게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p.123


 하루하루를 태워 만들어내는 불꽃들. 불꽃은 타올라 소진한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그래서 위험하지 않고 아름답다. 우리는 그러한 소멸을 꽃이라 부른다. 그녀의 꽃을 통해 내 삶의 꽃을 본다. 내 주변의 꽃을 본다. 저마다 스스로를 태우며 다른 색깔로 함께하기에 알록달록 무늬가 되는 그 우연이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있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나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알면서도 서로에게, 스스로에게 여전히 해주기 어려운 말. 모질게 지적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세상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 앞에 우산을 들고 설 수 있는 힘.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는 건 딱 그만큼의 힘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내 것을 지키며 버텨낼 수 있는 힘. 그 우산 아래 누군가를 들여놓을 수 있는 힘. 어떠한 원망도 미움도 붙잡지 않고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나로 설 수 있는 것. 그것을 위해 매일을 버틴다. 지랄맞은 나날이 나를 키운다고 생각하면서. 지랄맞은 나날을 시원하게 태워 불꽃으로 완성시키는 기쁨을 떠올리면서.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영원이다.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비록 제한적인 감각이라 해도 나는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으며 낯선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p.50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장애가 있지만 음악중심 무대에 서고, 드라마에 나오고, 여행지에서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삶이 우리와 가까워져 아무 경계 없이 이름을 부르고 함께 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길 바란다. 이것이 나의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나조차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모른다는 말이 부끄럽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견뎌야 하는 편견과 이 사회가 배려하지 않는 부분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늘 걸어 다니던 길이 휠체어로는 다니기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며 알게 되었으니까. 세상은 불편한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세상은 어디 그런가. 공평하다고 하면서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필요한 도움은 스스로 구해야 하며 그마저도 돈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그녀의 글에도 나와 있지만 식은땀이 흐른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알지 못해 볼 수 없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 그 앞에 넙죽 엎드려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가 쌓여 이르게 될 그녀의 축제를 응원한다. 내 안에 터지는 폭죽과 그 소멸을, 기쁘게 끌어안는 용기를 알게 한 그녀의 문장 앞에 이 글을 꽃다발처럼 내려놓고 싶다. 당신이 애써 살아내고 있는 지랄맞은 하루하루를 나도 웃으며 건너볼 마음이 생겼다고. 알게 되어 반갑고 고맙다고. 오늘 하루는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란다고 덧붙이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