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살인사건 - IL.SIN MYSTERY COLLECTION 054
S.S.반다인 지음 / 일신서적 /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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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다인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을 꼽으라면 <그린 살인 사건>과 이 작품이라고 한다. 아직 <벤슨 살인 사건>, <그린 살인 사건>, <주교 살인 사건>밖에 읽어보지 못한 상황이라 이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낫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벤슨 살인 사건>은 두 작품에 비해 조금 떨어진 다고 말할 수는 있다.

동요 <마더 구즈>와 체스, 그리고 입센의 작품으로 연결되는 수학자의 살인 이야기인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단 두 명만이 용의 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멋을 지나치게 부려 범인을 쉽게 드러내는 단점이 있다. 또한 내가 탐정 중에 가장 싫어하는 말 많고 잘난 척하는 파일로 반스가 탐정이라는 점도 짜증나게 하는 단점이다. 그렇지만 작품의 구성이나 짜임새 면에서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무슨 아이들의 자장가에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지 그 상세한 설명이 너무 잔인하게 생각되었고 그 노래에 맞춰 사람을 살해한다는 방식 또한 끔찍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어 옭아매려는 데 기인하다니... 인간의 복수심과 질투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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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살인 - 범죄소설의 사회사
에르네스트 만델 지음, 이동연 옮김 / 이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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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의 사회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이 책은 범죄 소설을 통해 그 시대를 분석해 본 책이다. 저자가 맑시즘에 입각해서 부르주아의 관점만을 반영하는 범죄 소설을 통해 부르주아로 지칭되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 이 작품을 읽노라면 도대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체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고 정의를 외치지 않으며 그저 그런 대로 살아가는 것뿐일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범죄 소설을 탐닉하는 이유는 범죄란 자본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읽으면서 이런. 세상에. 하면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어쩔 것인가. 안 살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을.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로서 그 속에 들어 있는 작가들의 편견이라든가, 사상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혹은 작가가 아주 나쁜 인간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재미있게 읽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사실만 가지고 작가의 작품을 평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선과 악의 대비 속에 어떤 것이 진정한 선이고, 어떤 것이 진짜 악인지를 생각하며 읽고 싶지도 않다.  

범죄 소설로 대변되는 설을 읽는 독자로서 이 책은 아주 흥미로울 뿐 아니라 조금 걱정스러움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추리 소설을 읽는 이유가 범죄에 대한 대리 만족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를 범죄 소설을 통해 극단적으로 표현하려 하고 지극히 자본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는 내 내면에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범죄자적 자질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막스주의자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저자의 관점에 수긍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잘못 적용되었든 아니면 그것은 이론일 뿐이든 막스주의로 인해 인간의 본성이 자본주의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자본주의의 맹점을 범죄 소설이라는 대중 소설과 접목시켜 자본주의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게 한다고 할 수 있으니 개인적인 생각은 접어도 좋을 듯 싶다.  

범죄는 인간의 탐욕의 산물이고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탐욕의 산물이다.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이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살인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하는 듯 하다. 대를 위해 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이 소수의 거부들을 위해 다수의 가난뱅이들의 죽음이 정당화된다는 논리를 이쯤에서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문화적 작품은 동시대의 사회를 반영하기 마련이고 작가에 따라 그것은 왜곡되고 수정되어 반영될 수도 있다. 누가 역사를 진실하다고 말을 한 적이 있던가 ?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묻고 싶었다. 세상은 엄연히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한다. 어떤 포장지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독자들은 안다. 알면서도 읽고, 작가들은 알면서도 쓰는 것이다.  

에르네스트 만델의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상이나 이념을 떠나 이런 식으로 사회가 나아간다면 정말 왜 사느냐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었다. 부르주아에 입각한 자본주의는 인간이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사상이다. 아니 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에 의한 이념이다. 그런 자본주의의 산물이 범죄고 그 범죄를 다룬 소설이 추리 소설이다. 추리 소설은 자본주의의 거울이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살인은 어쩌면 인간의 야성적 본능의 표출일 것이다.  

읽으면서 내내 섬뜩하고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싫어졌지만 그것이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일 것이다. 부르주아적인 인간. 저자는 플로레타리아에 입각한 시선으로 분석했지만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플로레타리아고 동시에 항상 부르주아가 되고 싶어한다. 추리 소설을 시대별로 분석한 것대로 살인이 점점 잔인해지고 살인자가 점점 그런 일을 즐기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자본주의 사회는 점점 흉악한 살인을 낳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저자의 말대로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분적인 면은 그렇겠지만 인간이라 원해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당연히 인간은 살인, 모든 잠재적 살인적 욕구와 행위를 포함해서 그 모든 것은 즐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아닌 것이다. 분명 세상은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가 과거를 그리는 것은 항상 미래가 더 나빠지기 때문이고 그러면서 그것을 교묘히 덮어두려는 것 또한 인간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니 훌륭한 사회학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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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딕 지음 / 글사랑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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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다. 그 영화가 너무 멋있어 영화의 원작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원 제목이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 가?>인 이 작품은 불안한 미래, 파괴된 미래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또한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을 완전한 인간의 종으로 묘사한 반면 작가는 로봇, 인간과 구별할 수 없게 된 안드로이드의 존재, 그들을 또 하나의 새로운 종족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아시모프의 <바이센테니얼맨>의 앤드류 마틴이 인간 대접을 받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같은, 그리고 유일한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이 작품에서처럼 안드로이드가 인간에 대항해서 고유한 존재 이유를 인간과 동일하게 대접받으려고 반란을 꿈꾼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한 단계 더 낫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SF 소설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읽은 SF 소설 중에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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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 6일전 - 추리여행 20
조난단 라티머 / 계림닷컴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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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이 <Headed for a Hearse : 영구차를 향해>인 이 작품은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다. 아내를 죽이고 사형이 확정된 사람이 사형 6일전에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는 윌리엄 크레인이라는 탐정이 모든 사건을 해결한다. 많은 곳에서 범인에 대한 암시가 있어 쉽게 범인을 추측할 수 있었고 밀실 트릭도 가볍게 풀 수 있었지만 6일이라는 시간적 긴박감이 그런 허물을 덮어 줄 만했다. 역자가 후기에 조나단 래티머가 동시대의 작가인 윌리엄 아이리시와 비교되기도 했다는데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윌리엄 아이리시의 <새벽의 추적>을 연상했다. 물론 작품 성격상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한계성이 주는 긴박감은 똑같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 단점이라면 이 작품이 어린이용으로 번역되어 작품의 하드보일드적인 매력을 반감시킨 점이다. 제대로 번역된 작품을 읽어보지 못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뛰어난 작품을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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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널리의 행운
로렌스 샌더스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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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전작인 <맥널리의 비밀>보다는 낫다. 그래도 좀 마음에 안 들지만. 도대체 로렌스 샌더스가 왜 <앤더슨의 테이프>나 <대죄 시리즈>를 쓰다가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자신보다 40살이나 어를 둔 부자가 자신의 도둑맞은 고양이를 되찾으려 하고, 부자 아내를 둔 남자가 아내를 협박하는 편지 때문에 고뇌하고 그들은 모두 사기꾼같은 영매와 관련이 있다. 항상 사건은 일어날 만한 곳에서 일어나고 가장 단순한 동기 때문에 발생한다. 당연히 나이 어린 아내가 늙은 부자에게 말썽을 일으킬 것이고, 가난한 남편이 부자 아내에게 말썽을 일으킬 것이다. 뻔한 일이다. 이 뻔한 일을 멍청한 맥널리는 행운에 의존해서 해결한다. 정말 가장 멍청한 탐정이 아닐 수 없다.

맥널리... 변호사인 부자 아버지를 둬서 플로리다에서 탐정의 이름으로 아버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유유자적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인생이란 보드카 한잔, 접시 위의 파이 한 조각과도 같은 의미다. 그런 인물이 탐정으로 등장하니 작품에 깊이도 없고 대단한 트릭도 없다.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은 한눈에 파악이 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 맥널리보다 먼저 알게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유하고 덜떨어진 탐정이 한 명쯤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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