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프로페셔널 동서 미스터리 북스 29
레니 에어드 지음, 서창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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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있는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한 남자가 악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또 한 남자를 만나 되는 일이 하나 없이 마지막에 그나마 위조 여권 업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불행을 몰고 다니는 그 남자가 또 다시 찾아온다. 이번에는 부자의 아기를 유괴해서 몸값을 받아 내자고 한다. 남자는 하기 싫었지만 반강제적으로 가담하게 되었는데 뜻밖에 구성원이 탄탄했다. 유괴할 아기 대신 부잣집에 잠시 있어 줄 아기도 대여했고, 아기를 잠시 맡아보기로 한 여자도 있었고, 가장 중요한 내부에 공모한 한패가 있었다. 드디어 그들은 일생 일대 처음으로 멋지게 아이를 유괴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되는 일이라곤 없는 범죄자 조무래기들이 이번 일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이 작품만큼 가장 비열한 범죄인 유괴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다룬 작품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유괴라는 단어가 주는 비열함, 잔인함, 몰인정,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분노를 느낄 수가 없다.  작품을 읽으면 어설프고 인간적인 좀 도둑 같은 피라미 범죄자들이 벌이는 유쾌한 쇼를 즐길 수 있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도 어쩌면 느낄 수 있었을 지 모른다. 아기는 프로페셔널? 아기가 왜 프로가 되어야 하는 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는 시작되고 모든 문제는 끝이 난다. 우리는 어떤 아기를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손이 많이 가지 않은 아기를 말할 것이다. 주는 대로 잘 먹고, 보채지 않고 잘 자고 한 마디로 어른을 성가시게 굴지 않는 아기가 가장 아기의 프로 아닐까.

자신의 자식이 유괴되서 몸값을 주고 되찾아야 할 아버지를 생각했던 유괴범들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그 부자가 인정사정없는 악당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들과는 비교할 수없는 아주 나쁜 범죄자였기 때문에 매일 빽빽 울어대는 자신의 친자식 대신 키우기에 나무랄 데 없는 울지 않는 대여 아기를 키우기 쉽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여 기르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몸값을 줄 필요가 없어지고 유괴범들은 악당에게 좋은 일만 해준 게 되어 버렸다. 프로페셔널한 범죄자가 프로페셔널한 아기를 알아본 것이다. 이것을 불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참.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들에게도 골칫거리인 빽빽 울어대는 부잣집 아기와 자신들의 프로페셔널을 자랑하는 대여 아기를 바꿔치기로 한다.  

이때부터 유괴범들은 유괴범이 아니라 정들었던 아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까 아기를 다시 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어렵다니. 악당은 역시 자식에게도 악당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무래기 범죄자들은 그에 비하면 범죄자 축에도 들지 못하는 잘못된 길에 들어선 단지 불쌍한 인생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한 유괴를 소재로 다루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이디어가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아기 소동을 다룬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코믹함과 인생의 아이러니, 작은 만족을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인생의 유머가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인생은 그래도 아름다워.'라고 말하게 되는 작품이다. 유괴라는 소재의 작품을 가장 싫어하는 나지만 이 작품만은 정말 권하고 싶다. 유괴의 수법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느낌을 전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진정한 의미의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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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라 - 바깥의 소설 26
레오나르도 파두라 지음, 고혜선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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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쿠바 작가의 작품이고 쿠바의 추리 소설이다. 중남미 소설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해하기 어려운 환상 문학을 주로 추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들,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르께스나 <픽션들>의 보르헤스가 이런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들 작품은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해하고 미로처럼 한번 빠지면 좀처럼 출구를 찾기 힘들게 만들어져 있어 독자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래서 중남미 작가의 작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출판사에 대한 믿음도 있고 또 내가 너무 영미권이나 프랑스, 일본 문학에 편중된 감이 있어 무게 중심을 균형 잡는다는 차원에서 읽게 되었다. 바깥의 소설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쿠바 혁명 정부의 가면을 벗긴 미학적 추리 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거미 여인의 키스>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게이의 등장과 콘데에게 추리의 길을 알려주는 날개 꺾인 연출가인 예전에는 반동이었지만 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문학계의 신적 존재가 된 알베르토 마르케스의 과거 회상 장면이 몽환적 환상을 자나 내 현실 도피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쿠바의 현실은 비참함 그 자체인데 말이다. 혁명 직후는 좋았다. 꿈이 있었으니까. 그때가 콘데가 가고 싶어하는 어린 시절이다. 작가를 꿈꾸던 시절. 그의 친구 말라깽이가 아직 성한 두 다리로 다니던 시절. 지금 콘데는 형사가 되어 믿었던 동료의 부패를 목격하고 말라깽이는 앙골라 내전에 참가했다 휠체어 신세가 되어 뚱보로 앉아 있게 되어 꿈도 희망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목숨이기에 다시 한번 꿈을 꾸려 한다.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서의 화장법이 뜻하는 것은 위장, 위선, 거짓 등등. 이런 뜻이다. 이 작품 「마스카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뜻하는 이 말들은 인간의 허상들을 말해 준다. 처음 읽는 쿠바 작가의 작품이다. 여장을 하고 살해당한 한 남자의 시신을 둘러싸고 살인자를 찾으려는 형사의 눈에 비친 쿠바의 오늘과 어제,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작품이지만 그 안의 한 연극 연출가의 비틀린 삶이 마치 액자 소설처럼 펼쳐져 쿠바, 그 자체가 쓰고 있는 가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체 게바라」를 읽으면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 국가, 카스트로의 나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작품 안의 정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면 그 혁명이라는 것이 누굴 위한 것이었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쿠바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다. 출판사의 시리즈 제목이 바깥의 소설이니 우리 얼마나 영미권과 일본 편향적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작가의 노벨라 네그라 4부작 시리즈 중 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벨라 네그라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우린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어릴 적 나는 우리가 어떤 명찰을 달기 위해 세상을 산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명찰을 어떤 것이든 달아야만 한다는 것이 무척 싫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사상이나 이념을 배제하고라도 사회를 구성하는 것에는 기득권자와 피 기득권자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득권자에 대한 피 기득권자에 대한 핍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탄생한 나라가 가난에 찌들고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절망감에 쌓여 살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단순하게 여장남자 게이의 살해 사건이 초점이 아니라 콘데 형사 주변 인물들이 쓰고 사는 가면을 통해 쿠바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인 이 작품은 비단 쿠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도 이런 가면이 수도 없이 많다. 그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절대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의 가면을 벗겼다고 안도해도 다른 사람이 그 가면을 이어 받아 쓸 것이고 지금의 나조차도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 테니까. 단지 인정하지 않을 뿐.   

읽어보니 신선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쿠바라는 나라의 정치 상황과 소시민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시거나 체 게바라, 아바나의 서구인의 추억으로 엿보는 쿠바가 아닌 내 눈으로 들여다보는 쿠바.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 작가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작품을 출판하고 싶다고 해서 감격했다는 말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만 할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면이 아닌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정말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작가는 애써 작품에서 모든 이들에게 가면을 씌우고 벗기면서 또 다른 가면을 쓰기를 준비시킨다. 아마도 그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어떤 사회적 모순과 처해진 실상의 다른 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사는 곳은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기왕 쿠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 만큼 책임을 가지고 시리즈를 모두 출판해 주시는 것은 어떨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보다 읽기 쉬우면서 독특한 쿠바를 잘 나타내고 그러면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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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주교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7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장백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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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가드너의 작품은 모두 어떤 면에서 연결된다. 다음 작품의 등장 인물이 전 작품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전의 작품을 읽지 못해서 이 작품이 전 작품 <The Case of the Sleepwalker's Niece>에서 어떻게 말더듬이 주교가 등장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인 <The Case of the Lame Canary>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오는 다음 의뢰자의 등장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스탠리 가드너의 다작이 가능했던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자에게 다음 작품으로 예고해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그래서 스탠리 가드너가 미국 독자들에게 사랑 받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의 평이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페리 메이슨. 전형적인 미국적 변호사인 그의 팬은 아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아로에 중독이 되 듯 메이슨에게 중독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리 메이슨 시리즈는 어떤 추리적 트릭도 보여지지만 그것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페리 메이슨이 원맨쇼로 의뢰인을 구하는 것을 주로 한다. 또한 메이슨과 함께 그의 비서 델라 스트리트, 아래층에 있는 메이슨의 친구이며 전속 탐정격인 폴 드레이크의 조연도 빼놓을 수 없다.   

주교가 말을 더듬는다? 주교는 절대 말을 더듬으면 안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설교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품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던가 그렇단다. 어느 날 말을 더듬는 주교가 호주에서 난데없이 페리 메이슨을 찾아와 이상한 소리를 하며 도박 같은 이야기를 한다. 오래 전 과실치사를 저지른 여자 이야기, 그녀가 결혼한 남자의 아버지가 지금은 억만장자라고 하며 메이슨에게 투견 의식을 고취시킨다. 하지만 의뢰를 결정하기도 전 주교는 사라지고 자신은 살인자 편이 되어 이제는 거절할 수도 없게 되었다.  

뒤바뀐 부잣집 손녀딸에 얽힌 인간의 욕망을 그린 작품으로 페리 메이슨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별로 매력을 못 느끼겠지만 페리 메이슨 시리즈는 읽을수록 시리즈 전권을 읽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우선 잘 읽힌다는 점이 있다. 또한 그다지 머리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여성 독자들이 좋아할 드라마틱한 요소와 대부분 여자가 관계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어보고 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트릭면이 아닌 드라마적 요소로 인해 좋아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처럼 전 시리즈가 나왔으면 희망을 갖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주교는 절대 말을 더듬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말을 더듬는 주교가 나타나 메이슨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과연 메이슨은 그를 진짜 주교로 믿고 의뢰를 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가짜 주교로 생각하고 거절할 것인가. 처음부터 난점을 갖고 시작하지만 사건은 의외로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메이슨의 매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동서 미스테리 북스에서 스탠리 가드너의 <비로도의 손톱>도 나와 있으니 함께 보시면 좋을 듯 하다. 

부록처럼 실린 루스 랜들의 <열병 나무>는 인간의 심리를 서스펜스 측면에서 이 작품만큼 묘사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은 단편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율하게 만드는 작품. 펜은 총보다 강하다고 했다는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최고의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단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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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동서 미스터리 북스 99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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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본 루 아처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또 다른 루 아처 시리즈인 <위철리의 여자>도 나와 있으니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로스 맥도널드도 이 작품의 루 아처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니 명작임에 분명한 작품이다. 루 아처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탐정 가운데 한 인물이라 더 좋았다. 마지막까지, 아니 마지막에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전율.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걸작이 아닐 수 없다.

한 여자가 신혼 여행 하루만에 사라진다. 신랑은 당황해서 루 아처에게 의뢰한다. 루 아처는 그녀는 찾으면서 그녀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되고 살인 사건도 일어난다. 신혼 여행 다음날 사라진 신부를 찾는 신랑의 의뢰를 받으면서 루 아처는 본의 아니게 별로 연관 없다고 남들은 생각하는 각기 다른 시기에 발생했던 두 가지 살인 사건과 신부가 혐의 받게 되는 현재의 살인 사건을 시리즈처럼 이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신부의 아버지가 아내 살인 누명을 썼다는 그의 확신과 더 과거의 지금 살해된 여자가 알고 있는 자살이 사실은 조작된 타살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점차 범인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범인을 짐작조차 못했다.

이 일은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난 세가지 사건의 종착지이자 연결점임을 직감한 루 아처는 과거의 살인 사건부터 자세히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상류 사회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편협함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자신들이 신이 선택한 이들이라는 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고 망치고 급기야는 살인까지도 망설이지 않고 그 살인자가 상류 사회의 일원이라면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까지 일삼는, 마치 포악한 육식 동물이 연약한 초식동물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느낌을 주는 일그러진 상류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내가 루 아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시대와 사회에 대해 어떤 낭만도 품지 않고 냉소도 갖지 않고 그저 주어진 탐정의 본분만을 이행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떤 비판보다 더 크게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내가 유일하게 끝까지 범인을 짐작조차 못한 작품이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작품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이 작품만큼 대단한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철리의 여자」도 이 작품만큼의 재미와 서스펜스를 안겨 주진 못했다.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지하 인간」이 가장 먼저였다. 그 작품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어서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 뒤 「움직이는 표적」「순간의 적」「마의 풀」을 읽었지만 그 작품들은 지금 생각하면 이 작품을 읽기 위한 길잡이였을 뿐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를 계속 보게 해서 이 작품을 기어코 보게 한 것 아니었을까.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전집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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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12-21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루 아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시대와 사회에 대해 어떤 낭만도 품지 않고 냉소도 갖지 않고 그저 주어진 탐정의 본분만을 이행한다는 점이다. - 정말 잘 짚으셨어요.. 딱 제가 생각했던 것이랍니다. ^^

물만두 2006-12-21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앤디뽕님 매트 스커더 다음으로 좋아하는 탐정입니다^^
 
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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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살인 이야기다. 한 남자. 아내에게 억압받고 모욕 받고 살아가는 왜소한 남자. 아내 몰래 그런 상황에서도 마을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남자. 남자는 서서히 아내에 대한 살의를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완전범죄로 일단락 난다. 하지만 한번 살인이라는 범죄에 맛이 들린 남자는 자신에 대한 우월성을 살인으로, 완전범죄로 표출하려 한다. 과연 이 남자에게 두 번째 완전범죄는 허락될 것인가.

세계 3대 도서 추리소설에 꼽히는 작품 중 한 작품이다. 세계 3대 도서 추리 작품은 이 작품 <살의>, 최초의 도서 추리 소설로 일컬어지는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 사건>, 크로프츠의 <크로이튼 발 12시 30분>을 일컬는다. 이 작품이 3대 도서 추리 중 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조금 의외다. 읽기 전에는 뭐라 말할 수 없었지만 읽고 나서 더군다나 많은 작가의 작품이 출판된 이 시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으로서는 조금 빛 바랜 선정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읽은 도서 추리 중에서는 가장 좋은 작품 축에 들지만 왜 이 작품이 3대 도서 추리가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나중에 로렌스 샌더스의 대죄 시리즈처럼 범인과 경찰을 모두 보여 주는 작품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는다. 보통 살의를 품게 되는 상대는 한정되어 있다. 범죄의 80퍼센트가 아는 사람의 소행에 의해서라고 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인간에게 살의를 품으려면 아는 사람이기가 쉽다.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이 아닌 이상. 물론 면식범이 제정신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또한 충분히 살의를 품기에 적절한 인물은 가장 가까운 인물일 수밖에 없다. 아내라던가, 남편이라던가, 자식이거나 부모, 형제. 이런 식의 전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살의를 품는 인물은 남편이다. 살의의 대상은 그의 아내다. 그는 완전범죄를 노리고 달성한다. 그리고 살의에 맛이 들어, 아니 한번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범죄학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한번 완전범죄를 달성한 희열에 과대망상증에라도 걸린 듯 또 한번의 살인을 계획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여자 살인 이야기>와는 비슷하면서도 분위기는 전혀 다른 좀 더 유머러스한 작품이었다.  

세계 3대 도서 추리 작품에 속하는 명작이다. 도서 추리 소설이란 범죄자의 시각에서 쓰여지는 작품을 말한다. 그러니 애써 범인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단지 범인이 어떻게 잡힐 것인가, 또는 안 잡힐 것인가 만을 신경 쓰면 된다. 아니면 <백모 살인 사건>처럼 약간의 반전과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예전의 도서 추리 작품들은 애교스런 작품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의 범죄 소설과 얼마나 다른지를. 어떻게 보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해석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도, 사람이 쓰는 추리 소설도 너무 잔혹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이 작품을 웃으면서 보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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