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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9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지금까지 내가 본 루 아처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또 다른 루 아처 시리즈인 <위철리의 여자>도 나와 있으니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로스 맥도널드도 이 작품의 루 아처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니 명작임에 분명한 작품이다. 루 아처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탐정 가운데 한 인물이라 더 좋았다. 마지막까지, 아니 마지막에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전율.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걸작이 아닐 수 없다.
한 여자가 신혼 여행 하루만에 사라진다. 신랑은 당황해서 루 아처에게 의뢰한다. 루 아처는 그녀는 찾으면서 그녀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되고 살인 사건도 일어난다. 신혼 여행 다음날 사라진 신부를 찾는 신랑의 의뢰를 받으면서 루 아처는 본의 아니게 별로 연관 없다고 남들은 생각하는 각기 다른 시기에 발생했던 두 가지 살인 사건과 신부가 혐의 받게 되는 현재의 살인 사건을 시리즈처럼 이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신부의 아버지가 아내 살인 누명을 썼다는 그의 확신과 더 과거의 지금 살해된 여자가 알고 있는 자살이 사실은 조작된 타살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점차 범인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범인을 짐작조차 못했다.
이 일은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난 세가지 사건의 종착지이자 연결점임을 직감한 루 아처는 과거의 살인 사건부터 자세히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상류 사회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편협함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자신들이 신이 선택한 이들이라는 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고 망치고 급기야는 살인까지도 망설이지 않고 그 살인자가 상류 사회의 일원이라면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까지 일삼는, 마치 포악한 육식 동물이 연약한 초식동물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느낌을 주는 일그러진 상류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내가 루 아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시대와 사회에 대해 어떤 낭만도 품지 않고 냉소도 갖지 않고 그저 주어진 탐정의 본분만을 이행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떤 비판보다 더 크게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내가 유일하게 끝까지 범인을 짐작조차 못한 작품이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작품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이 작품만큼 대단한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철리의 여자」도 이 작품만큼의 재미와 서스펜스를 안겨 주진 못했다.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지하 인간」이 가장 먼저였다. 그 작품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어서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 뒤 「움직이는 표적」「순간의 적」「마의 풀」을 읽었지만 그 작품들은 지금 생각하면 이 작품을 읽기 위한 길잡이였을 뿐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를 계속 보게 해서 이 작품을 기어코 보게 한 것 아니었을까.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전집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