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이런 사람들은 흔하다. 하지만 이라부같은 의사는 드물다. 그것이 이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고 잘 팔리게 만든 이유다.
<도우미>에 등장하는 피해망상 또는 과대망상증을 가진 사람들로 세상은 가득하다. 왜 세상은 가운데는 점점 텅 비어가고 ‘나 너무 잘났어.‘와 ’나 왜 이렇게 못났을까?‘로만 나뉘는 건지. 나잘난양의 대표주자가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스토커로 만들기 전에 이라부를 만난 것은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과연 이런다고 달라 질까는 사실 의문이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얘기 아닐까 싶다.
<아, 너무 섰다!>는 일본에서 요즘 추구하는 것이 참지 말고 화내자, 우리 한번 멋대로 살아보자, 남의 눈치는 그만 보자인지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작가가 우에노 공원인가 하는 곳의 이란인은 왜 그렇게 들먹이는 건지 모르겠다. 의도적인건지 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발가벗기는 그렇잖아 하는 물귀신작전인지 씁쓸하다.
<인 더 풀>에서의 남자도 흔하다. 운동도 중독이 된다고 한다. 몸짱도 중독의 일종이 아닐까 싶고 사회적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내도 있는데 이렇게 간단히 고쳐질 거라면 대화를 하지 않고 왜 이라부를 찾았을까 싶다. 꼭 이라부가 고쳐줬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말이다.
<프렌즈>에서의 고교생도 주위에 많은 인물이지 싶다. 소위 소외되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지만 그래도 소외되는 아이들. 왕따가 아닌 게 다행이다 싶지만 이 작품에서 진짜 마음에 드는 작품은 이 단편이다. 세상 모든 사람과 사귀는 게 아니고 사람은 언젠가는 변하는 존재라서 연연해할만한 게 못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롭다는 세상인데 차라리 외로우면 외로운 채 버둥대지 말고 편하게 살아 보자구!!!
<이러지도 저러지도>는 피곤함이 운명이라 생각할 밖에 라고 말해주고 싶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이들의 말할 상대가 오직 이라부뿐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도 생기고 진짜 병원을 찾아서 치료해야 하는 병들도 생기지만 그것보다 진정하게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고, 등장인물들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데 주목하게 된다. 현대인들의 상실감이라든가 고독, 우울증, 정신적 질환의 태반은 이런 대화와 소통의 부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대화할 사람이 없는 그런 존재들이 되어 버린 걸까? 이 작품은 그걸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린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게 무엇일까? 저 풀 속에 그것이 있을까? 이라부를 찾을 게 아니라 우린 어쩌면 이것을 먼저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님 이라부가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은 아닐지... 그가 비록 등 어딘가에 지퍼가 있을 것 같은 몸매를 하고 있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