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정신과 전문의 정유석의 다섯 번째 에세이. 지난 2002년 네 번째 에세이집 [피카소의 청색시대]에 이어 2년 만에 선보이는 책이다. 예전의 책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판과 로스엔젤레스판에 실었던 글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지난 12년간 쉬지 않고 매주 신문에 칼럼을 써왔고 이 책은 지난 2년간 쓴 칼럼을 추려 만들어졌다. 12년 동안 매주 쉬지 않고 칼럼을 연재해 왔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12년 동안 칼럼을 써 왔다면 이제 그 바닥을 드러낼만도 하건만 각각의 칼럼이 편차 없이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박식함에 감탄하는 몇몇 지인들의 입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그의 지적 관심이 뻗어있는 분야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다는 것은 지난 12년 동안 그가 걸어온 자취가 대신 말해준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 나폴레옹, 장화왕후, 프로이트, 스탈린, 피카소, 도스토예프스키와 모하메드, 파바로티, 루 게릭, 해밍웨이 등의 삶과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에드가 앨런 포의 [윌리엄 윌슨],[리지이아],[검은 고양이],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등의 작품, 그리고 [한중록], [삼국유사] 등의 고전에서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명사들의 병력, 예술작품 속에 나타난 정신병력적 의미를 파헤친다. 이 외에 LSD, 엑스터시, GHB, 로히프놀, 케타민 등 신세대 마약에 관한 정보들도 무척 흥미롭다. 이 책은 특정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치료서는 아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갖가지 증상들은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가져봤을, 그리고 한번쯤 그로 인해 고통을 겪어 봤음직한 증상들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정신의학서로서의 역할 외에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으며 집안에 한 권씩 비치해 두어야 할 가정의학서로도 무척 유용할 것이다.
아테나 여신, 엘리자베스 1세, 잔 다르크, 간디...
그들은 왜 섹스를 거부했는가?
금지된 성적 욕망에서 도발적 자유 선언까지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독신의 진화사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3000년의 역사를 내려오는 동안, 성적 절제를 의미하는 '금욕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대의 경우처럼 당당히 독신을 부르짖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금욕의 희생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성적 집착이 유발하는 정신적 혼란을 경계하여 금욕만을 최우위로 다루었던 종교적 입장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성 정체성을 표현하기까지, 진정한 독신의 세계는 어떻게 탄생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금욕 현상'을 끈질기게 추적함으로써 독신의 탄생에 대한 근거를 찾아낸 방대한 문화적 진화사다. 독신에 대한 저자의 광범하고 도발적인 탐구는 독신이 세속사회와는 무관하게 종교적 필요에 의해 지속되었다는 지금까지의 통념을 산산조각낸다.
제단의 불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던 고대 로마의 처녀들은 독신의 서약을 어기면 산채로 땅에 묻혀야 했으며, 감옥의 높은 담벼락에 갇힌 죄수나 궁전의 내시는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강제된 금욕의 굴레를 지고 독신인 채로 살아갔다. 반면, 오페라의 명가수가 되기 위해 거세한 카스트라토 소년이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성스러운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과감히 금욕을 선택한 수녀들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강제로 음핵 절제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 여성들, 사회운동을 위해 독신을 주장한 페미니스트들, 경기에서의 승리를 위해 '정액을 아끼는' 운동선수들, 에이즈 예방을 위한 HIV 보균자들까지 독신자들의 삶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저자는 독신이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조금이라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고 진단한다. 동성애를 숨기기 위해 금욕생활을 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소년에 대한 애정을 감추려 한 루이스 캐럴, 또 불리한 사회제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독신을 선택한 현대 여성들처럼 필요에 의한 독신생활의 자발적 고수에 집중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장장 8년간의 자료수집을 통해 저자가 써내려간, 살아 있는 역사 안에 담긴 무수히 많은 예를 통해서 우리는 종교적 관습은 물론 성욕, 성역할과 보건의식의 변화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에서는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 등에서 독신을 강요당했던 종교인들의 고난과 환희를, 에서는 사회규범에 저항하는 독신자들과 제도의 벽에 부딪혀 원치 않은 독신을 유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서는 문학작품에서 시작해 에이즈 시대에 새롭게 대두된 문제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1세나 잔 다르크, 나이팅게일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 이면에 가려진 성 문제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힌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현재 독신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인간사회에서 중요시되었고, 앞으로도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성 정체성과 성적 자기결단성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4장 문학 속에서의 독신
궁정 연애 ㅣ 존 밀턴 ㅣ 파멜라, 샤멜라 ㅣ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ㅣ 주디스 셰익스피어 ㅣ 가프의 어머니 ㅣ 흡혈귀
『톨스토이, 길』은 톨스토이의 자기모순과 반성, 민중에 대한 사랑, 폭압적인 국가에 대한 거부감, 부인과의 갈등 등 인간 톨스토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톨스토이즘은 자유와 평등, 박애와 사랑을 뜻하는 말로 톨스토이가 전 인류에게 호소한 가르침이다. 이 책은 인생, 정신, 영혼, 진리라는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톨스토이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각 주제에 걸 맞는 글들을 엄선하여 엮은 것이다.
사실 톨스토이의 삶은 그의 위대한 업적과 완전히 일치하지 만은 않았다. 그는 러시아 전통적인 백작 가문의 대지주였고, 러시아와 터키 간에 발발했던 크림전쟁에 참전해 훈장까지 받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모순간의 끊임없는 모순의 투쟁이었다. 독자들은 『부활』『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과 편지, 일기 속에서 육체적 욕망에 괴로워하고 민중을 수탈하는 국가를 증오하는 인간 톨스토이를 만날 수 있다.톨스토이는 인간의 영혼에 사랑과 구원의 빛을 남긴 인류의 영원한 스승
이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름대로의 근심과 걱정을 가지고 있으며 활발한 상호소통과 교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뜻 모를 정체감과 절박함 속에 늘 갇혀 있다는 점이다. 빈부의 차가 커질수록 만연해지는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오는 패배주의, 과학의 속도를 견뎌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열패감, 이러한 과학의 질주를 즐기는 소수의 독점과 아슬아슬함이 함께 얽혀 절대고독의 인간자화상을 양산하는 혼돈의 시대다. 결국 도덕적 근거가 희박한 이 시대는 자연과 신적이고 인간적인 영혼의 심오한 기반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위험성을 톨스토이는 이미 예견했던 것이다.
당연히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선하고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 톨스토이는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유일성에 가해지는 폭력과 모든 개성의 평준화에 대항하였다. 또한 세대를 단절시키고 영혼을 파괴하며 분별없는 실용성만 추구하는 삶과 모든 지식의 독선과 그 아류에 끊임없이 경고하고 맞섰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 톨스토이는 하층민(노동자, 농민)의 대변자로서 그들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였으며, 그들의 도덕적 의지와 요구를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그들의 문화에 감동한 톨스토이는 그들의 고통과 비애, 사랑의 소박함과 구체적인 삶의 질박함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하였고, 그것은 곧 톨스토이의 모든 예술작품 속에 무르녹아 형상화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톨스토이 사상의 면모는 한 몸에서 태어난 두 개의 세계였다. 그것은 민중적인 것과 전 인류애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 사랑의 법칙과 삶을 의미하였고, 결국 이 두 개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움 속에서 모든 이념의 대립과 세대간 갈등, 민족간의 분열들이 사랑과 구원의 빛을 밝혀 하나가 되는 이른바 ‘글로벌 공동체’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한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고통받는 동안 자신의 부질없는 욕망을 참회했고, 부와 명예마저 스스로 버림으로써 지금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인간의 영혼에 사랑과 구원의 빛을 밝혀준 인류의 영원한 스승으로 자리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길을 걸으며 나의 길을 생각한다
이 책은 '톨스토이, 길'로 제목을 정하고 이 같은 톨스토이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그의 여러 예술작품 중에서 제목에 걸맞은 각 주제 인생의 길, 정신의 길, 영혼의 길, 진리의 길 4개 부분으로 구성하여 톨스토이의 정수만을 가려 뽑은 에스프리(esprit)이다. 따라서 이 책은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취향과 의도에 따라 주제별로 읽을 수 있으며, 모든 독자에게 톨스토이를 제대로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안내서이자 지침서도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인 인생의 길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좁은 도시에 모여 살며 닥치는 대로 자연을 망가뜨려도, 한 포기의 풀도 자라지 못하도록 아스팔트를 깔거나, 나무를 뽑아버리거나, 석탄과 석유로 공기를 오염시켜도, 때마다 찾아오는 철새와 짐승들을 모두 내쫓아도 다가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17쪽, 부활)는 글을 읽고 느낀 독자가 어느 날 '부활' 한 권을 구입하여 틈나는 대로 독서삼매에 이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독자는 '정신의 길' 중에서 “허영심은 슬픔과는 완전히 모순된 감정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허영심은 인간의 본성에 깊숙이 스며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슬픔을 겪더라도 이 허영심을 완전히 떨쳐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를 들어 슬픔에 빠진 인간은 타인에게 자신의 슬픔을 증명하고 싶어하며, 불행한 인간이라는 동정심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인간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허영심에 사로잡힌다. 이런 야비한 소망을 우리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운 슬픔에 직면하더라도 우리들을 따라다니며 그 슬픔으로부터 힘과 존경과 성실함을 빼앗아가곤 한다”(93쪽, 유년시절)는 대목을 읽고 '유년시절'을 완독하여 자신의 유년기를 되돌아보게끔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이미 톨스토이를 나름대로 경험한 독자에게도 유용하리라고 본다. 그것은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자신 스스로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자에게 다행인 것은 요즘 톨스토이의 저작물을 여러 출판사에서 이미 출간을 했거나 꾸준하게 간행하고 있어 독자가 원하는 톨스토이의 저작물을 구입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톨스토이의 전집을 단행본으로 꾸며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독자들과 일반 독자들의 평가와 선택을 기대하는 출판사도 있다. - 둘째,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인간의 양심을 거스르는 행위이며, 이는 분명 간접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크로이처소나타 육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옷보다 양심을 아름답게 꾸미는 옷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