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사람들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오늘 뉴스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지중해 참치의 씨가 마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초밥의 재료중 하나인 붉은 참치 살 때문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뉴스를 접하던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왜 그렇게 기술이 좋은 일본이 참치든 고래든 양식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사항 중 하나였다.


두 번째는 세풀베다가 그 많은 나라를 앞에서 언급하면서 유독 일본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일본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상어지느러미, 삭스핀 요리를 위해서 상어 지느러미만 자르고 몸통은 버리던 장면이 뉴스에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상어는 보호종이 아니라 괜찮은 건가? 그렇다면 북유럽에서 바다사잔지 바다표범인지 그런 종류를 때려잡는 행위는 무엇이고 미국에서 에스키모들에게 고래잡이를 허용한 것은 무엇인가? 세풀베다가 그중 만만한 나라 하나를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시류에 편승한 환경보호를 내세운 작품이라는 점을 지울 수 없었다.


세 번째는 이런 작품이 나왔는데 왜 우리는 이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독도를 지킬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였다. 생각해보자. 동남아시아의 두 나라가 섬을 가지고 국제재판소까지 가게 되었었다고 한다. 그때 이긴 나라는 그 섬의 환경을 보호한 나라였다고 한다. 우리가 만약 독도가 우리 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모르는 외국에 알리려면 일본이 독도를 자기 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고래를 잡기 위한 수단이라고 외친다면 어떨까? 작년엔가 우리나라에서 국제포경위원회의 회의가 열리지 않았었나? 그때 우리는 고래 잡는다는 일본의 꼬임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들러리를 섰었다. 그때 왜 독도가 우리 땅이어야 하는지를 피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 적도 없겠지.


환경과 경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새만금 간척사업을 하지 않고 그곳에 쏟아 부은 돈을 다른 곳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농사짓는 땅에 미군기지 만들어주랴, 아파트 지으랴, 그러면서 FTA협상을 하고, 서민 경제,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내쫓고 짓밟는 것은 결국 경제 논리만 앞세운 정치였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결말은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결론도 없이 끝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소라껍질을 귀에 대면 바닷소리 들리듯이 우리의 양심이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부르주이적인 편리한 양심... 작가말처럼 무식하면 용감하게 등장하는 양심... 너무 작위적이고 우리 스스로 비참해진다. 아마 작가도 쓰는 내내 비참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자신이.

 

제목이 지구 끝의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벼랑 끝의 사람들이다. 어쩌면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은 45억년 잘 버텨온 지구의 종말을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래가 사라지든, 갯벌이 사라지든, 농토가 사라지든 아무 상관없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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