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이 말한다. 인생이 릴레이였음 했다고. 그럼 인생이 릴레이가 아니었단 말인가?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서조차 주인공이길 바란다. 세상에서 자신만이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잠시뿐이고 점차 우리는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서조차 자신은 주인공이 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다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생에서 몰아내버린다. 주인공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이제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주인공의 모습이고 인생에서 자신의 원하는 모습이 진짜 주인공의 모습인가를. 영화나 드라마를 보자.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홍보를 할 때 주연배우만을 집중적으로 홍보를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보고 나면 보는 사람에 따라 주연보다 더 연기를 잘하는 조연과 엑스트라라도 제몫을 톡톡히 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빛나게 하는 장면이 더 많이 회자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역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빌딩이 보이고 에셔의 작품전이 열린다는 포스터가 보인다. 그곳에는 떠돌이 개가 있고 외국 여자가 아름다운 일본말을 적어달라고 백지를 들고 서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가면서 만나기도 하지만 결코 서로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다. 잠시 붙잡아준 문, 도둑질하러 들어간 곳에서 만난 동창과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는 여자, 그리고 신흥종교의 교주를 믿는 남자와 토막연쇄살인사건, 실직한 뒤 이혼하고 마흔 번의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매번 거절만 당하고서도 비틀즈 노래를 듣는 남자와 자신의 꿈을 이루어 주리라 생각하고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화상과 여행을 가는 화가...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되기 때문에 더 풍요로운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마치 남루한 인생 군상들만을 모아 놓고 시간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삶을 이리저리 배치해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에셔의 작품 속 병정들처럼 높은 곳에 올라갔더니 그곳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듯이 술주정뱅이 인생이 한 바퀴 돌고 나나 풍요로운 인생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가끔 삶에서 비켜났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라고. 맞다. 어긋났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단지 일그러졌을 뿐. 그런데 그렇게 일그러지게 그림을 그려놓은 피카소는 그 그림으로 명성을 날리지 않았던가. 일그러지면 일그러진 채, 빗나가면 빗나간 채 나름대로 ‘It's all right' 외치며 살아가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같은 단어에도 상반된 뜻이 포함되어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어떤 것을 취하느냐는 취하는 자의 몫이다. 풍요롭거나, 술주정뱅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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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5-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담하게 쓸쓸해요.

물만두 2006-05-2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인생이 담담하고 쓸쓸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