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테레진 아이들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이 책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는 감동적인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책이다. 이 작품들은 1942년에서 1944년 사이에 15세 미만의 아이들이 쓰고 그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감동적인 이유는 죽음과 고통의 비극적 현실 속에 처한 아이들의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극렬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를 지향하는 나치스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을 때.1939년 나치스는 프라하를 침공하여 체코를 독일 제국에 편입시키고, 1941년 테레지엔슈타트에 유대인 거주 지역인 게토를 설치했다. 프라하에서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200년 전에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의 명령으로 세워졌고,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따서 ‘테레진’이라고 불렸다. 전쟁 기간 동안 테레진은 굶주림과 두려움의 땅이었다. 나치스는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몰살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죽음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가 필요했다. 그 기착지 중의 하나가 테레진이었다. 나치스에 의해 계획된 모범 수용소 ‘테레진’은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모델 게토’였다. 처음에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유대인들이 테레진으로 이송되었으며, 나중에는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왔다. 나치스는 이곳을 무대로 홍보 영화를 찍었고, 1944년에는 적십자에 공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나치스의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했다. 테레진에 살던 유대인들은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보내질 운명이었으며, 여기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테레진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본 모든 것을 보았다. 그들은 사형집행을 지켜보았고, 그것을 연필로 그린 유일한 어린이들이었다.
1942년에서 1944년에 걸쳐 10세 전후의 아이들이 유럽 전역에서 테레진으로 왔다. 그리고 1945년 5월 8일 소련군에 의해 테레진은 해방되었다. 그러나 한때 이곳에서 놀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하던 15,000명의 아이들 중에서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100명에 불과했다. 테레진에 거주하던 아이들의 작품은 두 개의 가방에 담겨 프라하 유대인 모임에 보내졌다. 처음에 이 작품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선반에 놓여 먼지가 쌓인 채 십 년을 보냈다. 그 후에야 그림들은 다시 발견되어 세상에 나왔다. 이후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이 이 작품들을 보았다. 1945년 8월 17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유대인들도 모두 테레진을 떠났다. 이후 테레진은 그 평온한 풍경 속으로 되돌아갔다. 악몽과도 같았던 게토 시절을 보여주는 흔적들은 이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체코를 여행하여 이곳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단지 완만한 언덕과 부드러운 강, 보헤미아의 산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비들도.
2. 삶과 죽음의 문제로 읽는 테레진의 비극
이 책은 테레진 아이들의 시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시와 그림을 남긴 아이들의 운명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독자들은 이 작품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꿈과 희망뿐만 아니라 눈물과 절망의 심정 또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유대 민족의 운명에 대한 민족적 입장이나 종교적 입장을 떠나 삶과 죽음에 직면한 내면 풍경의 기록이며, 아이들의 눈으로 본 비극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테레진의 풍경은 황량하기도 하고, 때로는 풍요롭기도 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본 모든 것을 보았다. 식료품 가게 앞에 끝없이 늘어선 줄을 보았고, 한때 빵을 나르던 수레였지만 이제는 시체로 가득 찬 수레를 보았으며, 그 수레를 나르기 위해 말처럼 묶인 사람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천국처럼 보였던 진료소와 단지 시체를 모아 두는 게 전부였던 장례식을 보았다. 아이들은 처형 현장도 보았다. 어쩌면 아이들은 이 모든 광경을 담은 자신들의 그림 속에서만 어린이였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점호를 하는 나치스 친위대의 고함소리와 어른들이 거주하는 막사에서 새어 나오는 작게 중얼거리는 기도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게토의 입구를 벗어나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녹색의 풀밭과 푸른 언덕, 저 멀리로 이어지는 큰길과 프라하로 이어질 것만 같은 길, 동물과 새들, 나비들. 이 모든 것들이 게토를 둘러싼 벽 너머에 있었다. 아이들은 멀리서나마 막사의 창문과 요새의 성벽들 틈으로 그것을 보았다. 또한 아이들은 왕관을 쓴 공주들과 사악한 마법사들, 어릿광대와 사람의 얼굴이 달린 벌레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살던 고향집도 보았다. 창에는 커튼이 쳐있고, 고양이가 한 마리 있고, 접시에 우유가 담겨 있는 집. 아이들은 고향집을 테레진으로 불러 왔다. 이 집에는 담장이 있어야 했고, 냄비와 주전자가 많이 있어야 했다. 냄비와 주전자에는 음식이 가득 담겨 있게 마련이니까.
이 모든 것들을, 또 다른 많은 것들을 아이들은 그렸다.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쓴 시는 다른 느낌들을 전해준다. 시에는 ‘고통스러운 테레진’이나 ‘헤어진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고 있다. 시 속에는 점심식사로 딱딱하게 굳은 빵과 썩은 감자를 갉아먹어야 하는 나이 든 할아버지가 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공포가 있다. 그렇다. 공포는 아이들에게도 다가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에 시를 통해 두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시와 그림들, 이것이 이 아이들이 남긴 모든 것이다. 이들이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이후 오랫동안 남은 것은 그들의 재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서명이 여기에 있고, 몇몇 그림들에는 연도와 아이들이 속해 있던 그룹의 번호가 새겨져 있다. 이 서명들로부터 몇 가지 사실을 알아 낼 수 있다. 아이들이 태어난 장소와 날짜, 테레진과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날짜, 그리고 그들이 죽은 연도 등. 대부분의 아이들이 죽은 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1년 앞둔 1944년이다.
테레진의 아이들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수용소의 기록들은 대개 아이들의 생년월일과 테레진에 도착한 날짜, 테레진을 떠난 날짜와 목적지, 그리고 그들의 최후만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는 ‘그림 설명’과 ‘시 설명’에 알려져 있는 정보들을 실었다. 많은 작품들에는 서명이 없어서 그것을 창작한 어린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이 책에 실린 테레진 아이들의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들이다. 테레진 아이들이 남긴 예술 작품들을 통해 하나하나 독특하고 개성적인 이 아이들의 목소리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의 심연을 건너 우리에게 들려온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 닿을 수 있게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인간성을 다시금 회복시켜 준다. 이 시와 그림들은 살아남아 우리에게 진실과 희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은 이 책의 출간 의의이자 테레진 아이들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이다.
프란타 바스가 작가인 줄 알았다. 어린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안네 프랑크같은 아이... 이 아이가 살아 있다면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어린 아이, 자기 또래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 뭐라고 할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더 이상 프란타 바스 같은 아이들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추모하고 잊지않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은 우리가 아니라 지금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총을 쏘아대고 이라크 아이들에게 폭탄을 던지는 이스라엘군과 미군, 영국군 등이 봐야만 하는 책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또한 은연중에 우리 주위에 프란타 바스같은 아이를 만들려 하고 있지 않나를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