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지킴이 오동환 씨의 우리말 어휘에 관한 7번째 책 <오동환의 우리말 생각>은 우리말의 어디가 틀렸다, 무엇이 맞다 등 단순하고도 삭막한 논거와 논란 차원을 넘어 언어학자 안목의 풍부한 설명과 예거, 예화를 곁들여 관심과 흥미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평소 이렇게 말하는 전직 언론인이 있다.
“모든 법은 지켜야 하고 따라야 한다. 설사 악법(惡法)이라고 해도 그렇다. 하물며 하늘 아래 가장 고상하고도 선량한 우리말 ‘어법’이며 ‘문법’이랴. 따라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리켜왔다(가르치진 않고)’고 말하는 대학 총장은 우리말 법정에 세워져야 마땅하고 지당하다. 그래서 ‘우리말 어법 문란죄’와 ‘가르치진 않고 손가락으로 해와 달만 가리켜온 직무유기 죄’를 물어 땅땅땅… 적어도 40년 징역형은 선고해야 타당하다.
또한 태풍 매미의 홍수로 온통 물난리가 난 지역을 가리켜 ‘불에 타 재만 남았다’(초토화됐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물과 불, 물불도 가리지 못하는 TV뉴스 앵커에게도 우리말 어법 문란 죄 내지 심각한 우리말 오도 죄를 걸어 최소한 10년 징역형은 때려야 한다.”
그는 95년 출판, 베스트셀러가 된 <개나라 말 닭나라 국어>를 비롯해 <한국인은 한국말을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우리말 죽이기 우리말 살리기> 등 우리말 관련 서적을, 다시 말해 우리말을 바로 쓰자, 아끼고 사랑하자, 찬양하자는 뜻의 우리말 지키기, 우리말 살리기 책만도 7권이나 지어낸 전직 언론인 오동환 씨(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시인)이다.
이번에 낸 7번째 우리말 관련 저술인 <오동환의 우리말 생각> 또한 한 마디도, 두 마디도 우리말을 바로 알고 바로 쓰고 사랑하자는 취지에서다. 저자는 이번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지구인 연합군과 외계인이 전쟁을 하다가 맞닥뜨린다면 영어로 꾸짖고 영어로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영어는 지구인의 대표적인 언어다. 그런 만큼 영어를 안 할 수는 없고 해도 썩 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영어는 세계 최대 언어이지 결코 세계 최고 언어는 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언어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각국의, 각자의 모국어일 수밖에 없다.
영어가 언어제국주의의 ‘황제어(皇帝語)’라면 각국의 언어는 왕국언어, 제후국 언어로나마 변방에 존재할 것이고 그 민족이 지구상에 잔존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지저스 크라이스트’로 영어 발음할 수는 없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팝 잔 폴 투(Pope John Paul Ⅱ'로 영어 발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어는 영어, 폴란드 말은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폴란드 말인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도 자랑할 만한 우리 대한민국 언어,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어휘 하나, 말 한 마디도 올바로 알아야 하고 올바로 써야 한다. 특히 영향력이 큰 언론인과 문필가들이 모범이 돼야 하고 시범을 해야 한다.”
특히 이번의 <오동환의 우리말 생각>은 우리말의 어디가 틀렸다, 무엇이 맞다 등 단순하고도 삭막한 우리말 논거와 논란 차원을 넘어 언어학자 안목의 풍부한 보충설명과 예거(例擧), 예화(例話)를 곁들여 관심과 흥미의 깊이를 더했고 언어의 문화사적, 철학적 해석까지 쏟아 부어 도대체 어휘 하나, 말 한 마디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지식과 학문의 깊이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가의 바로미터, 그러한 모범을 보인 하나의 대표적인 예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학부모는 모두 '자웅동체' '남녀추니'들인가?

 1967년 쌍둥이로 태어난 한 사내아기가 포경수술 중에 페니스를 잃는 사고를 당한다. 당황한 부모는 고민 중에 존스 홉킨스 병원의 성 정체성과 성전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아이의 성을 바꾸고, 이렇게 길러진 쌍둥이 케이스는 남성이나 여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어떤 성으로 길러지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잇다는 살아 있는 증거로 지난 30년 동안 현대 의학과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에 의해 반복 인용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여자 호르몬과 여성의 기대역할을 강요받으며 자랐던 쌍둥이는 14세가 되던 해, 자신의 강요된 성 정체성에 저항했고 마침내 다시 남자로 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되찾기까지의 한 남자의 생존기를 그린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로, 존 콜라핀토라는 기자에 의해 증언 기록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대화는 모두 상담기록이나 혹은 당사자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소설적 분위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대화나 장면은 하나도 없다고.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은 타고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이러한 성의 천성 결정론과 환경 결정론에 관한 문제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의학과 사회학계에서 성 환경 결정론을 증명하는 사례로 오랫동안 인용되어온 ‘쌍둥이케이스’다.
이 케이스는 존스 홉킨스 병원의 성 정체성 및 성전환 전문가인 존 머니 박사가 제시한 것으로, 유아기 때 생식기를 잃은 쌍둥이 사내아이의 성을 여자로 바꾸고 정신과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였더니 아무 문제없이 여자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근거로 성의 환경 결정론이 득세하게 되었으며, 이후로 이 케이스는 성 정체성 결정에 관한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는 유일무이한 케이스로 인정받아왔다.
그렇다면 정말 환경이 성을 결정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케이스에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사실들이 있음을 폭로한다. 그것은 한 인간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인 동시에, 의학계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감춰지고 왜곡돼 왔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1967년 캐나다 위니페그에서 일란성 쌍둥이의 형인 브루스는 생후 8개월이 되던 어느 날, 포경수술 중에 의료사고로 페니스를 잃는다. 브루스의 부모, 론과 재닛은 불완전한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들의 경우,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통해 적합한 성을 부여하면 된다는 성전환 전문가 존 머니 박사의 권유로 아이의 성전환수술을 결정하게 되고 브루스는 여자아이 브렌다로 길러진다.
페미니스트 운동의 시금석이 된 이 ‘쌍둥이케이스’는 사고를 당하지 않은 쌍둥이 동생은 남자로 자라났기 때문에 보다 더 큰 평가를 받았으며, 완벽한 의학적 성공 사례로 손꼽혔다. ‘쌍둥이케이스’는 현대 의학과 사회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가 되었으며, 남성이나 여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으로 길러지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로 지난 30년 동안 반복해서 인용되었다. 또한 유사한 사고나 비정상적인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수많은 신생아들에 대한 치료 기준으로 사용되어 성전환의 관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케이스는 완벽한 실패로 드러났다. 유명한 쌍둥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강요된 성 정체성에 저항했다.
성전환수술을 받은 브루스(브렌다)는 매년 정기적으로 존 머니의 연구실이 있는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 가서 상담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존 머니 박사는 자신의 연구 업적을 위해 브렌다는 물론 브렌다의 남동생 브라이언까지 자신의 명령에 철저하게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연구를 진행한다.
머니 박사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던 브렌다는 14세가 되던 해에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사고로 페니스를 잃고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 브렌다는 남자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데이비드 라이머로 이름을 바꾼 뒤에 페니스 재건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두 번의 자살 시도라는 정신적 공황을 겪은 뒤에 마침내 지금의 아내 제인 폰테인과 결혼한다.
데이비드가 브렌다였을 때 그는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위에서는 끊임없이 여성성을 강요한다. 이런 정신적인 공황 속에서 데이비드는 사고로 페니스를 잃은 육체적 고통보다도 스스로가 느끼는 정체성대로 살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고 고백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관한 천성 결정론이나 환경 결정론에 관한 첨예한 논쟁을 벗어나, 한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극복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강요받지 않는 선택의 중요성’을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한다.
성 정체성 논쟁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브렌다로 살아온 데이비드 라이머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성 정체성에 대한 담론이나 논쟁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관한 논쟁을 넘어서서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주목한다. 그는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그(데이비드 라이머)는 단순히 성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의 경험담은 독특하기는 하지만, 비웃고 억압하는 세상에 맞서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헤맸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론 라이머가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브렌다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 ‘왜 그런 수술을 받게 했느냐’가 아니고 ‘예전 이름은 무엇이었냐’였다는 말을 듣고 가장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누구냐’에 해당되는 이 질문을 통해서 데이비드는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과감히 뛰어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존중받아야 할 인간성’에 대해 논한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특징을 모두 지닌 ‘양성’에 대해 이 책의 후반부에서 상당부분 언급되고 있는 점과, 저자가 그들을 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성이 어떻게 억압받아 왔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성기의 구조나 성적 특징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인간성을 데이비드 라이머의 삶을 통해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데이비드 라이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 담론을 뛰어넘는 발언을 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남자나 여자로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저는 아내를 존중하고 가족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게 남자다워지는 길이라는 걸 아버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런 게 섹스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말입니다. 존 머니는 우리 아이들의 친아버지를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저는 친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아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게 바로 진정한 남자입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비록 이 책은 성과 성 정체성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거나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식의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한쪽 견해에 일방적으로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성은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이 책에 등장하는 라이너라는 의사의 말을 통해 제시한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야죠. 어느 쪽 성이 맞는 것 같은지 결정해야 할 사람은 본인 아닙니까.”
페니스를 잃는 사고를 통해 데이비드는 브루스, 브렌다, 데이비드라는 세 가지 인생을 살아야 했다. 사고를 당한 아이에게는 자신의 성을 선택할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성 심리학 권위자인 머니 박사는 양성으로 태어났거나 사고로 성기를 잃은 경우, 의도적으로 남성이나 여성으로 성을 정해주고 정신과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면 주어진 성에 따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근거없는 믿음으로 그는 주어진 성에 저항하는 브렌다의 태도와 반응을 자신의 연구에 유리하게 해석했고, 결국 그의 이기심 때문에 한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재단되었으며 가족들까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저자는 아무리 완벽하게 성을 바꾸거나 치료를 한다 해도 당사자의 의사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고통과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분히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성, 그것도 성전환을 경험한 인물의 삶을 통해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간성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 책은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를 포함한 성에 관한 다수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는 '꿈의 해석'과 더불어 인간의 삶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독창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히며, 1905년 처음 발표된 이후 약 20여 년에 걸쳐 수정 보완되면서 판을 거듭한 유명한 작품이다. 성적 충동이 인간의 심리 현상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며, 유아에게조차 성욕이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당대의 사회에 충격을 몰고 왔다.

 

 천부경에 대한 완전한 입체적 해석이 담겨 있다. 천부경은 물론 삼일신고, 다물홍방가 등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실려 있고, 도덕경, 팔쾌 등을 천부 사상에 입각해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고대의 천부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감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신화를 총망라했으며, 우리나라 고대 유물, 유적을 통한 고증이 따른다. 이 밖에도 그 동안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격암유록의 핵심적 부분들을 천부 사상을 통해 밝혀 놓았다. - '복희-여와도'는 동양식의 '남녀추니(양성 일체, Androgyne)도'이다.

 

 이것은 괴이한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진정 누구인가
17-18세기 비밀출판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악명 높은 문헌!
근대이성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 종교의 실체, 몇 세기에 걸친 금서의 완역
세계 3대 종교의 본질을 묻는 희대의 불온서
때는 17세기 말. ‘사상(思想)도 얼어버린다’는 북구의 나라 스웨덴 스톡홀름 궁전에서는 당대 제일의 지성적인 군주로 유명한 크리스티나 여왕이 이제나저제나 희소식이 당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카르트를 개인교수로 초빙할 만큼 학예와 철학에 조예가 깊은 여왕은 근래 들어 부쩍 유럽 전역을 들쑤시듯 떠돌고 있는 흉흉한 괴소문에 여간 호기심이 쏠리는 게 아니었다. 도무지 진원(震源)이 파악되지 않는 괴소문은 어느 한 정체불명의 문헌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슬 시퍼런 검열을 피해 오로지 수사본(手寫本) 형태로만, 그것도 유럽의 극히 제한된 지식인 그룹을 중심으로 웬 끔찍한 내용의 문헌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에 크리스티나 여왕은 문제의 수사본을 단 한 부라도 구해오는 사람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도 대령하는 자가 없었다. 그 당시 그 문헌을 구한다는 것은 결국 목숨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생을 마치는 1689년까지 여왕은 문제의 괴문헌을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23년이 더 지난 1712년,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사상 최초로 문제의 수사본이 『스피노자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서적으로 출간되었고, 그 부수는 고작 일흔 부였다. 다시 그로부터 9년이 더 지난 1721년 재판을 찍으면서 몇 가지를 좀더 치밀하게 수정, 보완한 텍스트를 주 텍스트로 삼아 30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프랑스 막스밀로 출판사가 2001년에 출간했다. 생각의나무에서 출간하는 이 책은 이 텍스트를 근간으로 하여 한국에 최초로 선보이는 희귀한 문헌이자 세계적인 금서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기꾼들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일 뿐
이 책은 18세기 내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전 유럽에서 출판되었고, 십여 차례에 걸쳐 거듭 필사되기도 했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기도 하였고, 실제 저자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심지어 숨은 저자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일 거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하면서, 결국 초긴장 상태의 파리경찰이 직접 나서 이 책을 유통시키는 서적상을 일제 검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 이유는 단순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필경 스피노자의 사상에 정통했음이 분명한 저자의 주장이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기꾼들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일 뿐이며,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민중을 폭압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 도발적인 책은, 유럽 전역에 계몽사상이 만연하기 한 세기나 앞서 이미 인간의 사고를 해방하려는 극단적 시도가 발화했고, 그 파괴적인 화력이 결국 프랑스 대혁명에까지 고스란히 이어갔음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이 책은 일단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을 뿐더러, 온갖 종교적 갈등의 서슬이 시퍼런 현재에도 생생히 살아서 종교에 관하여 꼼꼼히 검토할 만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유난히 온갖 종교들이 성한 우리나라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다른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30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읽힌다. 필자의 정치한 논리와 위트, 유머가 섞인 문체를 따라가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문헌적 가치와 당대와 맞물리는 시사적인 가치를 고루 갖춤으로써 인간과 세상에 두루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읽을 만한 책이다. -  아울러 안드로귀노스(Androgynos: 남녀추니)의 이야기야말로, 「창세기」에서 말하듯 아담의 늑골로부터 이브를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얼마나 근사한 발상이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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