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 전2권 세트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헨리라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시간 여행을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났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기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 남자에게 살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6살짜리 꼬마 소녀 클레어다. 미래의 자신의 신부가 될 소녀를 만나면서 그는 자신이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후로 일어날 삶의 모든 희망과 절망과 환희와 고통, 모두를...


클레어라는 여자가 있다. 6살 때 나이 든 한 벌거벗은 남자를 만나며 그녀의 인생은 이미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위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고 만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헨리가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현실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운명과 사랑이 미리 정해진 것이라면 행복하게 받아들일 밖에.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 작품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러브스토리다. 결국 날 울리게 만드는 그런 소설. 그 슬픔에 몸을 맡긴 채 주체하지 못해 떠돌아다니게 만드는... 그렇다. 나는 울고 있다. 하지만 울면서 생각한다. 헨리의 아버지가 어느날 헨리가 시간 여행을 하며 엄마를 만난다는 얘기를 하자 아내가 과거속에 행복하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다는 말을 들으며 사랑이 위대한 것은 죽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녀가 과거에 행복했음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현실처럼, 내 일처럼, 내 행복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어떤 사람들은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아이 낳고 살다가 늙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1년만에 잃어 그 아픔으로 평생 혼자 그리움속에 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랑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랑을 찾기도 한다. 어떤 사랑이면 어떠랴. 사랑에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하지만 만약 헨리가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가 클레어를 만났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신의 아내가 평생을 그리움속에서 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만의 사랑을 고집했을까? 아니지만 바꿀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리라.


동화처럼 환상적인 로맨스 소설처럼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소설을 선호하지만 그런 소설은 읽다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뒤 그들은 서로 바람을 피우다가 재산 싸움을 하고 원수처럼 헤어졌습니다.’일 수도 있느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 작품도 ‘클레어는 대부분의 시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로 끝날 수도 있다. 그 사이의 시간 내내 클레어는 외로웠을 것이고 쓸쓸했을 것이지만 그리움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달랬을 것이다. 마치 전쟁때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평생 기다리며 자식을 키우다 세상을 떠난 우리의 이웃 할머니처럼. 우리는 그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클레어와 헨리의 삶과 사랑도 아름답지 않다.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은 환상일뿐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오늘 하나의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그 사랑은 슬프고 긴 여운을 남겼다. 어쩜 오늘 나를 찾아 나와 똑같은 이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슬며시 웃는다. 도플갱어란 어쩌면 시간 여행자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럼 나는 이런 말을 해주리라. "그대 두 팔에서 그리움을 던저버려라!"

 

마지막으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제 1 비가 중에서 한 소절을 적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세상 의지하고 우리 더 이상
편안할 수 없음을. 아마도 우리에겐
매일같이 보고 또 볼 비탈길 어느 한 그루 나무만이
남아 있으리라. 또한 어제 거닐었던 거리와,
우리가 마음에 들어 가지 않고 머물어 있는
습관의 뒤틀린 성실함이 남아 있으리라.
오오, 그리고 밤, 밤이 있다. 그때 세상 공간 가득한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는다. -누구에게 밤이 남아 있지 않으랴.
기다렸으면서도 부드러운 환멸을 느끼게 하며 외로운 마음에
고통스레 다가서는 밤.연인이라 해서 밤이 더 마음 가벼울까
아아,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운명을 감출 뿐이다.
아직도 그대 모르겠는가? 우리 호흡하는 공간 속으로
그대 두 팔에서 공허를 던져버려라. 아마도 새들은
그 더욱 열렬한 비상과 더불어 넓혀진 대기를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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