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인젤(Insel)출판사가 70년간 출판해 온 릴케의 책을 바탕으로 한 책세상 <릴케전집>의 열번째 권. 화가와 조각가(로댕)의 예술세계에 대한 릴케의 생각을 적은 글이다. 이 글은 릴케 문학의 특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문헌 중의 하나이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를 찾아 떠나는 예담의 ‘세계 인문 기행 시리즈’ 여섯 번째. 문학과 음악을 비롯한 예술적 깊이 있는 철학의 나라이면서 아름다운 풍광과 정서를 지닌 독일의 도시 열세 곳을, 시인이자 여러 대학에서 독문학과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는 이민수 교수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다. 저자가 직접 찍은 300여 컷의 다채로운 컬러 사진도 수려한 볼거리.
- 오늘날 보르프스베데는 "세계의 마을"이라 불린 만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활발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보르프스베데는 그 자체가 "야외 박물관"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광기의 시대에 맞선 치열한 양심의 극(劇)이었던 조피 숄의 생은 지난 세기의 70년대 말, 80년대 초 또 다른 정치적 암흑기를 살고 있던 한국의 젊은이들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큰언니 잉에 숄 지음)이라는 책자를 통해 단편적인, 그러나 암흑 속의 불꽃 같은 강렬한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아마도 그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이라면 ‘아미자’로 줄여 불렀던 그 책의 뜨거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캠퍼스 곳곳에 사복형사들의 음험한 눈이 깔려 있던 그 시절, 이른 아침 빈 강의실에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발견했을 때, 조피 숄 남매의 아름다운 죽음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속에서 시대를 건너 되살아나고 있었지 않았을까. 황지우 시인의 시 한 편이 이러한 사정을 아프게 응축해놓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한 세대의 시간을 지나서 본격적인 평전의 형식으로 조피 숄의 삶과 다시 만난다. 열렬한 히틀러 유겐트였던 한 소녀가 반나치 투쟁에 목숨을 걸기까지 스물두 해, 그 짧은 일생을 당시의 시대상과 꼼꼼히 교직시켜 복원해낸 이 가슴 아픈 평전은 시간이 침식시킬 수 없는 인간 행동의 아름다움이 여전한 감동의 원천이며,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진리의 요청임을 새삼 증거하고 있는 듯하다.
히틀러에 대한 열광과 환멸, 그리고 저항
조피가 태어난 1921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노동당을 국가사회주의노동당으로 바꾸고 당수가 되었다. 반유대주의와 독일 민족주의를 무기로 등장한 히틀러의 선동적 정치술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던 독일 국민에게 맹목의 희망으로 비치며 서서히, 그러나 한순간에 독일 사회를 나치의 광기 속으로 끌여들였다. 조피의 성장기인 20년대와 30년대의 독일은 곧 히틀러, 나치의 독일이었다. 아니, 조피의 짧은 생 전부가 히틀러의 광기의 그늘 아래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 바바라 라이스너는 이처럼 새로운 지도자 히틀러에 대한 열광으로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독일 소녀 조피 숄이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히틀러와 나치에 저항하게 되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 복원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조피도 새로운 지도자 히틀러에게 열광했다. 언니 잉에가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과 함께 떠난 야영지에서 우연히 지도자 히틀러를 만났던 일을 더없이 부러워하고,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에 오빠 한스가 기수로 나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조피 자신도 열세 살이 되자 독일소녀연맹에 가입해 열성 단원으로 활동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통 사람들처럼 고민하고 갈등했던 인간 조피 숄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백장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투쟁적 시기의 조피 숄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열성적인 나치의 지지자로 성장했던 울름에서의 학창 시절까지 시야를 넓힌다. 그렇게 해서 조피가 점차 국가사회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비판적 견해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그녀의 일상적 경험 속에서 세밀하게 그려낸다.
독일 국민이 뽑은 위대한 독일인 10인
저자는 이 책의 서술을 위해 기존의 사료를 새롭게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1989년에야 비로소 공개된 심문 기록을 참조했다. 그 밖에도 조피 숄의 어릴 적 친구를 비롯해 수많은 동시대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와 같이 일상사적, 구술사적 연구를 접목함으로써 저자는 자칫 건조해질 수 있는 조피 숄의 일대기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또한 전개 방식 자체가 이야기식 서술을 따르고 있어 독자들은 마치 한 권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다. 조피 숄은 광기의 시대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이자 투사였지만, 동시에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녀였다는 사실, 이 사실의 확인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2003년 독일의 한 방송사에서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위대한 독일인 10인’을 선정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비롯해 칼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마르틴 루터, 오토 폰 비스마르크, 요한 볼프강 괴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에 이어 숄 남매가 선정되었다. 한편 올해 2월 10일 열린 제55회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전후 3세대인 마르크 로테문트 감독(36세)이 만든 「조피 숄-마지막 날들」이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조피가 오빠 한스와 함께 백장미단의 전단을 뿌린 후 체포, 심문, 사형 선고, 참수형 집행으로 이어진 엿새 동안의 시간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조피 숄로 분한 율리아 옌치는 2월 19일 폐막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보르프스베데 예술가촌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