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기'와 '노동과 나날' 국내 첫 완역.
그리스 신화의 고전 중의 고전 '신통기(Theogonia)'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개된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그동안 일본 번역의 영향으로 간간이 책자 이름만 소개되었었다. '신통기'와 함께 '노동과 나날'을 같이 번역함으로써, 우리 독자들에게 비로소 그리스 고전의 세계를 선보인 셈이다.
김원익(연세대 강사) 씨는 '신통기'를 번역하면서, 충실한 주석과 찾아보기, 목차, 해설 그리고 10여 점에 달하는 그리스 신들의 계보도를 작성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까다로운 운문을 부드러운 산문으로 바꾸는 등의 노력과 함께, <독일어-그리스어 대역판>과 <영어-그리스어 대역판>을 같이 교차 비교하며 번역함으로써, “능력에 부쳐” <그리스어>로 직접 번역하지 못함을 보완하였다.
'신통기'와 '노동과 나날'의 번역 소개는, 그동안 호메로스 등의 고전과 조지프 캠벨과 카를 케레니 등의 신화책으로 이해하게 된 그리스 신들의 세계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접근을 가능케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이기 때문이다. 단지 최초의 책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헤시오도스는 그 자신의 관점으로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기술하면서 <세상의 생성>에 대해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보다 풍부한 그리스 신화의 고전을 소개 번역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독자들에게 무척 다행한 일인 듯하다.
헬리콘 산의 음유시인, 헤시오도스의 삶과 문학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던 음유시인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기원전 740년에서 670년 사이에 살았고 기원전 720년경에 음유시인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즈음에 호메로스와 10년 내지 20년쯤 같이 활동했는데, 시인 경연대회에서 호메로스를 이겨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헤시오도스는 '노동과 나날'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단편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처럼 작품 속에 자신의 전기를 기록하고 있는 작가는 세계 문학 사상 헤시오도스가 처음이다. 그것에 따르면 헤시오도스는 젊었을 때엔 헬리콘 산의 기슭에서 양치기 노릇을 하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물려받은 땅을 경작하며 열심히 살았다. 헤시오도스는 '노동과 나날'에서 한낱 목동에 불과한 자신에게 헬리콘 산의 무사이 여신이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주었노라고 쓰고 있다. 따라서 헤시오도스가 시인의 길에 접어든 것은 헬리콘 산에서 목동 노릇을 할 무렵 만난 방랑하는 음유시인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그의 대표 작품은 '노동과 나날' 및 '신통기'가 있다. '신통기'의 마지막을 보면 우리는 그가 신들과 인간 여성들과의 결합을 다룬 책을 썼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책은 헬렌 족의 세 가계로 이어지는 최초의 인간들을 서술한 것인데, '여인들의 목록'이라는 책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 최근 '헤라클레스의 방패'라는 작품도 일부가 발견되었다. 오르코메노스에는 비문이 있는 그의 묘가 있으며, 테스피아이 시장에는 그의 입상이 세워져 있다.
서양 문학사상 처음으로 역사와 철학, 노동과 정의의 본질을 제시한 고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노동과 나날'에는 동시대의 시인 호메로스와 견주어 볼 때, 저자만의 독특한 점들이 있다. '오뒤세이아', '일리아드'가 집단 구연된 신화를 호메로스가 기록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인 데 반해, 헤시오도스의 저작들은 저자의 작품임이 확실하다. 물론, 당시의 이야기(신화)들을 어느 한 개인의 저작물만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헤시오도스는, 당시의 이야기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구현해 낸다. 그것은 <정의의 구현과 노동의 신성함>이다. 이 점이 있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헤시오도스의 저작들의 독특한 점은, 첫째, 당시까지 사람들의 입으로 단편적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복잡한 신들의 계보를 그리스 문학사상 최초로 그리고 서양 문학사상 최초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들의 가계를 족보처럼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신들의 가계를 정의의 구현이라는 특정한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점이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제우스의 할아버지인 우라노스나 아버지 크로노스는 노쇠해서가 아니라, 우라노스는 자기 아내 가이아에게, 크로노스는 자기 아버지 우라노스와 자식들에게 불의를 저질렀기 때문에 권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으며, 마지막에 제우스가 신들과 인간들의 왕으로서 최고의 신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은 그가 그야말로 정의로운 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통기'에서 제우스가 티탄 신족들과 벌이는 전쟁은 자신의 권력욕과 야심을 채우기 위한 추악한 전쟁이 아니라 불의에 대항해서 싸우는 정의로운 전쟁으로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신통기'에서 모든 이야기는 그런 정의로운 제우스가 모든 갈등을 아우르며 난공불락의 확고한 권력 체계를 갖추게 되는 부분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 부분 또한 거의 정확히 신통기의 중앙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 점에서 바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신화를 넘어서 도덕적인 교훈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신통기'의 두 번째 독특한 점은, 사랑의 신 <에로스>를 <카오스>나 <가이아>처럼 태초부터 있었던 원초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태초의 <카오스>와 <가이아>에게서 모든 신들이 나왔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생성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인 <에로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헤시오도스는 <아프로디테> 또한 크로노스에 의해 잘린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떨어져 생긴 거품에서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 <아프로디테>가 신으로 승격되자 자연스럽게 <에로스>가 그녀를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고 쓰며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신통기'가 나온 지 300여 년 이후에 쓰인 플라톤의 '향연'에도 이 두 가지 입장이 나타난다. <에로스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붙인 이 책을 보면 <에로스>에 대해 여러 철학자가 토론을 하는데, 그중 파이드로스는 하나의 에로스만을 이야기하는 데 비해, 파우사니아스는 <아프로디테>나 <에로스>가 원래 둘이었다고 말하고 있다.(해설 참조, 173~175쪽)
이상의 점들에서,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세상의 생성과 제우스의 권력 쟁취로 이루어지는 정의로운 세계 질서의 구축 과정을 설명하였다는 점이 드러난다. 단지 족보를 그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세상의 생성>을 다룸으로써, 그렇게 생겨난 세상에서의 <인간의 윤리적 태도>를 기술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다음 작품 '노동과 나날'로 이어진다.
헤시오도스의 세 번째 독특한 점은, '노동과 나날'에서 '신통기'의 주 테마인 <정의의 구현>이라는 관점을 <노동의 신성함>으로 연결시킨 데 있다. 헤시오도스는 세상의 생성과 신들의 질서를 언급한 후에 이제 시선을 인간의 삶으로 돌릴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살아갈 때 정의와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하고 있다. 헤시오도스가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배경은 동생 페르세스가 상속하여 형 헤시오도스와 나눈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재판관들과 결탁하여 부당하게 자신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일으킨 상속 분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게으르고 부정한 페르세스라는 동생에게 부지런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권고하고 훈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헤시오도스의 슬픈 가족사를 뛰어 넘어 인간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헤시오도스 작품의 본질은 그가 호메로스 이후 서양에서 처음으로 후세 철학의 근본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생성과 인간의 윤리적 문제이다. 왜냐하면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는 세상의 생성과 제우스의 권력 쟁취로 이루어지는 정의로운 세계 질서의 구축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노동과 나날'에서는 인류역사를 처음부터 자신이 살던 당시까지 서술하면서 인간의 삶에 정의와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의 다섯 시기에 대한 헤시오도스의 성찰을 보면 그는 역사 철학과 인류학의 선구자다. 그는 또한 시 문학에 처음으로 교훈을 도입하여 교훈시라는 새로운 장르도 개척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서양 문학 사상 최초로 유토피아를 기획하였으며, 정의의 본질을 파헤침으로써 최초의 법 철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노동과 나날'에서 엿보이는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은 후세의 자연문학의 출발점으로 여겨질 만하다.

  부유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평범한 시골 의사와 결혼하고, 작은 성을 가진 바람둥이 독신남과 공증인의 정부가 되었던 주인공 엠마는 평범한 삶에 만족하기에는 너무도 열정적이었기에 자살로 삶을 끝마친다. 절대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결국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진부하고 속악한 현실 속으로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이 엠마 보바리의 이름을 딴 보바리즘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을 지칭하기 위해 1910년 철학자 쥘 고티에가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심리로 간주되고 있다. 불가능한 행복을 꿈꾸는, 그리하여 자신을 실제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이상적인 모델들이나 이미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 특징적인 태도는, 비록 그 강도와 횟수의 차이는 있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심리일 것이다.
1848세대,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새로운 문학을 잉태하다
1821년에 출생하여 1880년에 세상을 떠난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생애는 정확하게 19세기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1848년은 19세기 프랑스사의 전환점이 된 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1848년 6월 봉기를 기점으로 진보적 부르주아가 보수화되면서 체제 유지로 돌아서게 되었다. 예술에 있어서도 2월 혁명을 기점으로 낭만주의가 급속히 쇠퇴하고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이론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다. 1848년 2월 최고점에 달했던 정치적 도취상태가 몇 달 만에 환멸로 바뀌었던 것과 동궤로 1848년 이후 낭만주의의 감성과 열정, 우울한 정서, 순수성에 대한 집착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낭만주의가 쇠퇴하게 된 원인으로 정치적 좌절이나 창백한 안색의 주인공들이 내뱉는 한숨과 눈물에 대한 싫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기 이후 혁신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에 의해 변화된 삶의 외향적 조건들이 그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마차를 타고 파리와 루앙을 오가던 사람들과 기차를 이용하게 된 사람들 사이의 감수성의 차이, 해가 지면 암흑전지로 변하는 도시와 가스등이 환하게 켜지는 도시를 경험한 사람들의 감수성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마담 보바리』는 바로 이러한 감수성의 차이에서 잉태되었으며 현대성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문학은 바로 이 작품 『마담 보바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바로 이 점에서 『마담 보바리』는 현대 문학의 전범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내 속에 감추어진 엠마 보바리, 나를 읽는 코드 보바리즘
소설 창작 당시 플로베르는 이 작품이 뛰어난 것이 된다면 그것은 심리소설로서일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부유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평범한 시골 의사와 결혼하고, 작은 성을 가진 바람둥이 독신남과 공증인의 정부가 되었던 주인공 엠마는 평범한 삶에 만족하기에는 너무도 열정적이었기에 자살로 삶을 끝마친다. 절대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결국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진부하고 속악한 현실 속으로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이 엠마 보바리의 이름을 딴 보바리즘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을 지칭하기 위해 1910년 철학자 쥘 고티에가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심리로 간주되고 있다. 불가능한 행복을 꿈꾸는, 그리하여 자신을 실제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이상적인 모델들이나 이미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 특징적인 태도는, 비록 그 강도와 횟수의 차이는 있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심리일 것이다. 이제 ‘엠마 보바리’는 바로 나를 이루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마담 보바리-현대 문학의 전범』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자신 안에 감춰진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과 긴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담 보바리』와 조우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다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등등등 그러한 소설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관심만큼 실제로 그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그것은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재미를 발견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러한 고전적인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이드북이 산을 이룰 만큼 많이 있다. 그것이 실제로 고전 읽기를 가능하게 하며, 대중들의 독서를 추동하는 힘이자 가이드가 된다.
저자 오영주는 바로 이러한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플로베르와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섬세한 시선으로 『마담 보바리』와 플로베르를 둘러싼 만화경들과 더불어 『마담 보바리』를 만들어 낸 플로베르의 미학적 방법론과 『마담 보바리』 안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마담 보바리』와 플로베르와 조우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 이 통로를 통해 『마담 보바리』를 만나게 되는 독자들은, 바로 플로베르가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그 핵심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단명하거나 요절한 음악가들의 일대기와 함께 병적, 사인을 밝힌 책.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 베토벤 등 중독사한 음악가들, 베르크, 말러 등 감염병으로 사망한 음악가들, 슈만, 멘델스존, 레거 등 암과 심혈관 병으로 사망한 음악가들로 나누어 엮었다. 불멸의 걸작을 탄생시킨 대음악가의 삶과 죽음을 법의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서술해 독자들에게 색다른 흥미를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았던 자신의 고향 프로방스 지방을 무대로 그린 소설이다.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가슴 찡한 이야기와 밝은 햇빛이 비치는 산과 들, 한가로운 시골 풍경들로 가득 차 있어 마치 독자들로 하여금 19세기의 프로방스에 가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마지막 수업

황금뇌를 가진 사람의 전설
박시우의 지갑
코르니유 노인의 비밀
세갱 씨의 염소
보케르 역마차
정착
아를르에서 온 소녀
산문으로 쓴 발라드
고셔 신부의 술
레상귀네르의 등대
밀리아나에서
교황의 노새
메뚜기 떼
카마르그에서
노부부
시인 미스트랄
오렌지
막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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