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먼은 이 책에서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각기 상이한 인간유형이 탄생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인간유형을 크게 3가지로 나누었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인간유형의 삼분법으로, 즉 원시적 전통사회에서는 전통과 과거를 행위모형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인간이 전통지향형(tradition directed type)이다. 그후, 19세기의 초기 공업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족에 의하여 일찍부터 학습된 어떤 내면화된 도덕과 가치관이 인간행위 주요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을 내부지향형(inner directed type)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현대인은 또래집단·친구집단(peer group)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의 영향에 따라 행동하는 타자(외부)지향형(other directed type)이다. 고독한 군중은 바로 이러한 현대 고도산업화에 따르는 대중사회에 있어서의 특유한 성격유형이다. 현대인은 타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이처럼 외관상의 사교성과는 달리 내면적인 고립감에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말한다. 타자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가장 심각한 불안이 된다.

* 리스먼의 대표작이라기에...

 《불멸의 유혹》, 금기를 몰랐던 한 자유주의자의 고백록
18세기 시대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

바람둥이나 호색한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카사노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그의 명성은 단지 화려한 여성 편력 때문에 비롯된 것일까? 그가 그 시대의 많은 위인들을 제쳐두고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카사노바 본인이 직접 답을 내놓았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쇠락한 말년의 카사노바는 보헤미아의 둑스 성에서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드라마틱한 생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는 서문에서 자서전을 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늙고 지친 데다가 성적 능력마저 잃어 우울증에 빠진 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자서전을 쓰는 일이었다. 그는 과거의 일분일초까지 자세히 기억해냄으로써 과거의 즐거움을 상상 속에서나마 다시 맛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 문제아의 자서전은 마침내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아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
장장 12권짜리 방대한 자서전 《Histoire de ma vie 나의 생애》(카사노바는 이탈리아인이었으나 자서전은 불어로 썼다)는 현재 18세기 유럽 대도시의 풍속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자서전은 카사노바가 태어나기 300년 전, 7대조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카사노바 가문의 내력으로 시작된다.
카사노바 자신의 생애 이야기는 여덟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술된다. 그는 여덟 살 때 병을 고치기 위해 마법사의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인 환상을 체험한다. 훗날의 카사노바는 어린 시절의 이 특이한 체험을 자신의 생애에 대한 모종의 암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극히 현란한 삶이 지극히 자세하게 묘사된 길고 긴 자서전은 1774년에서 끝난다. 1774년은 카사노바가 마흔아홉 살 되던 해로, 그는 그 이후 24년을 더 살았지만 행복한 시절은 그맘때쯤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고국 베네치아에서 추방당해 오랜 망명생활을 해온 카사노바는 1774년에 마침내 귀국 허락을 받고 베네치아로 돌아오지만, 또다시 불미스런 사건이 터져 곧 다시 추방된다. 이미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그는 이제 육신이 편히 기거할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유럽 각지를 헤매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정착한 곳이 보헤미아의 둑스 성. 둑스 성 하인들의 가혹한 따돌림과 경멸을 하루하루 견뎌야 했던 그로서는 젊은 날의 영광이 다 사라진 이 시절부터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완간되다
카사노바는 임종시에 자서전 원고를 조카 카를로 안조리니에게 넘겼다. 안조리니는 이 원고를 1820년에 라이프치히의 브록하우스 출판사에 헐값에 팔았다. 그리고 브록하우스에서는 프랑스어 원고를 1822년과 1828년 사이에 빌헬름 폰 슐츠의 번역으로 독일어판으로 출간했다. 1825년에는 이 독일어판을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한 해적판이 나오기도 했는데, 내용이 원본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자 브록하우스 출판사는 해적판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당시 라이프치히의 프랑스어 교수였던 장 라포르그에게 의뢰하여 원본의 이탈리어식 프랑스어를 ‘교정’하고 편집해줄 것을 의뢰한다.
그러나 라포르그는 세기의 문학적 범죄라 불릴 정도로 원고를 심하게 훼손해놓았다. 그는 단순한 ‘교정’ 차원이 아니라, 원고를 마구 삭제하고 ‘불온한’ 문구를 멋대로 고쳐놓았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카사노바의 기독교적 신앙이 나타난 부분이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감이 어린 대목은 잘라버렸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이 원고는 잊혀졌다가 마침내 1960년, 브록하우스 출판사가 프랑스의 플롱 출판사와 손잡고 무삭제 무교정판을 원본 그대로 출간한다. (단, 라포르그가 분실한 것임에 틀림없는 네 개의 장은 누락된 채로 발간되었다.) 이 책이 바로 《Histoire de ma vie》(Brockhaus and Librairie Plon, 1960~61)이며, 카사노바와 그의 시대를 연구하는 기본 자료가 되고 있다.
1993년에 브록하우스-플롱 판을 개정한 개정판이 다시 출간되었는데, 여기에는 비평 자료와 참고 자료, 그리고 카사노바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 등이 추가되어, 현재 가장 유용하고 결정적인 카사노바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바로 《Histoire de ma vie; suivi de textes inedits》(Laffont, 1993)이다.
브록하우스-플롱 판을 영어로 번역한 영어판은 1967년에 하커트 등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현재는 존스 홉킨스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된 《The History of my life》(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7)이 가장 최근 것으로 남아 있다.
한국어판 《불멸의 유혹-카사노바 자서전》은 영어본을 번역 대본으로 하고 프랑스어 원본을 참고한 것으로, 12권짜리를 한 권으로 줄인 것이다. 따라서 중간중간 문맥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을 요약 설명해 놓았다.
또한 책의 도입부에 칼라 화보를 달아 카사노바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 그리고 오늘날 남아 있는 그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불멸의 유혹》에 나타난 카사노바의 삶과 연애
그 자체로 위대한 문학작품이었던 카사노바의 삶
생전에 스스로 문인이며 철학자라고 생각했던 자코모 카사노바. 하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을 빌리면, 그는 문인으로서는 아마추어 수준일 뿐이었고, 귀족이나 작가들 사이에서 그저 무위도식하는 식객이며 불청객일 뿐이었다. 더구나 그는 수많은 사기극으로 재력가들의 돈을 우려낸 사기꾼이자, 평민 출신임을 부끄러워하여 자기가 어느 귀족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켰던 허영심 가득한 사내였다.
그런데 이 한량의 자서전이 한낱 곰팡내 나는 쓰레기로 치부되기는커녕, 동시대의 어떤 유명 작가들보다도 많은 나라에서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카사노바는 자신에게 최고의 자산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삶은 나의 주제이고, 나의 주제는 나의 삶”이라고 말하는 그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철저히 자유의지에 따르며 살았기에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생에 충실할 수 있었고, 그 어떤 이의 삶보다 흥미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생의 모험담에 비범한 기억력과 거리낌 없는 솔직함이 가미되어, 단지 자신과 친구들의 즐거움을 위해 쓰인 이 자서전은 기대 이상의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다채로운 그의 생애는 그가 한낱 호색한으로 머물기에는 너무나 많은 재능과 다양한 삶의 면모를 지니고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가 평생 무수히 많은 여자들과 성의 쾌락을 즐겼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이외에도 촉망 받는 성직자이자 군인,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프리드리히 2세나 예카테리나 대제 등 각국 군주들 앞에서 날카로운 현실 감각을 발휘하였고, 로또 사업으로 큰돈을 버는 등 앞날을 내다보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책을 쓰거나 번역하면서 작가로서의 자취를 남기기도 했는데, 《폴란드 역사》, 《볼테르 비평서》 등을 썼고, 특히 공상과학소설 《20일 간의 이야기》는 쥘 베른의 《땅속 여행》의 선구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이 자서전에는 카사노바가 터키,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폴란드 등 전 유럽을 다니며 겪은 다채롭고 화려한 편력이 마치 한 편의 대하소설처럼 쓰여 있다. 영문도 모르고 체포되어 감옥을 탈출하기까지의 기구한 사연, 유대 신비교의 지식과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는 장면, 여자와 자존심을 위해 결투를 벌이는 장면 등, 카사노바 일생의 명장면이라 불릴 장면이 저자의 생생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다.

카사노바의 여자들
카사노바는 평생을 통틀어 여자와의 사랑, 맛있는 음식 등 여러 감각의 기쁨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언제나 여자를 사랑했다고 말할 정도로 여인들과의 사랑에 온 열정을 다했으며, 또한 맛있는 음식을 사랑했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열렬히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카사노바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여자를 사랑한 바람둥이였지만, 언제나 진심으로 여자를 사랑한 진정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다. 카사노바가 최초로 사랑했던 여인 베티나는(2장, 3장 참조) 아직 어렸던 카사노바의 순진함을 이용하는 영악함을 가지고 있었다. 카사노바는 이런 경험을 통해 사춘기 이전에 이미 여자에 대해 훌륭한 가르침을 얻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순 살이 되어서까지도 끊임없이 여자에게 속았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가 수많은 여자를 웃고 울린 만큼, 그 역시 많은 여인들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했노라는 그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그가 단지 무분별한 호색한이 아니라 여느 사람들보다 뜨거운 열정을 지녔으며, 그 열정으로 더 많은 기회를 스스로 창조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수한 소녀 루치아(4장 참조)를 만났을 때, 카사노바는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 한 번의 손길이나 키스만으로도 모든 걸 다 태워버릴 수 있는 짚덤불처럼 위험한”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며, 고문과 같은 괴로운 밤들을 견뎌낸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순결한 그녀를 지키려 노력한다.
C. C.와 M. M.과의 연애담은 카사노바의 생애에서 무척 유명한 이야기이다.(12장, 13장 참조) 1753년 베네치아로 돌아온 카사노바는 C. C.(카테리나 카프레타)라는 젊은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원하지만 이에 반대한 여자의 부모는 C. C.를 수녀원에 보내버린다.
C. C.를 만나기 위해 수녀원을 들락거리던 카사노바를 눈여겨본 또 한 사람의 수녀가 M. M.(이 여인의 이름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이다. 그녀는 카사노바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내고, 이후 둘은 뜨거운 관계가 된다. C. C. 몰래 화려한 카지노에서 밀회를 즐기며, M. M.의 연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기도 한다.
카사노바의 한도를 모르는 분방한 연애는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으며, 빈번한 일탈과 방종한 삶은 그의 생전에 수많은 적을 만들어내었다. 따라서 그 주변에는 모함과 루머가 끊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추방, 감금, 고소 등의 각종 말썽에 휘말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말년의 그는 이 모든 것을 웃으며 회상하는 즐거운 모험담으로 기록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선행과 악행에 응분의 대가를 치렀으며, 언제나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왔다고 당당히 선포한다.
수많은 사건과 연애담이 장황하게 기록된 이 고백록에서 독자는 한 풍운아의 남달랐던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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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2-0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일하게 보는 몇개의 TV프로중 하나인 상상플러스에서
어제는 10대들이 즐겨 쓰는 말로 문제가 나왔는데 정답이 `무플'이더군요.
악플보더 더 무서운게 무플이라고 하던데. 그것고 어떻게 보면 타자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으로 인한 불안증에서 기인된 게 아닌가 싶네요..^^

물만두 2006-02-0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플이라고 했답니다. 맞아요. 이게 블로그의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