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시선 19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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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일흔 일곱 되신 큰 이모는 아침이면 세수하고 화장대에 앉는다. 언제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밑까지 파서 쓰고도 아직 더 남았는지 알 수도 없는 화수분 같은 빨간 이모가 늘 말하는 구즈베니를, 또 언제 산건지 누구한테 얻은 건지 아주 오래된 입술솔로 입술을 칠하고 볼펜에 끼웠으면 하는 마음 절로 들게 하는 몽땅한 눈썹펜슬로 갈색 눈썹을 그린다. 그러고 우리 집에 오신다. 그 연세에 가실 곳이래야 동생 집과 슈퍼마켓뿐이고 가끔 노인정에 들르시는 게 전부지만 화장 안한 얼굴로는 절대 집밖을 나서지 않으신다.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더니 큰 이모부 말씀하시길 ‘살림 못하는 여자하고는 살아도 화장 안하는 여자와는 못산다.’하셨다나... 큰 이모부 가신 지도 이십여 년이 흘렀건만 변함없이 시쳇말로 립스틱 짙게 바르시길 멈추지 않으신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확 깨물어 버려 안에 넣어두든지 잘라 버리든지 하면 그만이고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서 외줄타기 한판 중인 나는 그저 오늘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할 때 이렇게 내 주변 얘기를 한다.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화장을 하는 큰이모를 보고 있으면 멀지 않은 그날이 와도 잘 가시리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추억 한 자락, 엄마의 핸드백 속에 들어 있는 외할머니 손수건 한 장처럼 간직하면 그 뿐일 테니까.

어느 마을 당산 나무는 몇 백 년을 살았기에 사람들의 조아림을 받고 어느 섬 조약돌은 몇 천 년 파도와 몸을 섞은 뒤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어 지고 어느 동굴 종유석은 또옥또옥 한 방울 씩 떨어지는 무엇이 얼마의 세월 동안 쌓였는지 가슴 아프게 길게 서 있는데 인간의 죽음이야 무에 그리 대수일까. 

썩어서 잘 썩어서 거름이나 되면 다행일 요즘 그저 어제 같은 오늘이기를, 오늘 같은 내일이기를 바라는 이내 몸은 노래 한 자락 부르고 만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았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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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1-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보다 더 우울하신거 같잖아요.ㅠㅠ

물만두 2006-01-1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우울합니다~ 별로 쓸 말이 없어서 쓴 겁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