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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헬무트 디틀 감독과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쓴 1997년 영화다. 시나리오를 읽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이렇게 독특한 시나리오는. 이탈리아 식당 <로시니>에 모여드는 단골 손님들의 일상과 고뇌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제작자 오스카 라이터와 시인 보도 크리크니츠와 발레리라는 여자의 삼각관계, 영화감독 우 치고이너, 롤렐라이를 쓴 작가 야콥 빈디시, 기자 샤를로테 잔더스, 발레리를 사랑하는 닥터 지기 겔버, 백설공주와 레즈비언 배우 칠리 바투스니크, 그리고 로시니의 주인 파올로 로시니... 모두 약간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그들만의 공간 로시니에서 안주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서로 물고 물린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오스카와 보도는 친한 친구이면서 발레리라는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고, 발레리는 그런 상황을 즐긴다. 닥터 겔버 역시 발레리를 사랑하지만 모두에게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고, 오스카와 우는 롤렐라이를 영화화하기 위해 작가 빈디시를 괴롭히고 빈디시의 염세주의적인 편집증은 로시니에서도 아무하고 어울리지 않고 별실에서 식사를 하게 한다. 그는 로시니의 종업원 세라피나를 좋아한다. 샤를로테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좋은 여자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로시니는 이런 모두에게 진절머리를 낸다. 어떻게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의 문제는 백설공주라는 여자가 나타나면서 완전하게 해결이 되고 결국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하고 심각한 문제는 발레리의 자살과 그녀의 역할을 백설공주가 다시 맡으면서 막을 내린다.
인생은 하나의 그럴듯한 코미디라고 시니컬하게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하지만 심각하고 우울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다시 코미디처럼 빠져 나와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고 심각했던 상황마저 코미디처럼 느끼게 하며 끝을 맺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생이란,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를 상기시킨다. 지극히 독일 적인 이 예술적인 영화 시나리오는 풍자적이지만 재미 면에서는 모자라고 예술성과 대중성은 공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 같다. 독일의 전설 로렐라이가 작품전반에 깔려 있고 그것은 현실에도 존재하지만 전설처럼 낭만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시나리오는 말하고 있다. 로렐라이는 발레리이기도 하고 백설공주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