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 상 창비교양문고 26
염상섭 지음 / 창비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조덕기 집안의 삼대에 관한 이야기다. 조덕기의 삼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조덕기까지 극변하는 그 시대의 모든 것을 이 작품은 알려준다. 이미 사라져 버린 조선의 생각과 사상을 아직도 가지고 과거의 관습에 집착하는 고집 센 노인인 할아버지 조의관과 그 아버지와는 달리 과거와 단절하고 신 문물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며 학교사업을 하는 인텔리이나 난봉꾼에 도덕관념이 전혀 없는 노름꾼인 아버지 조상훈.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단지 어떤 자기만의 사상이나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아버지와 같은 교육을 받았지만 결코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고 그저 끼어 있는 그들과 상관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소심한 주인공 조덕기. 그리고 그들 주변 인물과 상황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한 집에서 존재한다.

마치 조선 중기의 당파 싸움을 보는 듯한 인물들. 노론, 소론, 남인, 북인처럼 자신들 사상과 생각만이 옳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 속에 그들과 동떨어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의 고뇌. 신 문물이나 기독교 사상, 버려야하고 이제는 아무런 가치도 상실한 유교적 관습, 지독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투사들... 그들 중 어떤 것에는 반드시 속했어야 마땅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친일파인가. 덕기는 친구 김병화와 일본 오뎅 집을 들어간다. 그곳에서 동창인 홍경애를 발견하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사연이 들어있다. 이것이 작품의 시작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모진 고문으로 병원에 실려온 덕기는 열에 들떠 필순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고 그것을 들은 그의 순한 현모양처 아내는 가슴 아파하고 덕기는 필순에 대한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 상훈이 홍경애를 대했을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과 필순이 당도하게 될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며 끝을 맺는다.

덕기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이 짊어지고 가야할 우리의 혼란한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키고자 해도 지켜지지 않는 많은 것들. 생각과 사상과 관습과 가정과 도덕과 그리고 미래의 자신... 그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슬픔이었으리라. 아무도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살 수 없게 하는 비정함을 담담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말이 과찬이 아님을 읽은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 나라 근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사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읽고 그다지 그의 작품은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정말 다르다. <토지>처럼 대하소설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모두 들어 있다. 삼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 시대의 혼란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일제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았는지를 너무도 잘 표현해서 마치 그 시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단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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