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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에 바치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31
이선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0월
평점 :
평범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이다. 시인은 평범에 바친다했다. 무엇을.... 그녀의 후회와 욕망과 허무와 잡다한 일상의 모든 것들을... 그런 평범한 시어들의 나열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리가 갈망하는 평범이 결코 만만한 평범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리라.
시인은 말한다. 배설과 늙음과 죽음과 일상의 지겨움에 대해... 그것을 포장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냉장고는 냉장고일 뿐이고 오징어는 오물거리이고 사과는 사각거리는 존재일 뿐이다. 그 안에서 나는 다정한 일상의 오붓함을 본다. 시가 언제나 고통일 필요는 없다. 시인은 고통스럽겠지만 독자마저 고통을 당하고 오물을 뒤집어쓸 이유가 무엇인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우리가 매일 겪는 일들이 시인에게는 시가 되고 우리에게는 일상이 된다. 반복되는 어제속의 오늘과 나무늘보 같은 생을 마감하게 될 우리에게 시인은 참 다정하다. 아니 적나라하다. 아무것도 없는 빈주먹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시인은 마치 거창한 무엇인가를 품은 냥 주먹을 꽉 쥔 채 결코 그 주먹을 펴서 자신이 가진 것을 알려주지 않고 독자를 애 닳게 한다. 때론 화나게도 한다. 하지만 이 시인은 솔직하게 자신의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없음이 결코 없음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일상이 그저 일상이지 않다는 것이 시인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누군가는 삶은 그저 평범의 연속이라고 말하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 모든 색은 자신이 거부하는 색을 띤다. - 그렇다면 평범은 비범을 띤 색이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하기도 하고 비범하기도 한 나날들인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해준 간단명료한 시인의 시들... 맘에 든다.
마지막으로 자식의 커감이 애틋한 시인이여... 부디 스물일곱 평의 집에 살더라도 오래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한 독자가 당신에게 바치는 평범한 부탁을 부디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