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69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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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이 시집을 쓸 때 나이가 서른 즈음이다. 서른이라는 미묘한 나이가 시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비상을 꿈꾼다. 여러 갈래 길 사이에서 자신이 택한 길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시인은 나아가야 하는 지 되돌아가야 하는 지 망설이고 있다. 나무가 되어, 시인의 작품에는 많은 나무가 등장한다. 정착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동시에 비와 새가 되어 어딘가에 떨어지고 날아가고 싶어한다. 비록 하늘에 발목이 잡힌 새라 할지라도. 시인의 갈팡질팡은 그 나이를 겪는 모든 사람과 동일하다. 이십대에서 삼십대가 된다는 것은 두려움을 준다. 이십대처럼 젊지도 않고 사십대처럼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도 같으면서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인생의 죄책감을 짊어지게 되는 한 지점... 그 지점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고 누구도 명확한 마침표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1988년에 발표된 이 시집에서는 다른 시집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불안과 초조, 혼란을 느낀다.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정체 없는 그란 누구란 말인가. 그는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시인이 인정받고 싶은 존재일 수도 있고 그 누구도 아닐 수도 있다.

시 <잠자는 숲>에는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아, 나는

은사시나무숲으로 가고 싶죠.

내 나이가 이리저리 기울 때면.

<믿지 못하여>에서는 이런 구절이 눈에 띤다.

믿지 못하여 나는

만족하지 못하여

나는 안경을 썼다

이 두 구절만으로 시인의 시를 내가 감히 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시인의 심정도. 하지만 나는 내 입장에서 그 시절 내가 그러했기 때문에 공감한다. 나이가 주는 외로움을 시인도 겪었구나 하는 생각에 시가 친근히 다가오는 것을 어쩌랴. 시인도 나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발견한 기쁨을 만끽하게 내버려두시라. 나는 시를 평하거나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려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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