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바닥이 드러난 꿈 공장

누군가의 미래를 엿본다는 것, 다시말해 예언이니 예지라는 능력은 운명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미래의 삶이 피할 수 없는 사슬로 결박되어 있어야 예지는 농담이나 사기로 치부당하지 않고 초능력이란 감투를 받을 수 있다. 반면에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것, 즉 꿈은 미래의 가변성을 전제로 한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바람직한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꿈을 향하여 노력하는 시간이 논리적인 가치를 받게 된다.  이렇듯 예지 초능력과 노력, 운명과 꿈은 서로 모순되는 짝을 이루며, 이 소설의 인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5편의 단편 속, 각 인물들이 가진 꿈은 다양하지만 흔하다. 시나리오 작가나 전문 댄서가 되고 싶다는 사회적 자아 실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라든지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다는 순진하지만 순수한 바램. 하다못해 모든 단편에 등장하는 초능력자 야마하 케이시 조차  자신을 더 알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노력한다. 그러나  도쿄라는 동일한 공간에 갇힌 그들은, 이 도시에 입성할 때의 어린 모습에서 변질되어 간다.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소녀는 전화 데이트방 도우미로 일하다, 스토커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극작가를 꿈꾸는 착한 딸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성매매 업소에도 눈길이 간다. 철없는 부잣집 공주님을, 따뜻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남자는 어디에도 없다. 직업 무용수를 꿈꾸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상대를 돕는 착한 발레리나에겐, 4대보험이 보장되는 '꿈같은' 정규직 일자리가 나타난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시련과 시험속에서 그녀들은 "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 하고 수없이 되뇌이고, 자신의 운명을 엿볼 수 있길 갈구한다.

그런 그녀들에게 예언, 시간 여행, 빙의, 데자뷰와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고, 피상적으로 보기엔 그녀들은 실패한다. 초능력자 야마하 케이시가 본 그녀들의 미래는 눈물 또는 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예언된 미래의 어느 시점, 실패의 그 순간이 결코 삶을 지배하지 못하며, 시간을 채우는 것은 몇 번의 장면이 아니라, 흔들리는 삶을 바로잡으며 앞으로 나가는 본인들의 용기임을 역설한다.

지난 2009년  '최고의 음반' 상을 수상한 언니네이발관의 앨범에는, 내 자신이 가장 평범한, 보통의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의 슬픔, 담담함, 감동이 담겨 있었다. 꿈이나 예언 속에서 등장하는 사건은 말그대로 '비일상적'이다.  모순되는 이 두 녀석, 꿈과 운명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비닐 봉다리는 '특수성'이다.  일그러진 도시 문명이 주는 꿈 따위나, 그러므로 패배가 예고되어 있는 운명 따위에 스치지 않은, 가장 평범한 삶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삶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두가 평범함을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금 세대의 소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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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12-09-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조박님, 서평 감사드립니다. 멀리서나마 저희 언니도 즐겁게 읽을거에요.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는 저도 몇곡 들은적이 있는데, 그 노래처럼 담담한 책인가 봅니다. 서평 써주신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저자를 알려주심 더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