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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속의 거미 ㅣ 블랙 캣(Black Cat) 4
아사구레 미쓰후미 지음 / 영림카디널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이사를 오려고 집을 보고 나오다 사고를 당한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다음부터 남자의 귀가 이상해진다. 의사의 소견으론 아무 이상이 없는데 남자의 귀에는 모든 것이 크게 들리고 소음으로 남자는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 악기를 고치는 것이 직업인 남자는 우연히 자신이 세를 든 방의 여자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여자의 체취를 소리로 확인하려고 숟가락으로 방을 두드리고 다닌다. 그러면서 점차 여자와 자신을 돌 속에 갇힌 거미라는 것으로 동질화시켜 나간다. 남자는 소리만으로 여자를 찾아 나선다.
냄새만으로 살인이 일어났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나 손의 감촉만 가지고 느낄 수 있던 <사이코메트러 에지>, 오감을 총동원해 미래를 예감하는 <카케루>처럼 오감에 의한 미스터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독특하기는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사회에서 소외된 남자의 세상 살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가 환타지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환타지가 망상이라면 모르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영화 <거울속으로>가 생각났다. 마지막에 거울에 갇힌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섬뜩함... 그런 것이 이 작품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방적인 한 남자의 이야기에 의지하고 그 남자의 행동만을 따라가기 때문에 지루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관되게 소리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작가를 칭찬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가 이런 식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난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작품이 좀 더 하드보일드적이거나, 좀 더 환타지가 강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차라리 오컬트적으로 나아가던가... 그 동자승 모양의 돌의 출현이 의미를 좀더 가졌더라면 했다.
모두가 약하고 미스터리마저 약해 돌 속에 갇힌 것이 거미가 아니라 소리에 집착해 나오지 못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예 작가라고 하니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고 일본추리작가협회가 미스터리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것이 이 작품이 수상을 하게 된 것 아닌가 느껴졌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고독과 소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돌 속에 갇힌 거미처럼 사는 현대인들이 동류의 사람들을 만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소통은 어렵고 고독은 그리 쉽고 간단하게 떨쳐 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더 깊이 자신만의 돌 속을 파고드는 거미, 그러면서 계속 출구를 찾아 헤매는 거미... 마치 현대인이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가 이것이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