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기억
장 자크 로니에 지음, 임미경 옮김, 뫼비우스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을 믿나요?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에 많이 괴롭답니다. 운명을 믿나요? 나는 운명을 믿습니다. 내 운명이 나를 내 사랑으로 이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프답니다. 세상 어딘가에 내 반쪽이 있음을 알기에 그가 나를 찾아 헤매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가 내 영혼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한번의 헤어짐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사랑임을 기억하리라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내 마음을 안다면, 느낀다면 그도 나와 함께 안타까움을 공유하겠지요. 이것이 욕심이라 생각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한 밤중 심령술사는 한 여인을 기다립니다. 자신의 운명의 사랑의 여인을. 그 여인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됩니다. 그녀가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그것을 알면서도 절대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하는 직업이 남의 운명을 알아내는 직업이겠죠. 하지만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운명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참으로 슬픈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이 내세에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얼마나 될까요? 혹여 만난다 할 지라도 그들이 서로를 알아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 작품은 그런 영혼의 기억을 가진 남녀의 잠깐의 스침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그림이 곁 들여져서 더욱 멋있는 한 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볼강이 딱 한번 만나고, 딱 한번 사랑하고,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여인 로르는 슬퍼하지 말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별한 자만이 가질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영혼의 기억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만나자마자 이별을 예감하는 점술가.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것을 아는 동시에 그 여인의 죽음을 알게 되지만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더 슬픈 운명의 남자도 있습니다. 자신이 모든 힘을 가지리라 생각해서 한 여인의 목숨마저 빼앗았는데 결국 그 여인의 영혼에 지배되어 자신이 증오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입니다. 그녀가 쇠약해질수록 그녀의 힘을 가지려는 남자는 힘이 더욱 세어집니다. 그리고 결국 여자는 모든 힘을 빼앗기고 죽어 갑니다. 악마의 영혼을 가진 남자는 이제 세상을 손아귀에 쥐려 하지만 자신이 여자의 영혼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녀에게 영혼을 빼앗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어떤 것도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저 정해진 길을 갈 뿐. 그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뿐입니다. 사랑도, 권력도, 돈도,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화가 됨을 이 작품을 통해, 애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깨닫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추악한 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니 복수도 필요 없고 살아서 누리는 부귀 영화, 사랑의 완성도 결국은 한낱 꿈일 뿐인 것이 아닐까요.  

단 한번의 만남, 단 한번의 사랑, 그리고 영원한 헤어짐이 볼강과 로르가 공유한 영원의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만이 아니라 그것으로도 충분했음을 기억합니다. 아름답군요. 사랑이란... 이별이란... 기억이란... 인간이 산다는 것도 참으로 아름다울 때가 있어 우리가 오늘을 사는 것이겠지요. 그것을 이 책은 가르쳐 주는군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요.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떠나보낼 때의 고통으로 알게 되죠.
중요한 건 그들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을지라도
그들과 함께 삶을 여행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에요.
이 희망을 이룬 사람들에게 영혼의 기억은
영원히 헤엄치면서 놀 수 있는 넓은 바다가 될 거예요.  

마지막 장의 영혼의 기억에 대한 말입니다. 때론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제 사랑을 사랑했음을 느낄 때가 있죠.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 생각할 때도 있죠.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상처를 다시 핥아 주기도 하죠. 영혼의 기억은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것에 대한 기억입니다. 우리가 그래도 한 세상 잘 살았다고 느낄 때의 그 느낌은 사랑뿐입니다. 그 사랑이 옆에 존재하는 사랑이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든,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사랑이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래도 우린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했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사랑은 절대 지배받을 수도,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나의 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원하신다면 이 책을 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이 책 안에서 심령술사의 손을 통해 퍼져 나갈 겁니다. 가느다란 끈에 매달린 추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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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7-0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때로는 집착하고 그렇게 서로를 힘들게 하고 그러는 걸까요?
영혼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아름답습니다.
정말로 이런 기억을 간직하면서 살면.... 한 세상 잘 살았다고 하겠지요?

물만두 2004-07-0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럼요... 이리 될 수 없어 안타까울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