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꿈꾸지 않는다 - 2010 올해의 추리소설
정석화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화남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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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소설은 그래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더디고 미약하다 할지라도 분명 나아지고 있다. 한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출판하는 단편집을 읽으면 그것을 느끼게 된다. 가끔 정체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뒷걸음질치는 것만같아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이 단편집을 보면 분명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그러니 언젠가 한국 추리소설의 르네상스는 올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작가들이 추리소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좀 더 나은 대접을 해준다면 말이다.  

역시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고 더 좋다고 말하게 된다. <곰 인형을 안은 소녀>는 한 남자의 죄를 묻는 작품이다. 정석화의 작품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뛰어나다. 추리소설로만 한정짓기 아깝다. <그놈이 그놈>은 베스트극장같은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든다. <나의 치명적인 연애>는 범죄에 대한 탐닉은 섹스보다 강렬하고 마약보다 끊기 어렵다는 것으로 정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녹의 마녀>는 돈이 화자가 되어 세상을 보는 이야기다. 정말 돈 자체에 의지가 있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까하는 생각이 부질없이 들었다. <서명합니다>는 인터넷의 세상속에서 네티즌이 무심코 하는 일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요즘 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삼는 것 중 하나가 인터넷, 컴퓨터의 정보 수집 등인데 단편으로 쓰기에는 좀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표적>은 뉴스에서 총기 사고와 안전문제에 대해 다룬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은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다음은 누가 표적이 될지, 노리든 아니든 누군가 내게 총을 겨눌 수 있는 세상이 공포로 다가온다. <악마는 꿈꾸지 않는다>는 표제작이자 현대 사회의 모순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아이를 두번씩 유괴당한 사장과 같은 사건을 두번이나 맞게 된 형사. 진실과 거짓, 가해와 피해 사이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 작품이다. 역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단편이다.  

<영국 신사의 일곱 번째 진공관 앰프>는 무슨 푸른 수염을 보는 느낌을 주는 작품인데 뭘 말하고 하는 지 잘 모르겠고 <원더 레이디스와 처녀시대>는 오히려 단순해서 좋았다. 가장 기본적인 추리소설의 맛을 제대로 살린 작품으로 재미있었다. 소년 탐정의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재의 추적>은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는 사채와 자살, 떨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단상을 그린 작품이다. <처녀작 공포증>은 마지막에 임팩트를 주는 작품이었다. 작가들에게 처녀작은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첫 작품으로 쓰린 질타를 받은 작가라면 다음 작품을 쓰기까지 심한 좌절감을 겪거나 성공한 뒤 바라보게 되는 첫 작품은 자신의 명성에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작가의 유머러스하게 쓴 이야기가 보는 재미를 더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이 단편집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대인들에게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무감각의 단상이다.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면서 그 안에 그들의 고단하고 지친 살이를 담아내고 그들이 무심코 벌이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범죄와 의도했더라도 경미한 죄책감, 또는 아무도 피해입지 않으면 어떤 일을 벌여도 된다는 인식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들의 그런 무심함이 어쩌면 작금의 사회에 더 큰 문제는 아닌가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추리소설이 가지는 장점이다. 아주 간결하고 명료하게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을 반성하게 만드는 것. 이런 점을 작가들이 단편들속에 잘 살리고 있다. 

좋은 작품도 있고 평범한 작품도 있었지만 이 작품들은 대부분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무릇 추리소설이란 현대 사회의 그늘을 조명해야 한다. 늘 주시해서 일깨우고 알려줘야 한다. 그 방식이 과격하고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그것이 추리소설이, 추리소설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도 많이 세분화된다. 하지만 이것만 잃지 않는다면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계속 전진한다면 빛나는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악마는 꿈꾸지 않지만 우리는 꿈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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