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볼 밀리언셀러 클럽 106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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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병이 들어 죽음을 향해 항해하는 존재일 뿐이다. 산다는 건 병이 드는 과정이다. 자유라는 병, 사랑이라는 병, 욕망이라는 병,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병, 아이의 양육이라는 병, 탈출을 향한 열정이라는 병, 탐욕과 출세를 향한 몸부림과 시기와 질투, 포기라는 병, 내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희열을 맛보려는 허영이라는 병.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병과 싸우며 결국 그 병에 굴복하고 죽는 것이다.   

불륜으로 아이를 잃어버리고 그 아이를 찾아 한 여인의 삶과 그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찾아다니는 것인가를 생각했다. 결론은 여자가 끝까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인 모두가 그렇듯이.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도 이것이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삶이란 언제나 기나긴 여정이다. 그 여정 사이사이 우리가 무엇을 흘리고 다니는지 우리 자신은 나중에 없어진 것을 알고 나서, 아니 그것이 다시 필요해질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집을 뛰쳐나올 때도 주인공은 자신만을 생각했다. 딸을 걱정할 부모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 불륜을 저지를 때도 주인공은 자신만 생각했다. 아이를 버려도 좋다고 생각했고 남편이나 상대방의 배우자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어 가는 형사의 모습도 주인공의 모습과 마찬가지지만 주인공은 더 잔인하다. 죽어 가는 남자로 인해 살아 있음에 대한 보상과 잃어버린 딸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상쇄하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그것으로 우린 무엇을 잃어버릴 지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순간일지라도.

지금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내 아이일까. 아니면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일까. 이 여자는 왜 잃어버린 한 아이에게만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죄의식에서 일어나는 모성의 본능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자신의 자학성 만족감 때문일까. 여자에게는 또 다른 아이가 있다. 자신이 외면한 남편을 닮은 아이. 그 아이는 또 다시 잃어버린 아이처럼 버려 둔 채 잃어버린 한 아이만을 찾아다닌다.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은 또 다른 죄를 짓는 일 아닐까.  

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어른은,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 중에서 그래도 자신을 더 닮은 아이에게 더 애정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이것 또한 인간의 이기심과 비뚤어진 자아의 실현이다. 이제 여자는 자신의 아이 둘을 모두 잃었다. 남편도 없고, 사랑했다 믿었던 남자도 떠났고, 자신이 위안을 삼던 남자는 죽었다. 여자는 아이 찾기를 그만두지만 세상 어디에도 그녀를 반기는 곳은 없다. 왜 그녀는 그녀의 한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이의 죽음과 사건을 파헤치려는 의도는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간들의 방황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불륜에 의해 아이를 잃은 카스미를 통해, 카스미와의 불륜으로 모든 것을 잃고 포기하며 자유로운 기둥서방으로 사는 이시야마를 통해, 그리고 암으로 죽어 가는 전직 형사 우츠미를 통해. 우츠미와 카즈미는 사라진 카스미의 딸 유카에 대한 꿈을 꾼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바람이 담긴 꿈. 그것은 꿈이 아닌 사건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듯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허영이 낳은 장사암에 불과하다. 돌 같지만 만지면 부서지는. 헛되고 헛된 인간의 삶과 욕망을 죽음과 사라짐을 잘 표현하고 왜, 무엇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하는 인간 삶의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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