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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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읽고 난 뒤 맨 처음 화자의 말처럼 나라도 긴다이치 코스케처럼 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걸 망설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야기의 소재가 끔찍하고 가히 악마적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책을 덮은 뒤 찜찜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작품은 이제는 법에 의해 사라져버린 귀족 가문의 자작이 천은당 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보석 탈취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그 굴욕감으로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그 뒤 츠바키 자작은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기묘한 플루트 곡을 남긴다. 그의 딸 미네코는 얼마 후 긴다이치 코스케를 찾아온다. 자살 후 시체 확인까지 했는데도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그리고 이어진 점술의 기묘함과 살인사건이 긴다이치 코스케를 계속 악마를 찾아 나서게 만든다. 

천은당 사건의 내용을 접하면서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알게 된다. 바로 그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제국은행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가끔 접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 일본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전 후 살기는 힘들어지고 시민은 거의 독재와 비슷한 수준의 억압 아래 있다. 그래서 제복입고 좀 권위가 있어보이는 사람의 말은 무의식적으로 무조건 따르게 되는 현상이 이런 사건까지 일어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여기에 요코미조 세이시는 그런 사회에서 몰락한 귀족과 과거의 단절되지 않은 악습의 고리를 엮어서 하나의 사회파 추리소설로서의 길을 열고 있는 것이다. 본격 추리소설로서 밀실 살인과 트릭을 보여주고 더불어 긴다이치 코스케를 시골에 머물게 하던 고립감을 풀고 사건을 쫓아 발로 뛰어 다니게 만들고 있다. 이런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과정 속에 당시 사회상을 담아내는 면도 보여주며 긴다이치 코스케의 변화 과정을 이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화자와 긴다이치 코스케는 계속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를 중얼거린다. 메리 라인하트의 <나선계단의 비밀>은 일부러 은폐로 사건의 수사를 늦추기 위해 '그때 알았더라면'을 쓰고 있지만 이 작품은 그것과는 다른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는 한편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고립된 장소에서 탈피한 점과 전후 사회상을 묘사한 점은 높이 사고 싶고 딕슨 카적인 오컬트적인 면으로 그럴 듯하게 작품을 잘 구성한 점은 높이 사고 싶지만 긴다이치 코스케가 늘 범인보다 한발 늦는다는 점이 이 명탐정과 작가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뭐,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탐정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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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3 1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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