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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ㅣ 패러독스 2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을 미리 밝히고 그 범인이 범인이 아니라면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읽은 나는 저자가 저지른 명백한 오류인 독자에게 범인을 알려주는 행위를 간과할 수 없기에 밝히지 않기로 한다. 또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비롯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추리소설 독자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니 양해를 구한다. 비록 책 소개에서 모든 것이 나오고 목차 속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러므로 내 글을 통해 가려진 진실을 보아주기를 바란다. 때로는 밝혀진 진실이 불편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십여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는 '와, 이런 작품도 있구나.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다.'라고 감탄했다. 십여년전에 다시 읽었을때는 '페어플레이 논쟁을 왜 벌였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관점을 달리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나라면 범인을 이 사람으로 할텐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작가에게 이미 나온 작품의 수정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것은 작가의 고유 권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말았다. 이 책을 처음 보고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는 대단해.'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도 그렇게 끊임없이 논란을 만들더니 사후에까지 이런 현미경같은 작가에게 해부되는 일을 겪다니 책이 대단하지 않다면 어디 가능하기나 할 법한 일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몇 해전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사람이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 대한 과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하고 <오이디푸스왕>과 비교하는 모습속에서 추리소설이 장르소설이라는 하위 문학으로 더 이상 치부될 수 없음에 가슴 벅찼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계의 대모이자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의 바이블이다. 그의 책을 읽지 않고 추리소설을 읽었다 할 수 없고 그의 책을 모두 읽는다면 대부분의 트릭은 배우게 된다. 본격추리소설의 트릭은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속에서 태동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런 그의 작품은 언제나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한 결과라 할 수 있고 그 자신도 어쩌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자서전과 작품 속에서 남긴 것들로 볼 때 커다란 추리소설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의 책 한권 한권이 어쩌면 독자에게는 그의 작품 세계 전체에 대한 단서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에게 그런 관점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작가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이 다른 사람이라는 전제하게 작품을 파헤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본격 추리소설이 독자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들, 쉽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 찾기를 할때 반드시 보물이 숨겨져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작가가 독자에게 작품안에 단서를 보물처럼 숨겨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간과하고 읽는 것은 독자의 책임이지 작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범인은 확실한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살인의 동기, 살인할 수 있는 행동력같은 것 말이다. 이런 세세한 점들이 모여져 지목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이 작품에서 푸와로가 지목하는 범인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푸와로의 망상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라는 막강한 카드를 들이대고 여기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푸와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숨겨진 보물이 없는 보물 찾기란 말이 안되듯이 텍스트 자체가 오류로 뒤범벅이 되서 추리소설, 아니 문학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데 어떻게 작가와 푸와로가 주장하는 범인이 범인이라 믿을 수 있겠느냐며 타당한 다른 범인을 저자 본인이 수사를 통해 지목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범인이 나도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범을 놓치고 피해자를 한 명 더 만든 셈이 된다. 이것은 독자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쓴 것, 탐정이 지목한 대상을 여과없이,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서, 추리소설 읽기에서 수반되는 위험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또 다른 추리소설을 기대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집중이 안됐는데 뒤로 갈수록 저자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정곡을 찌르는 여러 책에 대한 비교 분석과 설명,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전반에 걸친 간단한 검토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복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언젠가 반드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꼼꼼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누가 알겠는가? 또 다른 해석 망상에 의한 피해자를 구제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