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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시간
이정옥 지음 / 우리같이 / 2009년 1월
평점 :
산다는 게 말입니다. 어디에서 살던, 무엇을 하고 살던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더란 말입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될 때, 아니 산다는 것 자체도 의식 못하고 살 때 어쩌면 그런 때가 산다고,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지요. 삶이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하고 중요하고 거창한 거라고 이 삶, 저 삶 마구마구 비벼대고 파헤치고 기웃거린답니까. 하긴 그런 동물이 인간이라는 존재이긴 하지만요.
한설형이 사랑하는 남자를 죽였노라 자수를 해왔다고 같은 하숙집에 있던 인연으로 경찰인 정준, 로렌 송이 그 이유를 알고자 매달리는군요. 그곳은 미국이고요. 한국에는 한설형이 남긴 어머니의 제자 홍강희와 그녀의 남편이자 설형을 사랑하던 박일규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품은 미국과 한국, 과거와 현재를 서로의 관점에서 넘나들고 서로의 자신만의 이야기속에서 한설형의 모습을 완성해가면서 자신의 숨은 시간, 애써 숨긴 시간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혼하고 선생님의 집에서 살게 된 홍강희는 땅을 가꾸는 이야기를 합니다. 중학교때 가정 선생님이셨던, 자신을 새끼 악마라 부르던 설형의 엄마인 그 선생님은 그렇게 땅을 가꾸듯 아이들을 돌봐왔는지 모릅니다. 땅에서 수확을 하듯 삶을 그렇게 거뒀는지 모릅니다. 홍강희가 따라가는 삶은 그런 삶입니다. 그런데 홍강희는 마지막까지 모진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로렌은 재미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거추장스러워 하는 인물입니다. 혼자라면 너무 잘났는데 한국인이라는 꼬리표가 그녀를 움추려들게 만듭니다. 정준은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미국에 온 인물입니다. 박일규는 첫사랑이 동아리선배와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한 인물이구요.
결국 중요한 건 살인을 했냐, 왜 했냐가 아닙니다. 그 각각의 인물이 자기 스스로가 누구인지, 자신의 삶의 빈 구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인물이 사연도 많고 그 사연에 사건에 쫓아가기가 버겁게 만드는군요. 작품이 진을 빼는군요. 삶이라는 게 시 한편에 오롯이 담기기도 하지만 대하소설 십여권으로도 모자랄때가 있는 거라서요. 그걸 한 권에 여러 사람을 다 다루려니 그 삶들이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내 삶도 힘든 판에 조각난 남의 삶 퍼즐 맞출 여유가 있어야 말이죠. 숨은 시간은 아직도 그래서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답답해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삶인데, 모든 이의 삶인데 어쩌겠습니까. 픽션이 논픽션같아져서 재미없고 사실적 인생 또한 그런 것이라서 소설이 이해가 되고 그러네요.
누군들 사는게 안 힘들답디까. 삶의 비밀이 있으면 어쩔 것이고 알면 또 어쩔 것인지, 그거 물어 뭐에 쓸렵니까? 난 이렇게 묻고 싶네요. 어영부영 묻어가는 인생들이 그냥저냥 한 세상 살다가면 그만인 것을 때빼고 광낸다고 그 삶이 좋아보이지 않으면 불행한 것이고 허술하고 빡빡해보여도 그 삶이 좋아보이면 행복한 것이고 그런 것이지 내 삶이 그런다고 다른 삶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지지 않은 것을 기를 쓰고 가지려고 애써봐야 부질없는 짓이고 말입니다.
내 말하리다. 삶의 비밀은 정성 반, 손맛 반, 그리고 덤으로 양념 조금입니다. 그 정성이 무엇인지, 손맛이 무엇인지, 양념은 무엇인지야 그것까지는 모르지요. 내 삶의 것도 다 모르는 판에 남까지 알려줄 게 있겠습니까. 각자 알아서 살면 되는 것이고 하니 잘 찾아보시구려. 참, 잊은 것은 잊은대로 놔두고 떠난 것은 떠난대로 보내주고 남아 있는 거나 잘 챙기시구려. 미련 떨지 말고. 아무리 용을 써도 내 것이 아닌 것은 내게 되지 않고 아무리 쫓아가도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안 돌아옵디다. 죽으면 그만인 삶, 살아서도 죽은 듯이 살것까지야 무에 있는지... 하긴 그게 자기 맘대로 되는 거라면 삶이 삶이 아니겠다 싶긴 합니다요.